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살인자에게 무죄를 선고했을까? -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12가지 충격 실화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 지음, 이지윤 옮김 / 갤리온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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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소에 뉴스를 많이 보는 편이다. 이슈가 될 만한 일들만 뉴스로 보도되어서 그런지 뉴스에는 범죄, 특히 살인 같은 끔찍한 범죄에 관련된 사건이 많이 나온다. 사람들은 그런 사건 자체에도 분노하지만 범인이 저지른 범죄에 비해 너무 가벼운 처벌을 받았을 때 더 크게 분노한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들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주 가벼운 처벌만 받거나 아예 무죄 방면되는 것일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접하면 판사의 사고 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거나 범인이 사회적 지위나 재력 등을 이용해서 부정한 방법으로 재판에 압력을 행사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이 범인이라고 확신해도 아닐 수도 있고, 정말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나이가 어리다던지 하는 이유로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에는 드라마 <SKY 캐슬>에서 황우주가 여자친구를 죽였다는 살인 누명을 쓰는 부분을 닮은 에피소드가 있다. 권총에 맞아 죽은 남자의 시신이 공원에서 발견되고, 검사는 남자의 부인이 보험금을 노리고 저지른 살인이라고 확신한다. 여자에게는 알리바이도 없었고 정황 증거는 모두 여자가 범인이라고 암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국선변호를 맡은 슐레징거 변호사가 알고 지내던 폭력배 야서가 타살이라면 권총이 발견된 위치에 놓여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고 슐레징거 변호사는 여기서 힌트를 얻어서 여자의 무죄를 이끌어낸다. 사실 죽은 남자는 사업 실패로 자살하면서 부인이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타살로 위장한 것이었다. 이 모든 과정이 문학 작품처럼 서술되어 있어서 무거운 내용이지만 한 편의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이 사람이 범인이라는 확신이 들고 증거도 있다고 해서 확신한 내용이 사실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황우주에게도 에피소드에 나오는 여자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발견된 모든 증거가 황우주를 가리키고 있었기 떄문에 황우주는 확실한 진범으로 몰려서 긴급체포되고 구속 수사까지 받게 된다. 황우주의 변호사는 몇 번이나 진법이 따로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드라마 속의 경찰은 말이 안 된다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흔히 쓰는 논리적인 도구인 오컴의 면도날에 의하면 어떤 일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가장 단순한 설명이 맞는 설명이다. 그런데 에피소드 속의 여자나 황우주 같은 인물들에게 벌어진 일을 보면 오컴의 면도날을 이용해서 도출한 결론이 항상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확실해 보인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무언가를 믿는 것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부분이다. 법조계에서 일하고 있거나 관련 직업에서 일하고 싶은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의 다른 작품인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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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놀이공원이다 - 두근두근, 다시 인터뷰를 위하여
지승호 지음 / 싱긋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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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이 있다>,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같은 인터뷰집들을 읽으면서 인터뷰집이라는 장르 자체가 좋아졌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인터뷰이들의 겉모습 뒤에 있는 사연과 이야기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SNS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인터뷰를 몇 번 시도해 본 적이 있는데 뻔한 질문만 하고 끝났던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전문적으로 인터뷰집을 쓰는 저자가 인터뷰를 이끌어가는 태도를 배우고 싶기도 했다.

<타인은 놀이공원이다>는 저자가 지금은 휴간 상태인 <인물과 사상>에 연재한 인터뷰 중 일부를 엮은 책이다. 이 책에는 강용주, 강원국, 김규리, 김승섭, 목수정, 서지현, 이은의, 주성하, 이렇게 8명의 인터뷰가 나온다. 과학자 인터뷰를 시도했다가 거절당한 경험이 있는 나는 인터뷰들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섭외했는지 놀랍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런데 서문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책 제목에 나와 있듯이 저자는 '타인은 놀이공원'이라고 말한다. 인터뷰이를 섭외할 때는 놀이공원에 가서 놀고 올 날을 기대하는 것 같고, 인터뷰를 할 때는 놀이공원에서 노는 것 같고, 인터뷰를 마치고 내용을 정리할 때는 놀이공원에서 쌓은 추억을 정리할 때처럼 행복한 기분이 든다고 한다. <언니들이 있다>를 쓴 김지은 기자는 인터뷰하는 과정을 사랑에 비유했다. 두 사람 모두 인터뷰하는 것을 진심으로 즐기고 좋아한다는 느낌이 든다. 블로그 기자단 활동을 할 때는 내가 만든 콘텐츠를 더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인터뷰를 곁들이려고 했다(인터뷰집을 여러 권 읽어보고 나니 이때의 내 태도 때문에 이불킥이 나온다). 그게 아니라 인터뷰 자체를 좋아하고 사랑해야 좋은 인터뷰이를 섭외하고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다시 인터뷰를 할 일이 생긴다면 지금까지 읽어본 인터뷰집을 꼭 참고해서 더 많은 정성을 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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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진작 배울걸 그랬네 - 경제학적 통찰의 힘을 길러주는 초단기 일주일 경제학 여행
장위치엔 지음, 정우석 옮김 / 베이직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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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PPE(Philosophy, Politics, and Economics)라는 학과에 관심이 많다. 철학은 어릴 때 부터 관심이 많았고 정치는 뉴스나 학교 수업 등을 통해서 접할 수 있어서 어느 정도 익숙하다고 생각하지만, 경제학은 배경 지식이 거의 없다. 아는 거라고는 경제학이 사람의 의사결정에 대해 연구한다는 것 정도다. 그런데 의사결정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 철학, 정치학과의 접점도 많아 보여서 경제학을 더 잘 알았으면 사회를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책의 제목처럼 '경제학 진작 배울 걸 그랬다'는 말을 많이 하고 다니다가 실제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역시 내가 경제학 지식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다. 2부 '기원과 발전'에서 로잔학파, 오스트리아학파, 케임브리지학파 같이 처음 들어보는 경제학 학파 이름들이 쏟아져 나오자 어느 순간부터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 식으로 책을 읽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철학 공부를 시작할 때 <소피의 세계>를 처음 읽다가 철학자 이름과 사상이 엄청나게 많이 나와서 소화하기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경제학 진작 배울 걸 그랬네>를 읽으면서 비슷한 느낌이 다시 들었다. 철학 공부를 조금 더 한 이후에 작심하고 <소피의 세계>를 다시 꼼꼼하게 읽어 보니까 그제서야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마찬가지로 내가 다른 경로로 경제학 지식을 쌓아서 이 책을 다시 읽어본다면 책 내용을 통해 지식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이 막막한 느낌만 안겨준 것은 아니다. 나는 경제학을 공부하면 새로운 관점으로 주변 현상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책은 그 기대를 조금이나마 실현시켜 주었다. 사람들에게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를 가지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 본 결과 펩시콜라가 더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판매량은 코카콜라가 압도적으로 많다. 나로서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 책은 이 현상을 코카콜라가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서 '독점적 경쟁'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코카콜라를 대체할 수 있는 상품이 있어도, 심지어 대체 상품이 더 싸더라도 사람들이 여전히 코카콜라를 사게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논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벌어질 떄 경제학적인 관점으로 상황을 해석하면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훨씬 빠르게 이해할 수 있겠다.

경제학을 조금 공부하고 나서 지식을 정리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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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이 있다 - 그래도 다시 일어서 손잡아주는, 김지은 인터뷰집
김지은 지음 / 헤이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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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이 있다>는 기자인 저자가 든든한 언니 같은 여성들을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좋은 기사는 세상을 바꾼다는 문장을 들고 기자가 되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했고, 저자가 인터뷰한 사람들의 삶의 태도를 배우고 싶어서 읽어보았다.

때린 사람은 발 뻗고 자지만 맞은 사람은 억울해서 잠을 설친다는 말이 있다. 이 책의 저자도 성폭력이 잔인한 이유는 피해자가 끝없이 자책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폭력이 아니어도 가해자는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떵떵거리면서 사는데 피해자만 트라우마 때문에 삶이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책에서 '미투의 성공기'를 쓴 사람의 인터뷰를 보았다. 성추행 가해 교수가 있는 학교를 빠져나와 '세상 속으로 가는 요가원'을 차린 최아룡 원장이다. 최아룡 원장도 처음에는 '교수가 옆자리로 오라고 했을 때 끝까지 버티고 가지 말 걸' 하면서 자책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일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끝까지 버텼어도 어떤 형태로든 당했을 테니까. 대학원생들은 학교에서 부당한 일을 당해도 쉽게 외부에 알리지 못한다고 한다. 교수가 앞으로의 진로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아룡 원장은 교수의 2차 가해 이후에 학교를 그만두고 '독립 학자'의 길을 택했다. 자발적으로 학회에 프로포절을 내고 발표를 하면서 요가원도 운영한다고 한다. 커리어가 통째로 끝날 수도 있는 피해를 당해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누구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모습이 멋있다. 피해를 완전히 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피해 사실이 피해자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는 때가 오면 피해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의 인터뷰를 보고 희망을 얻었다.

지쳤을 때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한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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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 : 나를 변화시키는 조용한 기적 배철현 인문에세이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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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저자가 쓴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 2권을 인상깊게 읽었다. 위의 2권에도 나오듯이 외부의 소리가 아닌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어서 이 책도 읽어보았다.

이 책은 <심연>, <수련>, <정적>, <승화> 로 이뤄진 4부작 중 3번째 책인데, 읽다 보니 나머지 3권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책 내용에 공감하고 울림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성장하고 싶다. 성장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성장해야 할지 생각해 보면 항상 막막했다. 그래서 많은 일을 하려고 했고 보람도 있었지만 그 일들을 해치우는 것이 내가 바라는 의미의 성장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정적'은 4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 단계를 통해서 어떻게 평정심을 얻을 수 있는지를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1부 '평정'은 '마음의 소용돌이를 잠재우는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달고 정적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2부 '부동'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 3부 '포부'는 '내가 나에게 바라는 간절한 부탁'이라는 제목이다. 마지막 4부는 '개벽'으로 '나를 깨우는 고요한 울림'이라는 제목으로 고요하게 자신에게 집중하는 법을 알려준다.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는 것처럼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 책의 첫 부분도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애벌레가 고치 안에서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발버둥치면 영원히 애벌레로 살다 죽지만, 부동을 인내하고 묵묵히 견디면 언젠가는 나비로 변신할 것이라고 말한다. 나비가 되려면 먼저 애벌레가 되어 고치 안에서 부동의 자세로 '고요'를 유지해야 하고, 그 고요가 절망으로 변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는 과정이 내가 생각하는 내면의 성장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성장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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