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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스의 산 2
다카무라 가오루 지음, 정다유 옮김 / 손안의책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책을 읽은 게 아니라 마치... 오래 묵혀 두었던 숙제를 끝마친 기분이네요.
썩 개운하지는 않지만... 뿌듯하기는 합니다. 몇 년 전 다카무라 여사의
<황금을 안고 튀어라>를 읽다가 포기했었거든요. 그때는... 완전히 재미로만,
트릭이나 반전이 돋보이는 그런 책만 읽을 때라 많이 생소했을테죠...
뭐... 이 책 <마크스의 산>도 '황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습니다만...
확실히 읽는 맛은 이 책이 더 낫네요. 다카무라 가오루 여사의 이 지독하게
끈적끈적 거리는 글의 맛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전혀 감이 안 잡히지만
본문의 내용 언급은 거의 없이 느낌 위주로 쓰겠습니다.
[ 과거... 1976년, 일가족 집단 자살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아이가 있다.
같은 시기, 미나미알프스에서는 건설현장의 한 인부가 새벽에 산을 내려온
등산객을 삽으로 무참히 살해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현재... 1992년, 도쿄에서
야쿠자 똘마니가 머리에 구멍이 뚫려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어서
일어나는 또 한 건의 살인사건. 움직이는 도쿄 경시청 수사과 고다 형사... ]
이 책은 본격 경찰 소설이면서 미스터리입니다. 그러나 미스터리가 아니면서
애절한 사랑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딱히 추리요소는 거의 없다시피하고 지독한
묘사, 전개, 묘사, 전개의 연속입니다. 묘사... 보다는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흘러 가는대로 모든걸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군요.
15년에 걸쳐서 이어진 '산과 사람'의 관계... 그것을 파헤친 15일간의 수사 일지...
'산'이라는, 일반적인 인간의 의지와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거대한
웅장함, 공허함... 거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간의 광기, 욕망, 본능의 모순...
이 묘한 재료들을 본격 경찰 소설이란 그릇에 잘 버무린 거 자체가 대단하다면
오버스러운가요. 버무려도 참 '징하게' 버무렸더군요. 버무리던(요리책도 아닌데...)
와중에 경찰 소설에 빠져서는 안되는 양념인 부서 내의 갈등과 다툼, 권력자와의
알력, 수사 시스템의 헛점, 사회 윤리와 종교적인 색채까지 넘치지 않게 잘 섞었더군요.
"나는 오늘부터 마크스다! 마크스! 멋진 이름이지!"
다 읽고 왠지... 아야츠지 유키토의 <암흑관의 살인> 기리노 여사의 <아웃>
미미 여사의 <모방범>이 떠올랐던 건 나 혼자 뿐이겠죠... 전혀 비슷한 게 없는
소설들인데 말이죠. 한 가지, 모두 지독한 점이 닮았다면 닮은 소설들이군요.
박지성 선수하면 상대적으로 김연아 선수를 떠올릴 수도 있듯이말이죠.
나름 경찰 소설을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 소설처럼 '압도적인 리얼함' 은
처음입니다. 본문 중에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현장의 수사는 수사요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발을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여야만 나아갈 수 있다.' 이 표현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마크스의 산>도 다카무라 여사가 손을 조금씩
조금씩 움직여 한 글자 한 글자가 태어나고 그 글자들이 모여 문장이 되고 그
문장들이 모여 완성됐겠구나... 대체 얼마만큼의 준비 과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책에 묘사된 모든 지형지물과 장소는 실제와 단 한 군데도 다르거나
틀린 곳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탕이라고 치면... 자두나 츄파춥스 같은 달콤한 맛은 절대 안 나네요. 생각보다
더 쓰기도 하구요. 너무나 씁쓸해서 단 한 입에 깨물 수도 없어요. 겁나거든요.
잘 녹여지지도 않아 얼른 뱉고 싶구요. 드디어 다 녹여 먹었습니다...
어라!~ 뭐 이런 맛이 다 있나요? 그토록 써서 입맛 버리는 거 아닌가 했었는데...
이 사탕 의외로 뒷맛이 좋네요. 조금씩 그 향이 맴도는 것이... 계피나 목캔디 같은??...
교고쿠도 시리즈와 성격이 비슷하지 않나 싶네요. 쉽게 읽을 내용도 아니고 쏙쏙
들어 오지도 않고 분명히 잘 쓰여진, '권해야만' 하는 책인데도 차마
"재밌으니 무조건 읽으세요" 란 말이 안 나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