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르노, 사유의 모티브들
게르하르트 슈베펜호이저 지음, 한상원 옮김 / 에디투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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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입문서. 이론의 심미화 부분만 봐도 도구적이성/문화산업 비판으로만 아도르노를 사용하던 얕은 독해들과 궤가 다른 걸 알 수 있음

사소한 티끌: 베르그송이 프루스트의 영향을 받았다는 역주가 있으나, 실은 정반대. 되려 프루스트는 베르그송에게 영향의 불안을 품은 듯한 구절들을 꽤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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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기와 역사 - 경험의 파괴와 역사의 근원 What's Up 8
조르조 아감벤 지음, 조효원 옮김 / 새물결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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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하나:


원문: Abbiamo visto, infatti, che tutto ciò che appartiene al gioco, ha appartenuto un tempo alla sfera del sacro. Ma questo non esaurisce la sfera del gioco. Gli uomini continuano, infatti, a inventare giochi e si può giocare anche con ciò che ha appartenuto, un tempo, alla sfera pratico-economica. Uno sguardo al mondo dei giocattoli mostra che i bambini, questi robivecchi dell’umanità, giocano con qualunque anticaglia capiti loro fra le mani e che il gioco conserva così oggetti e comportamenti profani che non esistono più. Tutto ciò che è vecchio, indipendentemente dalla sua origine sacrale, è suscettibile di diventare giocatto.


영역본: We have seen that everything pertaining to play once pertained to the realm of the sacred. But this does not exhaust the realm of play. Indeed, human beings keep on inventing games, and it is also possible to play with what once pertained to the practical-economic sphere. A look at the world of toys shows that children, humanity’s little scrap-dealers, will play with whatever junk comes their way, and that play thereby preserves profane objects and behaviour that have ceased to exist. Everything which is old, independent of its sacred origins, is liable to become a toy.


새물결: 우리는 놀이에 속하는 것이 모두 한때 성스러움의 영역에 속해 있었음을 보았다. 하지만 성스러움이 놀이의 영역으로 와서 모조리 소진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인간들은 항상 거듭해서 놀이를 발명해낼 뿐 아니라, 예전에는 실용적·경제적 영역에 속해 있던 것들을 갖고서도 놀 수 있는 것 이다. 장난감 나라에 시선을 던져 보면, 인류의 찌꺼기와도 같은 이 아이들이 제 손에 주어진 낡은 고물들을 갖고서도 얼마든지 잘 논다는 사실, 그리고 이와 같은 방식으로 놀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속된 대상들과 행동방식들을 보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든 낡은 것은, 제아무리 성스러운 근원을 가지는 것이라 해도, 장난감이 될 수 있다.(135p.)


2번째 문장, "Ma questo non esaurisce la sfera del gioco"에서 주어는 "questo", 앞 문장 전체, 놀이에 속하는 것이 한때 성스러운 영역에 속해 있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문장의 의미는 그 사실이 놀이의 영역을 다 설명해주지는 않는다는 인식론적 주장이다. 그런데 국역본은 "성스러움이 놀이의 영역으로 와서 모조리 소진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옮겨, 주어를 성스러움(il sacro)으로 바꾸고 방향도 뒤집으며, 생뚱맞은 존재론적 주장으로 탈바꿈했다.


4번째 문장, "robivecchi dell'umanità"에서 robivecchi는 고물상을 뜻하며 아이들이 인류의 고물상이라는 메타포, 즉 아이들이 손에 잡히는 낡은 것들을 가지고 노는 능동적인 행위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국역본은 "인류의 찌꺼기와도 같은 이 아이들"이라고 옮겨 메타포와 논점 모두를 훼손한다.


마지막 문장, "indipendentemente dalla sua origine sacrale"는 그것이 성스러운 기원을 가졌든 아니든 무관하게, 즉 기원의 성격과 무관하게 오래된 것은 모두 장난감이 될 수 있음을 가리킨다. 그런데 국역본에서는 "제아무리 성스러운 근원을 가지는 것이라 해도"라고 옮기며 아감벤의 렌즈를 성스러운 기원을 가진 사물로 왜곡한다.




영역본이라도 참고를 하면 어땠을까. 전면개정판이 나오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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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의 꿈
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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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가 맺힌듯 기억을 머금고 삶이 담긴 글. 문체와 서사 사이의 여백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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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 - 세계-유한성-고독
마르틴 하이데거 지음, 이기상 옮김 / 까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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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시간의 다소간 조용한 쌍둥이. 하이데거와 같은 거장의 강의록은 그 자체로 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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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물리학의 성과에 결부된 일반 우주론의 모든 가치들을 강조하고자 한다면, 한편으로는 X선의 광자에 의한 전자의 생성과, 다른 한편으로는 전자에 의한 X선의 광자의 생성 사이의 상호성에 대하여 강조해야 한다. 우리는 X선이, 음극선의 전자들의 유출이 갑자기 멈추는 양극 anticathode에서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기에서 복사에서 물질로 그리고 물질에서 복사로 가는 상관성이 완벽하다.
정신은 이러한 이원론의 균형을 숙고하면서 실질적인 만족감을 느낀다. 그러한 현상들의 상호성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합리주의의 증거가 된다. <사물 속에> 봉쇄된 철저한 비합리주의의 지지자들은 이렇게 순서가 바뀐 현상들의 생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활동중에 있는 합리주의는 이런 이중적인 기술의 통제에서 분명해진다.
이런 복사-물질 이중성은 반드시 정성적인 것만은 아니다. 위그와 뒤 브리지는 이렇게 강조한다.

"아인슈타인 방정식은 광전 효과와 반대되는 과정(예컨대 전자에 의한 X선의 생성)에 대해서도 유효하다. 이 발견은 플랑크 상수의 산정에 고도로 정확한 방법을 제공했다."

이 정확한 산정에서 우리는 경험주의에 대한 합리적 기술의 지배를 본다. 실재를 <측정>하기 위해 얼마나 머나먼 추론의 대로를 두루 돌아다녀야 하는지! 우리는 경험주의자들이 생각하듯이 제공된 현실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복된 현실 앞에 있는 것이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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