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디서든 고독할 수 있지만, 도시에서 수백만의 인간들에게 둘러싸여 살면서 느끼는 고독에는 특별한 향취가 있다.
사회과학자 로버트 와이스는 고독을 "회복될 여지가 없는 만성 질병"이다고 말했다.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고독이란 사람들이 그 속에 머무는 장소임을. 도시에 거주할 때 어떤 사람이든 처음에는 길을 잃게 된다.
워홀의 미술은 폐쇄성과 거리, 친밀함과 소외 사이에 대한 거대한 철학적 탐구를 진행하면서 사람들 사이의 공간에서 돌아다닌다.
10-22쪽
고독하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 그건 배고픔 같은 기분이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잔칫상에 앉아 있는데 자기만 굶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 그것은 감정적인 측면에서 상처를 입히며, 신체라는 폐쇄된 공간 내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발생하는 물리적인 결과마저 낳는다. 고독은 얼츰처럼 차갑고 유리처럼 맑으며 사람을 집어삼킨다.
나는 그것이 내가 30대 중반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혼자 있는 여성이 더는 사회적으로 허가받지 못하는 나이이며, 낯섦, 일탈, 실패의 냄새를 끊임없이 풍기는 연령대다.
30쪽
왜 우리는 호퍼 작품의 원천이 고독이라는 주장을 계쏙 고집하는가? 가장 쉬운 대답은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이 한 명뿐이거나, 두세 명이 있어도 서로 소통하지 않고 불편해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요인도 있다. 그가 도시의 거리를 표현하는 방식에는 어떤 특징이 있다.
호퍼는 자신의 그림에서 "타인들과 신체적으로 가까이 있지만 동작, 구조, 창문, 벽, 빛 또는 어둠 등 다양한 요인 때문에 그들과 격리되는 데서 유래하는, 뉴욕에는 흔한 특정한 공간과 공간적 체험"을 정기적으로 재생한다. 그것은 격리된 느낌, 벽이나 울타리로 에워싸인 느낌이 거의 견딜 수 없도록 노출된 기분과 뒤섞이는 방식을 말한다.
32-33쪽.
냉정한 중재자인 사전에 따르면 **고독하다 lonely라는 단어는 고립됨으로써 야기되는 부정적인 감정, 홀로lone · 혼자 alone · 단독solo이라는 것과 구별되는 감정적 요소의 존재로 정의된다.
무리나 사회에 들지 못했다는 이유로 거부당하고, 혼자라는 생각 때문에 슬프고, 홀로 있음의 감정을 맛본다. 그렇지만 고독이 반드시 외적이거나 객관적인 무리의 결핍과 연결되지는 않는다. 무리와 어울리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두 고독한것은 절대 아니며, 또 한편으로는 친지들과 어울리거나 그들 속에서 사는 사람들도 깊은 고독을 맛볼 수 있다.
거의 2천 년 전에 **에픽테토스Epictetus가 썼듯이, "인간이 홀로 있어서, 그 이유 때문에 고독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많은 사람들 속에 있어도 그 때문에 혼자가 아니지는 않다."
그런 감각이 생기는 것은 **부재가 감지되거나 친밀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그 감정의 어조는 불편함에서 장기적이고 견딜 수없는 고통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1953년에 정신과 의사이자정신분석학자인 해리 스택 설리번 Harry Stack Sulivan이 내놓은 고독의 정의는 지금도 유효하게 통용된다.
그것은 "***인간적 친밀함의 필요를 부적절하게 배척하는 것과 연결되는, 지독하게 불쾌하고 몰아붙이는 체험"이다.
42쪽.
"본질적인 형태의 고독은 본성상 그것을 겪는 사람이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소통 불가능한 여느 감정 체험들과 달리 그것은 공감을 통해 공유될 수도 없다.
제1 인물의 고독이 밖으로 표출될 때 주위에 불안을 조성하는 성향 때문에 제2 인물의 공감능력이 저하될 수도 있다."
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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