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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호원숙 그림 / 열림원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서준식선생의 '옥중서한'을 읽다가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내용 중에 "착한 마음으로 책을 읽어라!"라는 대목에서 멈칫, 가슴에 와 닿는 말이었다.한동안 책을 읽을 때 착한 마음으로 읽으려 했으나, 시간이 없다든지,저자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든지,이 책과는 궁합이 맞지않는다든지 이러저러한 이유로 착한마음의 독서가 되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책 '호미'는 얼마전 장석주 시인의 책을 읽다, 호미라는 사물에 대한 박완서선생의 표현이 너무나 정확하고 아름다워 찾아 읽게 되었다. "고개를 살짝 비튼 것 같은 유려한 선과, 팔과 손아귀의 힘을 낭비 없이 날 끝으로 모으는 기능의 완벽한 조화는 단순 소박하면서도 여성적이고 미적이다."
박완서 선생이 이렇게 많은 산문집을 냈는지 놀랐다. 특히 이 책 '호미'(2014.개정판)는 네루가 딸에게 들려주기위해 '세계사 편력'을 저술하고,유시민 역시 갓 대학에 들어가는 딸에게 주기 위해 '청춘의 독서'를 지은것 처럼 바로 박완서선생의 맏딸 호원숙씨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글에 소박한 그림을 같이 그려냈다는점에서 더 애틋하고 정이 간다.
" 돌이켜보니 김매듯이 살아왔다. 때로는 호미자루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후비적후비적 김매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거둔 게 아무리 보잘것없다고 해도 늘 내 안팎에는 김맬 터전이 있어왔다는 걸 큰 복으로 알고 있다. 내 나이에 ‘6’ 자가 들어 있을 때까지만 해도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언어를 꿈꿨지만 요즈음 들어 나도 모르게 어질고 따뜻하고 위안이 되는 글을 소망하게 되었다."라고 작가의 말에 씌여 있다.
그렇듯 이 책에는 박완서선생이 흙마당을 호미로 후비적 거리며 계절별로 100여가지의 꽃씨를 심고,가꾸며 꽃,나무와 대화하는 장면, 말벌에게 사정하면서 나가달라 호소하는 얘기라든가 흙길에 대한 예찬, 말라비틀어진 고로쇠나무에 빗댄 자신의 말년에 대한 염려 등 일상이나 여행에서의 체험,자연과 사람살이에 대해 느낀점을 호미질 하듯 조곤조곤,솔직담백하게 쓴 글들이 실려 있다.
특히 '이문구선생을 보내며'에 나오는 " 헤어지기 전 잠시 멈칫대며 옷깃이나 등의 먼지를 털어주는 척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먼지가 정말 털려서가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손길에 온기나 부드러움,사랑하는 이의 뒷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 착한 마음을 실을 수 있기 때문"(266쪽)이라는 문장. 이 세상에서 사람과의 사귐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그녀의 사람에 대한 애정과 따스함이 담뿍 느껴진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도저히 착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