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영성 - 영적 무감각에 빠뜨리는 '바쁨'을 제거하라
존 마크 코머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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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기계발적 요소를 담고 있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경우도 있고, 지극히 당연한 얘기지만 잘 실천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 말하기도 한다.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의 자기계발도서의 방향이 ‘자기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인 생활 습관이나 어떤 가치관을 가꾸는 것은 좋은 일임에 당연하지만 성공이라는 주제 아래 제시되는 비결 혹은 솔루션에 대한 반감이 나에게는 있다.

처음에 이 책을 접하고는 약간 그런 면이 있었다.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지만 제목을 보고서 ‘이게 뭐지?’라고 생각한 면도 없잖아 있다. 영성이면 영성인데 왜 슬로우? 처음에는 조금 삐딱한 시선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나 한번 보자.’ 하는 생각으로 읽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실질적인 내 삶의 변화를 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파트는 멀티사이트 교회의 담임목회를 하던 자신의 개인적인 고백과 함께 ‘바쁨’이라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사실은 모든 인류에게) 얼마나 큰 적인지를 밝히고 있다. 효율과 성과를 추구하는 모더니즘은 포스트 모던 사회에도 여전히 남아있고, 그것이 겉으로 보기에는 더 편리하고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와 반대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현대인의 가치에도 여유, 여가 생활, 취미 등이 중요하다. YOLO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듯이.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러한 여유 속에서도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 본성으로는 채울 수 없는 영적인 공허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첫 번째 파트가 문제 인식이었다면, 두 번째 파트는 모범 답안 제시다. 바로 예수님이다. 여기서 먼저,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슬로우 영성’의 추구가 결코 게으른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시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섭리 아래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어떻게 그것을 할 수 있냐고? 바로 예수님이 보여주셨다. 누구보다 하루가 꽉 찼던 그분, 그러나 그분은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예수님을 원하는 사람도 죽이고자 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예수님은 그들에 의해 휘둘려 다니지 않았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헐레벌떡 달려갔다는 기록도 없다. 치유 받기 위해 줄 선 인파로 인해 끼니를 거를 때는 있었어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기도를 쉬셨다는 기록은 없다. 성경은 수많은 가치와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주지만, 가장 좋은 정보는 복음이다. 이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이 실제로 어떤 삶을 살아내셨는가에 있다.

“기본적으로 사복음서는 전기다. 예수님의 삶을 자세히 기록한 이 이야기들은 그분의 가르침이나 기적, 그분의 삶과 부활에 관한 사건들 못지않게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삶에 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125쪽)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세 번째 파트에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한다. 이는 저자가 밝혔듯이 절대적인 규칙은 아니다. 그러나 충분히 숙고하여 받아들일 만한 제안임이 분명하다. 이 네 가지는 침묵과 고독 훈련, 안식일 훈련, 단순함 훈련, 늦추기 훈련이다. 공통점을 찾았는가? 맞다. 이는 모두 ‘훈련’이다. 육체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 훈련이 필요하듯, 삶의 태도가 가치관을 형성하고 이를 실제로 살아내는 데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보통 어떤 습관을 갖추어 체질에 익숙해지게 걸리는 시간이 2~3주 정도라고들 한다. 이제껏 나도 너무 바쁨에 익숙하게 살았다. 운전할 때 가장 이 특징이 잘 드러난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무려 ‘일부러 차가 많이 서 있는 줄에 서기’, ‘제한속도 이상으로 달리지 않기’ 등을 제안한다. 제대로 된 안식을 위해 스마트폰과 SNS를 멀리하는 것은 기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미 잘 지켜지는 부분이 있어서 감사한 것도 있고, 전혀 지켜지지 않아 도전을 얻은 부분도 있다. 이 책은 영성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 영성은 중세 수도사들의 고상한 훈련을 넘어서서 실제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토대가 된다. 맑은 가을 하늘 한 번 볼 여유가 없는가? 길을 걸으며 꽃과 나무, 계절의 변화를 느낄 여유가 없는가?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영상통화로만 보고 카톡으로만 대화하고 있지 않은가? 열심히 산다고는 말할 수 있는데, 행복하게 산다고 말하기는 어려운가?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천천히 읽기를 권한다. 나도 이 책을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천천히 그리고 또 천천히 읽었다.

주님은 나와 함께 걷자고 말씀하시지, “뛰어! 더 빨리!”를 외치지 않으신다. 오늘, 주님과 함께 동산을 거니는 에덴 동산을 누리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한다.

#존마크코머 #슬로우영성 #두란노 #두포터11기 #나를복음으로살게한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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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7가지 죄 - 내가 먼저 회개해야 할
한기채 지음 / 두란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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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악’. 이 책의 제목을 처음 접한 나의 반응이다. 묵직하고, 무거웠다. ‘7가지씩이나 되?... 아니, 7가지 밖에 안되?’ 이런 두 가지 마음이 공존했다. ‘내가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내가 구체적으로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하나님 앞에서도 고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나의 연약한 마음이다. 이 책의 제목을 듣고 아내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는 이 책 못 읽겠다.’라고 했으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책을 알게 되면 무거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길 것 같다.

기독교 윤리학자이자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을 지낸 한기채 목사님이 뼈를 깎는 심정으로 이 책을 펴냈다. 본인이 목사님이지만 이 책에서는 그 누구보다 목사와 한국 기독교계에 대한 반성과 성찰, 질책으로 가득했다. 위로와 공감이 문화의 대세인 요즘에 이런 책을 쓰는 것은 쉽지 않을텐데 한 문장 한 문장을 어떤 마음으로 써내려갔을까 싶다.

이런 질책의 기본 전제를 저자는 첫 주제의 첫 문장에서부터 밝히고 있다.

‘세상에는 완벽한 교회도 없지만, 불완전한 교회도 없습니다.’ (22쪽)

죄인이 모였기에 부족함이 많지만, 예수님을 머리이자 근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존재로서 완전한 것이다. 마치 ‘이미 이루어졌으나 아직 완전히 오지 않은’ 하나님 나라의 신비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교회도 그런 것이리라.

저자가 분류한 한국 교회의 7가지 죄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 영적 남용 : 하나님이 목회자에게 주신 영적인 권위를 잘못 사용하여 교회 내에 권위주의를 만들고, 그 권위로 일상의 다른 부분을 통제하거나 피해를 주는 행위
② 공(公)의 사유화 : 하나님을 교회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교회의 권위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태도와 그 부산물
③ 신앙생활의 사사화 :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삶에서 드러나지 못하는 선데이 크리스쳔의 증가
④ 친목 과다 신드롬 : ‘성도의 교제’의 본질을 넘어 ‘우리끼리 좋사오니’로 그치는 현상
⑤ 공로자 신드롬 : 한국교회의 성장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지 못하고 자신들의 종교적 열심히 치부하는 태도
⑥ 송사 신드롬 : 용서와 화해가 사라진 교회, ‘말씀대로 합시다’가 아닌 ‘법대로 합시다’가 되어버린 기독교
⑦ 무례한 기독교 : 기독교 신앙의 배타성과 타 종교에 대한 무례한 태도를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 교회’라고 하는 대상에 대해 내가 인식하는 범위가 참 좁다는 생각을 했다. 읽다 보니 ‘나와는 관계가 없네.’라고 생각되는 영역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단지 내가 그런 권위있거나 영향력이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다. 오히려 내가 가진 것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지 않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작지만 중요한 권위들(예를 들면, 집안의 가장이나 교회학교 선생님 등)을 어떻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 안에서 사용하고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요즘 큐티하고 있는 본문이 갈라디아서인데, 사도 바울은 ‘다른 복음’은 없다고 했다. 참 진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7가지 죄로 설명된 모든 해결의 궁극 지향점은 이 예수님을 교회가 닮는 것이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이기 때문에, 또한 교회는 그의 사랑스런 신부이기 때문에. 사랑하면 서로 닮는다고 했다.

예수님은 값비싼 향유를 자신의 발 아래 부은 여인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을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7:49)

죄가 많은 곳에 더 큰 은혜가 임한다.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죄악을 드러낸 목사님의 고백은 바로 이 죄 많은 우리에게 부어주실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의 회개, 나의 회개가 선행되어야 한다. 내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인 만큼 나의 연약함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전능하신 그 분의 날개 아래 온전히 거하기를 소망한다.

한국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특히 교회의 권위 있는 사역자분들, 직분을 맡은 분들, 교회학교의 교사들, 가정의 영적 권위자인 부모가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죄를 회개할 때 성령님께서 그 가정과 학교와 공동체를 더욱 크게 사용하실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교회7가지죄 #한기채 #두포터11기 #두란노 #나를복음으로살게한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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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선택이란 무엇인가 조정민 목사의 창세기 돋보기 2
조정민 지음 / 두란노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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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할 때, 많은 조건을 재어 본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유리한 것, 뒷일을 예상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그런 선택을 ‘합리적’(Reasonable) 선택이라 말한다.

하나님의 일하심도 그런 면이 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모세에게 율법을 주셨고, 계명과 법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셨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계에는 일정한 규칙이 존재하고 자연이 그것에 순응하게 함으로써 선하심을 드러내셨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나님을 ‘합리적이신 분’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합리적이라는 말은 ‘이치에 맞다’는 뜻인데, 하나님은 합리적이신 분이라기보다는 그 분 자신이 이치를 만드신 분이다. 그래서 때로 인간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은 이치를 뛰어넘는 일이 많다. 아니, 대체로 그렇다.

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라가는 길을 ‘믿음’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는 믿음의 선택이 무엇인지를 창세기의 인물과 사건을 따라가며 조명한다. 1부에서는 노아의 홍수 사건을 통해 하나님과 세상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고 따라갈 것인지를 말한다. 방주에 들어갈 때와 나갈 때를 알아야 하고, 노아의 홍수 사건을 전후하여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지는지를 살펴본다.

2부에서는 방주 사건 이후 노아의 실수와 홍수 사건 이후 번성한 새 인류가 어떻게 하나님을 떠나 살아갔는지를 살펴보고, 바벨탑 사건을 정점으로 해서 하나님을 떠난 인류가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를 통해 교훈점을 찾는다. 빛과 어두움, 열과 추위는 각각 동등한 상태가 아니다. 빛의 부재가 어두움이고, 열의 부재가 추위이듯, 하나님의 부재가 곧 혼돈이고 죄악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류의 삶이 얼마나 혼돈 가운데 있는지를 홍수 이후의 인류의 삶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저자의 표현대로 심판 자체도 은혜이듯이, 인류의 말과 언어를 나누어 흩으신 하나님에게서 죄인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3부와 4부는 아브람의 생애를 다룬다. 믿음의 대명사인 아브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간 그의 선택 자체가 성도의 삶이 어떠한 태도를 보여야하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아브람도 실수하고 넘어지고 잘못된 선택들을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다시 돌아오고 더 성숙하는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위로와 소망의 존재가 된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나, 우리는 자율 의지를 부여받은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아멘으로 순종하며 응답하기를 기다리시며 그것을 기뻐하신다. 그러나 그 길을 걸어가다 보면, 그것이 나의 힘과 노력으로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이고도 일방적인 은혜, 구원하심으로 인함임을 깨닫고 인정하게 된다. 창세기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그 사랑과 은혜와 구원의 역사가 태초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기쁨으로 그 일을 감당하는 것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일을 끝까지 견디고 계속해 나다가 보면, 그 일을 감당하는 것이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유익이 됨을 깨닫습니다.”

광야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되는 그리스도인, 믿음의 여정을 달려가고 있지만 그 끝이 어디인지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 창세기를 읽으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큰 구원의 계획이라는 틀 안에서 세세하게 주어지는 지혜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조정민 #믿음의선택이란무엇인가 #두란노 #두포터11기 #나를복음으로살게한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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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으로 선교합니다 - 스마트 선교, 복음을 담을 새 부대가 되다
FMnC 선교회 지음 / 두란노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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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길어질 줄 사실 생각은 했었다. 코로나19 말이다. 그러나 예상이 맞아떨어지는 것이 이토록 마음 답답해질 줄은 몰랐다. 지나고 보면 정말 역사의 한 전환점이 될 것만 같은 순간이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2020년 한 해는 참 많이 헤매었던 것 같다. 삶의 모든 영역이 그랬지만 특히 신앙적인 부분에서 더 그랬다. 온라인/비대면 예배라는 현실 앞에 내가 지금껏 해 오던 여러 가지 종교적인 의식과 활동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결 방향을 알고 싶었다. 그러던 중 이 책을 소개받게 되었고 ‘이건 꼭 읽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한 것은 그저 시간이 흘러가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성령의 감동을 통해 이 사태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과 대응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스마트 선교’라는 주제 키워드 아래 제4차 산업혁명과 위드With 코로나(혹은 포스트Post 코로나) 시대를 살고있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신앙공동체를 유지하고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솔루션은 크게 세 가지 범주이다. 첫째는 페이스북, 유튜브, 블로그 등 기존의 SNS플랫폼을 활용한 온라인 선교 방법에 대한 지침이고, 둘째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계하는 어플,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구축에 관한 지침이며, 마지막 셋째는 코로나 시대에 선교 공동체를 형성하고 연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것이다.

사실 이 책의 구성을 살펴보고 적잖아 놀랐다. 코로나 시대 1년 만에 이 정도의 현실 인식과 대응 방안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내용을 읽으면서는 점점 고개가 끄덕여졌다. 기독교 선교의 역사는 늘 과학기술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었다는 통찰은 참으로 동의가 되었다. 이러한 시각에 의하면 지금은 시대적 전환기인 것이다. 코로나는 이 변화를 더욱 앞당긴 요소임에는 분명하지만 이것이 아니었더라도 이미 사회는 그렇게 변하고 있었고, 이미 그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발빠르게 헌신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했음을 이 책의 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선교 방법을 반드시 알려주실 것이다.’(41쪽) 아니, 이미 그렇게 하고 계시다.

또 하나의 통찰은 ‘기술의 가치중립성’에 대한 것이다. 본문에서 소개되었던 예시와 같이, 고대 로마 제국의 정복과 영토 확장을 위해 만들어진 도로는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의 통로가 되었다. 이제까지 교회에서 바라보는 인터넷 세계는 그 자체가 사탄의 소굴이었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의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그 곳에 머무는 사람들을 전도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유용한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특별히 MZ세대를 대상으로 사역을 하는 교회학교 사역자 및 교사들에게 좋은 통찰 및 실제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교회의 리더십들이 이 책을 접하고 자신이 속한 교회 및 공동체에 적용할 수 있는 분야들을 찾아 나간다면 코로나 이후 흔들리는 교회 공동체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오히려 더 자유롭게 뻗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스마트 선교’는 결국 우리로 하여금 더욱 다시 모이게끔, 모이기를 간절히 사모하게끔 만들어갈 것이다.

#온라인으로선교합시다 #두란노 #스마트선교 #FMnC선교회 #신앙서적 #기독교서적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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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삶 - 타인의 눈으로 새로운 세계를 보는 독서의 즐거움
C. S. 루이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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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모든 책을 좋아하는 모든 이들에게 루이스가 남긴 선물 – C.S.루이스, 『책 읽는 삶』 서평

당연한 말이지만, 책을 읽는 즐거움은 책을 읽는 자만이 알 수 있다. 또한 당연하게도 책을 읽는 ‘진정한’ 즐거움은 ‘진정한’ 독서가만이 알 수 있는 법이다. 물론, ‘진정한’이 가지는 의미는 다양할 수 있겠다. 독서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다독, 숙독, 탐독, 발췌독...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어쨌든 ‘책 읽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그 행위 자체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아닐까.

오늘 이 글에서 소개할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 C. S. 루이스이다. 그는 탁월한 저술가이면서 기독교 논증의 대가이지만 독서를 가장 사랑한 사람, 독서가 삶의 일부인 사람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가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는 저술가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그 자신이 다른 사람이 지은 책으로 인해 책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것이 아닐까? 그가 여러 저술에서 밝힌 책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그 질문에 “Yes!” 라고 답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의 독서하는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일종의 메타인지가 작용하게 된다. 루이스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으며 이러한 글을 쓰고 있을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아마도 어린아이가 아주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방금 본 신기한 광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상황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아주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그건 그렇게 하는게 아니야!’ 라고 말할 상황도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아주 순수한 태도이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 파트는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며, 그것이 왜 기쁨이 되는 일인지를 알려준다. 단순히 왜 독서가 즐거운지에 대한 논증 혹은 설득이 아니라 좋은 독서 습관의 예를 알려주기 때문에 더욱 유의미하다. 대가에게 한 수 배우는 느낌으로 읽으며 열심히 밑줄을 그었다. 개인적으로는 동화와 고서의 중요성에 대해 더 알게 되었다. 바로 실천할 만한 독서의 습관들이 많아서 책을 더 잘 읽고 싶은 사람에게 아주 적합한 부분이다.

두 번째 파트는 첫 번째 파트보다 더 짧은 호흡의 문선이다. 한두 문장을 발췌한 것들도 꽤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독서에 관한 잠언’이라 감히 칭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짧은 글들의 연속이지만 쉬 넘기지 못하고 생각을 더 하게 되는 글이 많았다. 고전에 대한 짧은 평들은 내가 읽지 않은 것들이 많아서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루이스가 이 책에서 밝힌 대로 ‘다 읽지 않아도 된다’. 이해를 못했으면 그냥 넘어가면 되니까 쿨하게 패스하기도 했다. 첫 번째 파트에서도 밝혔듯이 고서를 틈틈이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의 추천사에서도 밝혀져 있는데, 독서모임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추천하고 싶은 파트이다.

좋은 책은 늘 공동체를 만든다고 했다. 독서는 타인의 시선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일이고, 그 세계를 만남은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이, 더 다양하게 소통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국에 직접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여행을 가기는 더 어렵다. 이런 때일수록 독서를 통해 세상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느껴질 때가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경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루이스의 이 문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표현을 이렇듯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워지게 하는 것이 바로 문체의 위력이라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창조 중 하나는 바로 글쓰기가 아닐까. 창조를 향유하는 독서의 삶을 통해 무더위를 이겨내기를 바란다.

#CS루이스 #책읽는삶 #두포터11기 #두란노 #나를복음으로살게한문장 루이스가 남긴 선물 – C.S.루이스, 『책 읽는 삶』 서평

당연한 말이지만, 책을 읽는 즐거움은 책을 읽는 자만이 알 수 있다. 또한 당연하게도 책을 읽는 ‘진정한’ 즐거움은 ‘진정한’ 독서가만이 알 수 있는 법이다. 물론, ‘진정한’이 가지는 의미는 다양할 수 있겠다. 독서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다독, 숙독, 탐독, 발췌독...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어쨌든 ‘책 읽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그 행위 자체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아닐까.

오늘 이 글에서 소개할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 C. S. 루이스이다. 그는 탁월한 저술가이면서 기독교 논증의 대가이지만 독서를 가장 사랑한 사람, 독서가 삶의 일부인 사람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가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는 저술가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그 자신이 다른 사람이 지은 책으로 인해 책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것이 아닐까? 그가 여러 저술에서 밝힌 책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그 질문에 “Yes!” 라고 답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의 독서하는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일종의 메타인지가 작용하게 된다. 루이스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으며 이러한 글을 쓰고 있을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아마도 어린아이가 아주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방금 본 신기한 광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상황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아주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그건 그렇게 하는게 아니야!’ 라고 말할 상황도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아주 순수한 태도이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 파트는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며, 그것이 왜 기쁨이 되는 일인지를 알려준다. 단순히 왜 독서가 즐거운지에 대한 논증 혹은 설득이 아니라 좋은 독서 습관의 예를 알려주기 때문에 더욱 유의미하다. 대가에게 한 수 배우는 느낌으로 읽으며 열심히 밑줄을 그었다. 개인적으로는 동화와 고서의 중요성에 대해 더 알게 되었다. 바로 실천할 만한 독서의 습관들이 많아서 책을 더 잘 읽고 싶은 사람에게 아주 적합한 부분이다.

두 번째 파트는 첫 번째 파트보다 더 짧은 호흡의 문선이다. 한두 문장을 발췌한 것들도 꽤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독서에 관한 잠언’이라 감히 칭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짧은 글들의 연속이지만 쉬 넘기지 못하고 생각을 더 하게 되는 글이 많았다. 고전에 대한 짧은 평들은 내가 읽지 않은 것들이 많아서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루이스가 이 책에서 밝힌 대로 ‘다 읽지 않아도 된다’. 이해를 못했으면 그냥 넘어가면 되니까 쿨하게 패스하기도 했다. 첫 번째 파트에서도 밝혔듯이 고서를 틈틈이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의 추천사에서도 밝혀져 있는데, 독서모임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추천하고 싶은 파트이다.

좋은 책은 늘 공동체를 만든다고 했다. 독서는 타인의 시선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일이고, 그 세계를 만남은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이, 더 다양하게 소통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국에 직접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여행을 가기는 더 어렵다. 이런 때일수록 독서를 통해 세상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느껴질 때가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경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루이스의 이 문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표현을 이렇듯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워지게 하는 것이 바로 문체의 위력이라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창조 중 하나는 바로 글쓰기가 아닐까. 창조를 향유하는 독서의 삶을 통해 무더위를 이겨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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