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을 수 있는 세상
마일리스 드 케랑갈 지음, 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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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로 옮겨진 현실은 단순한 재현이 아닌

우리를 흔드는 감각적 체험이 된다.


듣는 이 없으면 나뭇잎 흔드는 바람 소리가 있는가?

<간화선>


결과가 불안했던 폴라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덧칠한 자리를 살폈는데, 왠걸, 괜찮다, 색깔들이 좋다.

그 순간 터져 나오는 탄성, 손뼉, 포옹, 그리고 피로에

지친 눈물 몇방울.


그때 그는 사랑에 빠진,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사랑의

흐름에 사로잡힌 얼굴이었다. 폴라와 케이트가

뒤돌아보지 않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두 여자는 

조나스에게 지나치게 다가가지 않았고 캐물어 볼

생각도 해본 적 없다. 절대 한번도 없다.

셋의 관계는 그런 식이었다.


트롱프뢰유(착시화)는 그림과 시선의 만남이죠.

트롱프뢰유는 특수한 시점을 위한 그림이고, 원하는

결과가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지금 폴라는 소리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붓들은

호기심에 젖어 바라본다. 세상을 만들기 위해 창조된

연장들이다.


폴라는 스스로 자신의 몸에 부과하는, 자신이 감내할

수 있으리라고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것에 자신을

쏟아부으면서 기꺼이 소진되어 가는 낯선 감각에

매혹되고 얼얼해진다.


트롱프뢰유는 사유를 흔들 수 있고 환상의 본질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감각적 체험이하는, 어쩌면 그림의

본질이라는 생각이다.


태연한 척하면서 화편들 사이를 지나갈 때의 마음속

동요는 아직까지 잘 제어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끓어오름과 수근거림과 부대낌의 구역으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언제나 순수한 자극에서 

비롯된 동요, 전기 충격이다.


조나스는 화폭을 가볍게 다듬으며 부드러움을 주는

중이고, 폴라는 스펀지로 문지르며 리피팅 작업 중이다.

밤은 연성과 탄성을 지니고, 마치 과거와 미래가

풍화되고 현재는 그림 그리는 행위만이 시간이 된 듯,

그들은 계속 그린다.


처음으로 딸의 삶에서 자신들이 알지 못하던 부분을

마주한 그들은 딸의 작품을 관찰한다. 형언할 수 없는

눈부신 이미지. 강바닥의 자갈과 바닷속 식물들과

파충류들을 담고 있는 표면 앞에서 그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서로를 믿고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음을 의심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은 무언가가 끝났음을 확실히 새겼다.


관객의 눈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을

즉각적으로 파악하게끔 해주기, 이게 바로 영화 

이미지의 본질이야. 사기꾼이 벌떡 일어서서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본다. 여기 이것들 전부가 조약하지만은

않답니다, 아가씨. 우리의 눈에 맞춰진 고도로 기술적인

거라고요.


이제 모든게 투명하다. 진짜로 그리기, 진짜로 사랑하기,

진짜로 서로 사랑하기, 다 같은 거다. 폴라가 소파로 

돌아오고, 그들은 마주 보고 모로 누웠다.


찬란한, 원래 모습 그대로의 동굴이 있고, 그 경이로운

신선함이 시간을 없애 버리고, 그곳에 우리와 가깝지만

미지의 존재인 선사 시대 인간들이 있다. 이보다 

더 흥분되는 일이 있을까?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chae_seon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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