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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평점 :
다산북스 나나흰 3기 활동 중이다. 다음 미션 도서가 이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담당자가 바뀐 후 신청을 받으시는 글을
읽고 '나는 문학 작품은 별로 즐겨 읽지 않으니 더 읽고 싶은 분께 기회를 넘길 수 있으면 넘기고 싶다'고 했는데, 역시나 방식이 바뀌지는
않았는지 책이 배송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역사 속에서 문학이라는 틀로 현재를 어찌나 잘 성찰해 보여주는지 안 읽었으면
어쩔뻔 싶을 만큼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비문학에 비해 문학작품이라 책장도 잘 넘어갔다. 저자는 전북에서 태어나 전북대에서 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전라도 각 지역을 직접 밟으며 취재하고 고증해서 썼을 듯한 소설 전체를 읽으며, 전라도 말씨가 그대로 살아 있는 문체를 읽으며, 무엇보다
2012년에 전봉준 평전을 펴내기도 했고 자기 출신 지역 조상들이었던 민초들의 투쟁을 글로 재현해낼 때의 진솔함과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떠올리게 만드는 생생함까지. 여러 모로 혼불문학상 수상에 적합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종종 전주국제영화제 내려갔다가
밟았던 전주한옥마을, 전북대학교, 전주 각 지역, 혼불문학관과 최명희가 생각났다. 게다가 소설을 다 읽은 직후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광주까지
운전해서 다녀오면서 교통 표지판에서 이 소설에 나온 지명들을 자주 만났고, 정읍휴게소 별명에 '녹두 장군'이 써 있어서 괜히 반가웠다.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가 시기적으로 근대를 지나면서 겪었던 갈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대원군과 친일파, 전봉준을 위시한 동학농민군들 각자의
입장과 그에 따른 대처 방식을 보여준다. 저자는 후미의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왜 하필 그 시기를 배경으로 삼았는지 드러내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 문제를 생각하려니 어디서부터 왜 잘못 되었는지를 돌아보아야만 했다고, 그래서 그 시기로 돌아가보았다고 한다. 소설
안에서는 직접 드러나지 않았던 강한 논조가 작가의 말에서 사뭇 드러난다.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문사철이 해야할 일이 바로 저자가 하고
있는 이런 일이 아닐까. 그때 어떻게 되었다면 우리나라는 좀 더 좋은 나라가 되었을까. 결말을 알고 있는 영화를 보듯 우리는 이미 전봉준과
동학농민군이 패배하리라는 사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리라는 사실을 알고 이 소설을 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군이 이겼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조마조마해하며 책장을 넘긴다.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까지 위험하게 살면서 오히려 민초의 안전을 지키고자 했던 그들의 승리를 기원했다.
* 작가의 말
"이 소설은 위험하게 사는 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세상이 안전하지 않은데 개인이 안전하기를 바라는 것은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나만 안전하기를 바라는
일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안락을 꿈꾸지만 당장은 안전해 보여도 제도화된 위태로움으로부터 조만간에는 포위될 게 뻔하다. 단언컨대, 세상은
지금 안전하지 않다. 사람, 산과 강, 저녁거리, 지역, 국가 모두가 위태롭다.
그러니 어떻게 할까?
이 소설은 이 질문과 무관하지 않다. 위험을 감수한 자들이 이룩한 공적 가치가 안전을 추구한 사람들의
그것보다 큰 게 아닐까, 나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서양의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지금보다 위험하게 살아보는 건 어떨까, 하는.
2012년에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에 관한 평전을 낸 일이 있는데...
이런 이유로 실타래처럼 꼬인 난국을 그 시절에는 어떻게 이해했으며, 어떤 경로로 헤쳐가려고 했는지
살핌으로써 이 고장 난 근대에 관한 지혜를 얻고 싶었다..." 352-354쪽.
내용이야 어떻게 되었든 시기적으로 근대를 지나고 있던 그때 계급사회에서 벗어나고자 잠깐이나마 도했던 민주주의를 읽는 일이 짜릿했다.
농민군들이 생업을 내던지면서까지 이 싸움에 동참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래 등장인물이 주장하는 바처럼 경제적인 이득을 바라기 때문이 아니라,
그보다 좀 더 가치로운 것을 지향하며 수평적으로 자유롭게 더 좋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는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보람 때문이었을 테다. 이 긴
이야기 속에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이 평범한 사람의 주장이 주제와 작가 의도를 잘 드러내주는 듯해 옮겨보았다.
"- 그게 아니라 집강소에 들 때부텀 마누라와는 벌써 싸움이 잦았소. 무슨 중뿔 났다고 그런 델
참여하느냐구, 이러다 소작도 떨어진다구 난리 난리 그런 난리가 없습디다. 네미럴, 중뿔도 없으니 이런 일에 나서지 아니면 미쳤다고 나서겠수?
어찠거나 집강소 들어가서 잡세는 어떻게 허며 결세는 어떻게 헐 것인지 상의도 허고 큰 소리도 내고 그맀는디 아, 그것이 시상 없이 재밌는
일이드란 말여. 우리 일을 우리가 결정하고 득 되는 일을 허는디 신이 안 나? 그렁게 이놈들이 지금까지 지들만 해먹었등개벼."
2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