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가 - 식물에서 발견한 새로운 지능의 미래
파코 칼보 지음, 하인해 옮김 / 휴머니스트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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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후 주관적으로 적은 후기입니다-


식물을 전공으로 삼았고 꽤 오랜 시간을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고 공부하던 시기가 있었다. 사실 생물학과에서 식물은 그다지 인기 있는 전공이 아니다. 대부분은 분자생물학으로 빠지고 아니면 동물분야로 진출했다. 분자생물학의 인기가 어쩐지 불편하고 동물을 해부하고 실험해야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식물생리로 관심을 이끌었던 것 같다.
몇 년 전 랩걸을 읽을 때 내가 포기한 분야를 열심히 살아가는 저자의 모습에 존경과 부러움이 섞인 복잡한 심정으로 읽었다. 세계식물지능을 논한다는 이 책 [뇌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가]는 반드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인 파코 칼보교수는 스페인에서 과학철학 교수다. 또한 식물 신호 전달 및 행동철학연구소 '민트(MINT, Mivimal Inteligence Laboratory)'의 연구소장이다 작가 소개를 읽으며 연구소 이름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동물학자로 유명한 프란스 드 발교수는 "우리가 과연 동물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했다. 이 책의 저자는 같은 질문을 식물에게 던진다. 그러면서 똑같은 질문을 덧붙인다. "우리는 그만큼 용감할까"
저자는 다른 존재를 알아야 우리 자신을 알 수 있다고 말하며 인류가 가시적인 뇌와 뉴런의 집합이 없다면 지능이 없다고 여기는 몹시 좁은 시야에 갇혀있다고 지적한다.


생각보다 식물은 매우 고차원적인 일들을 수행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식물을 그저 배경으로만 여긴다. 식물의 생태학적 중요성과 인간에게 선사하는 경제학적 가치 또한 이해하지 못 하고 동물의 움직임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식물맹"이라고 부른다고 정의한다. 다윈 이전까지 인간들을 거의 모두가 식물맹이었으며 지구상의 생명체에 모두 위계질서를 두는 오만을 저지르고 있는데 아직 대부분이 사람들에게 남아있는 경향이다.
ㅡ 우리는 단세포보다는 다세포를 , 단순한 유기체보다는 복잡한 유기체를, 무척추동물보다는 척추동물을 , 본능적 유기체보다는 지능적 유기체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p50
심지어 19세기까지는 식물이 유성생식 유기체라는 사실도 부정해 왔다는 것이다. 식물이 오랜 시간 수많은 생명체의 버팀목이 되어준 것을 생각하며 우리 인간은 식물에게 지나쳤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물을 학문적으로 식물의 속도에 맞춰 관할하고 연구한 학자가 바로 다윈이다.

식물의 지능을 이야기하는 1장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물 중심주의라서 동물과 식물에 보이는 관심에 근본 차이가 있고 그로 인해 우리의 시각과 뇌에서 식물에 대해서는 처리능력이 많이 쓰이지 않고 있다고 해서 조금은 놀라웠다. 생각해 보면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식물이긴 하다.
지능을 이야기하기 전에 나는 항상 지능이란 단어와 기준이 지극히 인간중심적이라고 생각해 왔다. 식물들의 처리 방식이 꼭 인간과 비슷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제목처럼 식물은 뇌와 신경이 없는데 무슨 지능이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에 대해 다윈부터 꽤 많은 식물학자들이 "뿌리 뇌"개념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는 연구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나조차도 익숙한 식물학자인 스테파노 만쿠소는 식물 뇌가 어디에 자리할지를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과학자들이 식물의 속도에 맞춰 관찰한 결과 놀라운 결과를 계속 얻었다.
먼저 식물은 적응을 통해 식량 확보 문제를 독특하게 푼다고 한다.
대부분의 녹색식물은 광합성을 하고 균류는 다른 땅속 영양분들을 흡수하는데 몇몇 식물들은 이 두 가지 방법 외에 다른 방법으로 영양분을 얻는다고 한다. 바로 도둑질이다. 다른 식물들의 공생 네트워크에 침입해 영양분을 훔치는 식물을 '스키아필라 야쿠시멘시스'라고 부른다.
또한 식물은 주변 생명체와 심리전을 벌인다.
토마토는 초식곤충의 공격을 받으면 특수한 화학물질을 분비하여 이 초식동물을 육식동물로 바꾸어버린다.
토마토가 생성한 화학물질이 애벌레의 입맛을 바꾸어 버리는데 주변의 토마토들도 동시에 같은 물질을 분비해서 굶주린 곤충들이 다른 곤충을 공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주변에서 일어날 변화를 예측하여 미리 준비를 하는 식물(p109)도 있고 경호원을 부르는 식물도 있다.
위와 같은 예들은 매우 놀라운데도 식물의 학습능력이라는 인정보다는 적응방식의 진화로 여기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해서 한때의 식물연구원이었던 사람으로 살짝 아쉬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동물들이 동족을 인식하는 것처럼 식물도 사회적 지능을 지니고 있으며(p124, 공기와 뿌리를 통해 화학물질로 동족을 인식함) 스스로 내린 선택의 위험성을 판단할 수도 있다.
식물은 동물과 같은 뉴런이 없지만 동물처럼 조직을 통해 전기를 전달하면서 내부소통을 할 수 있다.
ㅡ 신경이 없는 식물에서는 뿌리에서 잎까지 이어지는 관으로 이루어진 관다발계가 수송망 역할을 하며 전기신호를 전달한다. p139
동물에게서 중요한 GABA와 글루탐산염 등은 식물에서도 생성된다.
ㅡ동물학에서 GABA는 뉴런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초점을 맞추지만 식물에서는 pH조절 같은 대사기능을 한다 또한 포유류의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탐산염이 식물에서도 통증 신호를 빠르게 전달한다. 동물에서 글루탐산여 수용체와 관련한 유전자들은 식물의 유전자들과 거의 같다. GABA와 글루탐산염 같은 분자들은 세포 성장과 발달의 바탕이 되는 식물행동에 특히 중요하다. p144- 145 요약발췌
식물도 동물처럼 통증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식물의 스트레스는 나노 센서로 직접 측정이 가능하다. p263) 클로로폼으로 마취가 가능하다.
식물이 동물처럼 그러나 동물과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며 소통을 하고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이 식물이 잘 적응한 것인지 아니면 식물에게 의식이 있다는 증거인지는 아직 결론이 나진 않았다. 저자의 주장을 따라온 나는 식물에게 의식이 있다는 판단을 내리던 찰나에 저자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두 개 던진다.
첫째는 농작물이 우리를 길들였다는 것이다.
ㅡ 지금의 밀이나 옥수수 종들은 과거 고난 속에 살던 종보다 훨씬 윤택한 삶을 산다. 현실에 안주하며 둔감해졌지만, 이는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인간 보호자들이 농작물의 이익을 보호해 준다. 하지만 사실은 농작물이 우리를 길들였다고도 할 수 있다. p 250
또 하나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였는데 채식주의자들의 윤리체계가 흔들린다는 점이다.
식물을 먹었던 건 동물만 고통을 느낀다는 생각으로 식물을 먹는 것이 윤리적으로 안전한 행위라고 생각해 왔는데 식물 역시 주관적 경험을 겪는다는 사실이 혼란스럽다는 점이다.


저자는 눈을 돌려 화성을 이야기한다. 화성에 보낸 탐사로봇이 왜 꼭 바퀴를 가지고 움직여야 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동대신 성장해도 되지 않을까 하며 저자는 식물로봇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2020년 조지아대학교 연구팀은 덩굴성 콩을 로봇 개발의 핵심 모형으로 삼았고 스탠퍼드와 캘리포니아의 연구자들은 그로우 봇 Growbot (식물이 잎끝에서 싹을 내듯이 성장하는 로봇)을 개발했다. 식물과 비슷한 연성로봇이 만들어질수록 환경 적응력이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저자는 전망한다.
처음과 끝에서 다윈을 이야기한 저자는 다윈처럼 생각할 것을 주문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식물지능과 식물감정을 증명하고 입증하기 위해 무척 애쓰는 책이었다.
책에도 여러 번 언급되는 스테파노 만쿠소는 식물의 지능을 이해하면 우리와 다른 외계 생명체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윤리적 존재로 여기려면 다른 유기체의 괴로움을 고려해야 한다고도 했다.
식물과 우리는 매우 다르다.
그러나 모두 동일한 하나의 세포에서 출발했다. 생명의 나무에서 거리가 많이 멀어졌지만 식물을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이 지구를 배려하는 방법은 맞을 것이다.
식물맹부터 벗어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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