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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성학 강의 - 한국사회.여성.젠더, 학술총서 22(개정판)
한국여성연구소 엮음 / 동녘 / 2005년 7월
평점 :
최근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니 여성학에 대해서도 공부 좀 해봐야겠다 싶어 작년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사두었던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아쉽게도 초판1쇄 발행일이 1999년 1월 20일이고, 2판 4쇄 발행일이 2004년 2월 20일이다. (상품검색에 아예 뜨지도 않는다)시중에 나와 있는 개정판은 2005년 7월 30일인데 얼마나 많은 부분이 개정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다소 시의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당연히 이 책에는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획기적 성과인 호주제 폐지(2005년 3월)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각 장 마지막부분에 '생각해볼 문제'와 '읽을 거리'를 제공해 상당히 유용하고,충실한 편이다.)
여성학이란 무엇일까? 「기존의 차별적 편견에 도전하고 비판하는 의식을 갖고 출발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여 온 기존 학문과 전통적 지식의 많은 부문에는 여성 차별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인종 차별적, 계급 차별적인 편견과 오류가 있으며, 비판적 사고란 바로 이런 모든 편견과 오류를 걷어내고 남녀에 관한 불합리한 편견과 이념, 제도적 모순 전반을 점검하며, 남녀 모두의 자아실현과 개성표출이 가능한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을 지향한다.」(15쪽)
위와 같은 여성학에 대한 개념 정의에 따라 이 책은 ‘평등과 해방의 꿈- 페미니즘의 다양한 모색, 성차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여성과 문화 읽기, 남성과 남성 문화, 여성의 몸과 정체성, 성과 권력,여성주의 시각에서 본 결혼과 가족, 역사 속의 여성과 일, 서구여성운동의 어제와 오늘, 전지구화와 제3세계 여성운동, 한국여성운동의 흐름과 과제’ 등의 목차로 구성되어 여성문제에 대해 전반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다만 각 항목마다 필진이 달라 시각차에 따른 논리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있다.
학술서적인 이 책에 대해(더구나 페미니즘이나 여성학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 저러쿵 논할 능력과 자격이 없어 인상적으로 느꼈던 내용과 개인적 소감을 간단히 적어 본다.
「근대이전 여성 노동의 특징을 설명하는 부분: 여성들의 노동 경험은 대부분 가구를 벗어나지 못했고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여성의 일이 이루어지는 영역은 집안이었으며 ‘여성의 일=집안일’이라고 일컬어 졌지만, 이때 노동의 내용은 갖가지 가사노동을 비롯하여 가축과 작물을 돌보는 등 다양하였다.~ 부모가 결혼에 필요한 지참금을 대줄 만큼 넉넉하지 못한 경우에는 고용살이로 필요한 돈을 스스로 모으지 않으면 안 되었다. ~ 중세시기의 고용살이란 결혼으로 가는 정거장이었던 셈이다. 이 당시 여성노동은 ‘저임금, 미숙련, 낮은 지위, 잦은 이동’으로 특징지워 질수 있는데 남성과 여성의 임금 비율은 3분의 2에서 2분의 1정도였다. 흥미로운 것은 14세기에서 19세기를 지나 현대까지 여성과 남성 노동의 양상이 변화하는 가운데서도(때로는 동일한 노동에서도)여성과 남성 임금의 비율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215~218쪽에서 발췌)
이후 자본주의적 근대로 넘어오면서 여성 노동은 억압과 차별이 체계화 되는데 「대학교육의 확대와 새롭게 등장한 ‘과학’의 영역에서 여성은 배제되었고 지식의 전문화에 따라 전문직종에도 참가할 수 없었다. 의업의 전문직화를 통해 면허권을 국가에서 독점하면서 이미 16세기에 정식훈련을 통해 면허를 받지 않은 사람이 의업을 시술할 경우 마녀혐의를 두었고, 실제로 많은 수가 마녀로 몰려 처형되었다. 당시의 의술로는 영아살해와 사산을 구별할 수 없었는데도 프랑스는 1556년, 영국은 1624년 각각 의사들에게 영아살해를 판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서유럽을 휩쓴 영아살해 처벌 열풍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남성의사들의 권위는 공고해 졌으나, 19세기 중엽 산욕열의 원인이 밝혀지면서 내진과 조산을 할때마다 의사들이 손을 소독하기 전까지, 의사의 치료를 받은 여성들은 여자 조산부들이 출산을 전담하던 시절보다 더 많이 감염되었던 것이다.」(225쪽)
또한 산업화와 관련된 여성노동에 대해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따르면, "기계제 생산이 도입된 결과 숙련도나 근육의 힘은 떨어지지만 팔다리가 유연한 여성노동자와 아동이 공장에서 싼값에 고용됐다. 그 결과 생산단위로서의 가족 경제가 와해되어 가장의 노동력 가치는 떨어졌으며, 노동자 가족 전체가 자본의 직접적인 지배에 편입됨으로써 늘어난 임금 노동자 수만큼 임금은 더욱 떨어지는 악순환이 일어났다"(229쪽 : 마르크스<자본론> 15장 재인용)고 분석하고 있다.상당히 일리 있는 지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실소를 자아내게 했던 것은 우리나라 조직문화의 남성 중심성을 설명하는 부분인데, 우리나라 기업이 모집,채용단계에서부터 여성차별하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한국여성민우회가 1998년 8~9월에 걸쳐 우리나라 30대 재벌그룹 여성인력 정책을 모니터링한 결과 중 일부이다.
“ 임원들의 면접 카드에 ‘예쁨’,‘고치면 예쁠 것 같음’,‘못 생겼음’ 등과 같은 말을 쓴다고 한다.”- OO기업(261쪽)
요즘도 이런 기업이 있을는지? 하긴 우리나라 최대 재벌인 삼성 같은 곳에서도 면접장에 관상쟁이를 배석한다는 소문이 떠돌았던 적이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우리나라 기업문화다.
노동시장의 성불평등에 관한 이론적 설명: 여성들은 왜 노동시장에서 차별받는가?에 대한 페미니즘 이론에서 「하트만(H. Hartman)은 가부장제를 ‘여성노동력에 대한 남성의 통제’로 정의한다.이러한 통제는 여성이 경제적인 자원에 접근하는 것을 막고 여성의 성(sexuality)을 제한함으로써 유지된다. 하트만에 따르면, 가부장적 구조에 의한 성별 직업(직무)분리와 가사노동은 여성의 노동시장 지위를 낮게 만드는 근본적 요인들이다.」(270쪽)
자본주의사회에서의 가부장제와 양성평등 그리고 여성해방...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역사적이고 경제적이며 문화적인 맥락이 있는 주제이니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법제도적 측면에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시행 2016. 1.28.)이라도 철저히 집행하고, 국가, 사회, 가정의 각 영역에서 이 법의 취지에 맞게 준수하게 된다면 남녀차별 및 성평등의 문제에서 상당한 발전이 있을 것이나, 사업주를 비롯한 권력집단(기득권층)이 과연 현실적으로 잘 지켜줄지 의문이다.(사실 이 법에 예외조항이 많다)
일단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노동자들이 스스로 권리의식을 강화하여 서로 연대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노동단체 및 여성단체을 비롯한 시민사회,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대 고용주라 할 수 있는 국가(정부)에서 보다 적극적인 상담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법위반에 따른 엄정한 처벌이 필요할 것 같다. 미투운동으로 촉발된 성희롱, 성평등문제... 지금이야말로 여성운동이 활성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그런데 너무 조용하고, 침체되어 있는 이 분위기는 무엇 때문일까? 자율성을 상실한 채,이미 자본과 국가에 편입되어 버린 여성운동의 한계인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