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두고 읽는 서양철학사
오가와 히토시 지음, 황소연 옮김, 김인곤 감수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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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박사(철학교육 전공) 시험일이 다음주로 훌쩍 다가왔다. 학기 중 일상 생활에 정신 없어 준비를 거의 못하고 있는 차에 다산북스 서포터즈 카페에 이 책이 올라와서 신청했다. 입문용으로 50인 철학자의 대표 학설 두 가지씩을 쉽게 풀었기에 철학사 앞부터 뒤까지 한 번 훑으며 조망하기 좋았다. 배웠거나 저작을 읽어 알고 있는 내용도 있었지만 다시 기억을 되새기며 정리하기 좋았다. 일본 학자는 이런 어려운 내용도 대중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참 쉽게 잘 풀어쓴다고 종종 생각한다.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례들을 적절히 섞어 풀고 있다. 이 책도 인문학이나 철학에 관심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권할 수 있겠다. 다 읽은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고 평일에는 진득하게 앉아 리뷰 쓰기가 너무 힘들어 이제야 정리한다. 바로 써두었으면 좋았을 텐데 생생함이 떨어져서 아쉽다. 

 

대표 철학자 50인의 학설들이기에 대부분 의미 있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내용들을 다소 길지만 옮겨둔다. 정치철학을 공부할까 고민 중이기에 특별히 그 분야를 다룬 챕터들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렇게 옮겨두고 보니 철학자는 지금보다도 오래 전에 이미 건강한 민주 시민으로서 살아야할 필요성과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두었다. 지금 여기 내가 속한 곳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성찰할 수 있어서 좋았다. 민주 시민으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드는 암울한 현실을 새삼 돌아보았다.

 

 

최근 중2 도덕 논술1 수행평가로 다문화 사회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을 가르쳐주고 자유와 평등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문제를 출제했다. 학교에서 자주 부딪치는 문제인 엄격한 교칙 같은 문제들에 대해 아래 내용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루소는 자유가 억압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기 위해 그는 먼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국민이 자유를 양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통 자유를 양도하면 자유를 빼앗긴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한 명의 개인에게 자유를 양도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양도하는 것이므로 개인은 평등의 권리를 가질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잃어버리는 부분은 자연 상태에서 욕망에 휘둘리는 '자연적 자유'뿐이고, 국민은 진정한 자유인 '시민적 자유'를 새롭게 얻는다. 시민적 자유란 의무와 이성에 따라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자유를 일컫는다. 사회 구성원이 함께하는 공동체에서는 시민적 자유가 매우 중요하다." (루소) 124쪽.

 

 

작년 첫번째 전체제안수업 때 '죽음'에 대해 다루려고 긴 시간 동안 준비하면서 주변 문화 예술 작품 속에 아래 내용을 담은 작품들이 꽤나 많음을 확인했다. 의식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드라마나 영화 한 편만 보더라도 '죽음'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다룬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최근에는 tvN "두번째 스무살"을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여주는 췌장암 판정을 받고 '웰다잉'에 대해 고민하며 삶을 돌아보고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고 노력하는데 알고 봤더니 오진이었다. 판정을 받기 전과 후의 삶은 굉장히 달라져 있다. 날씨가 급격히 추워져서 그런지 이 계절이 되면 지인의 부음 소식도 들려오곤 한다. 한편으로 산다는 게 무엇인지 허무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남았는지 모를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각해보게 된다. 

"현존재는 선구적 결단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죽음을 직시함으로써 산산이 부서지는 고통을 맛본다. 한편으로는 이미 던져진 현실로 되돌아와서,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에 집중하며 죽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각오를 한다. 요컨대 죽음을 향한 존재로서 대체 불가능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죽음을 의식하면 진심을 다해 살아가려는 마음이 샘솟는다. 하이데거는 바로 그런 진지한 자세로 삶에 임하는 모습이 본질적인 현존재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하이데거는 유한한 삶을 의식하기 위해 죽음을 긍정적으로 포착했다. 이것이 그가 죽음의 철학자로 일컬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이데거) 195-196쪽.

 

사르트르나 푸코처럼 자신이 주장한 바를 실천한 철학자들이 좋다. 자유를 추구하며 자신의 모든 삶 속에서 자유롭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쟁취하기 위해 사회 참여를 했던 사르트르. 학교에서도 자주,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명령에 상명하복해야 하는 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에(어떤 조직도 마찬가지겠지만) 전문직인 교사의 자율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나도 자주 발생해 답답하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오랫동안 관행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있는 비합리적이고 권위적인 문화부터 성찰해보고 사소한 행동이라도 시작해보는 일도 좋다. 크게는 우리나라에서 정치, 경제적으로 약자를 억압하는 문제나 권위주의적이었던 역사로 회귀하려는 움직임과 어떤 방식으로든 싸워보는 일도 좋다. 핵심은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고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유를 위해 싸우라는 사르트르의 말을 기억하자.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유를 실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황을 피할 수 없다면 직접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사르트르가 찾아낸 답이었다. 바로 프랑스어로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뜻하는 '앙가주망'이다.

'앙가주망'을 바탕으로 하는 저돌적인 자세는 꿈쩍도 하지 않는 현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소극적인 태도와는 180도 다르다. 오히려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통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대단히 진취적인 태도다. 그러니 결과는 나중 문제다. 멍하니 벽만 쳐다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힘껏 맞서 싸워야 한다. 자유는 그 벽 너머에 있을 테니까." (사르트르) 201쪽.

 

사실 배움의 공동체 권위자 사토 마나부도 듀이의 교육 철학에서 많이 배워왔다고 알고 있다. 학교 구조도, 지향할 교육 철학도,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과정도,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혁신학교에서는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문화 속에서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복수 당할 위협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핵심이자 근본 토대다. 행사와 대회 등으로 있어보이는 결과물들을 산출해서 자랑하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 일상생활 속에서 아래 내용과 같은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혁신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돌아보았다. 요즘 '사회실천창의상상프로젝트' 수행평가 때문에 학생들을 도우면서 보람찬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듀이의 철학을 읽으며 좀 더 힘을 얻었다. 학생도 교사도 과정에서 배우는 점들이 많겠지. 

"요즘 비약적인 기술 혁신을 달성하자는 취지의 글을 경제지에서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기술 혁신 즉, 이노베이션(innovation)이란 타성에 젖은 관습을 쇄신하고, 혁신을 이룩하는 일을 의미한다... 다만 사회 개혁이 실력 행사의 산물이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서로 합의를 통한 자유로운 지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듀이는 교육을 중시했다.

교육의 목적이 대화와 설득 등 자유로운 지성의 행사인 이상, 교육을 매개로 육성되는 지성 자체가 자유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확보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사회다.

이렇게 해서 교육의 목적은 민주주의 사회를 구축하는 일로 좁혀진다. 듀이에 따르면 학교는 이를 위한 '작은 사회'로 자리매김하고, 교육 내용도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듀이는 교육 내용 뿐 아니라 교육 방법에서도 혁신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단순히 교사의 말만 듣는 수동적인 수업이 아니라, 스스로 작업하고 생각할 수 있는 능동적인 수업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문제해결형' 교육이다." (듀이) 225-226쪽.

 

석사할 때 지도교수님 수업에서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함께 읽었는데 참 좋았다. 성찰 없이 성실해서 위험했던 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이야기도 들었고, 인간이 수행하고 있는 노동, 작업, 행동의 차이점이나 '공론장'과 정치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배웠다. 이후 학교로 돌아와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교사로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좀 더 달라졌다.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를 바라보는 관점도. 엄기호 선생님이 꾸준히 주장하시듯, 교무실과 교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고립되어 있다. 거기에서 불안이 생기고 사안이 발생해도 행동하기 어려워진다. 급박한 사안이 발생하고 마음 속에 문제 의식도 가지고 있지만, '나만 이렇게 생각하나' 혹은 '나중에 나에게 어떤 피해가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문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크게 목소리를 내는 행동을 하지 못하는 요즘 교무실 풍경을 자주 보며 답답하다. 우리 학교 공동체가 좀 더 '행위'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녀는 전체주의의 기원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즈음, 계급사회가 해체되고 대중사회가 도래한 부분에서 찾았다. 대중사회란 사회에 무관심한 사람들의 집합체를 이르는데, 대중사회 이전의 계급사회에서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긴장된 의견 대립으로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있었다. 반면 대중사회에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유대감을 형성하지 않은 채 뿔뿔이 흩어져 있기 때문에 개인은 고독과 고립감을 맛볼 수밖에 없다." (아렌트) 308쪽.

"아렌트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 논의하고 사안을 결정하고 상부상조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이런 정치적 인간이기에 공공성을 도모하는 행위가 필요하고, 그 행위는 유상과 무상을 따지지 않고 공적인 삶을 영위하게 이끈다. 결국 인간의 활동 가운데 생존을 위한 '노동'이나 정신적인 충족을 위한 '작업'뿐 아니라, 공동체의 '행위'에 가치를 두는 삶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이라고 아렌트는 주장하고 있다." (아렌트) 311쪽.

 

 

상술했다시피 정치철학을 공부하게 될 수 있어서 이 책이 참신하게도 '정치철학' 챕터를 따로 떼어서 한 장을 구성했던 점이 인상 깊었다. 철학에서 독립적인 한 분야로 자리한 정치철학 의미를 되돌아보았다. 이 부분을 읽고 보니 요즘 나의 관심사가 정치철학이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학생들에게 잘 가르쳐주고 싶은 분야도 철학+민주시민 교육이다. 이를 합치면 정치철학과 비슷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점이 이 독서에서 가장 의미 있던 지점이었다. 지금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 이 사회를 꾸려갈 때에는 건강하게 연대하며 갈등을 부드럽게 해결해가고, 당면한 사회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함께 모여 공부하면서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지금 사회 모습을 보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씩 달라지고 있으니 성장해가기를 기다려야할 테다.

* 정치철학

"칼럼: 철학의 가능성- 지금, 왜 정치철학인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 이후...) 정치철학이 학문의 한 분야로 사람들에게 널리 인식됨으로써 왜곡된 세계화, 환경 문제, 사회 문제를 둘러싸고 철학적으로 그 대처 방안을 모색하는 토대가 조금씩 마련되고 있다. 아울러 모두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영역인 '공공성'이라는 개념, 사회 문제를 다 같이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참여 민주주의'라는 개념에도 사람들이 주목하게 되었다.

이렇듯 정치철학은 다양한 사회 문제를 정부와 정치인에게 맡겨 두고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작금의 세태를 변모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어쩌면 온갖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현대 사회의 병폐가 정치철학을 자연스럽게 불러냈는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간에 사회적 연대와 참여는 이제 막 기지개를 켜고 활동하는 상태로 돌입했으며..." 336-3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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