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자주 읽는 편은 아닌데, 이 책은 표지부터 뭔가 달랐어요. 구겨진 종이 위에 손으로 쓴 듯한 제목, 그리고 그 아래 작게 그려진 그림 하나. 펼치기 전부터 이미 어떤 감각이 전해졌습니다.머리글이 이미 시였어요.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쌓인 것들을 꺼내 들여다봤더니,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것도 있었고, 무거운 것도 있었고, 가볍고 산뜻한 것도 있었다는 고백. 잘 쓴 척하지 않는 그 솔직함이 오히려 책 전체를 믿게 만들었습니다.한상경 시인의 문장은 조용해요. 크게 흔들거나 극적으로 치달아가지 않는데, 그 조용함 속에 꽤 오래된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있어서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가슴 한쪽이 슬며시 무거워집니다. 선물이라면 선물, 아니라면 아닌 퇴적물들이라고 스스로 말하는 시인의 시선이 담담하면서도 깊었어요.김보근 작가의 그림도 시와 참 잘 어울렸습니다. 설명하거나 꾸미려 하지 않고 그냥 옆에 조용히 있어주는 느낌이랄까요.시집을 덮고 나서도 한참 그 무게가 남아있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