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EBSBOOKS)』는 당대의 ‘문제적 인물’들을 만나며 끊임없이 시대의 징후를 읽어온 인터뷰어 지승호 작가가 철학자 강신주를 10년 만에 다시 만난 기록이다. 또한 자신만의 철학으로 일관된 삶을 살아가면서도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쟁점을 품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기획된 인터뷰집 시리즈 〈EBS 인생문답〉의 첫 책이기도 하다. 강신주는 ‘사랑과 자유의 철학자’, ‘거리의 철학자’ 등으로 불리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면서 동시에 가장 사랑받는 철학자로 《철학 vs 철학 : 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강신주의 감정수업》 《강신주의 다상담》등을 썼다. 50시간의 인터뷰를 기록했던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이후 10년 만에 마주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지승호와 강신주는 연약해진 육신을 달래며 그럼에도 더 빛나는 통찰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첫 만남,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다”에서 강신주는 자신이 다뤄왔던 사람들을 “우리 패밀리들”이라고 칭한다. <강신주의 역사철학·정치철학>은 그들을 정연하게 기록하는데 많은 지배 담론이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패밀리를 “많이 구축”함으로써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소수가 아니라는 것”(p.41)을 보여주고자 한다. “사람의 문맥을 읽는다는 것”에서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의미를 명확히 한다. 그는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콘텍스트까지 이해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며(p.50) 말이나 텍스트에 사로잡히면 안되는데 “우리가 철학과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텍스트와 콘텍스트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능력을 기르는 거”(p.51)라고 설명한다. 변화하지 않는 가치와 연결된 철학자의 역할을 물을때 변화하니까 덧없는 것이 아니고 변화하니까,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소중하다며 “인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은 계속 존재할 테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없어져요. 그래서 소중한 거죠.”(p.68)라고 덧붙힌다. 그는 영원에 대한 욕망에 흐르는 권력적이고 지배적인 사유를 지적하며 영원의 형이상학, 피의 형이상학, 돈의 형이상학이 지닌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다. 강신주는 쉬운 언어로 초점을 무엇에 맞춰야 할지 환기시킨다.
4장, “스마트폰 사회경제학”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혁명이라 볼 수 없고 그저 스마트폰이 확장시킨 시장이자 젊은 세대에게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라는 이야기라 본다. 더 이상 노령세대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과 소통 시간도 빼앗긴다. 스마트폰이 MZ세대의 “외장형 심장”(p.123)이 되어버렸고 이 상품이 필수품인지 사치품인지 고민할 정치 경제학적 감각이 없는 그들은 “자신의 쾌락과 불쾌, 혹은 이익과 불리를 계산하는 벤담적 자아, 이기적인 개인주의가 스마트폰에서 마침내 완성”된다고 평한다. 그 위험을 알지만 제어하기 어려운 순환고리를 독자는 한 번 더 확인케된다. 부르주아사회의 특징을 이론적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p.137)고 설명하는 지점, 나아가 전문가를 인간적 불구로 보는 시선도 인상깊다. 5장에서는 “내 말을 듣지 않는 사람,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서 내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을 기르는 것이 진짜 교육”(p.168)이라고 교육을 재정의한다.
책은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주요 문제들을 깊이 들여다본다. 현상을 분석하는데 머물지 않고 근본과 본질을 건드려 원인을 노출시킨다. 이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고 나은 미래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철학자의 답변은 현학적이지 않았다. 어원을 풀어 이해시키고 과거의 예가 어떻게 현대에 재현되는지 보여주거나 논리와 논리가 연결될 때 느껴지는 쾌감은 이 책의 부가적 장점이다. 인용을 위해 등장하는 책들이 팡세 재독이 필요하다는 자각을 비롯해 필독 문사철 범위를 확장시킨다. 또한 철학자가 애정과 자부심으로 모은 그의 패밀리들을 함께 기대하며 비록 다 읽지는 못할지라도 일단 사두리라 마음먹게 했다. 현실 밀착형 답변은 사유하는 삶이 어떻게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작동 가능한가를 제시한다. 그가 다룰 카프카와 베케트는 얼마나 새롭고도 아름다울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훌륭한 예술가와 가짜 예술가의 대조(p.337), 나가르주나와 비트겐슈타인을 동·서양의 에베레스트에 견주며 결론을 내지 않고 지적으로 날카롭게 만듦으로써 철학자가 가져야 할 근본적인 태도를 보여준다고 일깨우는 등 읽는 내내 귀를 기울이게 된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의 유명한 구절을 제목으로 삼았다. 열 한 번의 만남을 따라가며 더 오래 머물고 싶은 대화의 장면들이 있었지만 에필로그는 정점을 찍는다. 먼지 뒤집어쓰며 오랫동안 책꽂이에 서있던 “해변의 묘지”가 아무리 찾아도 눈에 띄지 않는다. 가지고 있던 구판은 절판이고 개정판이라도 다시 들여야겠다. 이 지혜롭고도 다정한, 초록과 푸름으로 아름답기까지 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를 진심을 담아 권하며 앞으로 10년 후의 인터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