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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이야기
세스 노터봄 지음, 김영중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평점 :
세스 노터봄의 『계속되는 이야기(1991)/문학동네/김영중 옮김』는 고전, 역사, 철학, 예술을 비롯한 다양한 영역의 깊이있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가로 의미있는 수상들로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계속되는 이야기 속 주인공은 작가의 분신처럼 공통의 특징과 성정을 지닌 채 독자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특징없이 이어지는 일상의 틈새로 반짝이는 인문학적 성찬이 차려지는 그리 길지 않은 소설 “계속되는 이야기”는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에도 귀 기울여 그의 목소리를 찾게 만든다.
“나는 진실을 대면하고 싶었다.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 중에서 어떤 쪽이 그 과거의 방에 있는지 알아야 했다.(29p)” 주인공 헤르만 뮈서르트는 자신의 마지막 고전어 수업에서 독배를 마시는 소크라테스를 재현한다. 학교에서의 별명 또한 소크라테스인 그에게는 적절하면서도 그다운 인사다. 그 후 연금이 나올 때까지 여행안내서 작가로 글을 쓰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오비디우스 번역이다. 잠들고 예기치 못한 곳에서 깨어나는 반복은 시간과 공간을 왜곡시키고 과거 관계했던 마리아 세인스트라와의 흔적을 좇기도, 소크라테스의 제자 크리톤과 동일시되는 자신의 이상적 제자 딘디아를 불러내기도 한다.
2부에서는 항해중인 선상에서 여섯 명의 여행객들과 실제인 듯 하면서도 불가사의한 여행을 함께한다. 1부에서 의미있게 등장했던 마리아, 딘디아, 마리아의 남편과의 진기했던 싸움장면, 그 이전의 마지막 수업까지 회상하며 특별했던 순간들을 재조명한다. 여섯 명의 동행자가 나누는 별, 바다, 별자리, 이름 등에 대한 공동의 경험과 대화는 독자 역시 집중하게 만든다. “나는 나 자신을 보았다. 여행 동료들로만 이뤄진 별자리를 보았다.(128p)“ 이 결함 많은 집단(129p)은 차례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 ”끝이 없는 이야기를 하는 건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다. 내가 보기에 이야기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단계는 이미 지났다. 나는 설명할 수 없는 광희를 느꼈다.(134p)“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해될 것 같으면서 동시에 모호한,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죽음의 찰나들을 목격하게 된다.
“내 집은 온통 책으로 가득차 있고, 나는 책들 틈에 끼여 살고 있었다.(14p)” “그리고 실제 혹은 가상 인물들의 같으면서 다양한 감정들이 묘사된 수만 페이지 책들에 둘러싸인 남자.(71p)“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표지의 그림은 이런 뮈서르트를 그려낸 것 같다. 다양한 고전 문학은 물론 예술 작품들이 등장하고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 선명하게 이야기의 진행을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거듭 멈추고 표시하곤 했다. 미국 국립 항공우주박물관에서 본 우주 여행 영화는 망망대해를 떠가며 무수한 별을 바라보던 2부의 해상장면을 연결시킨다. 시간, 관계나 사랑, 언어, 신화 등을 곱씹고 자유롭게 구체적 현실로 이끌고 와 풀어놓으니 무척 매력적이다.
그 중에서도 시간에 대한 문장들은 따로 노트를 만들고 싶어진다. ”둘은 나이가 같아 보였으나, 더 이상 ‘나이’라는 범주로 그들의 삶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들은 시간을 극복한 자들이었다.(104p)“ ‘시간을 극복한 자들’이라니, 고전 속 전형적 인물들을 기억하게 한다. 책의 시작 부분, ”부인이 죽음이라고 일컫는 것은 사실 정신의 집중이에요.(14p)“ 등대처럼 정확히 불을 밝히고 책을 읽곤 했던 그를 관찰한 이웃들에게 무심히 했던 이 말은 죽음을 정의하는 노터봄의 화두일지도 모르겠다.
책 속에서>
- “시곗바늘은 시간을 지배한다. 시계 위에는 큰 글자로 법정 시간이라고 쓰여 있고, 뭉쳐 있던 매듭이 풀린 듯한 광장 안에 법조문 같은 소리가 울려퍼진다. 시간을 보러 오는 이가 누구든, 시간을 보러 오는 곳이 어디든, 시간을 늘리고 싶거나, 거부하고 싶거나, 흘러가게 놔두고 싶거나, 막고 싶거나, 방향을 바꾸려 한다면, 나의 법이 절대적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내 거대한 시겟바늘은 공허하고 덧없고 실재하지 않는 현재를 가리킨다. 늘 그렇다. 내 거대한 시곗바늘은 부패해가는 분배정책과 오늘날 학자들의 음란성을 거부한다. 내가 가리키는 현재는 유일하고 실제적이며 계속되는 현재다. 그리고 끊임없이 새롭게 육십 초를 이어간다. (44p)
-시계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이 불가사의한 것임을 인식시키는 것이다. 시간은 얽매인 데 없는 측량 불가의 현상이며 스스로를 드러내기를 거부한다. 우리 인간이 궁여지책으로 순서의 외양을 입혀주었을 뿐이다. 시간은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났을 수 없도록 해주는 체계다. (45p)
-이름은 그것이 나타낼 생명체가 있어야 생겨난다. 별자리 형상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페르세우스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103p)
-또 중요한 건 한 인간이 삶의 마지막 시간들을 논증이 아닌 사고활동에 보낼 수 있다는 것, 선택, 가정, 모순, 반박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며 그 한정된 공간 속에서 긴장된 정신과 정신을 잇는 일에 보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고 생각을 바꿀 수 있으며 풀리지 않는 의문들을 다시 확실성 자체를 부정하는 불확실한 영역 안에 고정시키는 인간의 놀라운 지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1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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