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사 사회
송병기 지음 / 어크로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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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국가의 짐인가?,

콧줄 단 채 생의 마지막을 맞아야 할까?,

왜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죽음을 앞당기고 싶어 할까?

존엄한 죽음을 가로막는 불평등한 삶의 조건을 성찰한다.


죽음은 개인적인 경험인 동시에 사회적인으로 매개된

현상이다. 사람들은 존엄한 죽음보다 깔끔한 죽음을

원했다.


생애 말기 돌봄이 환자와 돌봄 제공자의 삶의 조건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존엄한 돌봄과 임종을 희망하는 사람은

돈이 많거나 운이 좋아야 한다. 생애 말기 돌봄

앞에서 그렇게 사람들은 각자도생 혹은 각자도사한다.


모든 인간은 의존적인데, 우리는 마치 노인만

의존적인 존재인 것처럼 딱지를 붙인다.


낙상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신체억제대 사용 범위가

넓어지며, 식사 수발이 필요 없도록 콧줄이 삽입되고,

화장실 이용을 억제하기 위해서 기저귀가 남용된다.


입소 노인의 수분·영양 공급은 본질이 되고, 입맛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그렇게 노인은 먹는 입만

가진 존재. 즉 '인구(人口)'로 전락한다.

한편 가족 보호자는 간병, 의료비, 시설비까지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가 여전히 노인 부양을 가족에게

떠맡기고 있는 셈이다.


호스피스는 현대 의학이 간과한 말기 환자의 만성적 통증,

삶의 질, 영적 고통에 주목했다. 치료보다 돌봄과 편안함이란

가치를 추구했던 것이다.


원장과 간호사들은 좋은 죽음을 "잠자듯, 고통없이 죽는 것" 

또는 "노화에 의해서 자연스레 죽는 것"으로 정의 했다.

자연사가 좋은 죽음이라는 의미였다.


철학자 미셸 푸코의 분석처럼, 개인의 윤리는 특정 시대의

제도, 담론, 지식, 또 그와 관련된 실천을 통해서 구축 된다.


보호자의 의료 집착이 말 없는 환자의 존엄한 죽음을 가로

막고 있는 셈이다.


환자들은 질병을 '개인의 잘못'으로 여기거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안락사란 의사가 처방한 약을 환자가 복용하여 사망에 

이르는 의사조력자살을 말한다.


연명의료한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및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의학적 시술을 가르킨다.


제사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멈출 수 없다. 우리에겐 어떤

가족구성원도 소외되지 않고, 애정을 느끼며, 고인을 기억하면서

비인간들과도 하나로 연결된느 '오늘의 신성한 의례'가 필요하다.


단수로서의 죽음과 생명의 가치 사이의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고 귀중해서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복수로서의 죽음이란 단위로 나타낸

세계에서 만인에게 평등한 신성한 생명은 온데간데없다.

그 대신 불평등한 삶과 죽음이 어수선하게 엉켜 있는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웰다잉의 유형은 그만큼 사람들이 잘 죽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자, 죽음이 개인의 노력으로 대비해야 하는 일이 됐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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