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스트의 세계관은 예술적이다. 물론 이들이 고상한 미적 취향("세련된 균형감각")을 가졌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들의 미적 취향은 유치한 키치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파시스트의 세계관이 예술적이라는 얘기는, 그들이 현실과 허구를 마구 넘나든다는 뜻에서다.
물론 ‘진리‘를 위해서가 아니다. 대중들로 하여금 허구를 현실로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파시스트들의 황당한 논리는 논리적으로 정당할 수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자기들의 세계관을 정당화하는 데 예술적 수단, 즉 허구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가령 조갑제와 이인화의 글을 읽어보라. 만화다. 이들은 자기들의 세계관을형성하는 데 과학을 이용하지 않고 예술적 상상력을 이용한다.
발터 벤야민은 사회주의 예술과 나치 예술의 차이를 예술의 정치화(사회주의 예술)와 ‘정치의 예술화(나치 예술)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적절한 말이다.
사회주의자들의 세계관은 어디까지나 논리적·과학적 작업의 산물이었다. 이들이 예술을 정치의 무기로 만들어 종종 경향예술로 전락시켰다면, 나치는 그 반대다.
나치의 세계관은 과학의 산물이 아니라, 처음부터 신화·전설·미신 등 예술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들은 외려 과학을, 자기들의 예술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를 입증하는 수단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들에게는 정치 자체가 커다란 예술적 사건이다. 말하자면 만화와 무협지를 읽고 구세계관을 가지고 권력을 잡아 이를 현실로 옮기려는 것이다.
물론 파시스트 대중들 역시 예술적이다. 이들 역시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에 과학이나 지식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들은 세계관의 공백을 파시스트가 쓴 역사소설이나 전쟁소설 따위로 메운다. 당연한 일이다.
이론은 복잡하나 소설은 간단하고, 이론은 딱딱하나 이야기는 물렁물렁하고, 이론은 냉정하나 소설은 뜨거운 감동을 주지 않는가.
조갑제의 말이다.
서구의 빛나는 이성과 합리보다는 그늘진 감성과 정감 / 과학과 수학보다는 문학과 예술이 더 어울리는 분위기
이렇게 국민들의 이성과 합리성을 무장해제시켜 놓고, 이들은 자기들이 멋대로 만들어낸 그 만화 같은 허구를 가지고 "민심을 사로잡으려 한다.
90-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