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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가 - 식물에서 발견한 새로운 지능의 미래
파코 칼보 지음, 하인해 옮김 / 휴머니스트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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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후 주관적으로 적은 후기입니다-


식물을 전공으로 삼았고 꽤 오랜 시간을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고 공부하던 시기가 있었다. 사실 생물학과에서 식물은 그다지 인기 있는 전공이 아니다. 대부분은 분자생물학으로 빠지고 아니면 동물분야로 진출했다. 분자생물학의 인기가 어쩐지 불편하고 동물을 해부하고 실험해야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식물생리로 관심을 이끌었던 것 같다.
몇 년 전 랩걸을 읽을 때 내가 포기한 분야를 열심히 살아가는 저자의 모습에 존경과 부러움이 섞인 복잡한 심정으로 읽었다. 세계식물지능을 논한다는 이 책 [뇌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가]는 반드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인 파코 칼보교수는 스페인에서 과학철학 교수다. 또한 식물 신호 전달 및 행동철학연구소 '민트(MINT, Mivimal Inteligence Laboratory)'의 연구소장이다 작가 소개를 읽으며 연구소 이름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동물학자로 유명한 프란스 드 발교수는 "우리가 과연 동물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했다. 이 책의 저자는 같은 질문을 식물에게 던진다. 그러면서 똑같은 질문을 덧붙인다. "우리는 그만큼 용감할까"
저자는 다른 존재를 알아야 우리 자신을 알 수 있다고 말하며 인류가 가시적인 뇌와 뉴런의 집합이 없다면 지능이 없다고 여기는 몹시 좁은 시야에 갇혀있다고 지적한다.


생각보다 식물은 매우 고차원적인 일들을 수행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식물을 그저 배경으로만 여긴다. 식물의 생태학적 중요성과 인간에게 선사하는 경제학적 가치 또한 이해하지 못 하고 동물의 움직임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식물맹"이라고 부른다고 정의한다. 다윈 이전까지 인간들을 거의 모두가 식물맹이었으며 지구상의 생명체에 모두 위계질서를 두는 오만을 저지르고 있는데 아직 대부분이 사람들에게 남아있는 경향이다.
ㅡ 우리는 단세포보다는 다세포를 , 단순한 유기체보다는 복잡한 유기체를, 무척추동물보다는 척추동물을 , 본능적 유기체보다는 지능적 유기체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p50
심지어 19세기까지는 식물이 유성생식 유기체라는 사실도 부정해 왔다는 것이다. 식물이 오랜 시간 수많은 생명체의 버팀목이 되어준 것을 생각하며 우리 인간은 식물에게 지나쳤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물을 학문적으로 식물의 속도에 맞춰 관할하고 연구한 학자가 바로 다윈이다.

식물의 지능을 이야기하는 1장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물 중심주의라서 동물과 식물에 보이는 관심에 근본 차이가 있고 그로 인해 우리의 시각과 뇌에서 식물에 대해서는 처리능력이 많이 쓰이지 않고 있다고 해서 조금은 놀라웠다. 생각해 보면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식물이긴 하다.
지능을 이야기하기 전에 나는 항상 지능이란 단어와 기준이 지극히 인간중심적이라고 생각해 왔다. 식물들의 처리 방식이 꼭 인간과 비슷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제목처럼 식물은 뇌와 신경이 없는데 무슨 지능이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에 대해 다윈부터 꽤 많은 식물학자들이 "뿌리 뇌"개념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는 연구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나조차도 익숙한 식물학자인 스테파노 만쿠소는 식물 뇌가 어디에 자리할지를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과학자들이 식물의 속도에 맞춰 관찰한 결과 놀라운 결과를 계속 얻었다.
먼저 식물은 적응을 통해 식량 확보 문제를 독특하게 푼다고 한다.
대부분의 녹색식물은 광합성을 하고 균류는 다른 땅속 영양분들을 흡수하는데 몇몇 식물들은 이 두 가지 방법 외에 다른 방법으로 영양분을 얻는다고 한다. 바로 도둑질이다. 다른 식물들의 공생 네트워크에 침입해 영양분을 훔치는 식물을 '스키아필라 야쿠시멘시스'라고 부른다.
또한 식물은 주변 생명체와 심리전을 벌인다.
토마토는 초식곤충의 공격을 받으면 특수한 화학물질을 분비하여 이 초식동물을 육식동물로 바꾸어버린다.
토마토가 생성한 화학물질이 애벌레의 입맛을 바꾸어 버리는데 주변의 토마토들도 동시에 같은 물질을 분비해서 굶주린 곤충들이 다른 곤충을 공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주변에서 일어날 변화를 예측하여 미리 준비를 하는 식물(p109)도 있고 경호원을 부르는 식물도 있다.
위와 같은 예들은 매우 놀라운데도 식물의 학습능력이라는 인정보다는 적응방식의 진화로 여기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해서 한때의 식물연구원이었던 사람으로 살짝 아쉬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동물들이 동족을 인식하는 것처럼 식물도 사회적 지능을 지니고 있으며(p124, 공기와 뿌리를 통해 화학물질로 동족을 인식함) 스스로 내린 선택의 위험성을 판단할 수도 있다.
식물은 동물과 같은 뉴런이 없지만 동물처럼 조직을 통해 전기를 전달하면서 내부소통을 할 수 있다.
ㅡ 신경이 없는 식물에서는 뿌리에서 잎까지 이어지는 관으로 이루어진 관다발계가 수송망 역할을 하며 전기신호를 전달한다. p139
동물에게서 중요한 GABA와 글루탐산염 등은 식물에서도 생성된다.
ㅡ동물학에서 GABA는 뉴런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초점을 맞추지만 식물에서는 pH조절 같은 대사기능을 한다 또한 포유류의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탐산염이 식물에서도 통증 신호를 빠르게 전달한다. 동물에서 글루탐산여 수용체와 관련한 유전자들은 식물의 유전자들과 거의 같다. GABA와 글루탐산염 같은 분자들은 세포 성장과 발달의 바탕이 되는 식물행동에 특히 중요하다. p144- 145 요약발췌
식물도 동물처럼 통증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식물의 스트레스는 나노 센서로 직접 측정이 가능하다. p263) 클로로폼으로 마취가 가능하다.
식물이 동물처럼 그러나 동물과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며 소통을 하고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이 식물이 잘 적응한 것인지 아니면 식물에게 의식이 있다는 증거인지는 아직 결론이 나진 않았다. 저자의 주장을 따라온 나는 식물에게 의식이 있다는 판단을 내리던 찰나에 저자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두 개 던진다.
첫째는 농작물이 우리를 길들였다는 것이다.
ㅡ 지금의 밀이나 옥수수 종들은 과거 고난 속에 살던 종보다 훨씬 윤택한 삶을 산다. 현실에 안주하며 둔감해졌지만, 이는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인간 보호자들이 농작물의 이익을 보호해 준다. 하지만 사실은 농작물이 우리를 길들였다고도 할 수 있다. p 250
또 하나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였는데 채식주의자들의 윤리체계가 흔들린다는 점이다.
식물을 먹었던 건 동물만 고통을 느낀다는 생각으로 식물을 먹는 것이 윤리적으로 안전한 행위라고 생각해 왔는데 식물 역시 주관적 경험을 겪는다는 사실이 혼란스럽다는 점이다.


저자는 눈을 돌려 화성을 이야기한다. 화성에 보낸 탐사로봇이 왜 꼭 바퀴를 가지고 움직여야 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동대신 성장해도 되지 않을까 하며 저자는 식물로봇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2020년 조지아대학교 연구팀은 덩굴성 콩을 로봇 개발의 핵심 모형으로 삼았고 스탠퍼드와 캘리포니아의 연구자들은 그로우 봇 Growbot (식물이 잎끝에서 싹을 내듯이 성장하는 로봇)을 개발했다. 식물과 비슷한 연성로봇이 만들어질수록 환경 적응력이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저자는 전망한다.
처음과 끝에서 다윈을 이야기한 저자는 다윈처럼 생각할 것을 주문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식물지능과 식물감정을 증명하고 입증하기 위해 무척 애쓰는 책이었다.
책에도 여러 번 언급되는 스테파노 만쿠소는 식물의 지능을 이해하면 우리와 다른 외계 생명체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윤리적 존재로 여기려면 다른 유기체의 괴로움을 고려해야 한다고도 했다.
식물과 우리는 매우 다르다.
그러나 모두 동일한 하나의 세포에서 출발했다. 생명의 나무에서 거리가 많이 멀어졌지만 식물을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이 지구를 배려하는 방법은 맞을 것이다.
식물맹부터 벗어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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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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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쓰리걸즈'로 불리던 여자친구들이 있었다.
글쓰는 직업을 가진 독신의 다미코, 영국에서 생활하다가 이제 귀국한 활달한 리에 그리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며 사는 사키다.
출석부에 이름이 나란히 있어서 친해졌던 세 친구는 리에가 영국 생활을 접고 귀국하자 50대 후반의 나이에 다시 뭉치게 되었다.
이 세 명의 중년 여성들을 중심으로 리에의 조카인 10대 사쿠와 사쿠의 친구 아이리, 다미코를 잘 따르는 죽은 친구의 딸인 마도카와 마도카의 연인인 리쿠토, 그리고 다미코의 어머니 가루오의 이야기들이 잔잔한 일일 드라마처럼 엮인 소설이다.
사실 잔잔하다고 하기엔 내부로 들어가서 당사자가 되어보면 큰 사건일 수도 있다. 연인과의 이별이라던가 도박으로 경찰서 신세를 진다거나 백내장 수술을 받는 다거나 하는 일들 말이다.
그러나 옛 연인이 편안한 친구가 되고 젊은 시절에 열심히 노력해서 따놓은 수많은 자격증들이 든든해지는 나이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소설내에서는 분명 호들갑스럽지만) 읽는 나에게는 차분하단 느낌이 들게 했다. 350페이지가 넘는 책임에도 자극적이라던가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지점들은 없었다.
번역가 김난주님의 표현대로 어디에나 있을 법하면서도 조금은 특별하고 전형적이면서도 조금은 다른 오십대 후반의 세 여자를 둘러싸고 흘허가는 일상 속 소소한 이야기들이 담긴 책이 이 책 [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이다.


다미코와 리에 그리고 사키는 대학 시절 서양 소설에 등장하는 음식과 옷,가구와 습관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던 세대니 서양의 문화가 매우 생소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쓰리걸즈는 외국 소설에 묘사된 물건이나 음식등을 상상하고 제멋대로 이미지를 만드는 경우들이 많았다.
어딘가 레트로하고 기품이 있어보이던 물건의 실재를 알고 나서는 실망도 하지만 그 당시에 검색기능이 없던 점을 다행이라고도 여긴다.
📔 인터넷이 정말 편리하더라. 뭐든 조사할 수 있으니 말이야. 그 시절에도 인터넷이 있었다면, 포크파이 해트도 셔닐도 바로 검색해서 알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아서 오히려 다행이다 싶기도 해. 안 그래? 정체를 알 수 없어서, 그래서 이렇게 시간이 오래 지나도록 기억하리만큼 인상적이었던 거잖아 P188
📕 사키가 사진을 보여 준 후로 다미코는 문득문득 셔닐 손수건과 그에 대한 실망이 떠오르곤 한다. 셋이 뭘 모르고 오해했을 뿐인데, 왠지 배신당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P200
📗 "우리 참 오해가 많았던 인생이네." P204
그이들이 상상한 포크파이 해트와 셔닐, 그리고 캔덜루프 멜론등을 책을 읽으면서 나도 검색해봤다.
셔닐 손수건은 나도 실망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한 리에덕분인지 책에는 다양한 와인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중 낯선 이름의 와인이 하나 있어서 검색해보니 일본에서만 유통되는 와인이었다.
맛이 궁금해진다.

간혹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내 생각을 그대로 표현해준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이 책에서도 그런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다음 문장들에서 그랬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장소가 얼마나 낯선 곳인지 p8
📍마음을 그렇게 자주 열지 않아도 되잖아? p113
📍그것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안심되는 침묵이었다. P299

이전까지 에쿠니 가오리의 글들은 사랑의 중심에 서있던 사람들이 주인공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도발적이라는 느낌도 들었고 때로는 서늘하다 싶은 순간도 있었다.
이 작품은 조금 결이 다르다. 물론 리에의 연애가 들어있긴 하지만 손쉽게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부를 정도의 깊이였다.
그래서인지 내가 나이드는 것처럼 에쿠니 가오리도 나이들었구나가 느껴졌다.
그 점이 아쉽기도 하면서 안심이 되기도 했다. 나와 함께 비슷한 속도로 걸어가는 존재가 있는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미코와 리에와 사키는 그래서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그이들이 운이 좋을 수 있던 또다른 이유는 가오루같은 할머니가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오루처럼 귀엽고 열정적인 할머니가 되고 싶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후 주관적으로 쓴 후기입니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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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감염 예고 - 팬데믹을 예견한 목소리는 왜 묵살되었는가
마이클 루이스 지음, 공민희 옮김 / 다섯수레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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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시절, 세계 최강국이란 미국의 끔찍한 현실을 접하곤 했다. 당시 미국은 무려 50만명이 사망했고, 어느 날 뉴욕타임즈는 1면에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들의 특징을 기록하는 사망기사를 실었다.
미국에는 연방정부가 비상시에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 지를 통제하는 [질병 통제 예방센터]가 있음에도 코로나에 무기력했다. 2020년 4월에는 뉴욕의 일일 사망자가 천명이었고 시체 수습조차 제대로 하지 못 했다.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고 그 이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다큐멘터리처럼 엮은 책이 이 책 [세계 감염 예고]다.
이 책에선 미국이 세계 인구의 4%를 차지하지만 코로나 19사망자의 20%이상이 미국인이었음을 밝히며 트럼프 정부는 하나의 동반질환이었다고까지 말한다.
프롤로그와 1부, 2부 ,3부로 이루어진 책은 프롤로그에선 글래스부녀가 소개된다. 10대 소녀인 딸 로라 글래스는 과학 경진대회에서 발표하기 위한 질병 전파 모델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선보인다.


이어지는 1부는 코비드19 팬데믹 이전 상황이다.
책의 뒤에서 코로나팬데믹 상황에서 뛰어난 활약을 하는 몇몇 사람들을 '울버린즈'리고 부르는데 , 그 울버린즈들이 소개된다.
울버린즈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채리티 딘 이라는 여성 의사다. 초교파라는 이상한 종교집단에서 자랐지만 종교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하고 의사가 되어 공중보건의의 길을 걷는 사람이다.
채리티는 결핵이나 뇌수막염등의 전염병에 대해 기대만큼의 역할을 못 하는 질병통제 예방센터에 실망한다.
그녀가 바라보는 질병통제 예방센터는 정치적 논리로 움직이며 나중에 책잡힐 행동을 모두 꺼리며 세력이 약한 사람에게 정치적 책임을 떠넘기는 일에만 몰두하는 집단이었다.
방관한 죄는 사람들을 죽어 나가게 하지만 책임에서 빠져 나갈 수 있고 행동에 나선 죄는 해고당하게 되는 현실때문이다. (p64) 관료주의의 무기력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아닐 까 싶었다.
그런 상황에서 채리티의 모토는 달라졌다.
ㅡ 누가 구해줄 때까지 기다리지 마라. 아무도 당신을 구하러오지 않는다. p64
세월호의 가만히 있으라와 책임자가 없던 이태원 사태가 떠올랐다.

채리티에 이어서 책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팬데믹에 관심을 가지고 팬데믹예산과 기구를 준비했다는 사실이 소개된다. (사실 이 부분은 좀 놀라웠다. )
조지 부시에 의해 등장한 사람이 라지브와 리처드 해칫, 카터 미셔 등의 사람들이다.
리처드 해칫은 무려 2003년에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 전염병의 확산을 늦추기 위해 사회적 관계망을 끊기 위해 사람들간의 물리적 거리를 벌리는 방법을 제안하고사회적 거리 늘리기 전략이라고 불렀다. (사회적 거리라는 용어는 사실 인류학에서 이미 사용하는 용어라고 한다.)
그리고 2007년도에 질병통제 예방선터에선 팬데믹 전략을 발표한다.
라지브와 리처드가 제안한 내용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지금 읽어보면 코로나 팬데믹 시절, 우리나라가 엄격하게 실시했던 내용들이다.
대부분의 바이라스들은 생명연장을 위해 독성을 점점 낮추고 또한 백신이 개발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초반이 가장 많은 피해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 시기에 재빨리 저런 대응책을 실시한 정부의 태도와 제대로 협조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국민성은 박수받아 마땅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위의 사진의 내용이 발표되고 2009년 오바마 행정부 시기에는 신종플루 (H1N1)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멕시코는 학교를 폐쇄했고 미국은 학교 폐쇄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만 이천명 정도의 사망자에서 그치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



2부는 2003년의 사스( 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중증급성 호흡기 증후군) 으로 시작된다.
사스는 당시에는 충격적이었다.
박쥐가 중간숙주인 박쥐코로나 바이러스로는 최초로 발견된 경우였고 기존 알려진 바이러스들 중에서는 유전적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유전체 분석의 암흑물질]이었기 때문이다.
수시로 위급한 상황에서 울리는 전화를 레드폰이라 부른다는 내용으로 시작된 2부는 사스를 비롯해 발라무시아라는 뇌를 먹는 아메바의 치료법등을 소개하며 질병 예방 및 퇴치에 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지 설명된다.

ㅡ 기업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분야에만 흥미를 보였다. 반면 학계는 출판가치가 있는 연구에만 흥미를 보였고 논문이 완성되면 흥미가 식어버리곤 했다. 이 공백을 정부가 메워야한다. p206


그리고 내용은 2020년의 트럼프 행정부 시기의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시절을 보여준다.
2018년 트럼프의 백악관은 미국인의 삶을 위협하는 건 오직 다른 나라뿐이라는 지침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ㅡ 부시와 오바마 정부가 주목했던 다른 종류의 위렵들은 지하에 처박혔다. 볼턴은 백악관을 재설계해 자연재해나 질병보다는 적대국에 대응하는데 초점을 맞췄고 특히 끔찍한 사건보다 나쁜 사람에 주목했다. p213
코로나 바이러스와 가장 유사한 건 2003년의 사스였다.
부시와 오바마 시절 팬데믹에 대응할 수 있던 직원이 200명 가량 있었지만 트펌르 정부때 뿔뿔히 흩어져버렸다.
당시 캘리포니아에 있던 채리티는 드디어 카터와 합류한다. 채리티는 코로나 검사 키트를 만들어 검사를 시행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도 적어도 독감과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카터는 로사 글래스가 발견했던 다층 표적방역을 주장한다. 시간이 곧 전염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월 26일 트럼프는 미국내 감염자는 15명 뿐이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2007년의 팬데믹 대비 계획에 따라 싱가포르와 일본 (책에는 안 나오지만 대한민국)도 입국자를 격리시키고 접촉자를 추적했다. 그러나 정작 미국은 국민들에게 미국은 안전하다는 보도만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채리티는 지역 보건의 시절 배운 교훈을 되새겼다.
ㅡ 아무도 당신을 구하러 오지 않는디 (p288)

3부는 짧지만 드라마틱했다.
자격증이 없는 사람도 임상연구소에서 일할 수 있도록 행정명령이 내려지자 박사학위를 가진 이공계 인재들이 모여들어서 훈련을 받고 며칠만에 준비를 마쳐서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돕기 시작했다.
챈 저커버그 바이오 허브의 새로운 코로나 19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 그러나 검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허탈하게도 면봉이 없어서였다. 제조업을 외국으로만 보낼 경우 생기는 가장 안 좋은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면봉을 보내겠다고 했지만 연구소는 받지 못했다. 문제는 이런 패턴이 팬데믹 내내 이어졌다.
ㅡ 트럼프 행정부는 물자가 작 주로 운송되고 있다며 팡파르를 울렸고 정작 물자가 도착하지 않으며 주정부 관계자들과 소통하던 연방 공무원들이 망신을 당했다. 백악관의 이러한 대응은 연방 공무원들의 신뢰도를 처참히 떨어뜨렸다. p321

결국 4월부터야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는 가능했고 그 결과는 슬프기까지 했다. 바이러스는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가난한 유색 인종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소수의 감염자가 대다수의 감염자를 발생시키는 병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더불어 백신에 적응하며 코로나 바이러스는 변이되기 시작했다. 변이하며 진화하는 바이러스에 적응하기 위해 유전체 분석이 중요한데 미국은 영국이나 덴마크의 분석속도보다 훨씬 뒤쳐졌다.
몇개월 뒤 코로나와 맞서 싸운 울버린즈의 한명의 카터의 부모님마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관료주의와 유연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력이 얼마나 끔찍한지 고발하는 책이다.
조금은 딱딱한 내용이지만 2007년 사스 이후 유행했다는 신종 뱀 아레나 바이러스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설치류나 극히 드물게 인간에게 나타나는 아레나바이러스 계열이면서 고대 에볼라 바이러스가 병원균이었다는 것이다.
그 바이러스가 원인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보아뱀이나 비단뱀에게 주사해야 하는데, 이들 뱀에겐 정맥이 없다.
( 학부시절 웬만한 동물들 해부는 해봤다고 생각했는데 뱀해부는 못 해봤다.) 정맥이 없는 뱀에게는 심장에 직접 주사해야 하는데 이 뱀들은 심장이 돌아다닌다. 따라서 뱀의 심장에 바이러스를 주입하려면 세 사람이 필요하단다. 대학원생들의 충성심을 시험할 기회라는 저자의 문구가 진짜 너무나 얄미웠다.

이 실험결과가 눈길은 끈 건, 고대 에볼라 바이러스가 구세계 뱀인 비단뱀에겐 영향이 없었으나 신세계 뱀인 보아뱀은 죽였다는 것이다.(p196)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아서 얼어붙은 고대 바이러스들이 활동을 재개할 경우, 어떤 끔찍할 일이 발생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오싹해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재출발하려는 시기에 이 책이 나왔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이제는 까마득하지만 사실은 얼마전에 일어난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신선했고 그만큼 의미있었다.
당시 너무 과했다며 아직도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책을 통해 당시 우리나라의 대응이 정확했음을 알게 되었다.

정답을 여겨지는 생각들을 따르지 않지만 결국엔 옳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뉴욕타임즈는 이 책을 평가한다.
보건의료와 보건의의 필요성이 그리고 당장 수익성이 없더라도 꾸준한 기초연구의 필요성이 도드라지는 책이었다.




ㅡ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후 주관적으로 적은 후기입니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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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음조
한병철 지음, 최지수 옮김 / 디플롯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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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 교수는 피로사회란 책으로 우리 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철학가다. 우리나라의 대학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대학까지 다녔지만 그는 독일어로 생각하고 글을 쓴다. 그래서 그이의 책은 번역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이런 경우 나는 한병철 교수가 한국인이 아닌 독일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영어는 경제적인 언어라서 애정이 잘 가지 않고 독일어가 철저하게 시적인 언어라서 사랑한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현재 가장 많이 읽히는 철학자라고 했지만 사실 이전 책인 피로사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한병철이란 이름의 신간은 호기심을 가지게 했다.

이 책은 그의 강연을 기록한 책이다.
2023년 4월에 라티프치히에서 [생각의 음조] 강연을 포르투에서는 [에로스의 종말]강연을 , 리스본에서 [희망의 정신]이란 제목의 강연들을 했다.
같은 시기에 진행된 강연인 만큼 저자가 정원을 가꾼지 3년이 되었으며 방에서는 항상 꽃향기가 나며, 그래서 자신의 방에서 나오는 것을 싫어한다는 고백들이 있다.
정원을 가꾸며 종교적인 사람이 되었으며 진정한 생물학은 신학이라고 이야기하는 저자에게 무신론자가 된 생물학 전공자는 왜요?라고 묻고 싶어졌다.
한편 한병철교수는 자신의 강연이 유투브 등의 비디오 클립으로 박제되는 걸 원하지 않아서 글로 담았다고 기획자는 설명하고 있다.


한병철 교수는 자신은 반복이 아닌 끊임없이 변주를 하는 사람이라고 칭한다. 자신의 사유는 그랜드피아노와 음악이 가져다주는 상상의 비행속에서 익어간다는 고백도 한다.
우연히 너무나 아름다운 그랜드 피아노를 발견한 후 , 곧장 사와서 평소 가장 좋아하던 바흐의 골드베트크 변주곡을 연습했다고 한다. 무려 2년의 시간동안 종교적인 수련을 거쳤다고 한다.
자신의 생각은 슈만의 아침의 노래와 닮아서 밝은 슬픔을 지니고 있다고도 고백한다.

만일 내가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면서 이 강의를 들었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해봤다.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국어와 한국의 음악을 사랑하는 철학자의 강연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한국의 음악과 한국의 시를 음미하며 싶은 사유의 정서를 나눈다면 정말 행복했을 것 같다.
한병철 교수는 독일어이기 때문에 사유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책의 말미에 한국은 너무나 폭력적이 되었다고도 기술한다.
뭔가 씁쓸한 감정이 들게하는 1장이었다.
강연의 모습이 흑백사진으로 들어가있다. 참으로 행복해보이는 얼굴이었다.
바흐와 슈만을 정말 사랑하는 철학자라는게 느껴졌다.
ㅡ 모든 아름다움은 모순입니다. 모순 없이는 아름다움도 없습니다. 저는 모순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진실은 이러한 아름다움 안에서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p24


2장의 제목은 에로스의 종말이다.
나와 다른 언어를 쓰는 타자에게만 향할 수 있는 것이 에로스라고 한다.
다른 언어는 외국어를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나와 사고체계가 다른 사람, 나와 환경이 다른 사람 즉 내가 쉽게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 타자일 것이고 그를 받아들이는 것이 에로스일 것이라고 이해했다.
카르카는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편지로 소통하는 것조차 의심했다고 한다. 바로 만질수 없는 타자의 부재가 우울의 원인이라고 한병철 교수는 진단을 내린다.
코로나 팬데민으로 화상미팅등이 많아지면서 디지털 거울 속 자기 모습을 검열하면서 신체적 결함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줌 이형증을 설명하는데 이런 현상을 마음 속에만 최적화의 광기를 극한으로 가도록 만들어서 생긴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스마트폰으로 시선이 사하지면서 공감이 어려운 시대(P81)를 사느라 다들 동일성의 지옥에 빠져서 사랑도 사랑이 아닌 성과의 일부로 바라보는 현상을 개탄하면서 저자는 찰리 카우프만 감독의 "아노말리사"라는 애니메이션을 추천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언급한 음악들을 찾아들었다. (개인적으로 글랜군드보다는 손민수님의 골드브루크 변주곡이 나는 더 좋았다.) 책도 많이 추천한 책인데 이 영화는 꼭 보고 싶어졌다.
마지막 3장이 희망의 정신이란 제목의 강연이다.
가장 몰두해서 읽은 장이었다.
희대의 정치사건으로 불안정한 시기에 정말 어울리고 적절한 글이었다는 생각이었다.
그냥 읽어도 좋은 내용이었지만 응원봉시기의 요즘에 잘 어울리는 내용들이 듬뿍 담긴 3장이었다.

한병철교수가 대학교에서 강의할 때 본인이 좋아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를 읽어줬더니 음대생이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감상을 남긴 일화를 소개하며 현재 우리 사회가 초월성없이 성과주의적 사고방식에 매몰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류 역사 최초의 사유는 닭살이라고 이야기한 저자는 철학자를 마술사이자 매혹하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축제는 서사의 시간이고 노동은 누적의 시간이라고 명명하는 지점까진 이해는 했다.
그러나 평소 일상을 유지하고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나는 일상에 충실한 삶, 자신을 고양시키지 않는 삶은 버려진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에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가브리엘 마르쉘이 정의한 평화에 대한 부분뒤부터는 매우 집중하고 동의하고 속으로 박수까지 치면서 읽었다.
기획자가 왜 이 순서로 책을 편집했는지 깨닫기도 했다.

가브리엘 마르쉘은 희망은 현실에 신용을 부여하는 것이며 방향성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했단다.
비판도 행동도 없는 낙관주의가와 다르게 희망은 행동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희망은 극도의 회피라고 비판했던 카뮈와 정반대의 입장에 서서, 죽음에 대한 불안으로 세계 안에서 존재하기를 꿈꾼 하이데거와는 다르게 저자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거이 희망의 기본 공식이라고 천명한다.
불안이 우울을 증폭시키고 생각없는 순능주의자로 만드는 것과 다른 것이 희망이라고 주장한다.


희망은 그리고 희망하는 사람은 '나쁘게 존재하는 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기대어서 우리가 닫혀있는 감옥같은 시간을 탈출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편안한 마음을 따르는 긍정심리학과 희망은 다르다고 말한다.
긍정성의 숭배는 사람을 고립시키고 이지거으로 만들어 자기의 편안함에만 관심을 두게 하지만 희망은 부정적 측면을 기억하고 사람을 한데 모이게 하고 화해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희망의 주체가 '우리'라는 말이 참으로 좋았다. (P157)
의미와 방향성을 제시하는 게 희망이며 희망의 분위기 속에서 대화와 화해가 가능할 때 민주주의가 번영된다고 말한다.
2024년 12월의 대한민국을 위해 해주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독일인이 된 한국인이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책이었는데 왜 한병철교수가 전세계적으로 많이 읽히는 철학자인지 깨달았다.
힘과 에너지가 넘치지만 예술을 사랑하고 종교적이면서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정말 매력적인 철학자였다.

다른 세상, 더 나은 새상을 바라는 것만으로도 혁명의 잠재력이 자라납니다. P169





ㅡ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후 주관적으로 적은 후기입니다.ㅡ


#생각의음조 #한병철 #최지수옮김 #디플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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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음조 #에로스의종말 #희망의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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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쓸모 -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인생 그림
윤지원 지음 / 유노책주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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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년 전의 화가의 붓끝에서 탄생한 작품들이 깊은 울림과 벅찬 감동을 나누기 위해 쓰였다는 [그림의 쓸모}라는 책의 저자인 윤지원님은 생명공학을 전공한 인문학자다.
언뜻 달라보이는 학문들을 두루 접해서인지 이미 많은 곳에서 소개한 작품들이지만 새로운 느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4개의 주제에 따라 한번쯤은 보고 들었을 작품들을 소개한 이 책은 화가의 삶과 그림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인문학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다양한 이야기들이 풍성하게 들어있다.

뭉크의 그림에서 덴마크의 철학자인 키르케고르 철학의 핵심인 불안을 언급하고 고흐 그림의 의미와 예술사적 가치, 루소의 그림에서는 내면의 조화와 균형이 진정한 평안을 가질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알려준다.
마티스의 <이카루스>는 동일한 주제를 다룬 여러 작품들과 달리 추락이 아닌 비상의 순간을 포착한 점을 지적하며 관점을 바꾸는 시각의 전환이 새로움을 탄생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많은 사회적 이슈와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바라볼 때에 드가처럼 비판적으로 사고할 것도 주목한다. 프리다와 아르테미시아의 작품들에서는 절망을 극복하는 여성 서사를 보여주기도 한다.

신교와 구교가 대립하는 격동적인 헨리 8세 시대에 탄생한 홀바인의 <대사들>은 그림 하단의 독특한 모양이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해골모양으로 보이게 하는 '아나모르포시스anamorphosis'기법을 설명한다. 특정각도에서 바라 봐야 하기 때문에 관람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현대미술의 개념의 선구자이자 메멘토모리를 비롯한 다양한 상징들을 기록한 그림이란 설명은 언제나 감탄스럽다.


쇠라의 그림을 보면서 19세기 프랑스의 복식과 군중 속 개인의 고독을 이야기하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속 아담의 창조 부분의 신의 영역이 뇌와 같이 그려졌다는 내용도 흥미로웠다.
또한 자화상은 작가의 자아성찰로 타인을 그린 그림은 보편적 인간에 대한 탐구로 해석할 수 있다는 팁도 좋았다.
또한 그림마다 작가의 질문이 들어가 있는 점도 특색있었다.




대부분의 그림과 설명들이 만족스러웠지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현재(2024년 12월) 한국에서 전시회도 하고 있는 카라바조의 생애와 그림<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에 대한 설명이었다.
카라바조의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하는 책들은 몇 번 읽었는데 그의 일생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 넘어가는 시기의 이 스타 화가의 삶은 사실 잘 알지 못 했다.
그저 빛을 독특하게 잘 쓰고 르네상스 풍의 이상적인 그림이 아니라 현실에 가까운 사실주의적 접근으로 직접적이고 강렬한 느낌을 준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카라바조가 어린 시절 흑사병으로 가족 대부분을 잃고 불안정하고 포악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았다.
타고난 그림 실력으로 빠르게 명성을 얻고 많은 후원자들이 그가 사고를 칠 때마다 요즘말로 쉴드를 쳐주었다고 한다.
1606년 로마에서 카라바조는 살인사건을 일으킨다.
빵빵한 후원자를 등에 엎고 있는 카라바조 였지만 , 이번에는 힘있는 가문의 젊은이를 죽여서 일이 커지고 겁을 먹은 카라바조는 도망치면서 목에 현상금이 걸린다.

ㅡ 현상금은 생사와 상관없이 잡아만 오면 받을 수 있었기에 언제 자신의 목이 잘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도망 다니는 내내 대접을 받았지만, 나폴리 몰타 시칠리아 등을 떠돌며 살았고 피해자의 가문에서 고용한 자객에 의해 끊임없이 추격을 받았습니다. 도망 다니던 중 사면권을 요청하기 위해 불체포 특권이 있는 기사 작위를 얻었는데 이마저도 술자리에서 시비가 붙어 상대에게 중상을 입히는 바람에 빼앗기고 맙니다. (p63~64 내용 요약)


책에 소개된 그림인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은 도망치던 시절에 그린 그림이고 이 작품을 완성한 후 1610년에 카라바조는 38세의 나이로 요절한다.
카라바조는 슈퍼스타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란 생각이 들긴한다.
짧고 격정적인 삶을 살았고 그림에 대한 기교는 뛰어났다. 살아있는 동안 논란의 대상이었고 사후에는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나와 전혀 연관점이 없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스타일의 인물이다.

이 그림에서 다윗은 젊은 시절의 카라바조의 얼굴이고 골리앗의 얼굴은 그림 그리던시절의 카라바조의 얼굴이라고 한다.
젊은 시절과 현재의 자신의 얼굴을 그린 그림이라고 하니 승리자의 위치에 있는 다윗의 씁쓸해보이는 표정이 어딘가 이해되었다.


ㅡ 자신을 골리앗과 동일시 한 것은 그의 살인 혐의와 관련된 고통스러운 과거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어둠과 끊임없이 싸우는 존재로 다윗을 묘사함으로써 카라바조 자신도 끊임없이 과거의 죄와 싸우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p65 내용요약)

이 그림을 설명하던 인문학자가 전달한 메시지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순수하고 이상적인 면(다윗)과 악함과 그림자( 골리앗)는 모두가 우리를 구성하는 부분이라고 말하고 우리의 과제는 이 두 면을 단순히 공존시키는 것이 아니라 골리앗을 인식하고 잘라내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까지는 사실 익숙했다.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지는 글이 마음에 와 닿았다.

ㅡ 여기서 잘라낸다는 것은 어두운 면을 부정하거나 억압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기혐오나 자기 비판이 아닌 깊은 이해와 연민의 자세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약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되, 그것이 우리의 삶과 다른 이들에게 패를 끼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과정입니다. 작품 속 다윗은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지만 그의 표정에는 승리의 기쁨이 아닌 깊은 연민과 고뇌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어두운 면을 다룰 떄 취해야 할 태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약점과 실수, 어두운 충동들을 냉정히 직면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것들을 가진 자신을 향한 깊은 연민과 이해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p66 내용요약)

앞서 말했지만 카라바조 스타일의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슷하게 싫어하는 캐릭터가 그리스인 조르바가 있다. 나는 안티 조르바다.)
자신의 내면에 어떤 불씨가 가지고 있던지 옆의 사람에게 그 불씨가 날아가거나 주변인들이 피해를 입게 만드는 사람들이 너무나 싫다.
물론 누구나 지킬과 하이드를 동시에 가지고 있을 것이다. 카라바조는 골리앗의 얼굴을 가지면서 스스로를 한심하게 생각하며 주변에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저 그림을 그렸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용서만을 위해 최선을 다해 그린 작품일 수도 있을 것이다.
카라바조란 인물은 이미 죽었기에 저 그림에 담긴 그의 마음은 알 수는 없지만 자기 자신의 어두운 면을 인식하고 영향력을 잘라내야 한다는 과제는 동감한다.
무엇보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 내 안의 어둠을 인정하고 화해하라는 저자의 메시지가 참 좋았다.
내가 꿈꾸는 좋은 사람은 [자기애가 강하면서 공공질서를 지키는 문해력과 상실을 가진 매너있는 사람]인 것 같다.

카라바조만큼 흥미로운 내용은 알폰소 무하였다.
사실 타로카드 그림같다고 생각해왔던 알폰소 무하가 체코 출신이며 자신의 민족인 슬라브 민족의 영혼을 일깨우기 위해 < 슬라브 서사시>라는 20여점에 달하는 거대한 그림들을 만들었다는 내용에 놀랐다.
슬라브 서사시를 검색해서 그 거대한 규모에 더 놀라기도 했다.

ㅡ 그(알폰소 무하)의 목표는 단 하나, 억압받는 슬라브 민족에게 자부심을 되찾아 주고 민족의 의식을 꺠워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p280)

이 거대한 작품들은 무려 18년간 작업한 결과물이며 이 그림들로 인해 무하는 나치로부터 고문을 받고 그로 인해 사망했다고 한다. 그의 장례식은 나치의 감시 속에서도 체코인들의 민족적 행사가 되었고 사후 11년 뒤인 1950년에 일부가 그리고 1967년에 전체 작품이 공개 전시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예술이 단순한 오락이나 장식이 아닌 생각을 자극하고 감정을 움직이며 나아가 사회적 행동을 촉구하는 강력한 도구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준 형태가 아닐까 싶다.
무하는 "예술이 영혼의 교육 "이라고 했다고 한다.
가슴이 찡해지는 문장이었다.
저자의 말처럼 예술은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고 성장시키는 도구다.

10대에는 대입만을 그 이후에는 재테크를따라가는 삶도 중요하지만 내 삶의 서사와 철학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나만의 인생갤러리와 고유한 방식으로 예술을 삶에 통합시켜 보라고 조언한다.
꼭 실천해보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후 주관적으로 적은 후기입니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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