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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어떻게 내 삶을 움직이는가 - 세상의 이면을 파헤치는 실전경제학 입문서
모셰 애들러 지음, 이주만 옮김 / 카시오페아 / 2015년 2월
평점 :
누구를 위한 효율인가.
당신은 모르는 돈의 비밀
<경제학은 어떻게 내 삶을 움직이는가>
명품 장사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불황에서 살아남는 전략은 고기 한 덩이를 팔아도 루이비통처럼 파는 것이라 종용하는 서적도 출간된 바 있다. 불황에도 살아남는 명품 팔이에 뭇사람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유한한 자원으로 이윤 극대화를 이루기 위해 가난한 소비자를 시장에서 배제시키는 것이 우선할 조건으로 지목되기 때문일 것이다. 부자는 영원히 부자일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에서 최대 구매력은 언제나 그들만의 고유명사였고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는 경제적 악조건에서도 부유층이 거두는 열매는 여전히 달고 풍요롭다. 이른바 상류층의 애호품은 그래서 불황을 타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날 시장의 횡포가 적정 도를 넘어서고 있다. 항공사들은 비행기의 일반석을 대폭 축소해 비즈니스석의 공간과 수효를 늘리고 거기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이들에게 단독 침대의 안락함까지 제공한다. 부유한 환자만 치료하겠다는 의사가 늘어나고 노동자와 경영진의 임금 격차는 이미 400배를 웃돌았으며 빈곤국에 유독 폐기물을 버리는 것이 경제 논리상 합당하다 떠드는 것이 경제학자가 존재해야 할 명분이 되어버렸다.
이 시대 경제학자들은 경제 효율이란 명목 아래 부자의 부를 가난한 이와 나누어선 안 되고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어서도 안 되며 부와 권력을 차지한 이들의 만족을 늘리기 위해 그렇지 못한 이들의 삶을 악화시키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태도를 견지해왔지만 이는 종내 수많은 정책을 실패로 되돌리며 부의 양극화와 비인간적 경제행위를 양산해내기에 이르렀다. 재화의 생산과 이윤 창출의 과정에 불가결한 노동력을 제공하고도 하찮은 대가에 만족해야 하는 이 시대 노동자들의 삶은 늘 버겁다. 그들의 수고로움이 무색할 만큼 정당한 몫 이상으로 너무 많은 부를 차지하고 있는 소수 덕에 여분의 몫은 언제나 부족하다.
주류 경제학의 원론인 파레토 이론에서 말하는 최적의 효용 상태란 것 역시 적잖이 모순적이다. 시장이 최대 효용 상태라 할지라도 가난한 사람의 효용(행복)을 늘림으로 부자의 효용이 줄었다면 파레토 최적에 어긋난다는 논리로 극소수의 부자가 공동체 대부분의 부를 독식하는 현재의 불합리한 구조를 영속하려는 뻔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으니 말이다. 탁상공론 속 최적이론이 변수로 가득한 현실에 그대로 적용될 리 만무하지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에서 부당한 분배의 고통은 협상에 불리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의 몫으로 오롯이 돌아오고 만다.
재분배로 관심이 쏠릴 때마다 그것이 경제에 이로울지를 거론하며 모든 분배정책은 비효율적이라는 듯 반기를 드는 이들이 주장하는 '효율'은 '형평성'의 기준을 전혀 제시하지 못 한다. 반면 사회 재분배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긍정적 효과들은 생각보다 커다란 효율을 안겨줄지 모른다. 최저 임금을 평균 임금 수준으로 인상한다면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계 임금 확보라는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고, 경영자에게 세금을 더 부담시킨다 해서 그들의 근로의욕이 감소하거나 경제성장이 저하되지 않음을 과거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이미 확인한 바 있다.
평등과 효율이 이율배반적 가치라는 논리에 맞서 그 두 가지가 상충하지 않는다는 주장 또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효율적인 상태는 특정한 분배 평등 상태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는 것이지 분배 평등과 독립적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
(Rawls, 2003)
부와 소득의 불평등은 권력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부와 권력의 불평등을 영속화하는 사회제도를 고착시킨다. 사회가 번영하려면 대다수 구성원이 투자와 근로에 적극적이고 혁신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하지만, 권력의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사회제도에서는 이러한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보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평등과 효율의 관계를 볼 경우 그 상충적 측면보다는 평등이 효율을 향상시키는 상호 보완적 측면을 잘 포착할 수 있다.
(World Bank, 2005)
<사회과학 명저 재발견 3, 구인회 저, 2012年>
경제 효율 이론이 더이상 부와 권력을 지키기 위한 기득권의 눈속임 수단으로 전락해선 안될 것이다. 또한 효율과 형평이라는 두 가지 목표가 균형 있게 달성되는 경제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고뇌하고 머리를 맞대는 것이 이 시대 경제학자와 정치가들이 감당해야 할 마지막 정의일 것이라 여겨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