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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를 손에 든 자 - 대학병원 외과의사가 전하는 수술실 안과 밖의 이야기
이수영 지음 / 푸른향기 / 2023년 6월
평점 :
대학병원 외과의사가 전하는 수술실 안과 밖의 이야기,
하루에도 몇 번씩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는 외과의사의
고뇌와 진심을 털어놓다.
내가 크론병 진단을 받은 건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던
전공의 3년차 봄이었다. 크론병 환자의 수술 동의서를
받으면서 기계적으로 주저리주리리 읊어댔던 합병증들이
나에게 닥칠지 모른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나는 수술장 상담실 입구에 쭈그려 앉아 울고 있었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지만, 분명히 울고 있었다.
환자의 생사라는 버거운 무게가 내 어깨에 오롯이
지워져 있었다. 그 누구도 책임을 나누어 질 수 없었다.
외로웠다. 너무나 외로웠다.
모든 외과의사는 합병증의 위험을 안고 수술을 한다.
담당 환자의 합병증을 경험하지 않은 외과의사가
있다면 아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외과의사일 것이다.
수술은 끝났지만, 나는 상담실로 통하는 문을 열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어차피 부딧쳐야 하는 일임을 알면서도,
누구도 나 대신 감당해 줄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도망치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혀 나는 쉽사리 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배를 열었지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닫아야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만 닫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올랐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그건 이제 그만 포기하자는 선언과도 같았다.
함께 아파함으로써 상처를 보듬어주는 것으로 그 역할을
대시하기엔 외과의사라는 직업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사람을 살린다는 자존심을 지키키에는 바이탈을 다루는
의사를 향한 세상의 잣대가 너무 가혹하다. 슬프고 무섭다.
수술은 '일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물론 수술 중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절대 안된다.
하지만 그것은 항상 긴장 상태로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버님을 살린 건 제가 아니라, 아버님 자신이라고요."
누구도 진심으로 믿지 않았지만, 환자 스스로는 진정으로
믿고 수없이 되뇌었을 기적을 부르는 주문, '이겨낼 수 있다'.
그래, 기적은 그렇게 스스로의 의지를 타고 우리 곁으로
찾아온다.
환자를 가슴에 묻으며 다짐했다. 앞으로는 환자와 나를
동일시하여 감정적으로 버거워하지 않으리라. 환자는
환자로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냉정해지리라. 하지만
나는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 다짐은 결코 지켜질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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