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장 리샤포르 : 레퀴엠, 모테트 - Musique d'Abord
리샤포르 (Jean Richafort) 작곡, 네벨 (Paul Van Nevel) 지휘, / Harmonia Mundi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숭고의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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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헌신은 겉치레란 말인가요?"

"우리의 겉치레가 헌신이죠. 누군가는 믿는 것처럼 보여야 하니까. 우리가 진실한 믿음과 진실한 신앙을 고백하는것 못지않게 우리 삶은 진지해요. 믿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수록, 사람들은 누군가 믿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그 어느때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로 해요. 토굴에 사는 눈빛 형형한 사람들, 검은 옷 입은 수녀들, 묵언 수행하는 승려들을 말이죠. 우리는 믿는 일을 하도록 남겨졌어요. 바보나 아이들도 그래요. 믿음을 저버린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의 존재를 믿어야만 해요. 그들은 자신들이 믿지 않는 게 옳다고 확신하지만, 믿음이 완전히 시들어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죠.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가 바로 지옥이니까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있어야 해요. 바보들, 천치들, 환청을 듣는 사람들, 방언하는 사람들 말이에요. 우리는 당신네들의 미치광이예요. 당신네들의 불신을 가능하게 하려고 우리는 우리 삶을 포기하죠. 당신은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면서도, 누구나 당신처럼 생각하기를 바라지는 않아요. 바보들이 없다면 진실도 없어요.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고 촛불을 밝히고 성상 앞에서 건강과 장수를 비는 우리는 당신네들의 바보요, 당신네들의 미친 여자예요." - P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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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내가 묘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말했다.
"인간의 공포에 대한 내 이론도 묘연한 건 확실하구요. 자기모습을 상상해봐요. 잭, 너무도 가정적이고 늘 앉아서 지내는 당신이 어쩌다 깊은 숲속을 걷고 있는 모습을요. 그러다문득 뭔가가 눈에 들어와요. 그게 뭔지 다른 건 알지 못하는상태에서, 이게 아주 커다란 것이고 당신의 일상적인 참조틀에는 없는 것이란 걸 알게 돼요. 세계관에 오점 하나가 나타난 거예요. 그것이 여기 없거나 선생님이 없어야 하는 거죠. 이제 그것의 전모가 드러나요. 그건 바로 북미산 회색곰이에요. 엄청나게 크고 빛나는 갈색의 곰이 어슬렁거리면서 다가와요. 훤히 드러난 어금니에선 진액이 뚝뚝 듣고 있어요. 잭, 당신은 야생에서 이렇게 큰 동물을 본 적이 없어요.
이 회색곰과의 만남은 너무도 충격적이고 기이해서 자신에대한 새로운 감각을, 자아에 대한 신선한 인식을 부여한답니다. 특이하고도 무시무시한 상황에 처한 자아에 관해서 말이죠. 새롭고도 강렬하게 자신을 보게 돼요. 스스로를 재발견하는 겁니다. 당신은 자신이 갈가리 찢기게 될 상황을당해서 정신을 곤두세우고 있어요. 뒷발로 선 그 짐승 때문에 당신은 난생 처음으로 친숙한 환경 바깥에서, 홀로, 뚜렷이, 온전하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되는 거죠. 우리가 이 복잡한 과정에 붙인 이름이 바로 공포예요."
"공포란 더 높은 단계까지 상승된 자기인식이라 이거군요."
"그래요, 잭."
"그럼 죽음은요?" 내가 말했다.
"자아, 자아 그 자체죠. 만약 죽음을 그렇게 이상하거나 그렇게 근거없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면, 죽음과 관련된당신 자아에 관한 감각도 줄어들 거예요. 당신의 공포도 사그라질 거구요." - P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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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전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뇌 어딘가에서 힘차게 움직이는 분자활동의 결과예요." "하인리히가 주장하는 두뇌이론이로군. 그건 모두 사실이야. 우리 존재는 화학적 충동의 종합이라고. 내게 그런 말 하지 마. 생각만 해도 못 견디겠어."
"그들은 당신이 말하고 행동하고 느끼는 모든 것을 추적해서 특정 부위의 분자수까지 알아낼 수 있어요."
"이 체계에서 선악의 문제는 어떻게 되는 거야? 열정이나 질투, 증오 따위는 또 어떻게 되는 거지? 그건 그냥 신경세포다발이 되는 건가? 유구히 내려오는 인간적 결점들은 이제 끝이 나서 비겁함, 싸디즘, 치근거리기, 이런 건 의미없는 용어가 된다는 말이야? 이제 이런 것들을 아련하게 바라봐야만 한다는 거야? 살의를 느끼는 건 어떻게 되지? 살인자는 엄청난 정도의 살의를 느꼈을 테고, 그의 죄도 크잖아. 그걸 세포와 분자로 환원시켜보면 어떻게 될까? 내 아들 하인리히는 살인자와 체스를 둬. 걔가 이런 얘길 다 해줬어. 난 듣고 싶지 않았어." -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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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바로 현대식 죽음의 속성이지요." 머레이가 말했다. "현대의 죽음은 우리와 독립된 별도의 생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건 아주 거창하고 폭넓게 자라고 있죠. 전에없이 활발하게 퍼지고 있구요. 우리는 그것을 객관적으로 연구합니다. 그것의 등장을 예견하고 몸속에서 움직이는 경로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의 횡단면도를 찍고 몸속에서 움직이는 전율과 파장을 테이프로 기록할 수도 있어요. 우리가 그것에 이렇게 가까이 간 적도 없거니와, 그 습성과태도에 이렇게 친숙한 적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아주친밀하게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계속 자라서 폭과 넓이를 획득하고, 새로운 출구와 새로운 통로와 수단을 얻고 있어요.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될수록 그것은 점점 더 크게 자랍니다. 이건 어떤 물리법칙 같은 건가요?
지식과 기술이 진일보할 때마다 그에 걸맞게 새로운 종류의죽음이, 새로운 변종이 나타난다는 식이죠. 바이러스 매체처럼 죽음도 적응을 해나갑니다. 이것이 자연법칙일까요? 아니면 나만의 사적인 미신일까요? 죽은 자들이 그 어느때보다 우리에게 더 가까이 있다는 게 느껴져요. 죽은 자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다는 게 말입니다. 노자(老子)의 말을 기억하십시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차이란 전혀 없다. 그들은 생명력의 한 통로다‘라는 말을 기억하세요. 노자는 예수가 태어나기 육백년 전에 이렇게 말했어요. 이 말은 다시 생각해봐도 맞는 말입니다. 어쩌면 그 어느때보다 더맞는 말이죠."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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