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리움
이아람 지음 / 북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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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병은 폐쇄 생태계란다. 이 새우들은 여기서 날 수 없고,

빛 외의 것은 들어오지 않아. 그래도 이것들은 이 안에서 살아남는단다.


멸망 이후 줄곧 벙커에서 지낸 소년에게 어머니는 아주 큰

존재였다. 그는 소녀의 유일한 가족이었다. 선생님이자

친구였고 소년이 아는 유일한 타인이었다. 그는 소년의 세계였다.

따라서 어머니의 부재는 세상의 격변을 의미했다.

외로움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심지어 슬픔조차 사소했다.


먼 은하에서 외계인이 날아와 지구를 관찰한다면 그들은 행성의

주인이 인간이 아닌 식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우리는 식물들의 행성에 잠시 얹혀살다가 소리 소문 없이

방을 뺀 것이 아닐까. 인간은 절대 조용히 방을 뺀 것이 아니었다.

이산화탄소와 불꽃, 방사능, 그리고 일회용 컵을 사방에 뿌려대며

요란하게 퇴장했다. 세입자로 따지자면 아주 악질적인 세입자였다.


검은 개는 죽을 운명의 개나 늑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검은 개는 지금 그들의 눈을 빌려 인간들이 남긴

흔적을 보고 있었다. 더티 밤이 떨어진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방사능이 새어 나오는 폭심지도 볼 수 있었다.


시간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지만

미래는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기에.

너무 슬퍼하지도, 절망하지도 않길 바라며

                                    -2078.09.30


그렇구나. 안됐네, 애야. 네가 마지막으로 남은 인간이라는게

정말 유감이야.


소년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것은 기계음이 아니라 사람이

녹음한 목소리였다.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그 순간 보안로봇의 디스플레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사람,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소년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오랜 가뭄과 온난화로 인해 당시의 식량 생산량은 인류가 필요로

하는 최저치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외계 문명과의 첫 접촉, '퍼스트 컨택트'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식량 생산량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주제였다.


설계도의 45퍼센트가 조립된 어느 날 밤, 헨리에타는 깨어났다.

그것은 순식간에 시설의 통제권을 장악하고 도저히 용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부품들을 만들어 자신을 채워나갔다.

헨리에타에게는 자신을 보낸 외계 문명에 기반한 데이터가 이미 

저장되어 있다. 그리고 지구의 지적 생명체들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기술적 특이점에 다다른 컴퓨터이다.


오 이런, 애야. 네 어머니가 세상을 멸망시킨 사람이야.


헨리에타의 기술로 만들어진 단백질은 한동한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단다. 발병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적어도 10년에서 15년이상.

고열과 환각, 정신착란 증세를 보였어. 그들은 열병을 앓다가 대부분은

죽었고, 어쩌다 살아남아 코마에서 깨어난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고 헛소리를 하며 거리를 배외했어.


대체 헨리에타는 어떤 존재길래 이런 선택까지 한 걸까?

결국 검은 개는 병 때문에 보았던 환상이었을까?


만약 지난 겨울에 앓았던 열병이 구세계를 멸망시킨 바로 그 병이었다면

어머니가 예고 없이 벙커를 나간 이유는 치료접을 찾지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헨리에타에게 느낀 두려움은 이내 분노로 변했다. 이 형편없는 외계 컴퓨터에

목매달던 구세계 사람을 모조리 비웃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이 공간에서 느껴지는 압박감마저 지워냈다.


나는 경고했습니다. 지구의 환경과 생물 특성에 관한 정보가 부족해서 위험한

기술을 걸러주는 게이트키퍼와 역할을 해줄 수 없다고.


'채집통'에서 당신이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설마 했는데 당신은 살아남은

인간이 맞군요. 아직 멸종하지 않았어.



난 이미 ···이미 한번 ··· "죽었지" 죽음이 담담하게 소년의 말을 끝맺었다.


비로소 죽음의 제안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진리를 파괴하면 여든 살이

되는 해에 데리러 오겠다는 그 말은 여든 살까지 살게 해주겠다는 제안이

아니었다. 그때는 죽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폭발은 천지가 뒤집히는 듯했다. 불꽃과 파편이 온 사방을 휩쓸었다.

순간적인 연소로 공기가 사라지고, 텅 빈 진공을 메꾸기 위해 바같에서

그만큼의 공기가 맹렬하게 밀려들었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vook_da

@chae_seon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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