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만들기 - 성형외과의의 탄생
린지 피츠해리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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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후 주관적으로 읽고 적은 후기입니다-
대한민국은 성형대국이다.
브이라인 얼굴형에 필러넣은 입술, 반달 눈아래의 도톰한 애교살과 볼록 이마, 날렵한 콧날- 이 시대의 동안 미인형이자 흔히들 말하는 강남미인의 얼굴이다. 대한민국 국민 1,000명당 9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성형수술을 해서 세계에서 성형 수술한 사람의 수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고 한다(미국 인사이더 몽키, 2024년 1월 발표) . 이제 쌍꺼풀 수술정도는 요란스럽지 않고 어느 틈엔가 피부관리가 자기 관리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되었다.
욕망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성형외과와 피부과는 욕망의 중요한 축이다.
그러나 성형외과의 시작은 이런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성형외과는 전쟁의 산물이었다.
이한음번역이라 선택한 이 책 [얼굴 만들기 -성형외과의 탄생]은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얼굴과 턱에 부상을 입은 군인들을 위해 분투한 외과 의사 해럴드 길리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제 1차 세계대전은 참호전이 시작된 전쟁이었고 최초의 장기전이자 다양한 무기(탱크 등)와 화학전이 시작된 전쟁이었다. 기존에 없던 것들이 대거 등장한 전쟁의 참혹성을 설명하며 책은 시작되었다.
시신이 너무나 많아 수거할 수도 없었고 시신에서 나온 악취는 군인들이 먹는 상한 빵에도, 마시는 고인 물에도 입고있는 군복에도 배어있을 지경이었다. 사망자 수만큼 부상자도 속출하게 되었다.
ㅡ 몸은 난타당하고 뚫리고 베이곤 했지만, 얼굴에 입은 부상은 특히 심한 심리적 충격을 안겨 줄 수 있었다. 전선의 한 간호사는 이렇게 표현했다. <치유의 과학은 파괴의 과학 앞에서 어찌할 줄 몰랐다.> 참호전의 특성 때문에 얼굴을 다치는 비율이 높았다. 많은 전투원은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예상조차 못하다가 얼굴에 총탄을 맞았다. 전쟁이 끝나기 전에 프랑스,독일, 영국에서만 얼굴 외상을 입은 사람들이 28만 명에 달했다. <얼굴 만들기 /린지 피츠해리스. 이한음옮김. 열린책들 p18. 발췌>

얼굴의 부상은 다른 신체부위의 부상과 달랐다. 한쪽 다리를 잃은 사람은 연민과 존경심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지만 얼굴이 훼손된 경우는 거부감과 혐오감을 먼저 불러일으키곤 했다. 얼굴이 손상된 병사들에게 빛과 같은 존재가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 해럴드 길리스였다.
길리스의 어린 시절과 1차 세계대전의 초기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책을 읽으며 신기하다고 느꼈던 점이 아주 많은 남성들이 전쟁 참여에 자원했다는 점이었다.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굳이 부르지 않으면 자원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서다. 전쟁 초반 여성 의사들과 간호사들의 지원요청을 거절하는 장면들은 실소가 나오기도 했다. 길리스도 영국이 1차대전에 참전한 직후 적십자사에 돕겠다는 서명을 하고 1915년에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당시 길리스의 아내는 둘째를 임신 중인 상태였다. 태어날 아이의 미래를 위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나라면 하지 못 했을 선택같았다.

부상병들을 위한 얼굴 재건술을 처음 시작한 사람이 길리스는 아니었다. 미국 남북전쟁 때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길리스는 외과의사였지만 얼굴과 턱에 부상을 당한 군인들을 위해 그는 치과 등 다른 과와 협업을 마다하지 않았다. 또한 휴게시간마다 골프 등으로 스트레스를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단순 수술 뿐 아니라 환자들의 체력과 컨디션도 신경쓰는 사람이었다.
책에서 참 인상적인 점은 길리스가 다른 의사들에게 여러가지를 배우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었다. 모리스탱이란 의사에게 배우고 싶어했지만 거부당한 길리스가 다른 의사들에게 열린 모습을 보인 점은 감탄스러웠다.
길리스는 꾸준히 얼굴과 턱의 부상만을 전담하는 진료과를 설치하자고 제안했고 1916년 성형 수술과 관련된 특수 임무를 보고하라는 명령을 받고 올더숏의 군병원에 발을 디디게 된다.
경험이 많은 간호사들 마저 충격을 받을 만큼의 얼굴과 턱 환자들이 올더숏으로 모였다. 길리스는 협력할 수 있는 다양한 전문가들을 모았고 환자들이 수술을 견딜 수 있도록 체력을 유지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냈다.
몇 개월의 시행착오를 거친 길리스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단계적으로 재건수술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 내일로 미룰 수 있는 것을 결코 오늘 하지 말라"는 독특한 좌우명이 생기게 되었다.
올더숏의 병원은 점점 공간이 부족해졌다. 길리스의 병원은 시드컵의 퀸스병원으로 옮겨졌다.
저술가인 레지널드 파운드의 설명에 따르면 올더숏의 케임브리지 군병원은 현대 성형 수술의 산전 진료소이고 시드컵의 퀸스 병원은 탄생지라고 했다고 한다. 현대 성형 수술의 원칙 중 상당수가 그 곳에서 정립되었다고 한다.

7장까지 올더숏의 생활이 그려지고 8장부터 퀸스 병원의 생활을 보여주는데 7장과 8장 사이에 여러 자료 사진들이 들어있다. 환자들의 얼굴 재건 과정을 찍은 사진들을 보면 전쟁의 참혹함과 의학의 실질적 목적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길리스 뿐 아니라 독일 쪽에서도 성형술을 치료하는 의사가 있었다고 한다. 독일의 유대인 의사 자크 요제프가 베를린에서 얼굴재건술을 시행했는데 요제프는 그 당시에 성형 수술의 심리적 측면이 기능 복원 능력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시드컵의 규모는 한층 커지고 훗 날 전쟁에 참여한 미국에서도 의사를 보냈다고 한다. 길리스는 새로운 성형수술 방법을 만들 때 협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양한 전문가들 사이의 의견교환을 중요시했다. 그래도 워낙에 재능있는 사람들을 많이 모았기 때문에 의사들 사이의 견제와 경쟁이 불타올랐고 군인들의 재건된 코가 누구의 양식인지를 구별 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 덕분에 병원 전체의 수준이 높아졌다. (전쟁 이후 수술 기법의 창시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다툼이 생기기도 했다) 시드컵은 점점 커져서 성당과 매점 극장까지 생기게 된다.
그러나 예상치도 못 한 복병이 등장한다. 바로 스페인독감이다. 이 세계적 유행병으로 길리스는 많은 지인을 잃었다고 한다.
ㅡ 죽음은 빠르게 무차별적으로 찾아왔고 남들의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래왔듯이 퀸스병원은 하던 일을 계속 했다. <얼굴 만들기 /린지 피츠해리스. 이한음옮김. 열린책들 p293>

전쟁이 끝나고 길리스의 육군 의무대 복무는 공식적으로 1919년 10월에 끝나지만 시드컵에서 6년 더 수술했다고 한다. 이 시드컵에서 생긴 성취들은 제 2차 세계대전에서도 요긴하게 쓰이게 되지만 당시 바로 인정받지 못 했다. 전쟁의 승리의 영광은 싸운 장군들에게만 돌아갔고 목숨을 구한 이들은 외면당했다. 전쟁이 끝나고 10여년이 지난 1930년에 길리스는 제 1차 세계대전에서의 공로로 뒤늦게 기사작위를 받았다.
길리스는 모두가 외과의로 돌아가는 흐름에서도 계속해서 성형수술의로 살아간다. 엑스선에 과하게 노출되어 얼굴에 종양이 생긴 여성의 얼굴을 복원해줬고 젊은 여자의 뒤틀린 다리를 펴지게 했다. 전세계에서 길리스의 능력을 배우기 위해 학생들이 찾아왔고 길리스는 그들을 조수로 받아들였다. 성형외과를 정식 분야로 만들기 위해 길리스는 열정적으로 노력했고 일흔 일곱살의 나이에도 제 2차 세계대전에서는 부상병들의 얼굴 재건과 생식기 재건 수술도 해냈다.
(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길리스의 사촌인 아치볼드 매킨도의 명성이 더 높았다고 한다)
길리스란 사람은 도전할만한 수술 과제 앞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결국 1949년 길리스는 성전환 남성의 음경 성형술에 성공한 최초의 외과 의사가 되었다. 이때 길리스가 개척한 기법은 현대 음경 성형술의 토대가 되었다고 한다(p325). 엄청난 승부욕을 가진 사람이었고 집요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길리스는 기능 뿐 아니라 미학 그리고 삶의 질을 고려하는 성형외과의 문을 연 사람이라는 사실도 대단하지만 고대로부터 있던 코 성형술 외에 새로운 기법을 만들고 개선해내는 사람이었다. 환자를 수술하다가 뇌졸중을 일으킨 뒤 한달만에 사망했다는 그의 인생의 마지막 장면도 길리스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이지마다 사실 끔찍한 내용들이 있는 책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롭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길리스라는 인물이 내뿜는 에너지 덕분 일 것이다.
에너지와 능력이 충만한 한 사람에게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된다.
성형수술이 단순한 욕망의 구현이라기 보다는 누군가에는 삶을 제대로 살아갈 유일한 통로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함께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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