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에 관한 한, 현대인들은 동시에 두 개의 근본이 중으로 치장하고 있다. 바로 진리가 없다는 믿음과 진리가 너무 많다는 믿음이다.
이 두 개의 확신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둘은 동일한 결론을 넣는다. 진리 추구는 할 일이 못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진리 추구의 상황으로 묘사된 이러한 장면은 동시에 철학의 본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장면의 축소판을 그리스의 아고라에서 관찰할 수 있다.
당시에 최초의 전형적인 진리 소비지로서 소크라테스는 진리 공급에 관한 시장조사를 시작하였다. 진리를 발견했노라고 주장한 사람들은 바로 소피스트였다. 그들은 진리를 판매용으로 제공하였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스스로를 소피스트가 아니라 철학자라고규정하였다. 즉 진리(지혜(weisheit와 지식wissen, 소피아sophia)를 사랑하지만 소유하려 하지 않는 사람으로 규정하였다.
다르게 말하자면 철학자는 판매할 진리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다. 하지만 진리의 겉모습만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진리에 관한 것이 있다면, 철학자는 언제든지 진리를 획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소피스트에서 철학자로의 신분 변화는 진리의 생산으로부터 진리의 소비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철학자는 결코 진리의 제작자가 아니다. 그는 또한 보물을 찾는 자나 천연자원을 찾는 자라는 의미라면 진리의 추구자도 아니다. 철학자는 단지 길 위의 사람이다.
그는 진리의 거대한 글로벌 슈퍼마켓에서 방황하는 사람이다. 그는 거기에서 올바른 길을 찾거나 최소한 비상구의 표지판을 찾으려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종종 철학이 자신의 역사적 흐름을 발전시키지 못한다고 개탄힌다. 이 말은 철학이 어떤 결실도 거두지 못하고 어떤 역사적 진보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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