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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문장이 되어 흐른다
박애희 지음 / 청림Life / 2025년 10월
평점 :
이 책은 삶을 ‘흐름’으로 바라보는 한 작가의 조용하고 단단한 사유 기록이다.
박애희 작가는 삶을 강물에 비유한다. 물은 머무르지 않는다.
깨끗한 물도, 흐린 물도, 차가운 물도, 뜨거운 물도 결국 흘러간다.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기쁘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하고, 다시 일어나기도 한다.
작가는 말한다.
“삶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순간이 있다.
그때 필요한 건 거창한 의지가 아니라 물 위에 잠시 몸을 띄우는 용기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누군가를 붙들고 싶어 하고,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 하지만,
물은 손안에 잡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름은 사라짐이 아니라 다음으로 이어지는 길이라는 것.
상실을 애도하고, 지나간 시간을 인정하고,
지금 여기의 숨을 천천히 들이켜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살아낸다’의 방식이다.
책 곳곳에는 조용한 문장들이 오래 머문다.
소리치지 않는데 마음을 움직인다.
그 이유는 작가가 위로를 “해주려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지나온 상실과 회복의 시간을 정직하게 바라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읽는 동안,
나는 내 안에 오래 떠다니던 감정 하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붙잡고 싶었지만 붙잡을 수 없었던 것들.
말하지 못했던 마음.
애써 강했던 순간들.
그 모든 것이 이 책에서는 흐름이라는 이름으로 놓여진다.
책을 덮고 나면, 마음이 아주 조금 부드러워진다.
크게 달라진 건 없는데, 몸과 마음의 힘이 살짝 빠진다.
견디는 방식이 아닌, 흘려보내는 방식을 배운 느낌.
이 책은 크게 울리지 않는다.
대신 오래 잔향이 남는다.
마치 잔잔한 물결이 발목을 적시는 순간처럼.
조금 지친 날,
무언가를 풀어내고 싶은 날,
붙잡은 마음을 천천히 내려놓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조용하지만 확실한 자리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