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는 책 베스트 세계 걸작 그림책 54
레미 쿠르종 지음, 이성엽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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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 쿠르종의 『아무것도 없는 책(주니어RHK/이성엽 옮김)』 앞표지에는 주홍빛 표지 가운데 정말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채 백지로 펼쳐진 한 권의 책이 놓여 있습니다. 청녹색 면지 역시 종이의 자잘한 결이 보일 뿐입니다. 오래전 어느 날을 회상하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때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아무것도 없는 책’을 선물하셨었죠. 아무것도 없는 책이라니, 아이는 아리송하지만 할아버지의 설명에 귀 기울입니다. 펼칠 때마다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게 하는 마법 같은 책! 어떤 생각도 떠오를 수 있다니 가능한 생각의 종류를 찾아볼까요? 그 중에서도 ‘기막힌 생각’의 예는 근사한 그림으로 양면 빼곡하게 담아냅니다. 각각의 그림에 대해 나만의 해석을 덧붙히기 시작하면 재미는 배가 되겠고요, ‘기막힌 생각 릴레이’ 게임이라도 한다면 시간 가는 줄 모를 것 같네요.

할아버지는 떠나셨지만 알리시아는 깨닫습니다. 생각이 가득한 책처럼 할아버지는 생각이 가득한 세상으로 옮겨가셨음을. 그리고 생각이 풍성해지는 “아무것도 없는 책”으로부터 자신의 첫 번째 책을 완성합니다. 생각대로 사랑도 찾아옵니다. 함께 하니 더 멋진 일도 있지만 상실도 겪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책”을 잃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일이 가능할까요? 요술에 필적할만한 파워를 가진 책일지라도 약점은 있습니다. 그 취약점과 특별함이 선물을 더 아끼고 소중히 보듬게 하지요. 그리고 이 또한 본질일리 없다는, 온전한 가능성을 가로막는 허상일 수 있음을 서서히 알아채게 됩니다.

할아버지의 유산은 마법책이 아니라 알리시아로 하여금 생각을 찾아내는 게 몸에 배게끔 변화시켰다는 점일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다가오더라도 우리는 ‘생각’을 할 수 있고, 그렇다면 희망은 충분할지 모릅니다. 그 작은 가능성이야말로 마법을 일으키는 필요 충분 조건임을 믿게 됩니다. 작품 속 글과 그림은 동어반복이 아닌 서로를 충실히 보완하기에 글대로, 그림대로 꼼꼼히 찾아보게끔 독자의 시선을 붙잡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책”은 처음 등장한 순간부터 알리시아의 손을 통해 함께 만지고 열어보는 듯한 물성을 획득합니다. 내게도 이 책이 필요하다고 열망하게 되고요. 나라면 어떤 생각을 끄집어 내겠어, 얼마든지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책의 부재(不在)가 이미 무의미해지는 순간, 마법은 완벽해집니다. 찬란한 현실이 되는거죠. 아마도 펼칠 때마다 다른 것을 발견할 것이기에 “아무것도 아닌 책”을 꺼낼 그때는 또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주니어 RHK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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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K의 삶과 시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6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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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M. 쿳시의 『마이클 K의 삶과 시대(문학동네/왕은철 옮김)』는 1983년 작가에게 첫 번째 부커상을 안겨주었고 2003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로는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한 쿳시 문학의 주요 지점을 차지한다. 쿳시는 종족적으로는 식민주의자이면서도 이념적으로는 식민주의자이기를 거부하는 작가로(250p), 아파르트헤이트, 반투 홈랜드 등 조금만 찾아보아도 인권상실의 비참함이 곧바로 작품과 오버랩되며, 원죄이자 숙명이며 자의식과 죄의식의 원천인 식민주의 역사를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 그 중에서도 역자는 “이 소설은 쿳시가 성취한 문학의 최고봉, 최고 중의 최고에 해당한다.(259p)”고 하는 만큼 “마이클 K의 삶과 시대”가 쿳시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작품인 점은 감사한 일이다.

“그가 어머니에게서 세상으로 나오도록 도와주던 산파가 마이클 K에 대해 알게 된 첫 번째 사실은 그가 구순열이라는 것이었다.(11p)” 헤이스 노리니어스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고 케이프타운 시청의 정원사가 된 마이클K는 가정부로 일했던 어머니 안나 K를 수종증으로 치료 받은 병원에서 퇴원시킨다. “그는 헤이스 노리니어스의 자전거 보관소 뒤에서 그를 괴롭히던 질문, ‘나는 왜 세상에 나왔을까?’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그는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이었다.(16p)” 마이클은 어린시절을 보냈던 프린스 앨버트의 온기 속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어머니의 소망을 이루어주고자 마음먹는다.

목적지는 정해졌지만 여정은 예상을 빗나간다. 예약 승차권에 더해 구역이탈을 허용하는 허가서를 막연하고 초조히 기다린다. A를 하면 B를 요구하고 B에 도달하기까지 어떤 질문도 거부당한 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불분명한 시간으로 틈을 메우라 지시받는 상황은 기시감이 느껴진다. 손수레를 만들어 직접 움직이겠다는 계획은 어머니를 쓰러뜨리고 병원에서 다시 한 번 동일한 상황을 겪는다. “어머니는 복도에 없었다. 접수대로 가서 어머니가 어디에 있는지 물으니 병원 끝에 있는 부속건물로 가보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도 그가 말하는 건물을 알지 못했다. 다시 접수대로 돌아갔더니 아침에 다시 오라고 했다. 그는 복도에 있는 벤치에서 자도 되는지 물었지만 거절당했다.(44p)” 불합리하고 부당하고 부조리한 상황의 연속. 교묘히 태연하게 함정을 권하는, 다리 거는, 또는 밀어넣는 듯한 기분이 성에 다가가지 못하는 토지측량사 K를 떠오르게 한다. 죽음 앞에서도 그들의 무심한 강압은 흔들리지 않는다.

마이클 K는 혼자 프린스 앨버트로 향하고 피사기씨의 농장에 이른다. 어머니의 소망을 늦게나마 이루어 드린 후 호박씨 봉지를 찾아내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며 행복을 느끼나 이도 곧 내어주고 비탈 위 동굴에 닿아 “그러니 나는 이제 잊힌 존재나 다름없다.(93P)”고 생각하지만 다시 이주민수용소로 보내진다. 그러나 다시 빠져나온 그. “그는 스스로에 대해, 뒤에 발자국을 남기는 무거운 존재가 아니라, 개미가 발을 구르고 나비가 이를 사각거리고 먼지가 굴러다녀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깊이 잠든 대지 위에 찍힌 점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134P)” 자의와 타의, 자유와 억류, 탈출과 체포, 마침내 탈출로의 연속된 경주가 이어지는 길에서 마이클 K는 '여분의 인간조건'을 하나씩 미련없이 떠나보낸다.

2부의 화자는 마이클 K가 입원하게 된 병원의 군의관이다. 자신의 특별한 환자를 관찰하고 이해하고 돕기 원하는 그는 '마이클 K가 아닌 마이클스'에 대해 생각한다. 집결지 운영은 고사하고 다트 놀이도 못할 사람(177p)이며, 백치이고(178p), 돌맹이 또는 조약돌 같이 주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과 자신의 내적 삶에 갇혀있다고(183p). 한 마리 쥐이며 땅에서 사는 법을 모르는 도시 쥐(185p)라고, 모호한 사람 중에서도 가장 모호한, 불가사의할 정도로 모호한 사람이라고(194p). 하지만 그 시도나 호의 또는 '달변(193p)'조차 서로의 간격을 좁히지 못하는데 애초에 그는 마이클스가 아니었기에 시도는 헛될 수 밖에 없다. 사라져버린 마이클 K를 놓아보내며 화자의 시선은 자신에게로 향하고 인류 행복의 총합을 올리는 예를 생각하다 인생, 시간에까지 도달한다.

“그 혼돈 속에서 형식이 태어나고 역사는 스스로에게 영광스러운 의미를 부여한다. 내가 그녀를 오해하는 게 아니라면, 펠리시티는 자신을 기다림의 시간, 수용소의 시간, 전쟁의 시간 등과 같은 시간의 호주머니 안에 고립된 표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시간은 늘 그랬던 것처럼 충만한 것이다. 시트를 세탁하는 시간이나 바닥을 청소하는 시간조차도 말이다. 반면, 한쪽 귀로는 수용소 생활의 진부한 소리를 듣고, 다른 쪽 귀로는 ‘위대한 설계’의 회전의들이 초감각적으로 돌아가는 소리를 듣는 나에게 시간은 공허한 것이 되어버렸다. 완전히 내면으로만 향한 채, 서서히 진행중인 소멸의 과정에 싸여 있는 뇌진탕 환자조차, 죽음을 살면서도 나보다 더 강렬하게 살아간다.(216p)” 세 사람의 시간을 비교하며 서서히 자각하는 군의관. 자신을 성찰하다 결국 정원을 가꾸는 위대한 탈출 예술가(226p) 마이클 K(마이클스)를 부러워한다.

“시간이 흐른 게 분명했지만 기억이 없었다. 나는 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아니, 그보다 더 나쁜 상태였다. 나는 부재중이었다. 그러나 어디에 가 있었을까?(240P)” 3부에서 마이클 K는 바다를 찾는다. 어머니의 거처가 있던 코트다쥐르 아파트에서 이제 돌아왔구나, 나는 동정의 대상이 되었구나, 나는 정원사였다 생각한다. 사람들이 운영하는, 가둬놓는, 위한다는 미명을 가진 수용소들의 열거는 의미심장하다. “어쩌면 진실은, 수용소 밖에 있는 것만으로도, 동시에 모든 수용소 밖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지 모른다. 어쩌면 당분간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성취인지 모른다. 하지만 감금당하지 않거나, 출입문에 보초가 서 있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나는 수용소를 탈출했다. 납작 엎드려버리면, 어쩌면 동정심으로부터도 탈출할 것이다.(246p)”

마이클 K가 마르고 수척해가듯이 이야기의 결말은 단순하게 응축되어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그가 필요로 하고 원했던 것은 사소해 보이나 물처럼, 공기처럼 없어서는 안 될뿐 아니라 타협할 수 없는 것이었다. 프린스 앨버트를 향하던 여정은 반복해서 저지당하고 탈출 끝에 처음 자리로 돌아오지만 철사로 쇠막대를 고정시켜 손수레를 만들던 그는 아니다. 하지만 꿈꾼다. 또 하나의 손수레가 있고 동행할 노인이 있으리라고. 함께 그곳에 도착해 파괴된 펌프에서 물을 얻는 법을 알려줄 수 있다고. ‘어떠해야 한다’고 이미 재단된 가치와 판단은 열외를 인정하지 않는다. 피해자이며 약자, 그들과 ‘다른’ 경우에는 응분의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보이지 않는 위협은 산재해 있다.

그럼에도 자기 자신으로 남으려 했던 마이클 K의 삶이 묵묵한 시지프스처럼, 불평없이 다시 처음부터 돌을 굴리던 시지프스처럼 웅장해 보인다. 그의 왜소함이 형태 이상으로 풍성하게 발아하는 씨앗처럼 확산된다. 작가의 의도대로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적 담론(251p)으로는 물론, 현재를 사는 개인에게 비춰보게끔 하는 역동적 작품으로 또다른 마이클 K에게 당신은 왜 이렇지 못하고 저러하냐 하지 않도록 민감해야 할 것이다. 그는 살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또한 모두가 간직한 자기만의 프린스 앨버트는 어디인지, 그 여정은 충분히 아름다운지, 아니 견딜만 한지 안부를 묻게 된다.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핵심만 담아 낸듯한 “마이클 K의 삶과 시대”는 한 호흡으로 몰입하게 만들고 메아리처럼 여운을 남긴다.




책 속에서>

-나는 여기에서 살고 싶다. 그는 생각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살았던 이곳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 아주 간단한 일인데. 이 같은 시대를 살아가려고 짐승처럼 살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게 애석하구나.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창문에 불을 밝힌 집에 살 수 없다. 굴 속에서 살아야 하고 낮이 되면 숨어야 한다. 삶의 흔적이 남지 않도록 그렇게 살아야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136p)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 아이 뒤의 문간에 서 있는 또다른 여인, 즉 어머니를 세상에 나오게 한 여인의 모습을 상상해보려 했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돌아가실 때, 그러니까 어머니가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어머니가 의지한 것은 내가 아니라 그녀 뒤에 서 있던 그녀의 어머니나 그 어머니의 영혼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나에게 어머니는 성인 여성이었지만, 그녀 마음속으로는 아직도 손을 잡아달라고, 도와달라고 어머니를 찾는 어린아이였다. 그리고 그 삶이 어땠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녀의 어머니도 어린아아이긴 마찬가지였다. 나는 끝없는 아이들의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다. (159p)

-날마다 반복되는 완고한 아니요라는 말에 차츰 무게가 실리면서, 당신이 단순한 환자나 전쟁의 희생자 또는 희생의 피라미드를 구성하는 벽돌 이상의 존재라는 걸 느끼기 시작했어요. 결국에는 누군가 밟고 올라가 다리를 벌리고 서서, 고함을 치고 가슴팍을 두드리며 자신이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의 황제라고 선언하는 희생의 피라미드 말이에요. (2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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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글쓰기 레시피 - 맛있게 쓸 수 있는 미술 글쓰기 노하우
정민영 지음 / 아트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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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영의 『미술 글쓰기 레시피(아트북스)』 는 표지부터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경쾌한 하늘빛 바탕 한가운데 있는 달걀프라이, 미술 관련서인 만큼 혹시 다른 것으로 봐야하나(예를 들어 구름위에 달이 있네요 등) 하는 정답강박증에 따른 불안과 ‘맛있게 쓸 수 있는 미술 글쓰기 노하우’라는 소제목에서 왜 ‘멋있게’나 ‘제대로’가 아닌 ‘맛있게’일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미술도 글쓰기도 결코 쉽지 않은데 ‘레시피’가 있다면야 감사할 따름이라는 마음으로 즐겁게 책을 편다.

“미술 글쓰기 레시피”는 이미 네 권의 미술 관련서를 출간한 작가가 또 한 번 대중에게 눈맞춤하며 미술 글쓰기 노하우를 최적의 세팅으로 전해준다. 저자는 전작 “원 포인트 그림감상”을 인용해 “보기만 하는 감상은 반쪽짜리 감상이다. 감상의 완성은 글쓰기다. 글쓰기까지가 진정한 그림감상이다.(8p)”라고 강조한다. “독서의 완성은 서평”이라고 생각하는 서평러로써 ‘아, 그림감상(너까지)도! 역시 적자생존이 맞네‘ 혼잣말을 해본다.

총 다섯 파트로 구성으로 1장은 쓰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을 챙긴다. 읽기 시작하면서 고매한 경지가 어쭙잖은 접근을 불허하는 듯 느껴지던 미술에 대한 편견은 블필요함을 알 수 있다. “일반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술계 내부가 아닌 자기 삶에서 미술을 봅니다. (중략) 미술을 ‘도구’로 사용합니다. 삶을 위한 재료로 미술을 향유합니다.(중략)중요한 것은 느낌입니다. (중략)세상의 모든 자료는 내 감상에 필요한 각주입니다.(20p)” 이쯤 되면 읽어갈 모든 페이지에 앞에서 급격히 당당해진다. 자신감을 장착하니 ‘미술 글쓰기? 할 수 있어!’싶은 맘이 솟는다.

작품의 ‘숨은’ 의미 찾기(34p)에서 ‘관점’설명이나, 공간예술과 시간예술에서 “미술 글쓰기는 시간이 응축된 공간적인 세계를 시간적으로 번역해서 서술합니다.(52p)”등 어려운 말이지만 전략 또는 설계의 필요성과 작동케 하는 법에 천천히 익숙해진다. 1장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무제’에 대한 설명(28p)이다. ‘무제’라는 제목 앞에서, 알 수 없는 기호 제목들 앞에서, 전시실 8할의 작품이 무제인 ‘무제’의 기차열 앞에서 얼마나 무제의 이유와 근거를 찾아내고 합리화 해보려 애썼던가. 그 날들이 스쳐간다. 이제 조금 편해진다.

2장은 ‘구성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다. 알아야 할 것은 알고 가자 다시금 맘 먹는다. 이 파트는 조금 친숙하다. 이권우 교수님의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복습하듯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안다, 문제는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것! 최북의 “공산무인도”감상문은 동양화의 아름다움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늦게나마 신세계를 엿본다. 글의 마무리도 어렵지만 제목 짓기는 더하다. 제목의 기능 세 가지도 기억해야겠지만 “제목은 유혹이자 감동의 압축파일입니다.(중략) 제목을 잘 지어야 글이 춤을 춥니다. (127p)”등 ‘외우자’ 싶은 문장들이 많다.

쓰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을 3장에서 보여준다. 내적 정보에 해당하는 소재, 매체,기법과 외적 정보에 해당하는 에피소드, 시대적 배경 등을 언급하는데 작품을 대상으로 쓴 글을 실례로 제시하므로 설명에서 끝나지 않고 구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4장은 글감이다. 글의 재료를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인데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며 방법론을 익힐 수 있다. 에피소드 글쓰기, 키워드 또는 비교 글쓰기 등을 다룬다. 특히 비교하는 글쓰기의 예로 들었던 ‘머리로 그린 산, 가슴으로 그린 산’(223p)은 여운을 남긴다. 페터 한트케의 『세잔의 산, 생트빅투아르의 가르침(아트북스)』 속에서 한트케가 따라가던 세잔의 산 이미지가 겹쳐지며, 동시에 친숙한 「인왕제색도」의 알지 못했던 사연에 한번 더 그림을 주목하게 된다.

마지막 장은 쓰면서 알아야 할 것들이다. 제목의 중요성을 다시 언급하며 미술 용어 풀어쓰는 법, 독자에 따라 달라져야 할 글, 퇴고까지 꼼꼼하게 살핀다. 각 장 말미에 흥미로운 주제의 팁과 저자 후기 이후 한 편의 보론까지 꽉 채운 점에서 저자의 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던 나의 미술관 여정, 간혹 사진으로 기록했으나 저장주소를 잃고 어렴풋할 뿐인 작품의 인상이 안개처럼 흐리다. 스톡홀름 증후군까지는 아니더라도 놀라움으로 소름돋고 눈물이 차오르게 하던 어둡고 캄캄한 바탕 속 벼락같이 내뿜던 빛들, 화가가 금가루를 넣었나 왜 그림에서 광채가 터질까 숨막히던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다. “미술 글쓰기 레시피”는 양질의 정보와 방법론으로 무장한 동시에 그림을 감상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일에서 얼마든지 자유로움을 누리라고 따뜻하게 격려하고 또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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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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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투명인간(창비)』 은 2014년 출간된 장편 소설로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반 세기를 거슬러 주인공 만수를 중심으로 그 시간을 살아낸 사람들을 보여준다. “5월 초순이 되면 자전거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등장한다. 그들 중에는 만에 하나쯤, 그러니까 0.01퍼센트의 확률로 대단히 드물긴 하지만 투명인간도 있다. 나부터 그러니까.(6p)” 투신 자살을 막기 위한 캠페인 메시지를 보며 투명인간은 생각한다. “연약하고 다정하다가 극악무도해지기도 하고 그런 채로 사랑에 빠지는가 하면 나르시시즘과 자기환멸 사이를 널뛰기하면서 바퀴벌레처럼 강인하게 생존을 이어가는 인간, 인간들.(9p)” 그 인간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그가 다리 위헤서 우연히 만난 또 다른 투명인간은 김만수다.

소설은 연극적이다. 단편적으로 이어지는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모두 ‘나’로 ‘만석꾼’이라 불리고도 남을 김만수의 할아버지로부터 이어지는 가계도 속 인물들은 각자의 사연을 들려준다. 자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무대 위로 올라 조명 아래 모노드라마를 펼치듯이 풀어내는 목소리가 쌓이면서 점차 사실로써의 삶이 입체적이고도 생생하게 살아난다. 매번 바뀌는 화자를 바로 알아차리게 될 때도 있지만 페이지를 넘기며 유추할 때도 있어 주인공 찾기는 책을 읽어나가는 또 다른 재미다. 어릴 때 입다 작아져버린 옷을 오리고 바느질해 이은 조각이불이 각각의 사연을 간직한 채 전체적으로 압도하듯이 하나의 이야기 조각은 잇대어지고 자리잡아 다른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김만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성향이 다른 부자지간이다. 깊은 산골 개운리까지 들어가게 한 장본인이라 생각해 아들은 아버지에게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인생 망치고 집안 망조 들게 하는 공부나 책 따위와는 담을 쌓았고(29p) 일부러 더 목소리를 높힌다. “나는 매일 황소처럼 일했고 늘어나는 식구를 먹여 살렸다. 그런 일들이 나를 나로 만들었다. 헛된 말과 이루지 못할 계획이 아니라.(30p)” 만수 아버지는 세 딸과 세 아들에게 식구는 분신이고 뿌리고 울타리이며 끝까지 책임져야 할 존재임을 늘 강조한다. 개운리에서의 시간은 가난하고 고달프지만 동화처럼 아름답게 그려진다. 맏형 백수가 만수에게 돈 끼호테의 로시난떼에 비유해 하는 따뜻한 말, 평생의 노래가 된 “클레멘타인”을 배우던 순간, 고드름 선물과 세상 하나밖에 없는 빙수 등 빛이 난다. 특히 훗날 가슴아픈 일을 당한 명희의 목소리라 다시 읽을 때 더 처연하다.

어린 시절의 학창 시절은 모두의 추억을 소환한다. 시대적 배경은 깨알 장치로 등장해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이리 저리 둘러보고 멈춰있게 만든다. 잊고 있던 분위기를 알아채기도, 이건 모르겠네 하는 장면에서는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한다. 형제들이 성장하며 개성도 뚜렷해지고 경험의 폭도 인생의 방향도 달라지지만 죽음과 사고로 지울 수 없는 슬픔을 각인하게 된다. 모두가 어려운 시절, 위험과 함정에 빠지기도 하고 공안과 고문이라는 무서운 일들 앞에 인격이 스러지는 일들도 기록된다. 안타까운 선택들을 막을 수는 없었을까 잘못되기 시작한 첫 순간을 바꿀 수 있다면 달라졌을까 되풀이 생각하게 된다. 속도를 내며 불안하게 일방향 성장하던 나라의 시대적 현주소와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임박한 삶의 문제에 내몰리던 개인의 이야기는 두 개의 매듭처럼 얽힌다.

“우리 할아버지가 젊을 때 빚을 져서는 증조할머니하고 할머니, 아버지 데리고 밤중에 도망쳐가지고 내 고향 개운리 산골짜기로 들어오셨다는구만. 그래서 아버지가 어머니하고 결혼해서 우리 육남매를 낳았지. 우리 할아버지가 빚 때문에 도망치지 않았으면 나도 세상에 없었을 거야. 나는 빚 때문에 태어난 거라고. 어떨 때는 빚도 고마운 거야.(302p)” 선하고 열심이며 언제나 솔선수범하던 만수가 삶을 바라보는 무한 긍정의 태도를 보여주지만 이에 드리워지는 그늘도 무시할 수는 없다.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노력인지 고생인지 희망인지에 턱걸이 한 채 안간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왜 투명인간인가? 해리 포터가 아버지의 유산으로 받은, 세상에 하나 뿐인 투명 망토가 있다면 하고 선망하고 상상할 때의 신비로움과는 다르다. ‘투명 인간’은 도입부 이후 작품 속에서 스치듯 짧은 힌트를 남긴다. 친구 이동해와 “맞다. 인간은 염력으로 피라미드도 세우고 신대륙도 발견했다. 투명인간도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거다.(152p)”, 탈영병 난동 중 시민을 위해 움직였던 전경 김만수를 보며(211p), 김만수의 아내가 태석이에게 힘들어하며 “하지만 태석이는 나를 무시했다. 내가 투명인간이라도 되는 것처럼.(339p)”말할 때 그렇다. 간절함이 끓는점에 도달했을 때, 그렇지 않다면 일반론적인 ‘무시’의 의미일까 유추하는 중 감정이 증폭되는 부분은 만수 부부가 양자로 들인 조카 태석이 장면이다. 가장 예기치 못했던 장면, 감동과 애틋한, 슬프고 마음 아픈 복합적인 감정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 부분을 그렇게 종결을 얼마 안 남기고 맞게 되고 “투명인간 론”을 이후 본격 서술한다.

“갑자기 그게 됐다.(중략) 나는 내 삶의 어느 순간보다 나다웠다.(346p)”, “그게된다, 가끔. 그래서 나는 살 수 있다.(348p)” 소설은 인생의 여러 얼굴, 어느 하나 같을 수 없는 다양한 삶의 모습, 동기와 행동과 그로인한 결과,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우연까지 엮어 파노라마를 펼쳐보인다. 한 가족의 일대기를 따라가며 시 공간의 교집합에서 우리 각자의 추억을, 웃음과 눈물을 발견하게도 된다. 정밀 묘사같은 에피소드의 생생한 재현과 극한 판타지의 결합이 묘하게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투명인간”은 예술로서의 창작물이면서 동시에 유산으로서의 기록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우리들의 이야기, 살아가며 살아내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책 속에서>

-살아 있고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아도 서로를 안다.(362p)

-보이지 않는 인간은 스스로를 투명하다고 믿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착각, 맹신, 오해이거나 그저 이야기에 불과하거나, 사람들은 그런 데서라도 희망과 위안을 찾으려 하니까. 신화와 동화, 민담은 그래서 생겨났다. 이룰 수 없는 희망을 이야기로 바꾼 것이다. 이야기는 비록 이루어질 수 없다 해도 달콤한 위로가 되어준다. 그래서 허망한 줄 알면서도 인류는 아직 이야기로부터 젖을 떼지 못했다. (364p)

-지금 같은 순간이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내가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 기쁨이 내 영혼을 가득 채우며 차오른다.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느낌, 개인의 벽을 넘어 존재가 뒤섞이고 서로의 가장 깊은 곳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진짜 나다.(3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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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층 나무 집 456 Book 클럽
앤디 그리피스 지음, 테리 덴톤 그림 / 시공주니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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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그리피스의 『13층 나무집(시공주니어/테리 덴톤 그림)』을 읽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 앤디 그리피스의 기념비적인 첫 작품이 우리 나라에서 출간된 2015년 이후, 7년이 지난 이 순간까지 13층씩 높아지는 나무집은 매니아 독자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일단 시리즈의 첫 책 “13층 나무집”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예의일 것이기에 빨갛고 노랗고 초록 가득한 표지부터 만나본다. 면지는 더 근사하다. 성장기에 한 번쯤 꿈꾸는 나무 위의 집을 평범한 상상력으로는 불가능한 환상 경지로가지 완성하고 있다. 어딘가에 있다고 믿어버리고 싶을 만큼, 책을 읽고 나면 그 소망의 실현은 한 뼘 가까워지리라 설레이는 마음으로 독자는 나무집 세계에 입성한다.

앤디와 테리, 두 친구가 사는 나무집 입구는 언뜻 평범해 보인다. 그러나 나무사다리 위의 공간은 깨알 글씨와 흑백의 선으로 채워졌음에도 컬러풀한 면지의 화려함보다 매력적이다. 중요한 방과 장치를 설명하다 자기 소개를 하는 장면, “나무 집은 우리가 사는 곳이기도 하지만, 함께 책을 만드는 곳이기도 해. 나는 글을 쓰고 테리는 그림을 그리지.”(23p) 둘이 쓰고 그린 책 더미, 제목을 보니 두 친구가 조금 달라보인다. 출판사 사장인 큰코 씨는 두 친구에게 원고를 독촉한다. 마감은 내일 오후 5시 까지.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최악의 전 직장, 원숭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데 있을 수 없는일, 그렇다면 원고를 완성하는 수 밖에. 급한 중에 맞춤법 지적을 받자 하는 말, “이봐요, 로알드 달 작가 선생! 그렇게 글쓰기에 대해 잘 알면, 당신이 써 보지그래요?”(74p) 유쾌하게 받는다. 사실, 이 책에서 로알드 달이 언뜻 겹쳐보이기도 했다. 특히 “제임스와 슈퍼복숭아”는 제일 먼저 떠올랐다.

사건이 발생하고 재치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하고, 한 장면에 사로잡혀 “남은 평생을 머리에 유리병을 쓰고 살아야 한다면 어떨까”(94p)등 엉뚱한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는 와중에도 시간은 간다. 그러나 영리한 두 친구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식은 죽 먹기야, 앤디. 우리는 아무것도 구상할 필요가 없어. 오늘 하루는 정말 흥미진진했잖아.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이걸 전부 다 쓰고 그리는 거야. 그럼 우리 책이 만들어지는 거지!”(227p) 그리고“이렇게 여러분이 이 책을 읽게 되었고, 우리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얘기!”(244p)라며 유쾌하게 끝난다. 아기자기한 소재들이 따로 도드라지지 않고 잘 연결되고, 결론까지 속도감 있게 마무리된다. 글쓰기 테마가 들어가 있다는 점, 시간에 쫓기면서도 성향이 다른 두 친구가 조화를 이루며 문제해결력을 발휘하는 점도 멋지다. 글과 그림의 자유로운 배치, 프레임이나 말주머니를 사용한 만화적 구성도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초등 고학년 독서 동아리 어린이 친구들이 필독도서에 추가하기를 원했던 책이다. 그렇다면 첫 권과 마지막 권을 지정했는데 물론 모두 읽으면 나무랄 데가 없겠고 13층을 읽었으니 자연히 26층에 손이 제일 먼저갈 수도 있겠다. 친구들의 신나는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것 같다.

책 속에서>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거실로 올라갔다. 이제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한눈팔면 안 된다. 변명도 안 된다. 하늘을 나는 고양이도, 거대 바나나 공격도, 왈왈 짖는 멍멍이도, 가짜 인어도, 나쁜 바다 괴물도, 팝콘 세례도, 레모네이드 마구 마시기도, 트림 가스로 가득 찬 풍선껌 풍선도, 마시멜로로 만들어진 트램펄린도 더는 안 된다. 우리가 할 일은 책을 쓰고 그리는 일뿐이다.(1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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