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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우리를 기억할 테니
이지영 지음 / 행복우물 / 2023년 9월
평점 :
집 떠난 지 130일째 되는 밤,
오늘도 어김없이 어둠이 내렸다.
스무 시간이 넘는 야간 이동으로 엉덩이가 쿡쿡 쑤셔 왔다.
빨래를 못해 냄새나는 옷가지가 어느새 배낭의 절반이
돼버렸다. 더 이상 입을 옷이 없어질 즈음 쾌쾌 묵은
티셔츠를 훌훌 털어 입었다.
사람은 누구나 욕심 앞에서 불씨를 활활 태우고 싶어한다.
불씨는 열을 내며 타오르다가 때로는 휘청거리기도 한다.
글쓰기가 내게 그렇다. 진한 연필로 눌러쓰다 중지에
만져지는 굳은살을 좋아했다.
우리 모두 아득하지만 살아가기 위해서. 그러니 조금 힘에
부쳐도 괜찮다 믿었던 날들이었다.
한 사람이 부족할 때 다른 한 사람이 도와줄 수 있으면
된 거예요. 그러니 부디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이 부족할 때
내가 도와줄 수 있었던 것뿐이에요.
축축한 밤이 내 곁을 쉽사리 떠나려 하지 않을 때 생각했다.
나는 왜 떠나야만 했을까. 가까운 사람들을 등지고 홀로
떠나와 생각하는 것이 겨우 슬픔을 헤아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매번 그 황홀한 순간에 떨어진 슬픔을 줍느라 바빴다.
그러니까 너무 아름다워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잠겨있던
슬픔 때문에 참았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끼니 거르지 말고, 남은 여행도 건강하게. 알지?"
알 수 없는 순간에 알 수 없는 인연을 만나 이토록 가슴이
아려 오는 것. 여행은 닦지 않아도 되는 눈물 같은 것이다.
잊어야만 하는 사람과 얻어지는 사람이 있어서 인생은
이상하고 재밌다. 낯선 곳, 처음 만난 인연의 두근거림이
이제는 여행의 전부가 된 것처럼 말이다.
여행자의 가난한 마음이 매일 밤 낯선 침대에서 부유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무언가로 채워졌던 낡은 도서관처럼
노래 같은 날들이 있었다.
음식 앞에서 계절을 잊어버리는 것은 이미 그 계절을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다.
긴 여행을 하면서 혼자라는 이유로 두렵기도 했지만
언젠가부터 새로운 곳을 갈 때마다 그 나라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 더욱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밤잠을 괴롭힌다면 그리움이라 불러도
될 까요. 구태여 기억 저편을 껴내는 것.
별거 없지만 함부로 꺼낼 수 없는 것.
입으로 중엉거리다 결국 글로서야 남기고 마는 것.
놓치기 싫은 어제를 데려와 주위에 맴돌았으면 하는 것.
하루의 일기가 곧 한 떨기의 시처럼 내 곁에 머물렀으면 한다.
여행은 매 순간 '처음'과 '마지막'이 전부였다.
떠난 자들은 여행을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생을 연명하는 이름이 가여운 탓에 유랑이 길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자꾸만 입에서 마음으로 넘치는 말들이 곧 노래가 되는
그런 하루. 어제와 내일보다는 오늘이 넘치게 사랑하는 법이
여행이었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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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e_seon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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