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쉬운 인생
케이 기본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한동안 이런 따스하고도 유쾌한 소설을 잊고 살았다. 중독성이 심한 추리.스릴러 소설에 빠진 나에게 이 한권의 책은 마치 친정집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그저 편한 느낌. 어떤 반전도 , 긴장감도 없지만 읽는 내내 미소가 절로 나는 책이다.

 

이 책에는 3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배경은 1940년의 미국.
이 소설의 실제적인 주인공이기도 한 할머니는 20대 초반부터 동네의 산파역할을 비롯해서 무면허 의사노릇을 하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어느 유명의사를 능가할 정도이다.
산파,장의사,민간치료요법 등등 이 찰리 케이트 할머니의 손이 뻗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고 또한 의료기술뿐만 아니라 사람의 내면까지 꿰뚫어볼 줄 아는 할머니의 파워는 인종차별이 만연한 그 시대의 분위기에 맞설 줄 알고, 불의가 존재하는 곳에는 어김없이 할머니의 응징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할머니의 딸이자 화자의 엄마인 소피아는 엄마와는 정반대의 성격의 소유자이다. 남자에게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고 여린 감성을 가지고 있다. 초반에는 겉모습만 꾸밀 줄 아는 다소 허영심많고 가볍고, 철부지 여자의 이미지를 느꼈지만, 그래도 딸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순간에는 엄마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

 

이 두 명 다 남자복은 지지로도 없다. 너무도 잘나고 유명한 할머니의 기세에 눌려 할아버지는 겉으로만 맴돌다 집을 나가버리고, 할머니가 소개해준 남자를 뿌리치고(두고두고 후회할 일임을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지만, 사실 후회라는 것도 엄마의 후회가 아니라 화자인 딸의 입장에서 너무도 멋진 아빠를 둘 기회를 놓쳤다는 원망에 불과하지만..) 한눈에 반해 결혼한 아빠는 바람둥이이고 제대로 된 직업도 없다.

그리고 두 기성여성 사이에서 공평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하지만 사실상 할머니에게 정신적으로 더 많이 의지하고 있는 화자이자 딸이자 손녀인 마거릿은, 할머니를 닮아 똑소리 나고 수재이지만 남자에게 관심도 없고 인기도 없다.

 

이런 개성넘치는 세 여자가 한집에서 살게 되는데, 할머니와 엄마는 매일 티격태격 싸운다.

어떻게 보면 할머니와 손녀가 더 손발이 맞아 엄마가 다소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현명한 할머니의 처신으로 그런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질 않는다.

그 와중에도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3명 다 책을 좋아한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도 아름답고 부럽게 느껴졌던 부분이기도 한데, 같은 책을 읽고 끊임없이 토론을 하기도 하고, 서로 순서를 정해 읽기로 한 책을 기다리질 못해 결국 같이 읽으면서 몇시간이고 독서에만 몰입하는 그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아름답다. 그 시대의 여성들에게서는 쉽게 떠올리기 힘든 모습이다.

 

남자들의 부재가 결코 아쉽지 않은 이 세 명의 여자들. 그 중심에는 현명하고 강한 할머니가 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한다. 손녀딸의 연예에 있어서도 많은 도움을 주는 할머니는 진정 멋진 신여성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이 책에 나오는 남자들이 하나같이 바보스럽고, 무책임한 모습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뒤로 갈수록 멋진 남자들도 등장하게 되는데 그럴수록 조금씩 쓸쓸해져가는 할머니의 모습을 느끼게 되는 것이 마음아프다.

이런 내용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참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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