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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 - 박서련 일기
박서련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12월
평점 :
일기를 책으로 엮었다니 일기하면 혼자 읽고 나만의 비밀공간이라 혼자만의 것이라 여겼는데 책으로 나와 읽으니 신선하다. 30년전 일기장을 몇년에 한번 들추어 보면 왜 그렇게 혼자봐도 쑥스럽고 창피한지 모르겠는데 작가는 대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솔직하고 담백하다. 50대의 엄마로서 읽어서 그런지 요즘 쓰는 단어 선택이 쎄다는 느낌이다.
내숭없이 솔직하게 스스로가 맞서며 앞으로 나가는 당당하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성장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체공녀 강주룡)(더 셜리 클럽)의 소설을 쓴 작가라 그런지 일기에서도 약간의 실화소설 느낌이 난다.
작가는 자신이 쓰는 글 중에서 일기가 제일 재미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던 기억에서 출발해 몇 년간 쓴 일기 중 생판 남에게 보여도 되겠다 싶은 것들을 추려서 낸 책이 '오늘은 예쁜걸 먹어야겠어요'이다.
일기가 의인화되어 나와 대화할 수 있다면 연락이 뜸할 동안에 일어났던 나쁜 일들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게 예의겠지. 자기가 모르는 사이 내게 있었던 좋은 일과 나쁜 일 모두를 나 자신보다 훨씬 예민하게 받아들일 테니까. 나는 일기가 아니지만 일기는 나니까.(작가의 말을 대신해서)
나의 나 됨을 사과하는 것도 이제는 다소 촌스러운 일인 걸 안다. 그래도 그걸 매번 염려해주는 사람들에게는 어쨌든, 포드로서가 아니라, 진심을 담은 사과를 해야 한다. 어떻게 말하지. 나에게 실망하면 어떡하지. 나를 싫어하게 되면 어떡하지- 따위를 걱정하다가 결국 말하지 못한 일이 너무 많다. 내 입으로 전하지 않은 채 드러나버리눈 비밀들은 감당하기가 더 어렵고, 나는 비밀이 너무 많아서 금세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데.P18
시를 쓰는 친구에게서 너한테는 사랑이 엄청 중요한가 봐, 나는 시보다 중요한 게 이때껏 없었는데, 라느 말을 듣고 응! 티 많이 나? 나한텐 사랑이 일등이야, 라고 했는데 그렇게 말한 걔한테는 애인이 있고 나한테는 없는 점이 이제 와서 빡친다.P62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 라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라는 대답을 들었다) 집 근처의 돈가스 가게에 갔다. (별로 예쁜 음식 같은 느낌이 아니라서인지 이 얘기를 하면 다 웃는데 그 집 돈가스는 예쁘다).P109
나도 내가 과대망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적어도 누군가 내 사고회로에 접속하고 있다면 망상은 아니다) 내 일기에서 만큼은 이런 일들을 마음껏 이상하게 여겨도 되겠지. 일기 말고는 내 편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지나고 보면 더 그럴 것이다.P181~182
죽기 너무 좋은 도시였다. 외백도교는 그다지 안전장치도 없어서 그냥 포강을 향해 넘어지면 죽을 수 있을 거였다. 만약 구출된다고 해도 강물이 구정물이라 병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식의 충동이 들 때마다 나를 살린 건 막 나를 사랑하는 .... 나를 필요로 하는 .... 뭐 그런 존재들에 대한 생각보다는(그런 것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죽음의 감정적 동기로 지금 이건 좀 사소하지 않을까 하는 ..... 자존심 같은 거였다. 그걸 생각하니 스스로가 더 하찮으면서도 친밀하게 느껴졌다. '으이구 등신아ㅎㅎ' 하는 마음.P251
온전한 독서란 무엇일까, 어떤 일일까. 어떤 책을 소리 내어 읽어 한 글자 한 글자 한 글자 빠짐없이 보고도 완전한 이해에 다다르지는 못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이 쓴 글이 그 자신을 초과하는, 그리 드물지는 않은 경우들을 보면, 온전한 독해란 저자에게조차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문단도 원래 논하려던 주제와는 영 동떨어진 이야기인 데다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현학적인 생각인 것 같지만 일단은 이대로 두겠다.P274
작가정신 서포터즈 자격으로 제공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