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 KBS <TV, 책을 보다> 선정 도서
미겔 앙헬 캄포도니코 지음, 송병선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만나고 싶습니다, 당신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아름다운 퇴장



2015년  3월 1일 (현지시간). 지구 반대편 남미의 작은 나라 우루과이에서 개최된 대통령 이. 취임식이 전파를 탔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재임에 성공한 타바레 바스케스를 환영하는 한편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의 퇴임에 진한 아쉬움을 표하며 작별 인사를 건넸고 그를 스치는 인파는 열광에 출렁였다. 임기말 레임덕을 찾아볼 수 없는 65%의 높은 퇴임 지지율은 새 수장의 당선 지지율보다도 높은 것이었다. 우루과이에 연임 금지법이 없었다면 국민들이 그를 떠나보내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외신들의 반응이었다.

이 땅에선 감흥을 자아낸 적 없던 행사가 반대편 저곳에선 어떤 연유로 슬픔 뒤섞인 환호의 장이 돼 버린 것인지 자못 궁금했다. 여러 영상들을 통해 시민의 인터뷰를 접하고 난 후 나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고 말았다.



" 대통령이요? 그는 제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제 스스로를 믿듯이요."

" 그는 우리가 가졌던 최고의 대통령입니다. 그가 퇴임하는 것이 슬퍼요. 타바레 대통령도 좋지만 페페는 페페잖아요."

  


무대에서 내려오는 대통령을 향해 무한한 찬사를 보내는 국민이 있는 나라,

그리고 이러한 범국민적 신뢰를 이끌어낸 전례 없는 대통령에 바야흐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나는 행복한 농부입니다



호세 무히카. 그의 이름 앞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란 수식어가 따른다. 하지만 그는 '가난한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을 원하기에 도무지 만족을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것이라며 그렇기에 자신은 결코 가난하지 않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우루과이 인물사전에 등록된 프로필에서 그의 직업은 농부(화초 재배인)이다.

 

 

 

그는 수식어 만큼이나 독특한 행보로 유명한 인물이다.



˚ 우루과이 대통령의 월급은 1,300만 원. 그중 90%를 사회 복지 단체와 시민 주택 건설, 소속 정당에 기부하고 국민 평균 임금인 80만 원으로 살아가는 대통령

˚ 정치인이 너무 많은 돈을 받는다며 국민들과 함께 낮아지기 원했던 대통령

˚ 동급인 프란치스코 교황 할아버지에게 '현자'의 칭송을 받고

˚ 인권을 기반한 입법 노력과 투쟁으로 노벨 평화상 후보에 두 번 올랐으며

˚ 전 재산은 트랙터와 28년 된 구식 자동차, 그리고 농기구 몇 점. 가치로 따지면 1,500만 원. 상원 의원으로 있는 부인의 재산을 모두 합쳐도 부부의 전 재산은 2억 뿐이다

˚ 매일 저녁 대통령 궁에서 사라져 부인이 기다리는 농장의 비좁고 허름한 집으로 향하는 남자

˚ 주말이면 시장에 나가 손수 기른 국화를 팔고, 이웃집의 지붕을 고쳐주는 남자

˚ 더운 날엔 발목이 짧은 바지와 슬리퍼를 신고 나타나는 대통령

˚ 대통령궁을 노숙인에게 내어주자 제안하고

˚ 실무자보다 먼저 현장에 나타나 일을 처리하며

˚ 말이 많아서 언론 노출이 잦은 잔소리쟁이 

˚ 금의 환향하는 국가대표 축구팀이 보고 싶어서 공항 어느 구석에 축축한 모습으로 혼자 기다리는 대통령   

˚ 경호원과 고급 차를 거부하고 200만 원 짜리 낡은 경차를 보물인 듯 손수 운전하며

˚ 대통령이 아닌 pepe (페페. 애칭) 할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믿을 수 없겠지만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정치인이다.


혹자는 포퓰리즘(대중 인기 영합주의)이 아니냐며 그의 남다른 행보를 달가워하지 않지만 그의 이런 행동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곁엔 경제공황으로 파산한 후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꽃과 작물을 내다 팔며 희생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런 어머니를 도와 땅을 일구며 살아왔던 무히카는 그저 늘 있던 곳에서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산 것뿐이었다. 단지 대통령 당선 전과 후가 다르지 않은 한결같은 사람이었을 뿐이다.    



" 나는 나만의 생활방식이 있다. 대통령이란 이유만으로 이를 바꾸진 않을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는 부족할지 몰라도 나는 필요 이상으로 많이 벌고 있다. 그러니 이것을 희생이라 말할 수 없다. 이것은 의무이다."


" 흙덩이는 완벽한 실험실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정교해서 인간이 도저히 흉내 낼 수도 없습니다. 흙은 글을 쓰거나 읽을 줄 모르기 떄문에 성스러울 수 있습니다. 인간도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이해하기 시작하면, 성스러운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글을 모르는 사람처럼 됩니다."


 

 


행복을 역설하는 철학가



" 내가 무언가를 살 때 그것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벌기 위해 쓴 시간으로 사는 것이다. 이 시간에 대해 인색해져야 한다. 시간을 아껴서, 정말 좋아하는 일에, 우리에게 힘이 되는 일에 써야 한다."

 

 

행복에 쓰기 위해 시간에 인색해야 한다는 말이 가슴을 울리며 남다르게 다가온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무히카 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열네 살에 투사의 삶을 선택한 어린 무히카는 독재정권에 맞서 가난한 이들 편에서 싸우며 끝이 보이지 않는 고독과 두려움 앞에 긴 세월을 바쳐야만 했다. 여섯 번의 총상과 혹독한 고문을 견디며 동료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고통의 시간들, 생사를 건 두 번의 탈옥, 그리고 13년의 외로운 수감생활. 그 오랜 고초 후에 자유의 몸이 되거든 기필코 땅으로 돌아가겠노라고 자위하며 어둠을 삼켰던 그는 그렇게 독방 한구석에서부터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들'에 집착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 인생은 기적이다. 인생만큼 가치 있는 것은 없다."

" 내 라이프 스타일은 나의 상처가 낳은 결과이다."



눈치 보지 않는 소신으로 숨김없고 직설적인 화법이 인상적인 그는 한편으로 풍부한 은유를 구사할 줄 아는 시인이자 철학가와 같았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놀라운 행보만큼이나 대중의 입에 끊임없이 회자되며 희망이 실종된 세상 가운데 많은 이의 가슴속에서 살아갈 용기와 울림이 되어주고 있다.  



 

그 거리에 나도 있었네




가제본으로 만난 그의 책은 새로운 경험만큼이나 특별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그의 육성이 대거 수록된 평전이었기에 한 문장도 흘리고 싶지 않았고 한 단어도 가벼이 넘기지 않았다. 우루과이의 정세를 몰랐던 내게 가벼운 공부는 그만큼 확실히 내용의 이해를 도왔다. 원문을 보진 못 했지만 번역의 수준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을 만큼 훌륭했다. 책에 낙서가 많다는 짝궁의 말은 귓전으로 듣고 긴 밤을 하얗게 태우며 그렇게 나는 판도의 어느 퇴각로에서, 몬테비오의 어느 술집에서, 푼타 카레타스 교도소의 땅굴 속에서, 키 본 술집이 있던 하수도 관에서 그와 함께 가쁜 호흡을 내쉬고 있었다. 곳곳에 넘치는 명언과 아름다운 은유로 맞이한 아침은 실로 가슴 벅차기까지 했다.

 

 

 

 

 

투사의 삶



" 내 몸이 허락하는 한 은퇴란 없을 것입니다. 내가 상원에 들어가기로 되어 있어서가 아닙니다. 투사의 삶의 중독돼 있어서입니다. 나는 14살에 투사가 되었고 지금도 그 일을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

 

 

거리의 투사에서 정계의 투사로 평생을 무언가와 싸우며 살아온 굴곡진 삶과는 다르게 그는 사람의 온기와 배신하지 않는 흙을 사랑하며 스스로 행복을 빚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끝나지 않는 투사의 삶은 인본(人本)에 요동치는 가슴이 있어 가능한 것이기에 대립돼 보이는 가치를 끌어안고 사는 그의 삶은 기실 전혀 어긋남이 없는 것일 테다.


인기에 영합하기는커녕 가톨릭 국가인 우루과이 내에서 상상도 못 할 사안들을 꿋꿋하게 추진하던 그가 무대를 내려오며 그간의 고충을 토로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는 대통령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란 말로 그렇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권위를 주워 담지 않으려 했다.


 


시대에 요구되는 리더의 품격




" 일자리를 만들어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이 일을 하고 세금을 낼 수 있게끔 도와줘야 합니다. 정부는 불평등 해소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 돈이 많은 사람은 사치스런 삶을 살면서도 더 많은 것을 욕망합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라 삶을 누릴 수 있는 시간입니다."

-호세 무히카 대통령


" 가난한 자는 힘든 일을 하면서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현재 경제 위기는 경제 문제가 아니라 사람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가치'의 문제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뒤늦게나마 세계는 빈부격차 문제와 차별, 자본주의의 문제를 느끼기 시작했고 진정한 가치 아래 몸을 낮추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호세 무히카와 같은 남다른 리더들의 말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불공평하게 분배되는 부에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다. 소득 불평등으로 세계 경제 시장이 위기이다. 정부에 의해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골드만 삭스 자산운용社 짐 오닐 회장



호세 무히카는 검소한 삶과 인권의 가치를 역설하며 몸소 실천한 것으로 대외적으로도 높은 평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우루과이 국민들이 무히카 대통령에 높은 지지를 보낸 것은 단순히 그의 검소한 생활방식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집권 이후 우루과이의 빈곤율은 크게 떨어지고 소득은 증가해 매년 5% 안팎의 높은 경제성장을 이어가고 있다니, 불평등 해소를 위해 싸운 무히카 정부의 성공적인 재분배 예시가 얼마 전 서평을 마무리했던 <경제학은 어떻게 내 삶을 움직이는가>와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희망적인 대목이었다.



지구촌 곳곳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일련의 골치 아픈 사건들로 떠들썩한 국내 정계의 모습이다.  

지도자의 청빈이라는 가치가 갈수록 희미해지는 때에 대통령 무히카의 삶을 깊은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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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21 (21세기북스)에서 선물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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