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할 수 있을까?
다카기 나오코 지음, 윤지은 옮김 / artePOP(아르테팝)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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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다카기 나오코 만화 제목은 이미 책읽는베토벤 님 블로그에서 종종 접했다("혼자 살기 9년차", "마라톤 1년차"...). 그러다가 북이십일 3기 서포터즈로 활동하면서 만화 임프린트인 아르테팝에서 나온 "30점짜리 엄마 1"을 신청하면서 다카기 나오코 만화를 본격적으로 처음 읽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효도할 수 있을까?" 역시 훈훈한 가족 만화다. 사실 마스다 미리 만화와 수필을 좋아해서 빼놓지 않고 읽어왔는데, "효도할 수 있을까?"를 읽다보니 마스다 미리의 "아빠라는 남자", "엄마라는 여자", "사와무라 씨 댁의 이런 하루": http://blog.yes24.com/document/7965846   등이 떠올랐다. 딸이 성인이 되어 아버지, 어머니와의 에피소드를 그린 만화, 특히 모시고 여행 다니는 이야기라는 점 때문이다. 

 

사실 3, 40대 싱글 여성이 부모님께 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도는 결혼해서 손녀, 손자를 턱 안겨드리는 일일 테지만 노력한다고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니 차선책으로 딸은 부모님이 좋아할 만한 이벤트들을 만들어드리려고 한다. 실화지만 이 만화 주인공이자 작가의 경우 부모님은 고향에 사시고 그는 도쿄에 산다. 종종 은퇴한 아버지가 도쿄에 놀러오시면 같이 시간 보내거나 맛있는 음식 먹으러 간다. 혹은 부모님을 모시고 '가까운 대한민국 서울' 같은 곳으로 해외여행을 간다. 꼭 해외여행이 아니더라도 옆동네에 국내여행을 가기도. 일본 사람들의 여행 패턴을 마스다 미리나 다카기 나오코 만화에서 읽곤 한다. 유명한 랜드마크가 많은 곳도 아닌 소박한 도시에 가서 절에 들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온천을 한다.

 

특히 한국 독자들이 읽기에는 드라마 "대장금"이 불러온 한류 열풍에 따라 일본 사람들이 한국 여행 오는 과정을 읽을 수 있어서 재미있다. 혹시나 이 가족이 서울 여행을 와서 불쾌한 일을 당하지는 않았을까 조마조마해하기도 했다. 패키지 여행에 꼭 따라오는 강제 쇼핑, 단체 행동이라 자유시간 적고 시간 촉박함 문제를 제외한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여행이었던 듯하다. 한류 열풍에 따라 아주머니들이 바글바글한 틈에서 청일점이었던 아버지가 경복궁에서 한복 입어보는 시간에 왕처럼 차려입고 사진 찍어달라는 아주머니들에 둘러싸여 인기폭발하는 장면이 재미있었다.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와서 '효도할 수 있을까?". 작가는 부모님이 좋아하실 만한 지점들을 찾아 고민을 거듭하지만, 부모님이 즐거워하시는 지점은 종종 의외의 포인트에서 찾아왔다. 현란한 고급 인도 레스토랑이 아니라 동네 식당 같은 인도 카레집에서 훨씬 편안한 표정으로 맛있게 식사하는 아버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새해에 고향에 오지 않으면 섭섭해하고 오면 일부러 천천히 세탁기를 돌려 딸에게 빨래 널기를 부탁하고 일을 나가는 엄마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춥고 정리 안 되어 있는 고향집을 리모델링하자는 딸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찡했던 에피소드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겠다며 도쿄에 상경해 혼자 지내는 딸이 걱정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던 부모님이, 딸의 첫 만화책이 나왔을 때 너무나도 기뻐하며 고향집 근처 서점들을 자발적으로 다니며 (민폐) 영업을 하시던 장면이다. 부모님에게는 30대가 된 딸도 물가에 내놓은 어린 아이 마냥 항상 어려보이고 걱정되기 마련인지. (싱글) 자녀들도 평소에는 혼자 다 알아서 할 수 있을 듯 행동하지만 정작 힘든 상황을 맞거나 외로울 때면 가족을 먼저 찾는다. 최근 베프가 슬픈 일을 당하는 모습을 보며, 평소에 부모님과 더 많이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가족은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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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문학 - 하루가 더 행복해지는 30초 습관
플랜투비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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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에 '사회실천창의상상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은 책을 만났다(다산북스 나나흰 3기 활동 중 신청해서 받은 책). '플랜투비'라는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우리나라와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람 냄새 나는 훈훈한 프로젝트들을 (아마도) 페이스북에 카드뉴스 형식으로 만들어 올렸던 내용을 책으로 묶었다. 정말 부제처럼 나와 타인의 하루가 더 행복해지도록 돕는 프로젝트, 또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소소한 대안을 스스로 실천한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다. '사회실천창의상상프로젝트'를 도덕 수행평가로 넣으면서 바로 내가 학생들이 추진했으면 했던 프로젝트들이다. 평일 잠들기 직전에 읽기에도 부담 없을 정도로 사진과 여백이 많은 책이라 틈틈이 읽다가, 지난주 일요일 아침에 스벅에서 집중해서 읽기 시작해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재미있고 유익해서 학생과 성인 모두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다.

내 관심사는 더 좋은 사회로 바꾸기 위한 실천이라 그와 관련된 참신한 실천들이 인상 깊었다. 여기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참신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많다. 재미있는 지점은 모두들 자신의 경험 속에서, 자신과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곳에서 프로젝트 소재를 발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모든 프로젝트에는 이야기가 있다. 특히 1학기 학년제안수업 때 '동물권리'에 대한 수업을 했기도 하고, 우리 반에 동물에게 관심이 많은 학생이 있어서 생각이 났다. 그 학생에게 이미 이 책을 추천해둔 상태다. 아래 내용 때문이다.

 필리핀에 사는 한 소년이 버려진 반려견들을 돌보는 프로젝트.

 

 아프리카 여성들이 가족 부양을 위해 노동력을 착취당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

샌들 제조 회사.

 

우리학교 학생들은 1학기 말부터 지금까지 "무한도전" 멤버들처럼 특별 기획 장기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기획, 예산 사용, 보고회 등 새로운 시도를 하며 일을 크게 벌이느라 나와 담당선생님에게도 '사회실천창의상상프로젝트' 자체가 어쩌면 2학기 도덕 수업 시간을 꽤나 많이 투자한 하나의 커다란 프로젝트였다. 학생의 생활과 시각에서 나올 수 있는 참신한 프로젝트를 많이 실천하는 과정에서, 여러 선생님들께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고 격려해주셔서 학생들이 준비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부 프로젝트는 어른들의 '보기 좋음'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며 철거나 수정, 혹은 폐기를 요구받았다. 학교를 깨끗하고 아름답게 꾸미거나 메시지를 담은 게시물을 게시하거나 사회를 바꿔보기 위해 시도했던 실천들이 좌절되기도 하고, 어떤 한 사안에 대해서도 정말 다양한 가치관과 시각, 입장과 요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면 내년에도 프로젝트를 최대한 많은 학생이 참여하도록 기회를 주고 싶다. 프로젝트가 처음 계획에서 더 커졌든, 중간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이미 많이 배웠다고 믿기 때문이다. 올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어른들의 '허락'을 받는 일이었다. 학생들도 담당 교사들도 '이 프로젝트는 허락 받을 수 있을까?' 조마조마해하며 자기 검열할 수밖에 없었다. 내년에는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신뢰 받으며 더 재미있고 유익한 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 주인공들처럼. 다음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힌트를 얻으라고 학생들에게 꼭 이 책을 추천해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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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임의 바다
팀 보울러 지음, 서민아 옮김 / 놀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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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북스 나나흰 3기 활동 중이다. 이번에는 미션도서로 가제본 청소년 성장소설이 왔다. 아주 좋아하는 작가 책을 제외하고는 문학작품을 일부러 찾아 읽지는 않는 편이다. 그런데 요즘 다산북스 덕분에 재미있는 소설을 두 권이나 읽을 수 있었다. 날씨 묘사나 대사가 많아 책장이 잘 넘어갔다. 다 읽은지 꽤 되었는데 평일에는 도저히 마음 잡고 리뷰 정리하기가 힘들어 이제야 올린다. 미션 완료일이 10/20(화)까지였는데 늦어서 죄송하다.

 

* 15세

벌써 몇 년 째 15세 즈음 아이들에 둘러싸여 일상 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중2 담임이다. 사춘기란 아이가 주변 어른에게 의존하던 상태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주체성을 세우는 시기이다. 몸과 마음이 급격히 발달하느라 변화가 빠르고 어딘가 균형이 맞지 않아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른들은 고분고분하던 아이가 갑자기 다른 모습을 보이면 당황하고 무서워한다. 요즘에는 사춘기 청소년의 모습을 중2병, 센척, 관종이라 부르기도 한다. 나도 세보이고 싶어하는 청소년 심리를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종종 함께 욱할 때가 있기는 하지만, 10년을 중학생과 함께 지내보니 경험상 관행을 깨는 참신한 생각, 행동의 이유를 물어보고 존중하면 말과 행동이 금방 부드러워진다. 이 이야기 주인공 헤티나 주변 청소년들도 이야기 내내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퍼 노인은 시종일관 헤티를 못마땅해하고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을 주입시키려는 꼰대 같은 어른 모습을 보인다.

 

* 낭만주의와 상상력

중2병 테스트 문항을 보면 허무맹랑한 상상을 많이 한다는 내용이 있다. 주인공 헤티 역시 낭만주의적인 상상력을 가진 소녀로 나온다. 바다유리 속에서 형상을 보거나 바다의 속삭임을 듣는다. 이런 헤티를 보며 어른들은 믿지 않고 이상하게 여긴다. 반대로 퍼 노인은 자신의 꿈을 들먹이며 노파가 악을 몰고 왔으며 큰 태풍이 오게 해 모리의 자랑이 파손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저런 갈등 끝에 섬 마을 노인이 두 명이나 죽자 그 책임은 헤티와 노파에게 돌아간다.  

 

* "손님"

소설을 읽으며 영화 "손님"(재미있었는데 타이밍이 안 맞았는지 금방 내렸던 비운의 영화)이 생각났다. 전쟁 직후 전쟁이 끝났는지도 모르는 고립된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괴롭힌 무당이 죽으면서 한 예언을 떠올리며, 마을에 온 손님을 이유도 없이 의심하고 미워한다. 또한 누군가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손님을 마을의 적 '빨갱이'로 만들어버린다. 이 이야기 역시 쪽배를 타고 와 죽어가는 노파를 이유 없이 증오하는 마을 어른들이 나온다. 모르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어딜 가나 있나보다. 작은 섬 마을은 근거 없는 증오심 때문에 갈등하고 분열한다.

 

이 이야기를 청소년 성장소설로 읽을 수 있는 이유는 헤티가 어른들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한 사람을 살리고, 쪽배를 타고 섬을 나가 노파를 고향으로 데려다 주었으며, 갈등 많던 고향 섬에서 나와 자기 삶의 주인이 되며 새출발하기 때문이다. 죽을 것만 같던 노파가 헤티의 믿음과 극진한 간호 덕분에 살아나는 모습을 보며, 청소년보다는 경험 많은 어른이 비교적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자만심을 내려놓고 싶어졌다. 내용이 어렵지 않고 청소년이 공감할 만하니 교실 학급문고에 꽂아두어야겠다.

 

 

오타(서포터즈라 가제본 책을 먼저 받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은 정식 출간 후라 다 정리가 되었겠지.)

3쪽: 깍여-> 깎여, 16쪽: “자네도 열다섯 살 땐 그러지 않나.” -> “않았나.”, 24쪽: 헤티는아무 말도-> 헤티는 아무 말도, 73쪽: 헤티는 바다(문장 끝나지 않음), 76쪽: 삼 전체에-> 섬 전체에, 77쪽: 헤티는 잠시 망설인 뒤 말을 이었다.“-> 따옴표 삭제, 99쪽: “영감님이나 어둠 속으로 돌아가시말”-> 돌아가시란, 135쪽: 물속에 잠겼가.-> 물속에 잠겼다., 164쪽: 곧 석탄이 더 넣어야-> 곧 석탄을 더 넣어야, 167쪽: 내버려두었구냐.-> 내버려두었구나., 177쪽: 다른쪽-> 다른 쪽, 186쪽: 꼭 쥐 채-> 꼭 쥔 채, 날까로운-> 날카로운, 224쪽: 톰의 말은-> 탐의 말은, 233쪽: 속삼임이-> 속삭임이, 마음속에-> 마음 속에, 247쪽: 뜨트머리-> 끄트머리, 256쪽: 싸메고서-> 싸매고서, 항해하길 바람이-> 항해하고 싶은 바람이?, 손잡이을-> 손잡이를, 287쪽: 사람을이-> 사람이, 320쪽: 하단 편집 이상, 340쪽: 드르고->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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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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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북스 나나흰 3기 활동 중이다. 다음 미션 도서가 이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담당자가 바뀐 후 신청을 받으시는 글을 읽고 '나는 문학 작품은 별로 즐겨 읽지 않으니 더 읽고 싶은 분께 기회를 넘길 수 있으면 넘기고 싶다'고 했는데, 역시나 방식이 바뀌지는 않았는지 책이 배송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역사 속에서 문학이라는 틀로 현재를 어찌나 잘 성찰해 보여주는지 안 읽었으면 어쩔뻔 싶을 만큼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비문학에 비해 문학작품이라 책장도 잘 넘어갔다. 저자는 전북에서 태어나 전북대에서 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전라도 각 지역을 직접 밟으며 취재하고 고증해서 썼을 듯한 소설 전체를 읽으며, 전라도 말씨가 그대로 살아 있는 문체를 읽으며, 무엇보다 2012년에 전봉준 평전을 펴내기도 했고 자기 출신 지역 조상들이었던 민초들의 투쟁을 글로 재현해낼 때의 진솔함과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떠올리게 만드는 생생함까지. 여러 모로 혼불문학상 수상에 적합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종종 전주국제영화제 내려갔다가 밟았던 전주한옥마을, 전북대학교, 전주 각 지역, 혼불문학관과 최명희가 생각났다. 게다가 소설을 다 읽은 직후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광주까지 운전해서 다녀오면서 교통 표지판에서 이 소설에 나온 지명들을 자주 만났고, 정읍휴게소 별명에 '녹두 장군'이 써 있어서 괜히 반가웠다.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가 시기적으로 근대를 지나면서 겪었던 갈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대원군과 친일파, 전봉준을 위시한 동학농민군들 각자의 입장과 그에 따른 대처 방식을 보여준다. 저자는 후미의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왜 하필 그 시기를 배경으로 삼았는지 드러내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 문제를 생각하려니 어디서부터 왜 잘못 되었는지를 돌아보아야만 했다고, 그래서 그 시기로 돌아가보았다고 한다. 소설 안에서는 직접 드러나지 않았던 강한 논조가 작가의 말에서 사뭇 드러난다.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문사철이 해야할 일이 바로 저자가 하고 있는 이런 일이 아닐까. 그때 어떻게 되었다면 우리나라는 좀 더 좋은 나라가 되었을까. 결말을 알고 있는 영화를 보듯 우리는 이미 전봉준과 동학농민군이 패배하리라는 사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리라는 사실을 알고 이 소설을 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군이 이겼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조마조마해하며 책장을 넘긴다.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까지 위험하게 살면서 오히려 민초의 안전을 지키고자 했던 그들의 승리를 기원했다.

* 작가의 말

"이 소설은 위험하게 사는 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세상이 안전하지 않은데 개인이 안전하기를 바라는 것은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나만 안전하기를 바라는 일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안락을 꿈꾸지만 당장은 안전해 보여도 제도화된 위태로움으로부터 조만간에는 포위될 게 뻔하다. 단언컨대, 세상은 지금 안전하지 않다. 사람, 산과 강, 저녁거리, 지역, 국가 모두가 위태롭다.

그러니 어떻게 할까?

이 소설은 이 질문과 무관하지 않다. 위험을 감수한 자들이 이룩한 공적 가치가 안전을 추구한 사람들의 그것보다 큰 게 아닐까, 나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서양의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지금보다 위험하게 살아보는 건 어떨까, 하는.

2012년에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에 관한 평전을 낸 일이 있는데...

이런 이유로 실타래처럼 꼬인 난국을 그 시절에는 어떻게 이해했으며, 어떤 경로로 헤쳐가려고 했는지 살핌으로써 이 고장 난 근대에 관한 지혜를 얻고 싶었다..." 352-354쪽.

 

내용이야 어떻게 되었든 시기적으로 근대를 지나고 있던 그때 계급사회에서 벗어나고자 잠깐이나마 도했던 민주주의를 읽는 일이 짜릿했다. 농민군들이 생업을 내던지면서까지 이 싸움에 동참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래 등장인물이 주장하는 바처럼 경제적인 이득을 바라기 때문이 아니라, 그보다 좀 더 가치로운 것을 지향하며 수평적으로 자유롭게 더 좋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는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보람 때문이었을 테다. 이 긴 이야기 속에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이 평범한 사람의 주장이 주제와 작가 의도를 잘 드러내주는 듯해 옮겨보았다.

"- 그게 아니라 집강소에 들 때부텀 마누라와는 벌써 싸움이 잦았소. 무슨 중뿔 났다고 그런 델 참여하느냐구, 이러다 소작도 떨어진다구 난리 난리 그런 난리가 없습디다. 네미럴, 중뿔도 없으니 이런 일에 나서지 아니면 미쳤다고 나서겠수? 어찠거나 집강소 들어가서 잡세는 어떻게 허며 결세는 어떻게 헐 것인지 상의도 허고 큰 소리도 내고 그맀는디 아, 그것이 시상 없이 재밌는 일이드란 말여. 우리 일을 우리가 결정하고 득 되는 일을 허는디 신이 안 나? 그렁게 이놈들이 지금까지 지들만 해먹었등개벼."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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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두고 읽는 서양철학사
오가와 히토시 지음, 황소연 옮김, 김인곤 감수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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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박사(철학교육 전공) 시험일이 다음주로 훌쩍 다가왔다. 학기 중 일상 생활에 정신 없어 준비를 거의 못하고 있는 차에 다산북스 서포터즈 카페에 이 책이 올라와서 신청했다. 입문용으로 50인 철학자의 대표 학설 두 가지씩을 쉽게 풀었기에 철학사 앞부터 뒤까지 한 번 훑으며 조망하기 좋았다. 배웠거나 저작을 읽어 알고 있는 내용도 있었지만 다시 기억을 되새기며 정리하기 좋았다. 일본 학자는 이런 어려운 내용도 대중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참 쉽게 잘 풀어쓴다고 종종 생각한다.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례들을 적절히 섞어 풀고 있다. 이 책도 인문학이나 철학에 관심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권할 수 있겠다. 다 읽은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고 평일에는 진득하게 앉아 리뷰 쓰기가 너무 힘들어 이제야 정리한다. 바로 써두었으면 좋았을 텐데 생생함이 떨어져서 아쉽다. 

 

대표 철학자 50인의 학설들이기에 대부분 의미 있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내용들을 다소 길지만 옮겨둔다. 정치철학을 공부할까 고민 중이기에 특별히 그 분야를 다룬 챕터들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렇게 옮겨두고 보니 철학자는 지금보다도 오래 전에 이미 건강한 민주 시민으로서 살아야할 필요성과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두었다. 지금 여기 내가 속한 곳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성찰할 수 있어서 좋았다. 민주 시민으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드는 암울한 현실을 새삼 돌아보았다.

 

 

최근 중2 도덕 논술1 수행평가로 다문화 사회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을 가르쳐주고 자유와 평등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문제를 출제했다. 학교에서 자주 부딪치는 문제인 엄격한 교칙 같은 문제들에 대해 아래 내용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루소는 자유가 억압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기 위해 그는 먼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국민이 자유를 양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통 자유를 양도하면 자유를 빼앗긴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한 명의 개인에게 자유를 양도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양도하는 것이므로 개인은 평등의 권리를 가질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잃어버리는 부분은 자연 상태에서 욕망에 휘둘리는 '자연적 자유'뿐이고, 국민은 진정한 자유인 '시민적 자유'를 새롭게 얻는다. 시민적 자유란 의무와 이성에 따라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자유를 일컫는다. 사회 구성원이 함께하는 공동체에서는 시민적 자유가 매우 중요하다." (루소) 124쪽.

 

 

작년 첫번째 전체제안수업 때 '죽음'에 대해 다루려고 긴 시간 동안 준비하면서 주변 문화 예술 작품 속에 아래 내용을 담은 작품들이 꽤나 많음을 확인했다. 의식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드라마나 영화 한 편만 보더라도 '죽음'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다룬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최근에는 tvN "두번째 스무살"을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여주는 췌장암 판정을 받고 '웰다잉'에 대해 고민하며 삶을 돌아보고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고 노력하는데 알고 봤더니 오진이었다. 판정을 받기 전과 후의 삶은 굉장히 달라져 있다. 날씨가 급격히 추워져서 그런지 이 계절이 되면 지인의 부음 소식도 들려오곤 한다. 한편으로 산다는 게 무엇인지 허무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남았는지 모를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각해보게 된다. 

"현존재는 선구적 결단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죽음을 직시함으로써 산산이 부서지는 고통을 맛본다. 한편으로는 이미 던져진 현실로 되돌아와서,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에 집중하며 죽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각오를 한다. 요컨대 죽음을 향한 존재로서 대체 불가능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죽음을 의식하면 진심을 다해 살아가려는 마음이 샘솟는다. 하이데거는 바로 그런 진지한 자세로 삶에 임하는 모습이 본질적인 현존재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하이데거는 유한한 삶을 의식하기 위해 죽음을 긍정적으로 포착했다. 이것이 그가 죽음의 철학자로 일컬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이데거) 195-196쪽.

 

사르트르나 푸코처럼 자신이 주장한 바를 실천한 철학자들이 좋다. 자유를 추구하며 자신의 모든 삶 속에서 자유롭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쟁취하기 위해 사회 참여를 했던 사르트르. 학교에서도 자주,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명령에 상명하복해야 하는 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에(어떤 조직도 마찬가지겠지만) 전문직인 교사의 자율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나도 자주 발생해 답답하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오랫동안 관행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있는 비합리적이고 권위적인 문화부터 성찰해보고 사소한 행동이라도 시작해보는 일도 좋다. 크게는 우리나라에서 정치, 경제적으로 약자를 억압하는 문제나 권위주의적이었던 역사로 회귀하려는 움직임과 어떤 방식으로든 싸워보는 일도 좋다. 핵심은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고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유를 위해 싸우라는 사르트르의 말을 기억하자.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유를 실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황을 피할 수 없다면 직접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사르트르가 찾아낸 답이었다. 바로 프랑스어로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뜻하는 '앙가주망'이다.

'앙가주망'을 바탕으로 하는 저돌적인 자세는 꿈쩍도 하지 않는 현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소극적인 태도와는 180도 다르다. 오히려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통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대단히 진취적인 태도다. 그러니 결과는 나중 문제다. 멍하니 벽만 쳐다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힘껏 맞서 싸워야 한다. 자유는 그 벽 너머에 있을 테니까." (사르트르) 201쪽.

 

사실 배움의 공동체 권위자 사토 마나부도 듀이의 교육 철학에서 많이 배워왔다고 알고 있다. 학교 구조도, 지향할 교육 철학도,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과정도,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혁신학교에서는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문화 속에서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복수 당할 위협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핵심이자 근본 토대다. 행사와 대회 등으로 있어보이는 결과물들을 산출해서 자랑하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 일상생활 속에서 아래 내용과 같은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혁신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돌아보았다. 요즘 '사회실천창의상상프로젝트' 수행평가 때문에 학생들을 도우면서 보람찬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듀이의 철학을 읽으며 좀 더 힘을 얻었다. 학생도 교사도 과정에서 배우는 점들이 많겠지. 

"요즘 비약적인 기술 혁신을 달성하자는 취지의 글을 경제지에서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기술 혁신 즉, 이노베이션(innovation)이란 타성에 젖은 관습을 쇄신하고, 혁신을 이룩하는 일을 의미한다... 다만 사회 개혁이 실력 행사의 산물이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서로 합의를 통한 자유로운 지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듀이는 교육을 중시했다.

교육의 목적이 대화와 설득 등 자유로운 지성의 행사인 이상, 교육을 매개로 육성되는 지성 자체가 자유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확보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사회다.

이렇게 해서 교육의 목적은 민주주의 사회를 구축하는 일로 좁혀진다. 듀이에 따르면 학교는 이를 위한 '작은 사회'로 자리매김하고, 교육 내용도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듀이는 교육 내용 뿐 아니라 교육 방법에서도 혁신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단순히 교사의 말만 듣는 수동적인 수업이 아니라, 스스로 작업하고 생각할 수 있는 능동적인 수업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문제해결형' 교육이다." (듀이) 225-226쪽.

 

석사할 때 지도교수님 수업에서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함께 읽었는데 참 좋았다. 성찰 없이 성실해서 위험했던 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이야기도 들었고, 인간이 수행하고 있는 노동, 작업, 행동의 차이점이나 '공론장'과 정치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배웠다. 이후 학교로 돌아와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교사로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좀 더 달라졌다.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를 바라보는 관점도. 엄기호 선생님이 꾸준히 주장하시듯, 교무실과 교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고립되어 있다. 거기에서 불안이 생기고 사안이 발생해도 행동하기 어려워진다. 급박한 사안이 발생하고 마음 속에 문제 의식도 가지고 있지만, '나만 이렇게 생각하나' 혹은 '나중에 나에게 어떤 피해가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문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크게 목소리를 내는 행동을 하지 못하는 요즘 교무실 풍경을 자주 보며 답답하다. 우리 학교 공동체가 좀 더 '행위'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녀는 전체주의의 기원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즈음, 계급사회가 해체되고 대중사회가 도래한 부분에서 찾았다. 대중사회란 사회에 무관심한 사람들의 집합체를 이르는데, 대중사회 이전의 계급사회에서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긴장된 의견 대립으로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있었다. 반면 대중사회에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유대감을 형성하지 않은 채 뿔뿔이 흩어져 있기 때문에 개인은 고독과 고립감을 맛볼 수밖에 없다." (아렌트) 308쪽.

"아렌트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 논의하고 사안을 결정하고 상부상조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이런 정치적 인간이기에 공공성을 도모하는 행위가 필요하고, 그 행위는 유상과 무상을 따지지 않고 공적인 삶을 영위하게 이끈다. 결국 인간의 활동 가운데 생존을 위한 '노동'이나 정신적인 충족을 위한 '작업'뿐 아니라, 공동체의 '행위'에 가치를 두는 삶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이라고 아렌트는 주장하고 있다." (아렌트) 311쪽.

 

 

상술했다시피 정치철학을 공부하게 될 수 있어서 이 책이 참신하게도 '정치철학' 챕터를 따로 떼어서 한 장을 구성했던 점이 인상 깊었다. 철학에서 독립적인 한 분야로 자리한 정치철학 의미를 되돌아보았다. 이 부분을 읽고 보니 요즘 나의 관심사가 정치철학이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학생들에게 잘 가르쳐주고 싶은 분야도 철학+민주시민 교육이다. 이를 합치면 정치철학과 비슷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점이 이 독서에서 가장 의미 있던 지점이었다. 지금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 이 사회를 꾸려갈 때에는 건강하게 연대하며 갈등을 부드럽게 해결해가고, 당면한 사회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함께 모여 공부하면서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지금 사회 모습을 보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씩 달라지고 있으니 성장해가기를 기다려야할 테다.

* 정치철학

"칼럼: 철학의 가능성- 지금, 왜 정치철학인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 이후...) 정치철학이 학문의 한 분야로 사람들에게 널리 인식됨으로써 왜곡된 세계화, 환경 문제, 사회 문제를 둘러싸고 철학적으로 그 대처 방안을 모색하는 토대가 조금씩 마련되고 있다. 아울러 모두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영역인 '공공성'이라는 개념, 사회 문제를 다 같이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참여 민주주의'라는 개념에도 사람들이 주목하게 되었다.

이렇듯 정치철학은 다양한 사회 문제를 정부와 정치인에게 맡겨 두고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작금의 세태를 변모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어쩌면 온갖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현대 사회의 병폐가 정치철학을 자연스럽게 불러냈는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간에 사회적 연대와 참여는 이제 막 기지개를 켜고 활동하는 상태로 돌입했으며..." 336-3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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