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투, 고골
새 외투에 대한 **욕망을 갖게 되면서 아카키는 **욕망의 주체로 변신하게 된 것입니다.
가령, *아카키는 *외투 값을 마련하기 위해 그가 **향유하던 모든 즐거움을 **유보하고 포기합니다. 그렇게 하여 그는 **충만한 만족의 세계에서 **영속적인 **결핍의 세계로 옮겨가게 됩니다.
욕망은 언제나 채울 수 없는 결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니까요.
외투는 저에게 욕망이 몰고가는 파국을 보여주는 섬뜩한 이야기로 읽힙니다.
고골은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우리가 욕망 없이 살 수 없다면, 우리의 파멸 또한 필연적이라구요. 무섭지요? - P208
/ 김훈, 자전거 여행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에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세계의 *불가해한 운명처럼 나를 *배반했다. 그러므로 나는 가장 빈곤한 한 줌의 *언어로 그 *운명에 맞선다. 나는 *백전백패할 것이다. - P222
내가 그의 운명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도 무수한 패배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문장가 김훈이 그 비전 없는 싸움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은 그가 허무주의자이기 때문이리라. - P222
/ 이것이 현대적 미술, 임근준
‘오늘의 미술은 과거의 미술과 어떻게 다른가?
‘오늘의 미술‘이 지닌 여러 문제의 기원을 저자는 *전후 미술의 새로운 상황을 지탱한 *두 가지축, 곧 *교육 제도와 *전시 제도에서 찾는다.
일단 *미술이 *대학 제도와 *결합됐다. 거기에 현대 미술 혹은 전후 미술만을 수집하는 *미술관과 *갤러리가 늘어나면서 *전시 기회가 *확대됐고 많은 작품이 *유통됐다.
그리고비엔날레/트리엔날레 등의 전시가 유행처럼 늘어나면서 *작가들에 대한 *수요도 그만큼 커졌다. 그 결과 현대 미술에는 현대 문학이나 현대 음악, 혹은 현대 무용 등의 분야와 비교하여 *‘황당할 정도로 *주요 작가가 많다. 이 책에서도 60여 명을 다루고 있지만, 저자가 처음에 작성한 목록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 P294
하지만 이러한 *양적 팽창은 1980~90년대를 거치면서 부작용을 낳기 시작한다. 미술 학교 수가 너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예비 작가의 수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으며, 갤러리 수도 지나치게 많아지고 국제 비엔날레는 난립하고 있는 중이다.
**2000년대 들어서 미술 시장이 과열 양상으로 치닫자 많은 작가들이 *유행 논리‘와 *‘시장 논리‘에 휩쓸리게 되고 점차 *예술적 **혁신성을 *잃어가게 됐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 P294
두 미술가의 반응이 이러한 상황을 잘 짚어준다. 먼저 전직 록 가수이기도 한 마이크 켈리의 말.
이제, 학생이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개인전을 열지 못하면, 자신을 낙오자라고 여긴다. 그들은 작가 생활로 먹고살 수 있기를 전적으로 기대한다. 나는 쓸모없는 놈이 되고 싶어서 미술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내가 젊었을 때, 미술가 노릇이란 사회에서 정말 자신을 배척시키고 싶을 때나 하는 일이었다. - P295
그리고 현대 회화의 태두로 불리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탄식.
미술 시장은 개들에게 넘어갔다. 러시아, 중국 등의 신흥 부자를 상대해야 하는데, 그들에겐 문화가 없다. 좀 느끼려면, 최소한 뭘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 P295
/ 일상적인 것의 변용, 아서 단토
예술의 종말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그거 뭐 유행 아닌가? (근대) 문학, 철학, 역사 가릴 것 없이 떼로 종말을 고했다고 하는데, 예술이 끝났다는 게 굳이 새로운 소식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 P296
단토가 ‘예술의 종말’을 충격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은 1964년 한 전시회에서다.
‘브릴로 상자’가 층층이 쌓여 있는 걸 보고 미적 혐오감을 넘어서는 철학적 흥분을 느낀다.
이 두 상자는 보는 것만으로는 식별되지 않는다. - P297
*무엇이 예술작품인가는 ‘보면 안다’고 흔히 말하지만 이 경우엔 **‘봐도 모른다’.
이것이 결정적이다! 미술이 **시각(눈)의 문제에서 사고(머리)의 문제로 전환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미술은 더 이상 외관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가 된다. - P297
그렇다면 철학적으로 따져보자. 똑같게 보이는 두 상자가 어떻게 해서 하나는 그냥 상자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작품이 되는가?
**어떤 사물이 예술작품인가 아닌가는 **대체 **누가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는가?
이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여 단토가 내놓은 대답이 **‘예술의 종말론‘이다.
그리고이 주장은 1965년에 발표한 예술계」라는 논문과 1981년에 출간되고최근 번역돼 나온 『일상적인 것의 변용을 통해서 제시된다.
그가 말하는 **예술의 종말이란, 워홀의 브릴로 상자가 말해주듯이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기에 이제는 예술에 대한 정의가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제기된다.
**예술에 대한 정의가 더 이상 가능하지도 또 유효하지도 않다면 거기서 *예술의 역사가 종말에 이르는 것은 당연하다. - P298
『예술의 종말 이후』 책에서 단토는 *헤겔주의자로서 예술의 종말이 갖는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예술의 종말은 예술가들의 해방이다. 그들은 이제 *어떤 것이 가능한지 않은지를 *확증하기 위해 *실험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미리 말해줄 수 있다.
예술의 종말에 대한 나의 생각은 오히려 역사의 종말에 대한 헤겔의 생각과 비슷하다. 그의 견해에따르면, 역사는 *자유에서 *종말을 고한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예술가들의 상황이다."
*헤겔에 따르면 역사는 하나의 중대한 목적을 갖는다.
곧 자유의 확장이다. *모든 인간이 *자유로운 시대에 도달하게 되면 역사는 *종언을 고한다.
그것은 달리 *역사의 *완성이기도 하다. *예술 또한 마찬가지여서 모든 *일상적인 것들이 *예술작품으로 변용될 수 있고 *누구나 *예술 창작자가될 수 있다면 *예술은 *종말에 이른다. 예술의 민주주의가 곧 예술의 완성이다. 〈한겨레21), 2008. 5) -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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