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문제 - 시민의 정치적 책임
카를 야스퍼스 지음, 이재승 옮김 / 앨피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야스퍼스는 모두가 죄인이라는 사이비교리와 나는 무죄이고 그들만이 죄인이라는 속물적 윤리를 배격하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야만적인 폭력 앞에서 나는 평범한 시민으로서 무엇을 잘못했고, 지금 개인으로서 그리고 동료와 연대해서 무엇을 해야만 새롭게 출발할수 있는가?"

무책임이 문화가 되고 폭력이 정치의 유산이 된 사회에서라면 이 물음이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이 책은 ‘독일인의 죄와 책임‘이 아니라 ‘시민의 죄와 책임‘을, 나아가 세상에 만연한 부정의와 비참 앞에 ‘인간의 죄와 책임을 논한다.

야스퍼스는 일찍이 죄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문제를 한계상황으로 논의하였다.

8쪽

법적인 죄는 유사 이래로 범법자와 피해자, 그리고 법률가의 집요한 관심사였다. 형이상학적 죄는 인간의 비참한 운명에 공명하는 예술가적 인간에게 영감을 부여한다. 도덕적 죄와 정치적 죄는 윤리학자나 정치철학자들의 사유를 자극한다. 

그러나 이 모든 죄가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대상은, 실제로 책임을 생각하고 추궁하려는 우리 자신이다.

이 네 가지 죄는 인간의 내면과 외적 행위의 다양한층위들에 부합하는 논리적인 구조를 갖기 때문에 심정의 연금술로도 회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시스트의 세계관은 예술적이다. 물론 이들이 고상한 미적 취향("세련된 균형감각")을 가졌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들의 미적 취향은 유치한 키치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파시스트의 세계관이 예술적이라는 얘기는, 그들이 현실과 허구를 마구 넘나든다는 뜻에서다. 

물론 ‘진리‘를 위해서가 아니다. 대중들로 하여금 허구를 현실로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파시스트들의 황당한 논리는 논리적으로 정당할 수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자기들의 세계관을 정당화하는 데 예술적 수단, 즉 허구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가령 조갑제와 이인화의 글을 읽어보라. 만화다. 이들은 자기들의 세계관을형성하는 데 과학을 이용하지 않고 예술적 상상력을 이용한다.

발터 벤야민은 사회주의 예술과 나치 예술의 차이를 예술의 정치화(사회주의 예술)와 ‘정치의 예술화(나치 예술)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적절한 말이다. 

사회주의자들의 세계관은 어디까지나 논리적·과학적 작업의 산물이었다. 이들이 예술을 정치의 무기로 만들어 종종 경향예술로 전락시켰다면, 나치는 그 반대다. 

나치의 세계관은 과학의 산물이 아니라, 처음부터 신화·전설·미신 등 예술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들은 외려 과학을, 자기들의 예술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를 입증하는 수단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들에게는 정치 자체가 커다란 예술적 사건이다. 말하자면 만화와 무협지를 읽고 구세계관을 가지고 권력을 잡아 이를 현실로 옮기려는 것이다.

물론 파시스트 대중들 역시 예술적이다. 이들 역시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에 과학이나 지식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들은 세계관의 공백을 파시스트가 쓴 역사소설이나 전쟁소설 따위로 메운다. 당연한 일이다.

이론은 복잡하나 소설은 간단하고, 이론은 딱딱하나 이야기는 물렁물렁하고, 이론은 냉정하나 소설은 뜨거운 감동을 주지 않는가.

조갑제의 말이다.
서구의 빛나는 이성과 합리보다는 그늘진 감성과 정감 / 과학과 수학보다는 문학과 예술이 더 어울리는 분위기

이렇게 국민들의 이성과 합리성을 무장해제시켜 놓고, 이들은 자기들이 멋대로 만들어낸 그 만화 같은 허구를 가지고 "민심을 사로잡으려 한다.

90-9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철학 입문
보리스 그로이스 지음, 서광열 옮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리에 관한 한, 현대인들은 동시에 두 개의 근본이 중으로 치장하고 있다. 바로 진리가 없다는 믿음과 진리가 너무 많다는 믿음이다. 

이 두 개의 확신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둘은 동일한 결론을 넣는다. 진리 추구는 할 일이 못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진리 추구의 상황으로 묘사된 이러한 장면은 동시에 철학의 본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장면의 축소판을 그리스의 아고라에서 관찰할 수 있다. 

당시에 최초의 전형적인 진리 소비지로서 소크라테스는 진리 공급에 관한 시장조사를 시작하였다. 진리를 발견했노라고 주장한 사람들은 바로 소피스트였다. 그들은 진리를 판매용으로 제공하였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스스로를 소피스트가 아니라 철학자라고규정하였다. 즉 진리(지혜(weisheit와 지식wissen, 소피아sophia)를 사랑하지만 소유하려 하지 않는 사람으로 규정하였다.

다르게 말하자면 철학자는 판매할 진리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다. 하지만 진리의 겉모습만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진리에 관한 것이 있다면, 철학자는 언제든지 진리를 획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소피스트에서 철학자로의 신분 변화는 진리의 생산으로부터 진리의 소비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철학자는 결코 진리의 제작자가 아니다. 그는 또한 보물을 찾는 자나 천연자원을 찾는 자라는 의미라면 진리의 추구자도 아니다. 철학자는 단지 길 위의 사람이다. 

그는 진리의 거대한 글로벌 슈퍼마켓에서 방황하는 사람이다. 그는 거기에서 올바른 길을 찾거나 최소한 비상구의 표지판을 찾으려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종종 철학이 자신의 역사적 흐름을 발전시키지 못한다고 개탄힌다. 이 말은 철학이 어떤 결실도 거두지 못하고 어떤 역사적 진보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시 쓰는 맑스주의 사상사 - 맑스에서 지젝까지, 오늘의 관점으로 다시 읽는 맑스주의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 오월의봄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공포를 몰아내고 인간을 주인으로 세운다"는 계몽의 약속은 오히려 신화에 내재된 운명적 필연성과 지배의 원리에 갇히게 되는 결과로 나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화로 돌아간 계몽의 이성은 이성의 도구화로 귀결된다.

1) 폐쇄적 필연성에 갇힌 이성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에 따르면 계몽을 약속했던 이성이 신화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당시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던 학문적 경향과 연관되어 있다. 실증주의, 과학주의, 실용주의 사상이 지배하는 미국에서 사유 thinking는 사실을 입증하고 현실을 긍정하는 것으로만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실증주의자와 과학주의자들이 요구하는 연구 방법은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증명이 가능한 절차였으며 이는 동시에 수량화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모든 것은 하나의 양적 기준, "등가원칙, 혹은 형식논리로 환원되며,
여기서 질적 차이, 목적, 인식자의 관심 등은 무시되거나 배제된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에 따르면 이러한 사유방식은 신회적 필연성으로 회귀하는 것과 같다. 신화에서 인간이 신탁에 의해 확정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듯이 근대적 계몽에서 인간은 이제 논리적 필연성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화와 마찬가지로 근대적 계몽은 형식논리에 따르는 폐쇄적이고 운명적인 필연성의 계기이다. 여기서 사실과 형식논리를 벗어날 수 있는존재하지 않는다.

272쪽.

2) 지배 원리로서 이성

이제 학문의 대상이 된 자연은 계싼에 의해 파악되고 지배될 수 있는 소재나 대상에 지나지 않게 된다. 파악될 수 없는 자연은 인간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자연에 의해 인간 자신이 지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은 남김없이 파악되고 지배되어야 한다.

이것은 이제 지상명령이 된다. 근대 계몽주의는 주체와 객체, 문화와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전자에 의해서 후자가 지배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계몽의 본질은 양자택일인데, 이 양자택일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지배가 불가피하다는 것과 같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을 자연 밑에 굴복시킬 것인지 아니면 자연을 자신의 지배하에 둘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지배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계몽은 자연에 의한 인간 지배를 인간에 의한 자연 지배로 역전시킴으로써 인간을 자연의 노예에서 주인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인간에 의한 인간 지배로 귀결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계몽의 기획에 따라 인간은 이제 스스로를, 나아가 타인을 자연물처럼 다루고 통지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간은 자유로운 정신이 아니라 사물처럼 사실성과 유용성의 범주로 환원되어 이해된다. 자연의 지배자로서 인간은 자기 자신의 지배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철저하게 사물처럼 지배하는 사람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

(...)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것을 그만두고 사물로 추락하기 이전의 근원적 자연을 기억해야 한다. "근원으로서의 자연이 기억될 때 계몽은 완성되고 스스로를 지양한다."

273-4쪽.

3) 자연과 인간의 사물화와 도구적 이성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에 따르면 폐쇄적, 지배적 이성에 갇힌 인간은 자연을 사물과 동일화시킨 후 이를 인과율의 법칙에 따라 파악하고 이용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연뿐 아니관 인간 역시 사물화시킨다. 

여기서 사실성과 유용성, 계산 가능성과 교환 가능성이 없는 자연은 의심스러운 것으로 감금되고 배제된다. 계몽은 살아 있는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까지도 죽은 자연 사물 혹은 객체로 취급하는 과학주의, 시장지상주의에 빠져든다. 

과학 자체가 신화가 된다. 여기서 모든 질적인 차이는 교환가치라는 양적차이로 전락하게 된다. 따라서 모든 형태의 이질성은 동일성의 이름으로 소환되고 억압된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자연 지배를 본질로 하는 주체는 모든 자연에서 생명을 앗아간다고 본다. 남은 것은 객관적, 수량화된 사실뿐이다. 이와 함께 계몽을 추구했던 이성 역시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하게 된다. 여기서 이성은 사실적 무비판적 이성으로 나타나게 되며 양화에 이바지하는 노예로 전락하게 되기 때문이다. 

비판과 성찰의 능력을 잃고 도구적 이성의 모습을 띠게 된 이성은 사회적 경제적 생산에 이바지하는 것을 자신이 수행해야 할 최대의 역할로 여기게 된다. 이성은 더욱더 많은 부와 더욱 효과적인 사회억제 체제를 산출할 수 있도록 사회구조를 생산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

(...) 이제 더 이상 이성은 살아 있는 정신이 아니며, 모든 것은 도구화된다.

275-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모사피엔스의 미래 - 포스트휴먼과 트랜스휴머니즘 포스트휴먼 총서 1
신상규 지음 / 아카넷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e-mail from: thetranshumanistsocietyhotmail.com
to: natureevolution.com
re: Homo sapiens

유감스럽게도 당신의 답신은 실망스럽기가 그지 없습니다.

당신의 사업은 시대에 뒤처져 있고, 기계설비들은 낡아 빠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계속 결함 있는 물건들을 대량으로 찍어내면서 그저 고객이 그런 물건들을 불평 없이 가져다 써줄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생산제품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도 않고말입니다.

나는 당신이 21세기의 일원이 될 것을 제안합니다. 현대 세계에 사는우리는 고객의 이익을 위해서 끊임없이 제품과 서비스를 개선하는 것이 옳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호모사피엔스의 설계상 과실들을 이제 더는 용인할 마음이 없다는 점을 당신에게 말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질병, 노후화, 그리고기능상의 제약이라는 결함들은 진화하려는 절실한 의지만 있다면 모두 고칠 수가 있습니다. 

만일 생산자인 당신이 제품을 재설계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면, 소비자인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직접 떠맡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우리 인간 종은 생존 가능성과 행복의 지속적인 증대라는 우리 자신의 이해관계에 직결된 호모사피엔스의 설계를 개선하기 위해서 우리가 진화 사업을 양도받고자 하는 의향을 당신에게 공식적으로전달하는 바입니다.

트랜스휴머니스트 협회

7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