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작
백진호 지음 / 고유명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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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위작품을 두고 펼쳐지는 아름답고 냉혹한

욕망의 하드보일드.


저마다 자신이 해석한 결론을 진실이라 

굳게 믿으며 살아간다.


비는 처절하게 쏟아진다. 비바람 소리에 세상이

지워지고 있다. 아프다. 총알에 관통된 복부의

뜨거운 통증보다, 빰을 때리는 빗방울이 더 아프게

느껴진다.


오래 그 빰을 잊고 지냈는데, 매일 보고 있으면서도

잊고 지냈는데, 이제야 그 빰이, 그 빰의 온기가 절실히

그리워 진다.


고상하고 기품이 넘치는 검은 슈트를 차려입은 

경매사가, 왼손에 경매 봉을 들고 오른손의 우아한

손동작으로 비드된 가격을 외칠 때마다, 근대 풍의

장엄한 장식으로 마감된 실내 여기저기서 숨죽인

탄성이 흘러나왔다.


몸속 깊은 곳의 뜨거운 분노가 손끝에 와닿지 않는다.

분노가 몸속에서 들끓다가 온몸의 근육을 삶아버린

것만 같다.


젋고 건강한 손은 아름답다. 순한 혈액의 빛으로

생생한 손등과 매끄럽고 유려하게 뻗은 손가락.

섬세한 터치를 가능케 하는 저 손목의 힘찬 유연성.

몸속에 가득 찬 시정을 캔버스에 고스란히 옮겨주는

건 결국 손의 아름다운 힘이다.


선과 형태, 그리고 색채의 마법을 걸어 화폭에 붕인하는

순간, 그 어떤 오르가즘보다도 더한 황홀감을 선사해주던,

그가 사랑한 유일한 여자의 나신이었다.


어느 날 이미애의 부탁으로, 결코 그가 여성의 나신을

그려본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날은 무엇에

홀린 듯이 붓을 들어 그녀의 나신을 그리게 되었는데,

그때 이후로 그는 이미애의 나신에 탐미적으로 집착하게

되었던 것이다.


부와 권력을 지닌 자들은 그들이 지니지 못한 미의

환영을 그녀에게서 찾으려 했고, 그녀가 건네는 예술

작품들을 받아먹으며 자신들이 고상하고 아름다운

세계에 속해 있다고 착각에 빠지곤 했다.


경찰이 범인으로 몰았던 무고한 남자의 누명을

벗겨낸 것도, 진범을 잡아 참혹하게 죽은 피해자의

원한을 풀어준 것도 모두 홍정훈 혼자서 해낸 일이었다.

그는 일약 전국민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고혼기의 눈가에 미미한 물기가 서리고 있는 것을,

이윽고 그는 조용한 어조로 자신의 작품이 맞다고

인정했다. 언제 그렸는지는 기억이 희미하지만,

저 그림 속의 나신은 분명 이미애의 신체라고.


어쩌면 예술의 신이 내게 손의 윤회를 허락했는지도

모르겠네. 저 사기꾼 녀석의 손은 내 젊은 날의

손이 환생한 것인지로 모르지라고 고상한 헛소리를

늘어 놓으면서 결국 어시스턴트를 받아 들였다.


예술은 화가의 몸속에 깃든 영혼의 표현이에요.

단순히 물리적인 노동의 결과가 아니란 거죠.

이를테면 뒤샹이 있잖아요. 그는 어느 날 백화점에서

남성 소변기를 사와서는 리처드 머트라는 서명을

하고 갤러리에 전시했어요. 다른 게 있다면 그 것이

놓인 자리가 미술관이라는 것과 샘이라는 제명이

붙어 있었다는 거예요.


글쎄, 정신과 몸이 다른 예술이 있을 수 있을까?

물론 그런 예술은 있을 수 없다!

그건 바로 어머니의 가르침이었다.


사람들은 작품에 대한 그녀의 안목에 감탄하기

보다는, 그녀가 부여하는 기묘하고 환혹적인 아우라에

열광했다.


예술이라곤 싸구려 풍경화 정도 밖에 모르는 이런

남자의 몸뚱이에서 어떻게 어머니의 전언이 흘러

나올 수 있었던 것일까?


고혼기는 말문을 잃었다. 내 작품을 금고 따위에

보관하다니 그는 모욕감을 느꼈다. 그림은 자고로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에 놔두어야 한다. 사람이 보지

못하는 그림이란 더는 그림이 아닌 것이다.

그건 단순히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그의 몸을, 그의 정신을, 그리고 그의 삶의 모든 것을

지탱해주는 온기였는데, 마치 그의 체온이 그의 몸속에

없고 그의 몸 밖에 있는 것만 같았다. 바로 딸아이의

저 부드러운 볼 속에 ···


작품은 단순한 물감 덩어리가 아니에요. 거기에 깃든

정신의 산물이죠. 화백님은 현대의 오브제를 활용하여

그 시절의 정신을 끌어낸 거예요.


고스란히 베낀다 해도 절대로 베낄 수 없는 게 있습니다.

그건 바로 시간이죠. 시간은 베낄 수가 없어요.


어째서 나는 그런 철부지 여자를 사랑했던 걸일까?

가슴이 시릴 정도로 아름답지만 결국엔 눈을 뜨고야 말

아름다운 몽유병 같은 여자를.


그는 그녀의 삶이라는 이상을 배신한 유일한 남자였다.

한때 배신할 수 있었던 유일힌 연인이었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proper.book

@chae_seon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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