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의 『성(권혁준 옮김, 창비, 1926)』은 “실종자”, “소송”과 함께 고독의 3부작이라 불리는 세 작품 중 마지막 미완성 장편이다. 또한 미완성임에도 "작가의 집필의도와 구상이 훼손되지 않은 작품"(p.447)으로 평가된다. 카프카는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 사회에서 성장하고 독문학과 법학을 공부했으며 어릴 때부터 작가를 꿈꿔 14년 동안 상해보험공사 직장생활과 글쓰기를 병행한다. 그는 1904년 「어느 투쟁의 기록」을 시작으로 「변신」 「유형지에서」 등의 단편과 『실종자』 『소송』 『성』등 장편을 비롯해 일기, 편지 등 많은 글을 남겼다. 헤르만 헤세는 1935년 바젤의 투고 글에서 “마침내 나오고 있는 아름다운 카프카 전집의 제3권은 소설 <성>이다. 약 10년 전에 막스 브로트가 작가의 유고에서 찾아낸 작품이다.”라며 “대부분의 독자들이 가장 좋아할 작품”이라고 덧붙인다. 또한 “저 두려운 <소송>”과는 다른, 차라리 “대작 동화라 할 만한 작품”(p.31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김영사)이라고 평한다. 시간을 거슬러 작품이 막 출간되던 순간의 황홀함이 전해진다. 또한 독일의 저명한 평론가, 학자들이 꼽은 “20세기 10대 독일 소설”에서 『소송』과 『성』은 두 번째와 아홉 번째 순서에 이름을 올린다.
“K가 도착한 때는 늦은 저녁이었다.”(p.7) 평이한 첫 문장은 이후 예측 불가능한 지점으로 독자를 데려갈 것이다. 초빙을 받고 마을에 도착한 토지측량사 K는 날이 밝고 나면 본격적으로 업무에 착수하거나 최소한 그를 위한 절차가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성에서 맡기려는 일을 파악하고 성에, 혹은 환경이 여의치 않을 경우 성 아래 마을에 머물기를 선택하고자 한다. 첫 날, 그는 성을 향해서 길을 나선다. 성의 외관을 살피고 방향을 감지하며 나아가지만 길은 성으로 이어지지 않고 의도를 갖고 주인공을 내치는 듯 거리를 좁히지 않는다.결국 도달하지 못한 채 성은 다시 멀어져간다. 책은 총 25장으로 16장을 제외하고 20장까지는 소제목이 있고 21장부터 마지막까지는 장 번호로만 표기하고 있다. 막스 브로트가 편집한 초판과 달리 비평판은 35년의 두 번째 판 이후 1982년 발간되었다.
K는 조력자여야 하나 훼방꾼과 진배없는 두 명의 조수를 만난다. 조수로 삼고 싶은 성의 심부름꾼 바르나바스를 통해 성에 도달코자 한다. 바르나바스는 안내자로 다가왔을까? 그는 곧 간파한다. 보이는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위장한 조력자는 “그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고 그의 힘을 파괴하는 데 일조했”(p.49)음을. 헤렌호프에서 만난 프리다는 훨씬 나아 보인다. 클람에게 가는 여정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인물이다. K는 그녀를 선택한다. K는 멈추지 않고 모색하며 전진한다. 입장을 밝히는데 주저함이 없다. 분노를 제어하기 어려운 순간에도 희생자인양 하기보다는 돌파하고자 한다. 허들 넘기에 초점을 맞추는 K, 주도면밀한 그임에도 접근을 허용치않는 공략은 전방위적이고 다차원적이다. 그는 결국 어디에 닿는가.
몇 년 전부터 재독이 시급한 작품들이 체증처럼 떠나지 않았다. 그 중 꼽히는 작품이 카프카의 『성』이었다. 『성』의 이미지와 주제, 힌트를 선명히 불러내는 또 다른 작품들을 만날 때마다 K가 성을 갈급해하듯 나 또한 조급증이 들었다. 카프카 전작읽기에 참여한 이유도 『성』 때문이었다. 오래 전 두 권짜리 문고본 깨알 글씨로 읽었던 『성』, 어떤 페이지들은 확고한 인상으로 그 후로도 오랫동안 기억에 박혀 있었다. 대표적인 세 장면과 재회하자 생각보다 지엽적이거나 스쳐 지나가는 장면임에 놀랍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반짝인다. 밑줄과 별을 그리고 몇 번을 다시 보태도 부족할, 나와 함께 나이 든 찰나이자 정신에 박제 돼버린 문장, 스러지지 않는 빛이다.
그 중 하나. “하지만 그를 직접 대면해본 적은 없어요. 그는 이곳에 내려올 수 없이 언제나 일에 파묻혀 지내거든요. 내가 들은 바로는 그의 사무실에는 차곡차곡 쌓인 서류 뭉치 기둥들이 사방벽을 가리며 가득 차 있는데, 그것들 모두 소르디니가 당장 처리중인 서류들이라는 거예요. 그 뭉치에서 서류들을 빼기도 하고 끼워넣기도 하는데 모든 일이 몹시 다급하게 이루어져 서류 뭉치 기둥들이 줄곧 무너진다고 해요. 기둥이 바닥으로 무너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는 것은 소르디니 사무실의 특징이 되었어요. 그런 점에서 소르디니는 진정한 일꾼이고, 하찮은 일에도 중요한 일을 대할 때와 똑같은 세심함을 기울이는 사람입니다.”(p.97) 이토록 환상적일수가! 나도 이렇게 일하고 싶다고 청년일 때 선망했다. 물론 지금은 다르다. 다정하면서도 차디찬 문체로 카프카는 진기한 장면과 상황을 만들어내고 각각의 이미지는 유기체처럼 연결된다. 물론 분리시키고 떼어내도 훼손당하지 않을 에너지를 갖는다. “기이한 것은 언제나 아름답고, 기이한 것은 모두 아름다우며, 사실 기이한 것만이 아름답다.”는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1924)”에 꼭 맞는 세계다.
카프카의 다른 작품들처럼 『성』 역시 모순과 부조리, 부조화의 일상성을 치밀하게 구현한다. 우리는 도달하려는 목적지를 구체화함으로 대상에 근접하고, 베일을 거두고 싶다. 하지만 드러내고자 할수록 숨는 이치. -그런데 관청은, 그 대신 관청은, 이렇게 함으로써 관청은, 대신 관청과는, 따라서 관청이, 그렇게 되면 관청은...(p.86)-하고 이어지는 서술은 집중할수록 모호함만을 배가시킨다. 그렇다면 귀 기울여 보자. 『성』 읽기는 독자에게 듣기이면서 동시에 보기다. 필요한 것은 어쩌면 시력보다 청력이다. 인물들이 자신의 감정과 논지를 마치 끝나지 않을 것처럼 풀어낼 때 독자는 최대한 집중해서 그 목소리를 쫓는다. 그 목소리가 불러일으키는 연상 작용까지 놓치지 않으려 의지를 곧추세우는 일이 『성』 읽기다. 상징과 은유, 장치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별개다. 독자의 기억에 정돈되어가는 프리다가 있다면 예레미아스와 함께 있는 프리다는 낯설면서도 수용가능하다. 이에 더해 페피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프리다는 또 다른 인물이다. 인물들은 시작과 끝을 가진 작품 안에서 유동적이고 변신을 거듭하며 여전히 고정되기를 거부한다. 이번에도 좌절은 익숙하다. 쓰는 사람도 있는데 읽기도 힘들다니, 정녕 너는 대리석이라는 말인가! 그래도 읽는 대리석 아니냐 편든다.
토지 측량 좀 하자고요, 토지 측량을 하려했을 뿐이고, 요청에 부응하려했을 뿐이고, 상식적이고 마땅한 최소한의 의무이자 권리를 원했을 뿐이다. 우리는 문제될 일이 없는 사항에 삐끗 잘못이 인지될 때 약간의 수고로 바로잡을 수 있다고 여긴다. 없었으면 더 좋았을, 그러나 직면케 되버린 사건이기에 성실하게 절차를 따라가다보면 ‘문제 해결’이라는 해피 엔딩과 만날 것이다. 나, 원래 침착한 사람이야!라는 증명까지 부가적으로 따라오면 좋으련만 한 순간 폭풍의 눈 안에 갇혀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 틈새로도 발을 내뻗을 수 없는 토네이도급 폭풍의 눈, 어쩌면 인생이라는 폭풍의 눈일까. 이런 일은 낯설지 않다. K의 비현실적인 고투가 우리 삶의 재현일 수 있고 수 많은 은유는 사소한 개인의 일상이 “평행이동”한 듯, 나아가 “합동”임이 증명되는 순간이 작품 안에서 연속된다. 이와 같은 확인이 『성』을 읽는 일, 성으로 향하는 K가 겪는 일, K의 시간을 함께 통과하는 독자가 경험을 나누고 무엇이 되었건 명명하고자 애쓰는 일이다. 『성』의 권위있는 해석들에 비교해 나의 해석은 부분집합으로 포함될지, 교집합에 방점을 둘지, 독립적인 서로소일지, 아니면 애초에 어긋난 오해, 잘못된 방향일수도 있겠다. ’명명하기‘는 그럼에도 중요하다. 그 후로 계속해서 다르게 읽힐 발견의 텍스트이기에 더 그렇다.
마크롤 가비에로(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나 조반니 드로고(타타르인의 사막), 요제프 K(소송)에게서도 확인했던 하나의 목표에 투신하는 인간상은 K와 동일한 결말을 맞는다. 카프카의 친구이자 유고를 세상에 내놓았던 막스 브로트에게 구두로 전했던 성의 결말(p.485)과 같다. 그 쓸쓸한 최후에 어떤 의미부여가 가능할까. 의미라는 단어에 해당하지 않는, 형식상 필요했던 그저 왜소한 온점만으로 기능하는가. 너무도 가차없었던 개고생 대(vs) 먼지처럼 녹아버리는, 쪼그라들며 흩어져버리는 죽음은 양적으로도 불균형 자체다. 아마도 구원의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모두에게 구원은 비밀하고 개별적으로 노크할 것이며 순간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비록 K만한 기개가 없을지라도 누구나 삶에서 최대한 분투한다. 그런 대결, 무익하고 쓸모없지만 그렇기에 아름다울 안간힘에 책은 미완의 노래를 부른다. 작가 자신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부른 노래, 시간을 뛰어넘어 바통은 이어지고 『성』은 지금껏 메아리치며 공명한다. 걸음에 힘이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