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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스퀘어 : 세상을 외치다 - 민주주의에서 설득의 효능은 힘이나 권위가 아니라 '연설'에서 나온다
필립 콜린스 지음, 강미경 옮김 / 영림카디널 / 2022년 6월
평점 :
절판
블루 스퀘어 : 세상을 외치다
민주주의에서 설득의 효능은 힘이나 권위가 아니라 '연설'에서 나온다
필립 콜린스 (지은이), 강미경 (옮긴이) 영림카디널
연설문들을 모아놓은 책은 간간히 나옵니다. 세계의 명연설이나 세상을 움직인 연설같이 다들 좋은 연설문을 모았죠. 하지만 정작 읽어보면 왜?라는 의문이 들면서 가슴에 와닿지는 않습니다. 연설문이니 소리내어 읽어봐야하나 하고 낭독을 해봐도, 외국에서 통했던 것이니 원문으로 읽어볼까 해도 유명한 이유도 모르겠고 뜻과 의미도 남지 않습니다. 분명히 좋은, 유명한 연설이라 수십, 수백년을 내려온건데 너무 시시합니다. 왜 그런걸까 궁금하던 차에 블루 스퀘어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시작부터 연설의 역사가 나옵니다. 수사학의 기원에서 기원전에 연설학원이 있었네요. 옛날이야기아냐? 하지만 정치에 무관심한 시대에도 명연설은 나왔습니다. 연설문의 역할과 존재 이유를 설명하면서 시작합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결함 중 하나는 성공을 거둔 그 순간부터 지루해지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면 권력은 언어를 변질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정치인들이 썩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성공을 거둔 뒤에는 활동가가 기술관료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의 연설을 보면 절반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이룬 업적에 대한 허풍이고, 나머지 절반은 세세한 정책사항이어서 전문가나 알아 들을 수 있는 기술적인 용어들뿐이다.
28-29
명연설의 날카로운 분석과 시대상황, 주변환경을 잘 설명해줍니다. 키케로의 연설이 왜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지, 왜 유명한건지 저자의 해설과 함께 읽으니 명연설인지 알겠습니다. 마치 박물관에 뭔지 모를 무작정 비싸다는 그림을 보고있는데 안내원이 와서 왜 비싸게 되었는지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언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는지 설명해주는 듯한 재미입니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역시 그간 나온 잡다한 이야기를 깔끔하게 정리해줍니다. 메모지에 단숨에 썼다느니,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한 것이라든지 등을 정리해주고 이 짧은 글이 왜 명연설로 남게 되었는지, 숱한 소문들을 논리적으로 해설합니다. 연설문의 탁월한 가이드입니다.
세번째로 오바마의 연설이 나옵니다. (이건 뭐지? 저자가 좋아하는 순서인가? 다시 목차를 보니 민주주의, 전쟁, 국가, 진보 등 주제별로 분류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오바마의 연설도 대단한 힘을 가졌습니다. 추모행사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렀다고 들었는데 노래 역시 연설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유튜브에서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서문에 페리클레스의 연설을 언급해놓고 키케로, 링컨, 오바마로 가길래 이상하다 했는데 전쟁 편에 바로 나옵니다. 해설과 함께 읽으니 당시의 느낌도 이해가 되면서 왜 명연설인지 이해가 됩니다.
뒷부분으로 가면 카스트로나 모택동의 연설도 나옵니다. 명연설이라기 보다는 세상에(자기 나라에만) 강한 영향을 준 연설이었죠.
2015년 오바마가 찰스턴에서 핑크니 목사가 살해된 사건 직후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부른 것이야말로 대중연설의 가장 감동적인 순간으로 꼽히고 있다. 오바마의 연설은 늘 노래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곤 했었는데, 그때는 정말로 노래를 불렀다.
이 평범한 글, 즉 정치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자리에서 오바마는 정치가 세상을 진보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한 것이다. 시와 같은 화려한 문장을 즐겨 쓰는 연사라면 오바마가 프랑스 극작가 몰리에르의 희곡 <부르주아 신사〉에 나오는 인물처럼 평생 일반적인 산문을 노래하듯 읽었다는 사실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모름지기 정치인들은 시로 선거운동을 하고 산문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마리오 쿠오모의 말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자주 인용되고 있는데, 그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인이 산문으로 정치연설을 하지만, 산문이 멋지기만 하다면 시 못지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성악가처럼 말하는 마틴 루서 킹 목사를 제외하면 그 누구보다도 오바마의 글은 읽기보다 듣는 것이 더 좋다. 그는 한 단어 한 단어를 곱씹으며 자음을 미끄러지듯 발음하는 방법으로 단어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새롭게 끄집어낸다. 또 쉬어야 할 곳은 기막히게 알아내어 쉬어간다. 그래서 그의 침묵은 다른 사람들의 말보다 낫다. 그의 말에는 음악과 같은 리듬이 실려 있어서 말을 한다기보다 노래하는 쪽에 더 가까워, 마치 흑인 교회의 설교에서나 들을 법한 어법을 연상케 한다.
5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