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과학은 사실(fact)을 다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사실을 다루는 과학은 가치(value)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가치는 인문학, 곧 윤리학이나 철학의 몫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 P7
과학과 가치가 관련이 없다는 생각의 역사적 뿌리는 깊다.
18세기 영국의 철학자 *흄(David Hume)은 *사실에 대한 어떤 기술도 우리가 *왜 *도덕적인 행위를 해야 하는가를 말해주지 못한다고 했다.
20세기 철학자 *무어(G.E. Moore)는 *자연에서 *도덕적진리를 찾으려는 시도 자체를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라고 명명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최근까지 활동한 과학자이자 철학자 *포더(Jerry Foder)는 "과학은 사실에 대한 것이지 규범에 대한 것은 아니다. *과학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이야기해주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말해주지 않는다. *인간 조건에 대한 *과학은 없다"고 하면서 전통적 견해에 동조했다(Gorski 2013). - P7
과학이 가치와 무관하다는 생각은 *가치중립적인 과학(value-free science 또는 value-neutral science)이라는 과학에 대한 *특정한 관념을 *정당화한다.
이런 관념이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면 과학이 *사회와 *무관하고, 따라서 과학은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입장으로까지 이어진다.
과학의 사회적 영향은 *기술자들이나 *정치인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한편, *인문학자들은 자신들이 과학에 가치를 제공하면서 과학이 어떤 방향으로가야하는지 인도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학은 사실을 다루고 인문학은 가치를 제공한다는 식으로 과학과 인문학을 나눈뒤에, 이 둘의 상보적 역할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우리가 처한 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또한 과학 자체가 이미 다양한 *내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과학자들이 연구를 선정하고 진행할때 주관적인 가치가 많이 개입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다양한 연구들도 있다(Putnam 1985).
더 나아가 과학 연구 자체가 새로운 가치를 드러내는 경우도 많다. 과학의 연구 결과가 수용되는 과정에서사회적 가치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과학과 가치가 만나는 다면적이고 중층적인 접점에는 어떤 지점들이 있는가. 그리고 이런 접점들이 만들어내는 가능성과 문제점은 무엇인가? 이를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해 살펴볼수 있다. - P8
1과학의 내재적인 인식적 가치과학은 오랜 역사를 거쳐 온 인간의 지적이고 실천적 활동이며, 그과정에서 최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지식을 만들어 내기 위해 여러 가지 인식적 가치를 발전시켜왔다.
과학의 인식적 가치에는 *신뢰성(reliability), *검증가능성(testability), *정확성(accuracy), *정밀성(precision), *일반성(generality), *개념의 단순성(simplicity of concepts), *설명력(heuristic power), *독창성(novelty), *지식의 증진(advancementof knowledge), *통제된 관찰(controlled observation), *개입적인 실험(interventive experiments), *예측의 검증(confirmation of predictions), *재연가능성(repeatability), *통계적 분석(statistical analysis), 정직성(honesty) 등이 포함된다(Rooney 1992).
이런 가치들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의 *4가지 규범(보편주의, 공유주의, 이해중립성, 조직화된 회의주의)을 포함한다(Merton 1973).
과학기술학자 해리 콜린스(Harry Collins)는 최근 과학의 ‘*형성적 열망(formative aspiration)‘이란 개념을 제안하며, 여기에 과학의 인식적 가치들과 머튼의 규범을 포함시켰다. 그는 과학의 ‘형성적 열망‘이 지금 위기를 맞고 있는 *민주주의를 다시 살릴 수 있는 중요한 *덕목(virtue)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Collins and Evans 2017).
2. 과학이 낳는 새로운 인간적 사회적 가치
진화론, 특히 *진화 심리학은 인간의 *선과 악, *욕망만이 아니라 *이타성도 진화의 자연적 결과라고 주장하면서,
*사회적 가치가 이 *자연적 과정에 맞게 *설계될 때 사회적 *갈등이 8최소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P11
3. 과학기술의 발전과 수용에 필요한 인간적 / 사회적 가치
과학기술의 발전은 *사회 *속에서 일어나고, 사회가 품고 있는 다양한 가치의 영향을 받는다.
사회구성주의 과학기술학자들은 한 사회가 가진 특정한 가치가 과하기 이론이나 개념을 만들고, 이 중에서 특정한 이론이나 개념이 받아들여지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을 보여 왔다.
21세기 과학기술문명 사회에서 첨단 과학기술_인공지능, 로봇, 생명공학, 나노기술, 뇌신경과학 등_의 발전은 인간의 *삶과 생활 양식, 인간의 정체성, 사회적 관계 및 구조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첨단 과학기술이 인간적 가치나 사회적 가치에 미치는 전면적인 영향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와 사회적 공론화가 시급하다. - P12
과거 과학기술 분야에서 연구개발은 당장 눈에 띄는 부작용이 두드러지지 않는 한 별문제 없이 산업화와 *상업화로 이어져 자연스럽게 경제사회 발전의 핵심 축으로 인정됐다.
한마디로 사회적 사용 과정에서 그것이 야기할 인간적 가치나 사회적 가치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검토 없이 주로, 아니 거의 전적으로 *경제적 가치의 *논리에 따라 수용됐다. - P13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과학기술의 사회적 수용과정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
우선 로봇이나 인공지능, 뇌과학기술 등의 발전은 인간의 *정체성과 인간적 가치, 그리고 *휴머니즘 그 자체에 *중대한 도전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논의에 어떤 변화가 있고 또 인간의 정체성은 실제로 어떻게 달라질지, 휴머니즘에는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 미래의 과학기술문명 사회에서도 지켜져야 할 인간적 가치 혹은 덕목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인문학적 인간학적 연구와 소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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