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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괴물이 사는 마음 - 과학으로 헤쳐 나가는 죄악의 세계
가이 레슈차이너 지음, 이한음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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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후, 주관적으로 적은 후기입니다ㅡ

학부시절, 교양수업으로 철학을 들었다. 당시 (아마도 시간강사였을) 젊어보이는 교수님이 오래된 영화 한 편을 소개했다. 세븐이란 영화였는데 지금은 실체가 드러났지만, 과거에는 연기력으로 칭송받던 남자배우가 단테의 신곡에서 얘기한 일곱가지 대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연쇄살인하는 내용의 영화였다. 그 때 분노, 탐식, 색욕, 질투, 나태 , 탐욕, 교만 이 칠대 죄악이란 걸 알게 되었다.
이한음님이 번역한 이 책 [일곱 괴물이 사는 마음]은 뇌손상이나 특정한 심리적, 의학적 상태가 어떻게 죄악처럼 보이는 행동을 유발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분노
처음 7대 죄악에 대해 들었을 때 다른 조건들은 죄가 될 수 있지만 분노가 죄가 되는 건 억울하단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사람이 어떻게 화를 안 내고 살 수가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니 단순히 화를 내는 것이 분노라는 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걸 알게 되었다.
일단 책에서는 분노를 독특한 감정이라고 표현한다.
대부분의 부정적 감정들(슬픔, 공포, 혐오 등)은 도발하는 자극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지만 분노는 오히려 자극 쪽으로 싸우고 대면하라고 내모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사실 분노가 문제가 아니라 분노로 인해 나타나는 공격성과 폭력이 죄가 될 것이다.
죄가 되는 분노의 원인을 저자는 생물학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으로 나누었다.
생물학적 요인으로는 먼저 뇌 (신경계)의 손상을 예로 들었다. 또한 뇌의 손상으로 인해 투약하게 되는 약들로 인해 생기는 분노도 있다고 한다. 뇌전증 환자를 위한 가장 대중적인 약 중의 하나인 케프라의 경우, '케프라 분노 keppra rage"라는 용어가 생길만큼 순간적으로 사람을 이중 인격자로 만든다고 한다. 뇌구조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평소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던 내용을 다시 한번 강조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머리에 딱밤금지." 이마부위는 가장 마지막까지 성장이 일어나는 장소이며 분노를 조절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 분노와 그 세기는 편도체에서 기원하지만 분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가중시키는 것은 이마앞겉질이다.
< 일곱 괴물이 사는 마음 / 가이 레슈차이너. 이한음 옮김. 흐름출판 p48>
두번 째 생물학적 요인으로 호르몬을 말하는데 대표적인 예로 테스토스테론을 들고 있다. 그렇다고 공격성이 남성의 영역은 아니다. 여성도 일정 부분 테스토스테론에 노출되고 있으며 오히려 심리적.사회적인 간접 공격성은 여성에게서 자주 관찰된다고 한다. 사실 간접 공격성은 만 네 살 아이에게서도 관찰된다고 한다.
또한 유전적인 요인도 있다.
모노아민산화효소(MAOA)는 흥분시키는 신경전달물질(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을 제거하는데 이 모노아민산화효소 유전자가 훼손될 경우 공격성이 극대화된다. 그래서 이 모노아민산화효소는 전사 유전자(warrior gene)나 사이코 유전자로도 불린단다.



마음 아프게 읽은 건 환경적 요인이었다.
어린 시절에 역경을 겪어서 스트레스에 노출될 경우 유전자의 활성을 증가,약화시킴으로 유전자의 행동양식이나 뇌구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 아동기에 뇌에 새겨진 지워지지 않을 흔적 때문에 유아기의 역경이 구조적,기능적, 신경화학적 수준에서 뇌 발달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다.
< 일곱 괴물이 사는 마음 / 가이 레슈차이너. 이한음 옮김. 흐름출판 p56>

또한 저자는 술이 폭력에 끼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은 평화로운 종이라고 말한다.
인간 이외의 영장류들은 반응적 환경에서 공격성을 가지는데 인간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직관적으로는 당장 공격적인 성향이 우세할 것 같지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능력은 공격성을 약화시켰다고 설명한다. (그 예로 독재자 알파 남성들의 비극적 최후들을 보여준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저자는 사회 전체적으로 부정적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신체적 폭력을 줄이는 방식이 개인의 분노 성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탐식,색욕,질투, 탐욕, 교만
저자가 폭력편에서 설명한 내용들은 다른 감정들의 경우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탐식과 비만의 경우도 뇌기능과 유전자의 기능의 영향이 60%정도이며 태아 시절의 자궁 내 환경이 수십년 뒤의 건강까지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분노처럼 질투와 시샘, 자존감(교만)역시 생존의 원동력이며, 특히 시샘의 경우 진화적 이점도 가지고 있다. 시샘이 과도해져서 망상이나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인 병적시샘의 경우는 심리적인 현상과 신경생물학적인 현상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진화적 압력에 의한 성선택과는 다르게 나타나는 색욕의 경우에서도 뇌구조 손상 외에도 파킨슨병의 치료제인 레보도파levodopa의 경우 성욕과다증을 일으킨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스티븐 핑거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가 자주 떠올랐다.

책을 좋아하고 책을 많이 모으는 장서가인 내 입장에서 조금 찔려하며 읽었던 부분이 탐욕에서의 저장강박이었다. 인스타를 하면서 조금이라도 흥미가 생기는 콘텐츠는 저장부터 하고, 읽지 않은 책이 그득한데도 책을 사는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탐욕의 경우, 탐욕을 일으키는 신경계 질환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저장강박의 경우는 탐욕이 아닌 충동조절장애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습득 자체에서 쾌락을 느끼는 것으로 색욕과 비슷한 것이라고 한다. 습득 자체가 쾌락이 된다는 설명에 책장들을 바라보며 뿌듯해하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탐욕의 경우 fMRI( 기능적 MRI)에서의 뇌파의 차이는 발견된다고 한다. 역시 교만 파트에서 지나친 자기애(오만증후군, 과대망상)와 몹시 낮은 자기애(피해망상)를 보이는 사람들도 역시 뇌파의 차이를 보이는데 약물의 영향(스테로이드)도 큰 편이라고 한다.

색욕을 읽으면서 한국의 동남아여성 수입이야기가 언급되어 부끄러웠다. 영국의 신경과 전문의가 쓴 책에서 이런 일이 언급되는게 싫었다. 또한 비만이 주변으로 감염이 가능하단 이야기도 놀라웠다.

🔸️나태
저자는 7대 죄악 중 나태가 가장 독특하다고 이야기한다. 약간의 게으름은 분노, 질투, 색욕에 비해 거의 해롭지 않고 해석하기에 따라 매우 긍정적인 감정이 될 수도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박수를 치고 싶었다.
나태가 7대 죄악에 들어간 이유는 종교적 이유가 큰데 수도원 공동체에서 신의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이 의지와 동기가 부족해서 하지 않는 행위를 큰 죄악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신경학계에서 이야기하는 무감동apathy(알츠하이머, 파킨슨병 같은 증세)나 정신의학계에서 주요 우울 장애의 핵심적인 특징인 무쾌감증 anhedonia을 나태편에서 다루고 있다. 무감동의 경우 이마엽과 관자엽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이마관자 치매(FTD)등이 발생하는 경우다. 다시한번 딱밤때리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를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마엽 만이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졸음, 피곤, 피로 등의 용어가 의학적으로는 매우 다른 의미로 쓰인다는 설명도 재밌었다. 역시 굉장히 찔리는 표현이 나오는데 침대애호증clinophilia이란 용어다. 읽는 순간 이런 말이 있어? 하는 생각이 났다.
졸음의 경우도 뇌의 직접적인 손상과 관련이 있는데 외상 후 피로의 원인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역시 이마앞겉질의 활성이 중요하다.)
🔸️자유의지
자유의지는 7대죄악이 아니다. 그리고 현재 뇌과학에서는 과연 자유의지라는 것이 존재하는가로 논란중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자유의지가 없다고 믿는 편이다) 그래서 이 책을 받아 목차를 보고 가장 먼저 마지막 장인 자유의지 파트를 먼저 읽었다.
저자 역시 1964년에 실시된 벤저민 리베트의 실험을 이야기한다. 리베트의 실험결과를 저자는 자유의지에게 너무 일찍 선고된 죽음이라 표현했다.
저자는 인간이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고 선택하도록 예정되어진 기계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떠올리기 조차 싫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리베트의 실험결과를 따를 경우 죄악은 어디에 물어야 하는가를 물어본다. 과학적 관점에서는 리베트의 실험결과를 따른 결정론적 시각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조금 불편하다는 저자의 고백이 이해되었다.
저자는 앞서 언급한 죄악들을 저지르는 성향이 인류 생존의 핵심이며 이런 감정들이 없었다면 인류는 멸종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환경과 타고난 유전자 그리고 환경에 의한 뇌의 성형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성실하게 설명해냈다. 다양한 스페트럼의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어쩌면 사람에 대한 애정이 사라질 수도 있을 텐데 인간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이번에도 다시 "이한음 번역"의 책을 골랐다.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읽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현재 읽고 있는 (이 책을 포함한) 네 권 중 세 권이 이한음번역이다. 독서에서도 덕질은 계속 되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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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만들기 - 성형외과의의 탄생
린지 피츠해리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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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후 주관적으로 읽고 적은 후기입니다-
대한민국은 성형대국이다.
브이라인 얼굴형에 필러넣은 입술, 반달 눈아래의 도톰한 애교살과 볼록 이마, 날렵한 콧날- 이 시대의 동안 미인형이자 흔히들 말하는 강남미인의 얼굴이다. 대한민국 국민 1,000명당 9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성형수술을 해서 세계에서 성형 수술한 사람의 수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고 한다(미국 인사이더 몽키, 2024년 1월 발표) . 이제 쌍꺼풀 수술정도는 요란스럽지 않고 어느 틈엔가 피부관리가 자기 관리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되었다.
욕망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성형외과와 피부과는 욕망의 중요한 축이다.
그러나 성형외과의 시작은 이런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성형외과는 전쟁의 산물이었다.
이한음번역이라 선택한 이 책 [얼굴 만들기 -성형외과의 탄생]은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얼굴과 턱에 부상을 입은 군인들을 위해 분투한 외과 의사 해럴드 길리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제 1차 세계대전은 참호전이 시작된 전쟁이었고 최초의 장기전이자 다양한 무기(탱크 등)와 화학전이 시작된 전쟁이었다. 기존에 없던 것들이 대거 등장한 전쟁의 참혹성을 설명하며 책은 시작되었다.
시신이 너무나 많아 수거할 수도 없었고 시신에서 나온 악취는 군인들이 먹는 상한 빵에도, 마시는 고인 물에도 입고있는 군복에도 배어있을 지경이었다. 사망자 수만큼 부상자도 속출하게 되었다.
ㅡ 몸은 난타당하고 뚫리고 베이곤 했지만, 얼굴에 입은 부상은 특히 심한 심리적 충격을 안겨 줄 수 있었다. 전선의 한 간호사는 이렇게 표현했다. <치유의 과학은 파괴의 과학 앞에서 어찌할 줄 몰랐다.> 참호전의 특성 때문에 얼굴을 다치는 비율이 높았다. 많은 전투원은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예상조차 못하다가 얼굴에 총탄을 맞았다. 전쟁이 끝나기 전에 프랑스,독일, 영국에서만 얼굴 외상을 입은 사람들이 28만 명에 달했다. <얼굴 만들기 /린지 피츠해리스. 이한음옮김. 열린책들 p18. 발췌>

얼굴의 부상은 다른 신체부위의 부상과 달랐다. 한쪽 다리를 잃은 사람은 연민과 존경심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지만 얼굴이 훼손된 경우는 거부감과 혐오감을 먼저 불러일으키곤 했다. 얼굴이 손상된 병사들에게 빛과 같은 존재가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 해럴드 길리스였다.
길리스의 어린 시절과 1차 세계대전의 초기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책을 읽으며 신기하다고 느꼈던 점이 아주 많은 남성들이 전쟁 참여에 자원했다는 점이었다.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굳이 부르지 않으면 자원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서다. 전쟁 초반 여성 의사들과 간호사들의 지원요청을 거절하는 장면들은 실소가 나오기도 했다. 길리스도 영국이 1차대전에 참전한 직후 적십자사에 돕겠다는 서명을 하고 1915년에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당시 길리스의 아내는 둘째를 임신 중인 상태였다. 태어날 아이의 미래를 위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나라면 하지 못 했을 선택같았다.

부상병들을 위한 얼굴 재건술을 처음 시작한 사람이 길리스는 아니었다. 미국 남북전쟁 때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길리스는 외과의사였지만 얼굴과 턱에 부상을 당한 군인들을 위해 그는 치과 등 다른 과와 협업을 마다하지 않았다. 또한 휴게시간마다 골프 등으로 스트레스를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단순 수술 뿐 아니라 환자들의 체력과 컨디션도 신경쓰는 사람이었다.
책에서 참 인상적인 점은 길리스가 다른 의사들에게 여러가지를 배우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었다. 모리스탱이란 의사에게 배우고 싶어했지만 거부당한 길리스가 다른 의사들에게 열린 모습을 보인 점은 감탄스러웠다.
길리스는 꾸준히 얼굴과 턱의 부상만을 전담하는 진료과를 설치하자고 제안했고 1916년 성형 수술과 관련된 특수 임무를 보고하라는 명령을 받고 올더숏의 군병원에 발을 디디게 된다.
경험이 많은 간호사들 마저 충격을 받을 만큼의 얼굴과 턱 환자들이 올더숏으로 모였다. 길리스는 협력할 수 있는 다양한 전문가들을 모았고 환자들이 수술을 견딜 수 있도록 체력을 유지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냈다.
몇 개월의 시행착오를 거친 길리스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단계적으로 재건수술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 내일로 미룰 수 있는 것을 결코 오늘 하지 말라"는 독특한 좌우명이 생기게 되었다.
올더숏의 병원은 점점 공간이 부족해졌다. 길리스의 병원은 시드컵의 퀸스병원으로 옮겨졌다.
저술가인 레지널드 파운드의 설명에 따르면 올더숏의 케임브리지 군병원은 현대 성형 수술의 산전 진료소이고 시드컵의 퀸스 병원은 탄생지라고 했다고 한다. 현대 성형 수술의 원칙 중 상당수가 그 곳에서 정립되었다고 한다.

7장까지 올더숏의 생활이 그려지고 8장부터 퀸스 병원의 생활을 보여주는데 7장과 8장 사이에 여러 자료 사진들이 들어있다. 환자들의 얼굴 재건 과정을 찍은 사진들을 보면 전쟁의 참혹함과 의학의 실질적 목적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길리스 뿐 아니라 독일 쪽에서도 성형술을 치료하는 의사가 있었다고 한다. 독일의 유대인 의사 자크 요제프가 베를린에서 얼굴재건술을 시행했는데 요제프는 그 당시에 성형 수술의 심리적 측면이 기능 복원 능력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시드컵의 규모는 한층 커지고 훗 날 전쟁에 참여한 미국에서도 의사를 보냈다고 한다. 길리스는 새로운 성형수술 방법을 만들 때 협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양한 전문가들 사이의 의견교환을 중요시했다. 그래도 워낙에 재능있는 사람들을 많이 모았기 때문에 의사들 사이의 견제와 경쟁이 불타올랐고 군인들의 재건된 코가 누구의 양식인지를 구별 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 덕분에 병원 전체의 수준이 높아졌다. (전쟁 이후 수술 기법의 창시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다툼이 생기기도 했다) 시드컵은 점점 커져서 성당과 매점 극장까지 생기게 된다.
그러나 예상치도 못 한 복병이 등장한다. 바로 스페인독감이다. 이 세계적 유행병으로 길리스는 많은 지인을 잃었다고 한다.
ㅡ 죽음은 빠르게 무차별적으로 찾아왔고 남들의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래왔듯이 퀸스병원은 하던 일을 계속 했다. <얼굴 만들기 /린지 피츠해리스. 이한음옮김. 열린책들 p293>

전쟁이 끝나고 길리스의 육군 의무대 복무는 공식적으로 1919년 10월에 끝나지만 시드컵에서 6년 더 수술했다고 한다. 이 시드컵에서 생긴 성취들은 제 2차 세계대전에서도 요긴하게 쓰이게 되지만 당시 바로 인정받지 못 했다. 전쟁의 승리의 영광은 싸운 장군들에게만 돌아갔고 목숨을 구한 이들은 외면당했다. 전쟁이 끝나고 10여년이 지난 1930년에 길리스는 제 1차 세계대전에서의 공로로 뒤늦게 기사작위를 받았다.
길리스는 모두가 외과의로 돌아가는 흐름에서도 계속해서 성형수술의로 살아간다. 엑스선에 과하게 노출되어 얼굴에 종양이 생긴 여성의 얼굴을 복원해줬고 젊은 여자의 뒤틀린 다리를 펴지게 했다. 전세계에서 길리스의 능력을 배우기 위해 학생들이 찾아왔고 길리스는 그들을 조수로 받아들였다. 성형외과를 정식 분야로 만들기 위해 길리스는 열정적으로 노력했고 일흔 일곱살의 나이에도 제 2차 세계대전에서는 부상병들의 얼굴 재건과 생식기 재건 수술도 해냈다.
(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길리스의 사촌인 아치볼드 매킨도의 명성이 더 높았다고 한다)
길리스란 사람은 도전할만한 수술 과제 앞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결국 1949년 길리스는 성전환 남성의 음경 성형술에 성공한 최초의 외과 의사가 되었다. 이때 길리스가 개척한 기법은 현대 음경 성형술의 토대가 되었다고 한다(p325). 엄청난 승부욕을 가진 사람이었고 집요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길리스는 기능 뿐 아니라 미학 그리고 삶의 질을 고려하는 성형외과의 문을 연 사람이라는 사실도 대단하지만 고대로부터 있던 코 성형술 외에 새로운 기법을 만들고 개선해내는 사람이었다. 환자를 수술하다가 뇌졸중을 일으킨 뒤 한달만에 사망했다는 그의 인생의 마지막 장면도 길리스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이지마다 사실 끔찍한 내용들이 있는 책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롭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길리스라는 인물이 내뿜는 에너지 덕분 일 것이다.
에너지와 능력이 충만한 한 사람에게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된다.
성형수술이 단순한 욕망의 구현이라기 보다는 누군가에는 삶을 제대로 살아갈 유일한 통로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함께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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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사고로 여는 새로운 세계 - 유전학자가 들려주는 60가지 과학의 순간들
천원성 지음, 박영란 옮김 / 미디어숲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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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후 주관적으로 읽고 적은 후기입니다.]
"과학으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세상을 다시 본다"는 띠지의 문구가 인상적인 책이었다. 게다가 유전학자가 들려주는 과학의 순간들이라기에 혹하는 마음이 더 커졌다. 대만에서 나온 대중과학서인데 우리나라에까지 번역되었다면 어떤 좋은 점이 있을 것이란 기대가 들기도 했다.
책을 처음 볼때는 차례를 살펴보는 스타일인데 이 책의 목차를 보고서는 신기하단 생각이 들었다. 추천사가 무려 8개나 들어가 있었다. 저자가 대만에서 매우 유명한 스타과학자인가보다 싶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가면서 왜 추천사들이 그리 많았는지 깨달았다. 이 책은 정말 쉽고 재밌으면서동시에 메시지가 분명한 대중과학서였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현직 학원강사로 힘겨운 기말고사 기간으로 피곤한 나날들이었지만 이 책은 계속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은 전체 5장 60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고 각 챕터의 길이는 길지 않다. 부담없이 가볍게 챕터별로 읽을 수 있는 수준들이다. 1~3장까지는 다양한 과학분야에 대해서 그리고 4장과 5장은 저자인 천원성 교수의 전공인 유전과 생명과학 부분을 조금 더 깊이 다룬다.
책의 삽화는 저자가 직접 그렸다. 시카고대 출신의 저명한 생명과학자가 뛰어난 그림솜씨까지 가졌다는 점이 부러웠다.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과학자들이 다른 분야를 배우는 것이 반대의 경우보다 더 쉬운 건 맞는 얘기인것 같다.

60개의 챕터인 만큼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다양하다. 책을 읽을 때는 리뷰를 쓸 것을 염두에 두고 이 내용은 다시 읽어야지 싶은 부분에는 포스트잇을 붙여놓으면서 읽는데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이 책에는 아주 많은 포스트잇을 붙이게 되었다. 그만큼 괜찮고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은 내용들이 많았다.
먼저 탄산수에 대한 내용에서 약간 뜨끔했던 부분이 있다.
탄산수를 즐겨 마시고 수업시간에 탄산음료를 설명하기도 했는데 정작 탄'산'수에서는 왜 신맛이 느껴지지 않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시중에서 파는 탄산수에는 천연 광천수가 들어가는데 천연광천수에는 미네랄이 풍부해서 중화작용이 일어나서 신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직접 탄산수를 만든다면 정수기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시중에서 파는 탄산수보다 더 강한 신맛을 낼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했다.
교과서에는 거의 실리지 않는 멘델의 두번째 연구논문을 언급해서 재밌었고 미시세계의 영역에 속하는 유전자(DNA)의 구조를 알아내는데에 얼마나 많은 물리학자들의 연구와 노력이 있었는지 새삼스럽게 다시 느끼기도 했다.
학부 시절, 물리나 화학을 배울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생물학도였던 나에게 [물리화학]이란 과목의 등장이 무척 생경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탐런의 영향으로 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학생들에게 수학적 사고와 과학적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성향때문인지 과학적 정신을 이야기하는 3장의 내용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이론과 가설은 틀릴 가능성이 많기에 실험만큼은 정확하고 신중하게 수행하라(p157)는 메시지가 좋았다.
크리스퍼를 발견한 다우드나가 도덕적 폭풍을 걱정하다가 끔에 히틀러가 나타나서 크리스퍼의 사용법을 물었다는 일화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게 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읽은 부분은 이방인의 작가 카뮈와 "우연과 필연"의 작가인 분자 생물학자 자크 모노의 관계였다. (p130~134)
카뮈와 모노는 2차대전 시기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파리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다고 한다.
카뮈는 저항을 촉구하는 글을 쓰면서 지하와 지상에서 모두 명성을 얻는 작가가 되었고 모노는 낮에는 파스퇴르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레지스탕스 임무를 하면서 참모 총장 직책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독립운동하는 생물학자라는 조합은 처음이라 신기하고 멋있었다.
카뮈와 모노 모두 사회주의자였으나 소련의 스탈린 독재와 스탈린 체제를 옹호하기 위해 멘델유전학을 부정한 소련의 생물학자 트로핌 리센코에는 반대를 하면서 레지스탕스 시절의 동지들에게는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카뮈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자 기쁨의 편지를 모노에게 보내고 모노는 자신의 책 서두를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인용했다고 한다.
사실 카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일화를 읽고 카뮈가 조금은 더 좋아진 느낌이 들었다.
대중 교양과학서에 실존주의의 핵심사상이 언급된 점이 신선하기도 했고 대중 교양서 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ㅡ 신성한 계획을 기반으로 한 도덕적 신념은 아무 근거가 없으며 선천적 기준이 없다면 인간은 스스로 행동을 규범화하고, 그 결과와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실존주의의 핵심 사상이다. < 과학적 사고로 여는 새로운 세계_천원성 지음 / 미디어 숲. p134>
DNA는 오른 쪽 이중나선이 안정적인 구조이며 몸집이 커지는 것이 단순한 양적변화가 아닌 질적변화를 초래하는 일이라는 점, DNA도 산이고 일요일의 작곡가 알렉산드르 보로딘이란 과학자에 대한 정보, 덩치차이가 나는 동물들의 돌연변이 발생비율과 암발생비율 그리고 75%알코올이 소독에 유리한 이유까지 생물학을 중심으생명과학한 과학정보도 함께 배울 수 있는 책이다.
'도구제작자는 결국 자신이 만든 도구에 의해 다시 만들어진다'는 아서 클라크의 말을 인용하며 우리가 만든 도구가 우리의 후계자가 될 수도 있는 미래를 이야기하는 장면은 조금 섬뜩했지만 책에서 언급한 내용들과 어조는 참 좋았다.
우리가 흙냄새라고 부르는 것은 미생물의 발효냄새인데 그 미생물이 스트렙토마이신이다. 항생제를 만드는 주요 미생물인 스트렙토마이신을 연구하는 이 유전학자의 책이 생명과학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과학적사고로여는_새로운세계 #천원성_지음 #박영란_옮김 #미디어숲
#유전학자가들려주는_60가지과학의순간들 #스트렙토마이신 #과학교양서 #중고등학생_통합과학추천도서 #생명과학추천도서 #컬처블룸리뷰단 #쇼코is콜라쌤 #책읽는과학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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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작가의 사유와 글쓰기
김보영 지음 / 디플롯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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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김보영작가의 팬이다.
김보영 작가의 첫 창작론이란 이 책이 소개되고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나서 나는 매우 설렜고 서평단에 선정되어서 매우 기뻤다.
책이 도착하기까지 기다림의 시간이 길었고, 언박싱할때는 두근거렸다.
그리고 드디어 읽게 된 이 책은 김보영 작가다웠다.
좋았다는 의미다.
SF전문 계간 문학잡지인 어션 테일즈(The Earthian Tales)에 실린 김보영작가의 에세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글을 쓰기 전 - 글쓰기 - 퇴고의 순서로 구성된다.


1. 책을 쓰기 전
왜 현대의 소설들이 점점 SF화가 되는지 먼저 설명한다.
SF라는 말은 1916년에 처음 생겼고 그것도 처음엔 지금과 같은 science fiction이 아닌 scientifiction이었다고 한다.


신화와 전설 ,민담을 좋아하는 소설가가 이런 것들로 이야기하려면 과거에는 미지의 섬으로 가던가 땅속으로 들어가던가하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섬들과 땅과 하늘에 대한 지식이 늘어나면서 우주로 나가야 하고 그러면 그 소설이 SF가 된다. 전설과 민담 속의 괴생물을 소재로 쓰려면 유전자 돌연변이나 바이러스로 시작해야 하니 역시 SF에 속하니 어쩔수 없이 현대의 소설들은 SF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설명에는 깊이 동감했다.

책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사실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괜찮은 소설이 나올 것 같지만 김보영작가는 그런 생각은 잘못되었다고 한다.
아이디어는 소설의 모든 부분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아이디어의 총합이 소설 그 자체이며 소설의 모든 것은 디테일이라고 강조한다.

ㅡ 소설의 모든 부분이, 그 하나하나 전부 다시없이 중요하다. 모든 날실과 씨실이 교차하는 자리마다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하나의 아이디어는 아무것도 아니다. <SF작가의 사유와 글쓰기 _김보영/ 디플롯.p43>


2. 글쓰기

아마도 본격적인 내용일텐데 크게 인물과 설정에 대한 팁들이 들어있다.
순문학이 아닌 SF기에 인물과 설정(세계관)이 모두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SF에서 과학의 의미가 변했기 때문에 과학기술은 이제 사실 중요하지 않지만 주설정은 매우 중요하며 주인공과 동등한 주역이라고 강조한다.
주설정이 주인공의 역할을 모두 같이 하거나 주설정이 주인공보다 큰 역할을 할 경우 보다 SF다운 소설이 된다고 한다.
주설정이 주인공같은 역할을 하는 경우로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나 토르의 묠니르와 망치로 설명한다.
주인공처럼 변화하면서 내적 논리와 일관성을 가진 주설정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독자(관객)는 허무맹랑하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인물은 가르치기가 가장 어려운 영역이라고 김보영작가는 얘기하는데 주연이든 조연이든 모두 주관을가지고 각각의 인격을 구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구분되고 대비되는 인격을 만들기 위해 색이나 MBTI를 이용하라는 팁은 작가 지망생들에겐 참 좋은 안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신선했고 가장 공감했던 내용은 핵심을 틀려라였다.
여기에서 틀려야 하는 것, 현실에서 비틀기 해야하는 것은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 한가지, 주설정이다.
주설정 또는 중요 소재하나는 뻔뻔하게 틀리고 나머지들은 과학적으로 엄밀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스타워즈의 광선검이 있다.
사실 빛은 진행중에 멈추지 않는다. 진행하다가 멈추는 빛으로 만든 광선검은 실재할수 없다. 하지만 영화 스타워즈는 뻔뻔하게 설명없이 광선검을 들고 싸우게 한다. 비슷한 것으로 초광속 우주선 팔콘도 있다.

ㅡ 중요하니까 두 번 말한다.
팔콘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과학적인 엄밀함을 지켜야 한다.
만약 당신의 소설에서 차가 하늘을 날았는데 그 차가 바퀴로 달리는 차와 하는 일이 아무 차이가 없다면 날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감정이 없다든다, 마음이 없다든가, 사회에서 차별받는다든가 하는 시시한 용도로 로봇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음이 없는 인간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고 차별받는 인간도 산더미처럼 많다. 인간과 다름없는 역할만 하고 퇴장한다면 왜 로봇을 쓰는가?

<SF작가의 사유와 글쓰기 _김보영/ 디플롯.p121~123 부분발췌>

시간을 상대적으로 쓰는 법과 이중 구조로 써야하는 이유, 그리고 독자가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3. 퇴고
흔히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퇴고라고 한다.
작품의 정수는 디테일이기에 헤밍웨이는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고 했다는데 로버트 하인리히같은 작가는 원고를 한번에 완성했다고 한다. 김보영작가는 초고만큼은 스스로 판단하라고 얘기하며 퇴고는 자신을 더없이 믿으며 해야한다고 조언한다
칭찬과 비판보다는 칭찬과 비판이 없는 부분들을 신경쓰고 고치려 하기보다는 장점을 살리는 걸 택하라고 말한다.
(고치는 건 고쳐봤자 여전히 미숙할 것이기 때문이란다.)
하루 또는 마감기한까지 해결할 수 없는 조언은 하지말라고 하는데 소설쓰기만이 아닌 모든 일에 통하는 조언이란 생각이 든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일화를 읽으면서 봉준호 감독의 대단함에 감탄했다.
김보영작가는 완벽한 글보다는 매력있는 글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창작은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이다.

ㅡ 속도감 있는 글이 밀도까지 있기 어렵다. 고요하고 정갈한 글이 스릴 넘치고 경쾌하기 어렵다. 쉽고 가벼운 글이 무겁고 진중하기 어렵다. 소프트SF라 편하게 읽히는 글이 하드 SF일 수도 없고 하드 SF라 지적인 쾌락을 주는 글이 쉬울 방법도 없다. 창작이 완벽할 수 없는 까닭은 모든 좋은 가치가 서로 대치되기 때문이다. <SF작가의 사유와 글쓰기 _김보영/ 디플롯.p176>



과학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면 아동용 책으로 공부하라는 팁이나 SF도 결국은 소설이며 문학이기에 먼저 자기 자신의 글을 쓰고 몰두하라는 메시지가 힘차서 좋았다.
책을 읽으며 중간중간 ㅋㅋㅋ 거렸다. 작가님 특유의 시니컬한 위트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심사위원으로 또는 질문과 응답의 행사에서 느꼈던 황당했던 경험을 풀어놓으셨는데 대충 상상이 되면서 유쾌하기도 했다.
특히 아래 90페이지를 읽을 땐 카페에서 소리내서 웃기도 했다.

물론 나는 내가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감히 해본적이 없다.
책을 좋아하고 책을 읽고 리뷰를 쓰고 책에 대한 수다떠는 시간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내가 가진 그릇은 독자라는 걸 항상 느끼고 있다.
( 사실 몇번 글쓰기에 도전했다가 확인했다. )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저자에 대한 팬심으로 읽게된 책인데 읽으면서도 점잖은 다른 작법서와 달리 굉장히 실용적인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특히 김보영작가님이 자신의 작품들로 예시를 들어 설명했기 때문에 이해가 쉬웠고 그 작품에 이런 고민이 있었구나 하면서 감탄하면서 읽기도 했다.
팬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멋진 작가의 실용적이며 유쾌한 창작론, 작법서 책이었다.



#SF작가의사유와글쓰기 #김보영 #디플롯
#김보영첫창작론 #먼저당신의글을써라 #몰입하라
#뻔뻔하게_한개만틀려라
#창작은펼쳐진들판 #완벽이_아닌_매력적인글
#김보영_첫_창작론 #컬처블룸서평단
#쇼코is콜라쌤 #책읽는과학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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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가 - 식물에서 발견한 새로운 지능의 미래
파코 칼보 지음, 하인해 옮김 / 휴머니스트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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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후 주관적으로 적은 후기입니다-


식물을 전공으로 삼았고 꽤 오랜 시간을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고 공부하던 시기가 있었다. 사실 생물학과에서 식물은 그다지 인기 있는 전공이 아니다. 대부분은 분자생물학으로 빠지고 아니면 동물분야로 진출했다. 분자생물학의 인기가 어쩐지 불편하고 동물을 해부하고 실험해야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식물생리로 관심을 이끌었던 것 같다.
몇 년 전 랩걸을 읽을 때 내가 포기한 분야를 열심히 살아가는 저자의 모습에 존경과 부러움이 섞인 복잡한 심정으로 읽었다. 세계식물지능을 논한다는 이 책 [뇌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가]는 반드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인 파코 칼보교수는 스페인에서 과학철학 교수다. 또한 식물 신호 전달 및 행동철학연구소 '민트(MINT, Mivimal Inteligence Laboratory)'의 연구소장이다 작가 소개를 읽으며 연구소 이름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동물학자로 유명한 프란스 드 발교수는 "우리가 과연 동물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했다. 이 책의 저자는 같은 질문을 식물에게 던진다. 그러면서 똑같은 질문을 덧붙인다. "우리는 그만큼 용감할까"
저자는 다른 존재를 알아야 우리 자신을 알 수 있다고 말하며 인류가 가시적인 뇌와 뉴런의 집합이 없다면 지능이 없다고 여기는 몹시 좁은 시야에 갇혀있다고 지적한다.


생각보다 식물은 매우 고차원적인 일들을 수행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식물을 그저 배경으로만 여긴다. 식물의 생태학적 중요성과 인간에게 선사하는 경제학적 가치 또한 이해하지 못 하고 동물의 움직임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식물맹"이라고 부른다고 정의한다. 다윈 이전까지 인간들을 거의 모두가 식물맹이었으며 지구상의 생명체에 모두 위계질서를 두는 오만을 저지르고 있는데 아직 대부분이 사람들에게 남아있는 경향이다.
ㅡ 우리는 단세포보다는 다세포를 , 단순한 유기체보다는 복잡한 유기체를, 무척추동물보다는 척추동물을 , 본능적 유기체보다는 지능적 유기체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p50
심지어 19세기까지는 식물이 유성생식 유기체라는 사실도 부정해 왔다는 것이다. 식물이 오랜 시간 수많은 생명체의 버팀목이 되어준 것을 생각하며 우리 인간은 식물에게 지나쳤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물을 학문적으로 식물의 속도에 맞춰 관할하고 연구한 학자가 바로 다윈이다.

식물의 지능을 이야기하는 1장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물 중심주의라서 동물과 식물에 보이는 관심에 근본 차이가 있고 그로 인해 우리의 시각과 뇌에서 식물에 대해서는 처리능력이 많이 쓰이지 않고 있다고 해서 조금은 놀라웠다. 생각해 보면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식물이긴 하다.
지능을 이야기하기 전에 나는 항상 지능이란 단어와 기준이 지극히 인간중심적이라고 생각해 왔다. 식물들의 처리 방식이 꼭 인간과 비슷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제목처럼 식물은 뇌와 신경이 없는데 무슨 지능이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에 대해 다윈부터 꽤 많은 식물학자들이 "뿌리 뇌"개념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는 연구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나조차도 익숙한 식물학자인 스테파노 만쿠소는 식물 뇌가 어디에 자리할지를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과학자들이 식물의 속도에 맞춰 관찰한 결과 놀라운 결과를 계속 얻었다.
먼저 식물은 적응을 통해 식량 확보 문제를 독특하게 푼다고 한다.
대부분의 녹색식물은 광합성을 하고 균류는 다른 땅속 영양분들을 흡수하는데 몇몇 식물들은 이 두 가지 방법 외에 다른 방법으로 영양분을 얻는다고 한다. 바로 도둑질이다. 다른 식물들의 공생 네트워크에 침입해 영양분을 훔치는 식물을 '스키아필라 야쿠시멘시스'라고 부른다.
또한 식물은 주변 생명체와 심리전을 벌인다.
토마토는 초식곤충의 공격을 받으면 특수한 화학물질을 분비하여 이 초식동물을 육식동물로 바꾸어버린다.
토마토가 생성한 화학물질이 애벌레의 입맛을 바꾸어 버리는데 주변의 토마토들도 동시에 같은 물질을 분비해서 굶주린 곤충들이 다른 곤충을 공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주변에서 일어날 변화를 예측하여 미리 준비를 하는 식물(p109)도 있고 경호원을 부르는 식물도 있다.
위와 같은 예들은 매우 놀라운데도 식물의 학습능력이라는 인정보다는 적응방식의 진화로 여기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해서 한때의 식물연구원이었던 사람으로 살짝 아쉬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동물들이 동족을 인식하는 것처럼 식물도 사회적 지능을 지니고 있으며(p124, 공기와 뿌리를 통해 화학물질로 동족을 인식함) 스스로 내린 선택의 위험성을 판단할 수도 있다.
식물은 동물과 같은 뉴런이 없지만 동물처럼 조직을 통해 전기를 전달하면서 내부소통을 할 수 있다.
ㅡ 신경이 없는 식물에서는 뿌리에서 잎까지 이어지는 관으로 이루어진 관다발계가 수송망 역할을 하며 전기신호를 전달한다. p139
동물에게서 중요한 GABA와 글루탐산염 등은 식물에서도 생성된다.
ㅡ동물학에서 GABA는 뉴런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초점을 맞추지만 식물에서는 pH조절 같은 대사기능을 한다 또한 포유류의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탐산염이 식물에서도 통증 신호를 빠르게 전달한다. 동물에서 글루탐산여 수용체와 관련한 유전자들은 식물의 유전자들과 거의 같다. GABA와 글루탐산염 같은 분자들은 세포 성장과 발달의 바탕이 되는 식물행동에 특히 중요하다. p144- 145 요약발췌
식물도 동물처럼 통증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식물의 스트레스는 나노 센서로 직접 측정이 가능하다. p263) 클로로폼으로 마취가 가능하다.
식물이 동물처럼 그러나 동물과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며 소통을 하고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이 식물이 잘 적응한 것인지 아니면 식물에게 의식이 있다는 증거인지는 아직 결론이 나진 않았다. 저자의 주장을 따라온 나는 식물에게 의식이 있다는 판단을 내리던 찰나에 저자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두 개 던진다.
첫째는 농작물이 우리를 길들였다는 것이다.
ㅡ 지금의 밀이나 옥수수 종들은 과거 고난 속에 살던 종보다 훨씬 윤택한 삶을 산다. 현실에 안주하며 둔감해졌지만, 이는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인간 보호자들이 농작물의 이익을 보호해 준다. 하지만 사실은 농작물이 우리를 길들였다고도 할 수 있다. p 250
또 하나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였는데 채식주의자들의 윤리체계가 흔들린다는 점이다.
식물을 먹었던 건 동물만 고통을 느낀다는 생각으로 식물을 먹는 것이 윤리적으로 안전한 행위라고 생각해 왔는데 식물 역시 주관적 경험을 겪는다는 사실이 혼란스럽다는 점이다.


저자는 눈을 돌려 화성을 이야기한다. 화성에 보낸 탐사로봇이 왜 꼭 바퀴를 가지고 움직여야 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동대신 성장해도 되지 않을까 하며 저자는 식물로봇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2020년 조지아대학교 연구팀은 덩굴성 콩을 로봇 개발의 핵심 모형으로 삼았고 스탠퍼드와 캘리포니아의 연구자들은 그로우 봇 Growbot (식물이 잎끝에서 싹을 내듯이 성장하는 로봇)을 개발했다. 식물과 비슷한 연성로봇이 만들어질수록 환경 적응력이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저자는 전망한다.
처음과 끝에서 다윈을 이야기한 저자는 다윈처럼 생각할 것을 주문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식물지능과 식물감정을 증명하고 입증하기 위해 무척 애쓰는 책이었다.
책에도 여러 번 언급되는 스테파노 만쿠소는 식물의 지능을 이해하면 우리와 다른 외계 생명체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윤리적 존재로 여기려면 다른 유기체의 괴로움을 고려해야 한다고도 했다.
식물과 우리는 매우 다르다.
그러나 모두 동일한 하나의 세포에서 출발했다. 생명의 나무에서 거리가 많이 멀어졌지만 식물을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이 지구를 배려하는 방법은 맞을 것이다.
식물맹부터 벗어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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