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 내면에 그토록 대단한 것들을 가지고 있다면, 왜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며, 왜 대부분의 시간 동안그러한 드높은 활동을 수행하지 않는 채로 있는가? 왜 어떤사람들은 그것을 전혀 수행하지 않는가?
이에 대해 플로티누스는 즉시 이렇게 답변한다.
이는, 그렇다고 해서 영혼 안에 있는 것 전부가 즉시 의식되지는 않으며, 그것이 의식에 도달할 때 ‘우리‘에게 도달하기 때문이다. 영혼의 어떤 활동이 의식과 전혀 소통함이 없이 활동할 때, 이 활동은 전체 영혼에 도달하지 않는다. 그럴 때는 ‘우리‘가 그 활동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결과가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의식과 결합되어 있고, ‘우리‘는 그 영혼의일부가 아니라 전체 영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 더 높은 수준을 인식하지못하는데, 그 수준은 신적인 사유 안에 있는 우리의 자아(즉, 참된 자아)이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우리 자아의 신적인사유이며, 마찬가지로 그것은 우리 영혼의 일부 — 더 높은일부이다. - P40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내적 긴장의 불연속적 수준들 사이를 오가는 일종의 왕복을 통해 우리 자신을 영적인 삶에까지 드높일 수 있을 뿐이다. 우리의 주의를 우리 자신의내면으로 돌림으로써 이처럼 정신의 단일성을 체험하도록우리를 준비시키고, 그런 다음 다시 의식의 차원으로 떨어져서는 "저 위에 있는 것이 "우리"임을 인식하며, 다시 의식을 상실하고 신 안에 있는 우리의 참된 자아를 되찾아야하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그 황홀경의 순간에 우리는 자기자신에 대한 어떤 혼란된 의식을 간직할 뿐이라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동일시[보는 자와 그가 보는 것의 동일시]는 말하자면자아에 대한 하나의 이해이고 인식인데, 그는 자신을 의식하려는 열망이 지나쳐 그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조심해야 한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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