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는 잠시 침묵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놀랍게도, 나도 완전히 같은 생각이다."
"정말요?"
"나도 어느 순간 깨달았지. 싫은 놈들이 망해버려야지, 세계가 다 망할 필요는 없다고. 그때부터 나는 오래 살아서, 절대 망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단다. 그 대신 싫은 놈들이 망하는 꼴을 꼭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성공하셨나요?"
"글쎄. 그런 것 같지는 않아. 그놈들도 아직 잘 살고 있는 걸보면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덕분에 살아가며 다른 좋은것들을 많이 볼 수 있었지. 전부 망해버렸다면 아마도 못 봤을것들이지."
아영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할래요. 다 끝나는 건 좋지 않다고요"
이희수가 씩 웃었다.
"그렇지. 우리는 마음이 잘 맞는 것 같아. 사람은 열두 살이든여든 살이든 똑같은 생각을 할 수 있구나."
그날 이희수는 더스트 시대에 자신이 보았던 흥미로운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돔 시티 바깥에서 보았던 괴이한 돔 마을들, 송이버섯을 등에 매달고 다니던 야생동물들, 길에서 마주친 더스트 시대의 괴팍한 여행자들………… - P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