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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제2의 건축가’들
김광현 지음 / 뜨인돌 / 2025년 4월
평점 :

☆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그림관련 책 만큼이나 건축관련 책도 읽으면 읽을수록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되는데, 이번 뜨인돌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 책은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건축가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건축주의 입장에서 바라본 건축 이야기이다.
서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의 '사보아 주택' 은 워낙 유명해서 모르는 건축학과 학생은 없는데 정작 그 주택의 건축주에 대해서는 아는 학생이 없었다고 한다. 건축주의 관점에서 배운 적이 없었다는 뜻이다.

20세기의 건축을 열어준 명작이자 르 코르뷔지에가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는 계기가 되었지만, 정작 건축주는 침수, 난방 등 끝없는 하자에 시달려야 했건만, 이 거장은 3년간 이에 대한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건축주 역시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 중에서 이러저러한 기술적인 요구는 많았지만, 구체적인 삶의 방식에 대해서는 언급한 것이 없었다고 한다.

' 미스 반데어로에 ' 라는 세계적인 거장이 건축한 판스워스 저택은, 건축적으로는 미스 건축의 정점을 찍은 완벽한 집이라고 평가받고 있지만, 이것은 평론가적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고, 실제로 거주하는 건축주의 입장에서는 사방이 유리로 된 집에서 편하게 쉴 수도 없고, 전문가들이 극찬하는 멋진 테라스는 조명을 켜야 하는 밤에는 벌레들을 불러모으기 때문에 제대로 이용할 수 조차 없다. 게다가 강의 범람으로 여섯 번이나 침수되어 버린다.
건축주는 처음에 단순히 주택 모델만 보고 내부 구성은 전혀 알지 못한 채 의뢰한 것이었고, 워낙 유명한 건축가이니 당연히 '알아서' 잘 해 줄꺼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크다.


이와는 반대로, 리트펠트가 건축한 슈뢰더 저택은 최초 계획안을 만든 이후 건축주가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설계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건축주 또한 설계에 적극 참여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계속 제공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61년 동안 행복한 삶을 살며 이 집에서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의 가우디가 있기까지는 그를 아낌없이 후원한 건축주 구엘의 힘이 지대하다. 구엘이 없었다면 세계적인 거장 가우디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꺼라고 말할 정도이다.
빈의 로스하우스는 그 당시 화려한 디자인이 주를 이뤘던 건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밋밋해서 조소와 비방이 끊이질 않았지만, 오로지 건축주만이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지원해주었다고 한다.


OECD와 유네스코에서 뽑은, 유치원~대학까지 전 세계의 모든 교육시설 가운데 베스트로 선정된 일본의 '후지 유치원'은 건축주의 확고한 교육관이 일궈낸 대표적인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건물도 풀도 나무도 모두 아이들이 성장하기 위한 도구' 라는 건축주 가토 원장의 이념을 건축가가 완벽히 이해하고 충실이 이행해, 건물의 지붕을 놀이터로 만들고 마당을 향한 벽을 없앰으로써 건물 전체는 연속하는 하나의 커다란 공간이 되었다.
건축에 있어서 건축가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건축주라는 사실을, 저자는 이렇듯 다양한 건축물을 사례로 아주 명확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
건축주라고 하면 단순히 비용을 부담하고 의뢰하는 그 단계에서 대부분 임무가 끝나고 그 후의 과정은 전문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건축주가 얼만큼 자신이 의뢰한 집에 대한 기준과 방향이 설정되어 있는지, 그리고 공사기간 동안 건축가와 얼마만큼의 소통이 있었는지에 따라 그 만족도는 극과 극을 이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르 코르뷔지에 같은 거장은 단순히 미학적인 면에서는 실력이 뛰어날 수 있지만, 거주자의 입장까지 헤아리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건축가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650페이지의 이 벽돌책 안에는 엄청난 양의 사진들이 빼곡히 들어 있어서, 지루할 틈 없이 고퀄리티의 건축물과 또한 수준높지만 이해하기 쉬운 내용들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내려간 책이다.
"건축주는 제 2의 건축가다 " 라는 말이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