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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네시
수잔나 클라크 지음, 김해온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10월
평점 :

SF 장르는 책으로는 거의 읽지 않는 내가 오랜만에 도전(?)해본 소설이다.
벽돌책 매니아인 내가 유독 SF장르만큼은 벽돌책이 부담이 되는데, 이 책은 350페이지 정도라 일단 가볍게 시작했는데, 초반에는 무슨 내용인지 도저히 감이 잡히질 않더니, 읽다 보니 속도도 붙고, 순식간에 읽기를 마쳤다.
아홉째 현관, 동쪽홀, 조각상, 넷째 사람, 나머지 사람, 배터시, 그리고 피라네시..
무슨 암호 같기도 하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들이다.
제목 '피라네시' 가 무슨 뜻일까 싶었는데, 작품 속에서 불리우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그리고, 역자후기를 보니, 이 제목이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건축가인 '조반니 바티스타 피라네시' 에서 따왔고, 그의 작품 가운데 이 소설 속 공간을 상상할 수 있는 판화작품 '감옥' 이 있다고 해서 찾아봤다.

소설 속 배경이자 주인공이 머물고 있는 돌로 된 공간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방이 있고, 아마도 이 판화 속 감옥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얽히고 설킨 미로같은 공간일듯 싶다.
발 밑에는 언제나 바닷물이 흐르고 있어 책을 읽는 내내, 파도와 홍수, 바닷물 이런 이미지를 상상하게 된다.
자신의 이름도 모르고, 몸 담고 있는 미로같은 집에 대해, 왜 자신이 그곳에 있는지, 이곳이 어디인지 주인공은 전혀 알지를 못한다.
그저, 자신 외에 살아있는 단 한명의 사람 '나머지 사람' 과 일주일에 2번씩 만나, 이 세계의 위대하고 비밀스러운 지식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던 어느 날, 16 이라는 또 다른 사람이 이 집에 머문 흔적을 발견하게 되는데, '나머지 사람'은 16이 자신들의 적이라 주장하고, 그의 말에 따라 피라네시는 16을 피해 다니면서도 왠지 그에게 큰 적대감을 느끼진 못한다.
피라네시, 나머지 사람, 그리고 16 이라는 존재.
이 소설에는 이렇게 딱 3명의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세 명의 존재가 모두 수수께끼 같고 어떤 관계에 놓인 것인지 알쏭달쏭하다.
묘한 분위기와 함께 예측할 수 없는 내용들이 은근 재미있다. 그리고, 초반 잔잔하게 흘러가던 내용은 뒤로 갈수록 가속도가 붙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16의 등장으로 인해, 그동안 가상의 세계인지 현실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모호한 소설 속 공간이 조금은 더 현실화되고, 바깥세상과 연결고리가 생긴 듯한 안도감마저 든다. 소설 속 주인공 피라네시도 나같은 마음이었을까..
데뷔작으로 휴고상을 수상한 작가가 16년만에 세상에 내놓게 된 이 소설은, 그동안 심한 병을 앓고 거의 집안에만 틀어박혀 살아야 했던 그 투병 기간동안, 구상해서 탄생하게 된 인고의 결과물이다.
이 작품 덕분에, 다른 SF 소설을 함 읽어볼까 하는 마음마저 생기게 되었다.

[ 흐름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