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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 한국 공직사회는 왜 그토록 무능해졌는가
노한동 지음 / 사이드웨이 / 2024년 12월
평점 :
나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10년 동안 일했고,
그 무의미한 일을 스스로 그만두었습니다.
고시 공부 3년, 사무관 10년 등 도합 13년의 세월을 매몰
비용으로 지불하고 제 발로 여기를 나가겠다고 생각한 건,
오랜 시간 동안 공직사회의 다양한 헛짓거리를 경험하며
가랑비에 옷이 젖듯 습득한 무기력 때문이다.
관료는 두 얼굴을 갖는다. 평소에는 공익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법과 제도가 준 권한과 직위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갑'의 얼굴을 한다. 그러나 진짜 일해야 하는 때가
오면 정권, 국회, 여론 뒤에 숨어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는
'을'이 얼굴을 한다. 게다가 관료는 갑과 을의 얼굴을 오가며
1~2년 버티면, 아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도 절로 자리를
옮기고 승진할 수 있다.
하루에도 쏟아지는 업무 지시에 대해 각각의 공무원 개인이
위법 여부를 일일이 따지다 보면 아마 행정은 마비될
지경에 이를 것이다. 공직사회에서 항명은 거의 허용하지
않고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문화는 그 나름대로 행정의
민주성이나 효율성 측면에서 이유가 있는 셈이다.
문학과 책을 좋아하던 청년이 블랙리스트 실행에 가담할
뻔한 위험한 사회에서, 개개인의 영혼은 정의로운 행동이
아니라 면피와 행운으로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이, 내가 알게
된 공직사회의 첫 번째 민낯이었다.
공직사회에는 복종보다는 토론이 필요하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아돌프 아이히만을 분석하며,
악의 근본적인 원인을 깊은 증오나 사악함이 아닌 평범하고
무비판적인 복종과 직무 수행에서 찾았다.
정부 보고서는 가독성에 목숨을 건 문서다. 보고서의 본문은
보통 한 장이며, 복잡한 통계나 보조 자료는 붙임으로 처리한다.
글자크기는 15포인트로 일반적인 책자보다 상당히 큰 편이고,
개조식으로 작성되어 있어 형식적으로 읽기가 수월하다.
모든 관료들은 명시적인 지시 없이도 조직의 상급자가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를 최대한 달성하려고 노력한다.
이휴는 간단하다. 정책 대상의 평가가 아무리 좋지 않아도
관료에게는 사실상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상급자의 평가는 관료 개인의 평판, 승진, 유학 등 일생의
모든 걸 좌우한다.
애초에 격식 있는 간담회 자리를 만들라는 것 자체가 사실은
현장의 진짜 목소리를 가감 없이 들을 마음이 없다는 선언과도
같다. 장관이 동정을 언론에 잘 드러나게 하는 것이 현장
간담회의 진짜 목적이기 때문이다.
공직사회에서 다른 부처나 부서에서 하는 정책을 모아 보고
하는 일을 일컬어 호치키스 행정이라고 한다. 다른 부처의
일을 문서로 취합하여 보기 좋게 호치키스로만 찍는다는
의미니까 다소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한민국 정부 전체로 봐도 주로 호치키스 행정을 하는
기획재정부나 행정안전부와 같은 부처에 있어야 관료로서
크게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파킨슨은 관료제에서 관리직을 중심으로 조직이 확장되는
메커니즘을 '부하배증의법칙'과 '업무배증의법칙'으로 설명했다.
공무원은 일이 많을 때 동료보다는 부하 직원을 늘리기를
원하고(부하배증의법칙), 부하 직원이 늘어나면 지시와 보고받는
과정이 파생되어 결국 서로를 위한 쓸데없는 일거리가 늘어난다
(업무배증의법칙).
직업공무원인 관료는 책임을 싫어한다. 본인이 있을 땐 결정을
최대한 미루고 싶어 하는 것이 공무원의 태생적 본능이다.
연구용역과 위원회는 정책의 전문성과 민주성 증진을 핑계
삼아 공무원이 시간을 벌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결정의 완충지대
이다.
관료제의 무책임과 정치적 외풍에 쉽게 흔들리는 행정의
현실은 정부를 점점 더 위태롭게 만든다. 그러나 단순히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데서 그치거나, 단기적 처방에 의존한다면
이러한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공직사회의 구조적 한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다.
공직사회는 대부분의 공무원을 낙오 없이 끌고 가려는
온정주의와 개인보단 조직을 우선시하는 집단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다.
제도적 변화를 통해서 관료가 전문성을 갖게 되면, 그 효과는
단순히 정책의 품질 제고에 그치지 않는다. 전문성은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에 저항하는 가장 큰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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