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시아의 여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5
윌리엄 트레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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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트레버의 『펠리시아의 여정(1994/문학동네/박찬원 옮김)』은 서늘하고 불편한 시간을 끌고 간 후 기대하지 않았던 안도를 선사하는 묘한 작품이다.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p.324) 윌리엄 트레버의 아일랜드 소녀 펠리시아 이야기는 가본 적 없는 도시와 거리로 줄곧 마음 졸이며 어깨를 움츠린 채 따라나서게 만든다. 인물도 사건도 극히 사실적이라 그녀의 여정은 불안한 연재 기사처럼 읽힌다. 역자는 “이 책은 선함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런데 기이하게도 선은 우리가 악이라 부르는 것을 끔찍할 정도로 가까이에서 접한 후에야 눈에 보인다.”(p.326)는 작가의 인터뷰를 인용한다. 우리는 선을 당연한 것으로 혹은 너무 무심히 대했던 것일까, 충격요법이 필요한 정도로!

우연히 마주친 시선 때문이었다. 열일곱 살, 오빠의 결혼식에서 화사하게 다가온 만남의 순간은 펠리시아에게 사랑의 시작이었다. 동시에 애를 태우는 두려움과 고민, 당연했던 일상과 단절하고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로 편입해 들어가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펠리시아에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행복감”(p.43)의 원천이었던 그, 사라져버린 그에게 태중의 아이를 알려야 한다는 절박함까지 더해 “조니 라이서트 찾기”는 긴박하고 유일한 삶의 목표가 된다. 지체 없이 길을 떠나는 펠리시아를 염려하며 독자 또한 서둘러 뒤따른다.

조니에게 가까워졌을까, 낯선 곳에서 손에 쥔 단서라고는 ‘잔디 깍이 공장’ 뿐이다. 펠리시아는 우연히 힐디치 씨의 눈에 띈다. 구내식당 매니저인 힐디치 씨는 “공장은 다른 세상이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그의 구내식당도 마찬가지다.”(p.24)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자신의 주위를 여러 겹의 각기 다른 세상으로 에워싸고 있는 사람이다. “그것을 기억의 뒤안길이라 부르는 것이 좋다.”(p.69) 펠리시아의 출현은 ‘기억의 뒤안길’에 있는 그녀들을 일깨운다. 작가는 그의 지나온 기억과 목전의 현실과 의도하는 미래를 씨실과 날실을 교차시켜 튼튼한 이중 매듭으로 고정하는 카펫 짜기처럼 엮기 시작한다. 언뜻언뜻 궁금했던 무늬가 비밀한 윤곽을 드러낼 때까지.

버림받은 어머니와 그 곁에 남은 아들이라는 관계를 조니 라이서트에게서도 볼 수 있지만 힐디치 씨와 그의 어머니에게서 훨씬 두드러진다. 힐디치 씨는 아무도 보지 않아 ‘더는 미소가 필요치 않을 때 그는 우울한 사람이’(p.19)되며 이것이 그의 본 모습이다. 사람은 어떻게 괴물이 되는가를 작가는 시간 변조와 사건의 삽입을 통해 치밀하게 그려나간다. ‘혼자 살면서도 그 일은 결코-단 한 순간도-다른 기억들이 그런 것처럼 망각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거기 그대로 있었다.’(p.292) 유년의 상처는 묵히고 방치된 채 그가 꿈꾸던 것들을 남김없이 걷어차버렸다. 식기를, 선반을 아무리 벗기고 닦아내도 기억은 깨끗해지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은 무대가 되고 결핍과 강탈, 거짓과 ‘배신’(p.299)을 새롭게 보상받으려는 자기만의 연극은 마취제처럼 의식을 중독시킨다. 그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그 작은 손, 자라지 못한 손으로 복수하기 시작하고 섬뜩함은 통제할 길 없이 폭주하게 된다.

“그녀의 가망 없는 사람 찾기 역시 이 변하는 세월의 일부라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p.141) 조니의 흔적을 찾는 일 외에는 무엇도 아랑곳없는 펠리시아. 사람들은 다가오고 강요하고 떠난다. 천국을 권하는 사람들은 지옥처럼 끈덕지고 고단한 그녀는 위험을 눈치채지 못한다. 나가달라는 요청 끝에 다다른 거리. 펠리시아는 이제 거리를 통과한다. 거리의 사람들은 책 속의 책처럼 그들만의 단단한 세계를 보여준다. “꿈속에서 그들은 때로 상처를 치유하고, 사랑을 받고, 목소리와 헛것이 전부 사라지고, 그래서 내일이면 망각에 저항하는 힘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환상을 본다.”(p.157) 거부당하고 몰락한 채 이미 비통함을 넘어선 그들은 낮에는 불평 없이 순간만을 살고 밤에는 꿈을 꾼다.

이제 지키고 보이고자 했던 아이도 없다. 소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는다. 그녀가 뿌렸던 향수 이름처럼 그 사랑은 ‘안개 속 사랑’으로 흐려져가고 안개가 걷혔을 때도 향기라곤 없다. 다행인 것은 그녀가 살아남았다는 것. 그렇다고 말로 준 상처를 용서받기 원하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녀가 귀환해야 이야기도 정리되고 독자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쉼을 얻을 텐데 말이다. “그녀는 이제 예전의 자신이 아님을 안다. (중략)한때 그녀의 것이던 순수함은 시간이 흐르며 이제 어리석음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남아 있고, 상실을 경험한 예전의 그녀는 지금의 자신으로 이끈 사람이기에 소중하다. 또다른 아침, 눅눅한 밤을 보내고 맞는 화창한 아침에 길을 걸으며, 그녀는 자신을 감싸는 평온함을 당황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새로이 깃든 그 평온함을 기뻐한다.”(p.312) 집을 떠날 때의 그녀는 아니다. 뒤안길을 자신의 현재로 삼았던 힐디치 씨와 달리 펠리시아는 과거의 부당했던 상처에 매이기를 거부하고 '더 이상한 일들도 일어나니까'(p.317) 라며 떠나보낸다.

“그 치과의사는 자신의 존재를 부랑자들의 썩은 이에, 부랑자들의 악취와 불결함에 바쳤다. 그녀의 선량함은 한 남자가 내뱉은 모든 말과 그가 한 모든 행동을 왜곡시킨 사악함보다도 더 큰 미스터리다.”(p.321) 길을 나서고 고난을 헤쳐 성장하게 된 펠리시아. 이토록 참혹한 대가를 치렀던 성장의 주인공들을 떠올리기가 어렵다. 펠리시아를 비롯한 책 속의 인물들은 자기만의 여정과 궤적을 그려내는데 만남과 선택의 연속으로 미세한 점은 선이되고 그것은 결국 얼굴이,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이 된다. 선택 불가능한 시작이었을지언정 그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의 여정은 만족스러운가.

그녀는 과거로부터 시선을 거두어들인다. 의미도 규칙도 찾지 않고 ‘확실히 아는 것’만을 선택하는 삶이다. 여전히 여정 중인 펠리시아는 더 이상 무엇도 쫓지 않는다. 여정 자체가 목적이자 완성이며 필요한 것은 한 조각의 태양빛이 전부이기에. 우리 모두는 펠리시아 아닐까, 무언가를 애타게 찾아 인생을, 1년을, 하루를 떠난다. 찾고 있는 것이 혹시 파랑새나 무지개는 아니기를, 사로잡히고 쫓기 위해 사소한 따사로움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과거 음침한 골짜기를 걸었을지언정 더 이상 오늘의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펠리시아는 현재만을 그녀의 막대기이자 지팡이로 삼는다. 떠나보낸 뒤안길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 새로운 여정의 시작임은 물론이다.






(인용 및 공백 제외, 약 180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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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고전의 세계 리커버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 책세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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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책세상/서병훈 옮김)』은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이 1859년 출간한 저서로 역자는 “<자유론>을 빼고 자유와 민주주의와 현대 정치 사회의 본질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p.239)고 해제에서 말한다. “밀은 일생 아마추어 철학자였으며 전문직으로서 ‘학자’였던 적은 한 번도 없”(p.135/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야마구치 슈/다산초당)었음에도 이 기념비적 저서를 중요한 고전으로 후세에 남긴다. 야마구치 슈는 밀의 파트에 “끝까지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는가?-악마의 대변인-”라는 제목을 붙힌다. “자유론” 2장 “생각과 토론의 자유”편을 중점적으로 내세움을 알수 있으며 “악마의 대변인이란 다수파를 향해 의도적으로 비판과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을 뜻한다.”(p.135/상동)라고 설명한다. 가능한 일말의 진실에도 귀기울여한 한다는 밀(p.58)의 생각을 엿볼수 있다. “자유론”의 다섯 개의 장은 무분별한 또는 무책임한 허용이나 방임이 아닌 ‘일정한 방향’, ‘좋은 삶을 추구하기 위한 방향의 틀’(p.265, 해제)을 전제한 자유에 대해 단계적으로 접근한다.

“자유론”의 첫 장인 “머리말”에서 저술의 목적을 밝힌다. “사회가 개인을 상대로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성질과 그 한계”(p.21)를 살피는 것인데 말미에 거듭 정리하는 책의 목적은 하나의 원리를 통해 “사회가 개인에 대해 강제나 통제를 가할 수 있는 경우를 최대한 엄격하게 규정하는 것”(p.35)이라고 한다. 그 원리란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 누구든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천명이다. 다시 자유의 기본 영역을 세 가지로 구분하면서 “자유 가운데서도 가장 소중하고 또 유일하게 자유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자유이다.”(p.41) 밀은 일관되게 강제나 통제의 부당함을 강조하고 있다.

2장 “생각과 토론의 자유”에서는 더욱 확실하게 자신의 주장을 편다. “전체 인류 가운데 단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 이것은 어떤 한 사람이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나머지 사람 전부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만큼이나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p.50) 생각의 자유는 지켜져야 한다고 그 한 사람의 목소리에 힘을 더할 때 밀의 논조는 민감하고도 구체적이다. 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밀의 확신은 꽤나 강력하다. 인류 발전을 가능케 했던 인간 정신의 한 특징, 근원은 자신의 잘못을 시정할 수 있는 능력이고 이는 경험 만으로는 부족한 자질로 반드시 토론이 있어야 한다고 차분히 설명한다. 다양한 토론의 형태를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는 요즘, 저자는 토론의 필요 불가결함을 위한 거의 모든 요소를 망라하고 있다. 동시에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숙고하게끔 몇 몇 질문을 던진다. “어떤 사안이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하다면서 그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치명적인 악습”(p.98)이라는 지적, 변증법의 유용함(p.100), 부정적 비판의 가치(p.101)등을 다루고 재요약한다.

3장에서는 ‘행복한 삶을 위한 중요한 요소’로 “개별성”을 설명한다. 개별성을 짓밟는 체제는 어떤 이유를 대건 최악의 독재 체제(p.138)라며 그가 생각하는 ‘천재론’을 설명한다. ‘개별성’은 대중여론, 관습, 다수, 집단적 의지로부터 동떨어진 곳에서 자유와 발전을 가능케 한다. 4장은 “사회가 개인에게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한계”로 곳곳에 저자의 배려와 인간애를 확인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우리를 불쾌하게 만들면 우리는 싫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를 불쾌하게 만드는 그 일은 물론이고 그 사람도 멀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일로 그 사람의 삶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모든 벌을 벌써 받고 있다고 또는 받게 되리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 사람이 일을 잘못 처리해서 이미 자신의 삶을 망치고 있는데, 그러한 잘못을 이유로 그의 삶을 더 망치게 해서는 안된다.”(p.170)

5장은 “현실 적용”으로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였던 밀은 자신의 주장이 이론을 위한 이론, 철학을 위한 철학에 머물지 않고 인간을 움직이고 삶을 변화시키기 원한다. “국가의 힘은 결국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에게서 나온다.”(p.235)로 시작하며 마지막 문장을 마무리하는데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경고 섞인 질문을 하고 있다. “남에게 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인간은 자유로울 권리가 있고, 이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밀의 목소리가 200여년을 거슬러 1800년대 중반에 이미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안긴다. 여전히 자유로울 권리를 위한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사소한 개인적 취향부터 국가 및 연합단위에 이르기까지 오래되었으면서 동시에 새로운 화두로 주목하게 한다. 경청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일상으로 정착한다면 다툼은 없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자유론”이 옛 고전의 서가보다는 반복해서 펼치고 줄 칠 가장 가까운 커피 테이블에 있어야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유 가운데서도 가장 소중하고 또 유일하게 자유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자유이다.(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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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 책 베스트 세계 걸작 그림책 54
레미 쿠르종 지음, 이성엽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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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 쿠르종의 『아무것도 없는 책(주니어RHK/이성엽 옮김)』 앞표지에는 주홍빛 표지 가운데 정말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채 백지로 펼쳐진 한 권의 책이 놓여 있습니다. 청녹색 면지 역시 종이의 자잘한 결이 보일 뿐입니다. 오래전 어느 날을 회상하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때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아무것도 없는 책’을 선물하셨었죠. 아무것도 없는 책이라니, 아이는 아리송하지만 할아버지의 설명에 귀 기울입니다. 펼칠 때마다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게 하는 마법 같은 책! 어떤 생각도 떠오를 수 있다니 가능한 생각의 종류를 찾아볼까요? 그 중에서도 ‘기막힌 생각’의 예는 근사한 그림으로 양면 빼곡하게 담아냅니다. 각각의 그림에 대해 나만의 해석을 덧붙히기 시작하면 재미는 배가 되겠고요, ‘기막힌 생각 릴레이’ 게임이라도 한다면 시간 가는 줄 모를 것 같네요.

할아버지는 떠나셨지만 알리시아는 깨닫습니다. 생각이 가득한 책처럼 할아버지는 생각이 가득한 세상으로 옮겨가셨음을. 그리고 생각이 풍성해지는 “아무것도 없는 책”으로부터 자신의 첫 번째 책을 완성합니다. 생각대로 사랑도 찾아옵니다. 함께 하니 더 멋진 일도 있지만 상실도 겪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책”을 잃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일이 가능할까요? 요술에 필적할만한 파워를 가진 책일지라도 약점은 있습니다. 그 취약점과 특별함이 선물을 더 아끼고 소중히 보듬게 하지요. 그리고 이 또한 본질일리 없다는, 온전한 가능성을 가로막는 허상일 수 있음을 서서히 알아채게 됩니다.

할아버지의 유산은 마법책이 아니라 알리시아로 하여금 생각을 찾아내는 게 몸에 배게끔 변화시켰다는 점일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다가오더라도 우리는 ‘생각’을 할 수 있고, 그렇다면 희망은 충분할지 모릅니다. 그 작은 가능성이야말로 마법을 일으키는 필요 충분 조건임을 믿게 됩니다. 작품 속 글과 그림은 동어반복이 아닌 서로를 충실히 보완하기에 글대로, 그림대로 꼼꼼히 찾아보게끔 독자의 시선을 붙잡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책”은 처음 등장한 순간부터 알리시아의 손을 통해 함께 만지고 열어보는 듯한 물성을 획득합니다. 내게도 이 책이 필요하다고 열망하게 되고요. 나라면 어떤 생각을 끄집어 내겠어, 얼마든지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책의 부재(不在)가 이미 무의미해지는 순간, 마법은 완벽해집니다. 찬란한 현실이 되는거죠. 아마도 펼칠 때마다 다른 것을 발견할 것이기에 “아무것도 아닌 책”을 꺼낼 그때는 또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주니어 RHK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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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K의 삶과 시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6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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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M. 쿳시의 『마이클 K의 삶과 시대(문학동네/왕은철 옮김)』는 1983년 작가에게 첫 번째 부커상을 안겨주었고 2003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로는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한 쿳시 문학의 주요 지점을 차지한다. 쿳시는 종족적으로는 식민주의자이면서도 이념적으로는 식민주의자이기를 거부하는 작가로(250p), 아파르트헤이트, 반투 홈랜드 등 조금만 찾아보아도 인권상실의 비참함이 곧바로 작품과 오버랩되며, 원죄이자 숙명이며 자의식과 죄의식의 원천인 식민주의 역사를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 그 중에서도 역자는 “이 소설은 쿳시가 성취한 문학의 최고봉, 최고 중의 최고에 해당한다.(259p)”고 하는 만큼 “마이클 K의 삶과 시대”가 쿳시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작품인 점은 감사한 일이다.

“그가 어머니에게서 세상으로 나오도록 도와주던 산파가 마이클 K에 대해 알게 된 첫 번째 사실은 그가 구순열이라는 것이었다.(11p)” 헤이스 노리니어스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고 케이프타운 시청의 정원사가 된 마이클K는 가정부로 일했던 어머니 안나 K를 수종증으로 치료 받은 병원에서 퇴원시킨다. “그는 헤이스 노리니어스의 자전거 보관소 뒤에서 그를 괴롭히던 질문, ‘나는 왜 세상에 나왔을까?’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그는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이었다.(16p)” 마이클은 어린시절을 보냈던 프린스 앨버트의 온기 속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어머니의 소망을 이루어주고자 마음먹는다.

목적지는 정해졌지만 여정은 예상을 빗나간다. 예약 승차권에 더해 구역이탈을 허용하는 허가서를 막연하고 초조히 기다린다. A를 하면 B를 요구하고 B에 도달하기까지 어떤 질문도 거부당한 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불분명한 시간으로 틈을 메우라 지시받는 상황은 기시감이 느껴진다. 손수레를 만들어 직접 움직이겠다는 계획은 어머니를 쓰러뜨리고 병원에서 다시 한 번 동일한 상황을 겪는다. “어머니는 복도에 없었다. 접수대로 가서 어머니가 어디에 있는지 물으니 병원 끝에 있는 부속건물로 가보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도 그가 말하는 건물을 알지 못했다. 다시 접수대로 돌아갔더니 아침에 다시 오라고 했다. 그는 복도에 있는 벤치에서 자도 되는지 물었지만 거절당했다.(44p)” 불합리하고 부당하고 부조리한 상황의 연속. 교묘히 태연하게 함정을 권하는, 다리 거는, 또는 밀어넣는 듯한 기분이 성에 다가가지 못하는 토지측량사 K를 떠오르게 한다. 죽음 앞에서도 그들의 무심한 강압은 흔들리지 않는다.

마이클 K는 혼자 프린스 앨버트로 향하고 피사기씨의 농장에 이른다. 어머니의 소망을 늦게나마 이루어 드린 후 호박씨 봉지를 찾아내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며 행복을 느끼나 이도 곧 내어주고 비탈 위 동굴에 닿아 “그러니 나는 이제 잊힌 존재나 다름없다.(93P)”고 생각하지만 다시 이주민수용소로 보내진다. 그러나 다시 빠져나온 그. “그는 스스로에 대해, 뒤에 발자국을 남기는 무거운 존재가 아니라, 개미가 발을 구르고 나비가 이를 사각거리고 먼지가 굴러다녀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깊이 잠든 대지 위에 찍힌 점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134P)” 자의와 타의, 자유와 억류, 탈출과 체포, 마침내 탈출로의 연속된 경주가 이어지는 길에서 마이클 K는 '여분의 인간조건'을 하나씩 미련없이 떠나보낸다.

2부의 화자는 마이클 K가 입원하게 된 병원의 군의관이다. 자신의 특별한 환자를 관찰하고 이해하고 돕기 원하는 그는 '마이클 K가 아닌 마이클스'에 대해 생각한다. 집결지 운영은 고사하고 다트 놀이도 못할 사람(177p)이며, 백치이고(178p), 돌맹이 또는 조약돌 같이 주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과 자신의 내적 삶에 갇혀있다고(183p). 한 마리 쥐이며 땅에서 사는 법을 모르는 도시 쥐(185p)라고, 모호한 사람 중에서도 가장 모호한, 불가사의할 정도로 모호한 사람이라고(194p). 하지만 그 시도나 호의 또는 '달변(193p)'조차 서로의 간격을 좁히지 못하는데 애초에 그는 마이클스가 아니었기에 시도는 헛될 수 밖에 없다. 사라져버린 마이클 K를 놓아보내며 화자의 시선은 자신에게로 향하고 인류 행복의 총합을 올리는 예를 생각하다 인생, 시간에까지 도달한다.

“그 혼돈 속에서 형식이 태어나고 역사는 스스로에게 영광스러운 의미를 부여한다. 내가 그녀를 오해하는 게 아니라면, 펠리시티는 자신을 기다림의 시간, 수용소의 시간, 전쟁의 시간 등과 같은 시간의 호주머니 안에 고립된 표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시간은 늘 그랬던 것처럼 충만한 것이다. 시트를 세탁하는 시간이나 바닥을 청소하는 시간조차도 말이다. 반면, 한쪽 귀로는 수용소 생활의 진부한 소리를 듣고, 다른 쪽 귀로는 ‘위대한 설계’의 회전의들이 초감각적으로 돌아가는 소리를 듣는 나에게 시간은 공허한 것이 되어버렸다. 완전히 내면으로만 향한 채, 서서히 진행중인 소멸의 과정에 싸여 있는 뇌진탕 환자조차, 죽음을 살면서도 나보다 더 강렬하게 살아간다.(216p)” 세 사람의 시간을 비교하며 서서히 자각하는 군의관. 자신을 성찰하다 결국 정원을 가꾸는 위대한 탈출 예술가(226p) 마이클 K(마이클스)를 부러워한다.

“시간이 흐른 게 분명했지만 기억이 없었다. 나는 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아니, 그보다 더 나쁜 상태였다. 나는 부재중이었다. 그러나 어디에 가 있었을까?(240P)” 3부에서 마이클 K는 바다를 찾는다. 어머니의 거처가 있던 코트다쥐르 아파트에서 이제 돌아왔구나, 나는 동정의 대상이 되었구나, 나는 정원사였다 생각한다. 사람들이 운영하는, 가둬놓는, 위한다는 미명을 가진 수용소들의 열거는 의미심장하다. “어쩌면 진실은, 수용소 밖에 있는 것만으로도, 동시에 모든 수용소 밖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지 모른다. 어쩌면 당분간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성취인지 모른다. 하지만 감금당하지 않거나, 출입문에 보초가 서 있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나는 수용소를 탈출했다. 납작 엎드려버리면, 어쩌면 동정심으로부터도 탈출할 것이다.(246p)”

마이클 K가 마르고 수척해가듯이 이야기의 결말은 단순하게 응축되어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그가 필요로 하고 원했던 것은 사소해 보이나 물처럼, 공기처럼 없어서는 안 될뿐 아니라 타협할 수 없는 것이었다. 프린스 앨버트를 향하던 여정은 반복해서 저지당하고 탈출 끝에 처음 자리로 돌아오지만 철사로 쇠막대를 고정시켜 손수레를 만들던 그는 아니다. 하지만 꿈꾼다. 또 하나의 손수레가 있고 동행할 노인이 있으리라고. 함께 그곳에 도착해 파괴된 펌프에서 물을 얻는 법을 알려줄 수 있다고. ‘어떠해야 한다’고 이미 재단된 가치와 판단은 열외를 인정하지 않는다. 피해자이며 약자, 그들과 ‘다른’ 경우에는 응분의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보이지 않는 위협은 산재해 있다.

그럼에도 자기 자신으로 남으려 했던 마이클 K의 삶이 묵묵한 시지프스처럼, 불평없이 다시 처음부터 돌을 굴리던 시지프스처럼 웅장해 보인다. 그의 왜소함이 형태 이상으로 풍성하게 발아하는 씨앗처럼 확산된다. 작가의 의도대로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적 담론(251p)으로는 물론, 현재를 사는 개인에게 비춰보게끔 하는 역동적 작품으로 또다른 마이클 K에게 당신은 왜 이렇지 못하고 저러하냐 하지 않도록 민감해야 할 것이다. 그는 살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또한 모두가 간직한 자기만의 프린스 앨버트는 어디인지, 그 여정은 충분히 아름다운지, 아니 견딜만 한지 안부를 묻게 된다.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핵심만 담아 낸듯한 “마이클 K의 삶과 시대”는 한 호흡으로 몰입하게 만들고 메아리처럼 여운을 남긴다.




책 속에서>

-나는 여기에서 살고 싶다. 그는 생각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살았던 이곳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 아주 간단한 일인데. 이 같은 시대를 살아가려고 짐승처럼 살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게 애석하구나.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창문에 불을 밝힌 집에 살 수 없다. 굴 속에서 살아야 하고 낮이 되면 숨어야 한다. 삶의 흔적이 남지 않도록 그렇게 살아야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136p)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 아이 뒤의 문간에 서 있는 또다른 여인, 즉 어머니를 세상에 나오게 한 여인의 모습을 상상해보려 했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돌아가실 때, 그러니까 어머니가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어머니가 의지한 것은 내가 아니라 그녀 뒤에 서 있던 그녀의 어머니나 그 어머니의 영혼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나에게 어머니는 성인 여성이었지만, 그녀 마음속으로는 아직도 손을 잡아달라고, 도와달라고 어머니를 찾는 어린아이였다. 그리고 그 삶이 어땠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녀의 어머니도 어린아아이긴 마찬가지였다. 나는 끝없는 아이들의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다. (159p)

-날마다 반복되는 완고한 아니요라는 말에 차츰 무게가 실리면서, 당신이 단순한 환자나 전쟁의 희생자 또는 희생의 피라미드를 구성하는 벽돌 이상의 존재라는 걸 느끼기 시작했어요. 결국에는 누군가 밟고 올라가 다리를 벌리고 서서, 고함을 치고 가슴팍을 두드리며 자신이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의 황제라고 선언하는 희생의 피라미드 말이에요. (2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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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글쓰기 레시피 - 맛있게 쓸 수 있는 미술 글쓰기 노하우
정민영 지음 / 아트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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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영의 『미술 글쓰기 레시피(아트북스)』 는 표지부터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경쾌한 하늘빛 바탕 한가운데 있는 달걀프라이, 미술 관련서인 만큼 혹시 다른 것으로 봐야하나(예를 들어 구름위에 달이 있네요 등) 하는 정답강박증에 따른 불안과 ‘맛있게 쓸 수 있는 미술 글쓰기 노하우’라는 소제목에서 왜 ‘멋있게’나 ‘제대로’가 아닌 ‘맛있게’일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미술도 글쓰기도 결코 쉽지 않은데 ‘레시피’가 있다면야 감사할 따름이라는 마음으로 즐겁게 책을 편다.

“미술 글쓰기 레시피”는 이미 네 권의 미술 관련서를 출간한 작가가 또 한 번 대중에게 눈맞춤하며 미술 글쓰기 노하우를 최적의 세팅으로 전해준다. 저자는 전작 “원 포인트 그림감상”을 인용해 “보기만 하는 감상은 반쪽짜리 감상이다. 감상의 완성은 글쓰기다. 글쓰기까지가 진정한 그림감상이다.(8p)”라고 강조한다. “독서의 완성은 서평”이라고 생각하는 서평러로써 ‘아, 그림감상(너까지)도! 역시 적자생존이 맞네‘ 혼잣말을 해본다.

총 다섯 파트로 구성으로 1장은 쓰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을 챙긴다. 읽기 시작하면서 고매한 경지가 어쭙잖은 접근을 불허하는 듯 느껴지던 미술에 대한 편견은 블필요함을 알 수 있다. “일반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술계 내부가 아닌 자기 삶에서 미술을 봅니다. (중략) 미술을 ‘도구’로 사용합니다. 삶을 위한 재료로 미술을 향유합니다.(중략)중요한 것은 느낌입니다. (중략)세상의 모든 자료는 내 감상에 필요한 각주입니다.(20p)” 이쯤 되면 읽어갈 모든 페이지에 앞에서 급격히 당당해진다. 자신감을 장착하니 ‘미술 글쓰기? 할 수 있어!’싶은 맘이 솟는다.

작품의 ‘숨은’ 의미 찾기(34p)에서 ‘관점’설명이나, 공간예술과 시간예술에서 “미술 글쓰기는 시간이 응축된 공간적인 세계를 시간적으로 번역해서 서술합니다.(52p)”등 어려운 말이지만 전략 또는 설계의 필요성과 작동케 하는 법에 천천히 익숙해진다. 1장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무제’에 대한 설명(28p)이다. ‘무제’라는 제목 앞에서, 알 수 없는 기호 제목들 앞에서, 전시실 8할의 작품이 무제인 ‘무제’의 기차열 앞에서 얼마나 무제의 이유와 근거를 찾아내고 합리화 해보려 애썼던가. 그 날들이 스쳐간다. 이제 조금 편해진다.

2장은 ‘구성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다. 알아야 할 것은 알고 가자 다시금 맘 먹는다. 이 파트는 조금 친숙하다. 이권우 교수님의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복습하듯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안다, 문제는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것! 최북의 “공산무인도”감상문은 동양화의 아름다움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늦게나마 신세계를 엿본다. 글의 마무리도 어렵지만 제목 짓기는 더하다. 제목의 기능 세 가지도 기억해야겠지만 “제목은 유혹이자 감동의 압축파일입니다.(중략) 제목을 잘 지어야 글이 춤을 춥니다. (127p)”등 ‘외우자’ 싶은 문장들이 많다.

쓰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을 3장에서 보여준다. 내적 정보에 해당하는 소재, 매체,기법과 외적 정보에 해당하는 에피소드, 시대적 배경 등을 언급하는데 작품을 대상으로 쓴 글을 실례로 제시하므로 설명에서 끝나지 않고 구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4장은 글감이다. 글의 재료를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인데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며 방법론을 익힐 수 있다. 에피소드 글쓰기, 키워드 또는 비교 글쓰기 등을 다룬다. 특히 비교하는 글쓰기의 예로 들었던 ‘머리로 그린 산, 가슴으로 그린 산’(223p)은 여운을 남긴다. 페터 한트케의 『세잔의 산, 생트빅투아르의 가르침(아트북스)』 속에서 한트케가 따라가던 세잔의 산 이미지가 겹쳐지며, 동시에 친숙한 「인왕제색도」의 알지 못했던 사연에 한번 더 그림을 주목하게 된다.

마지막 장은 쓰면서 알아야 할 것들이다. 제목의 중요성을 다시 언급하며 미술 용어 풀어쓰는 법, 독자에 따라 달라져야 할 글, 퇴고까지 꼼꼼하게 살핀다. 각 장 말미에 흥미로운 주제의 팁과 저자 후기 이후 한 편의 보론까지 꽉 채운 점에서 저자의 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던 나의 미술관 여정, 간혹 사진으로 기록했으나 저장주소를 잃고 어렴풋할 뿐인 작품의 인상이 안개처럼 흐리다. 스톡홀름 증후군까지는 아니더라도 놀라움으로 소름돋고 눈물이 차오르게 하던 어둡고 캄캄한 바탕 속 벼락같이 내뿜던 빛들, 화가가 금가루를 넣었나 왜 그림에서 광채가 터질까 숨막히던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다. “미술 글쓰기 레시피”는 양질의 정보와 방법론으로 무장한 동시에 그림을 감상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일에서 얼마든지 자유로움을 누리라고 따뜻하게 격려하고 또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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