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라는 나라는 우리 대한민국과 많이 닮은듯하다. 오랜 기간 영국의 지배를 받아 독립을 꿈꿔왔으며 기근과 가난으로 힘든 시기를 겪어서인지 음악도 한이 서려 있는듯한 음악이 우리네 정서와 닮아있다. 특히 서문 「아일랜드 공화국」 발췌문만 봐도 우리나라 국민교육헌장이 생각이 난다.
“남자가 물을 달라고 할 때 거절하면 불운이 온다는 말이 있잖아요.” - 속담도 비슷하다.
책 표지 그림은 네덜란드 풍속화가 피터르 브뤼겔의 연작 눈 속의 사냥꾼(겨울)의 일부이다.
이 책의 시간적 배경과 잘 맞는 듯하다. 추위가 한창인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석탄을 배달하느라 분주한 펄롱, 추위에도 차갑고 어두운 공간에 갇혀 자신의 배설물과 함께 있던 소녀를 외면하지 않고 데리고 나오는 펄롱.
내가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건, 여성 사이에서의 '연대' 다.
미시즈 윌슨이 펄롱의 어머니를 외면했더라면? 펄롱이 수녀원의 소녀를 외면하지 않고 앞으로의 험난한 여정을 예상함에도 불구하고 소녀를 데리고 수녀원을 나왔던 건 어머니와 미시스 윌슨과의 연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여성의 연대를 얘기했던 것 중 기억에 남는 건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오는 루카스의 두 어머니 사이의 연대이다. 뭉클하고 고매한 인격을 갖춘 사람들 간의 감동적인 연대다. 이 내용은 후에 리뷰로 써봐야겠다.
펄롱이 출생증명서 사본을 떼러 등기소에 갔는데 아버지 이름을 적은 난에는 ‘미상’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창구에서 펄롱에게 증명서를 넘겨주는 등기소 직원의 입이 추한 웃음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 P19
펄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아니면 그저 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 P29
"그게, 세상에는 사고를 치는 여자들이 있어. 당신도 그 건 잘 알겠지."
강한 타격은 아니었으나, 그때까지 아일린과 같이 살면서 그런 말을 들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뭔가 작지만 단단한 것이 목구멍에 맺혔고 애를 써보지만 그걸 말로 꺼낼 수도 삼킬 수도 없었다. 끝내 펄롱은 두 사람 사이에 생긴 것을 그냥 넘기지도 말로 풀어내지도 못했다. - P56
"하지만 만약 우리 애가 그중 하나라면?" 펄롱이 말했다.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아일린이 다시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미시즈 윌슨이 당신처럼 생각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 안 들어? 펄롱이 아일린을 쳐자보았다." 그랬다면 우리 어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 P57
"딸이라고 섭섭할 이유가 있나요?" 펄롱은 말을 이었다.
"우리 어머니도 딸이었죠. 감히 말씀드리지만 원장님도 그렇고, 누구 식구든 절반은 딸이잖아요."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펄롱은 수녀원장이 기분이 상했다기보다는 접근법을 바꾸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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