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미술사 - 섬뜩한 그림으로 엿보는 인간의 야만과 광기
이케가미 히데히로 지음, 송태욱 옮김, 전한호 감수 / 현암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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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잔인한 그림 속의 진실



   근대 이전의 서양 미술은 순수한 예술 활동이 아닌, 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 그려지거나, 또는 무언가를 전해주기 위해 그려진 그림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잔혹한 그림도 수없이 그려졌다. 작가 이케가미 히데히로 그중에서도 역사의 잔혹한 주제를 담은 그림들을 "잔혹 미술사"를 통해  주제별로 좀더 깊이있게 이야기한다.


1. 그림, 신화를 담다.
 

 


 서양 미술 특히 명화라 불리는 작품들을 이해하려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르면 안된다. 수많은 작품들이 신화를 그려내고 있다.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의 모습, 신에게 도전했다 온몸의 가죽이 벗겨지는 벌을 받게 되는 사티로스, 페르세우스에 의해 죽임을 당한 메두사의 모습 등등, [잔혹 미술사]는 신화 중에서도 무섭고 잔인한 신화의 장면을 그려낸 작품들을 소개해 준다.



2. 그림, 성서를 담다.
 

 

 

 서양의 많은 미술작품들은 성서의 내용을 전파하기 위해 그려졌다. 성서의 내용을 알면 이해하기 쉬운 그림들이 그만큼 많다. [잔혹 미술사]는 그리스도교를 믿다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의 모습과 예수를 배반하여 끔찍한 벌을 받는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다.



3. 그림, 역사를 담다.

 

 


 그림은 역사적 사실을 표현한다. 그 시대 가장 충격적인 사건, 질병과 전쟁으로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사건들을 그린 그림들이  그 시대의 비참함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특히 마녀재판을 중심으로 그려진 고문과 처형 장면은 무시무시하다.



 

 [잔혹 미술사]를 읽고 있으면 그림이 아닌 그림책을 읽고 있는 기분에 빠진다. 그림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이 비록잔인하고 무섭긴하지만, 무척 흥미진진하다. 티비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던 그 시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도 나처럼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읽는 기분에 빠지지 않았을까? 그림은 책처럼 사람들에게 재미와 지식을 전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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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도 헷갈리는 맞춤법 띄어쓰기
고흥준 글, 마정원 그림, 정호성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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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함께 공부해요.



 요즘 아이들은 어릴적부터 영어, 수학, 중국어, 한자 등등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국어다. 국어가 바탕이 되어야지 영어도 수학도, 다른 언어도 제대로 배울 수 있다. 하지만 SNS가 발달하면서 국어가 심하게 파괴되어지고 있다. 어디 SNS뿐이랴, KBS, SBS, MBC같은 지상파에서도 국어의 오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맞춤법을 무시한 채 소리난대로 쓰기 일수이며, 띄어쓰기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런 현상은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없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블로그에 책 리뷰를 쓰는 나 역시 조심한다지만 매번 맞춤법, 또는 띄어쓰기에서 문법적 실수를 하곤한다. 맞춤법, 띄어쓰기는 한국에서 30년을 한글을 사용하며 살고 있는 어른에게도 이렇듯 쉽지 않은 언어이다. 어른도 이러한데 아이들이야 오죽할까. 그러니까 어릴적부터 제대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생님도 헷갈리는 맞춤법 띄어쓰기>는 아이들이 읽기 쉽도록 만화로 국어 문법을 설명해주는 책이다.


 

 

 책에는 꼬주, 영원, 판다, 덕구, 엄마가 등장하며, 첫사랑 소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글자가 틀려 망신을 당한 후 한글 맞춤법을 공부해 맞춤법 제왕에 등극한 꼬주가 판다와 함께 아이들에게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가르쳐준다.  
 

 


 "왜 소리 나는 대로 적지 않나요?"라는 첫 시작부터 눈에 확 들어온다. 아마 많은 아이들이 글을 소리 나는 대로 적지 않아 어려워할 것이다. 딸아이가 글을 쓰기시작하면서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아이들의 궁금증부터 가장 먼저 해결해주니 나까지 속이 시원하다. 아이가 왜 소리 나는 대로 적으면 안되냐고 물을때마다 얼렁뚱땅 넘겼었는데 이젠 제대로 말해 줄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아이게에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제대로 설명해주기 위해 국어 문법관련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몇 장 넘기고 책을 덮어야 했다. 지겨웠다. 어른도 지겨운 책을 아이게에 읽으라고 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도 헷갈리는 맞춤법 띄어쓰기>책은 확실히 읽기 쉽다. 초등하교 고학년이라면 쉽게 읽을 수 있을 수준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문법 설명이다보니 이해하는 시간은 필요하다.


 이 책은 꼭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 부모도 맞춤법, 띄어쓰기를 제대로 알아야 아이한테 가르쳐 줄 수 있을테니 말이다. 특히 저학년 아이를 두신 부모님이라면 아이보다 먼저 읽고 아이가 궁금해하는 부분을 그때그때 함께 찾으며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같다. 목차만 읽어도 그때 그때 필요한 부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아무리 만화라지만 이런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건 힘들테니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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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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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기에 고독한 남자



 <행인>은 나쓰메 소세키가 <아사히 신문>에 연재했다가 건강 악화로 중단되었다가 다시 재개되어 완성된 장편소설이다. <행인>은 <춘분 지나고까지>, <마음>과 더불어 나쓰메 소세키의 후기 '에고(ego) 3부작'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출처 : 행인 p417) 그래서일까? 세 소설은 연결되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마음>은 읽기 전이라 우선 <행인>과 <춘분 지나고까지>만을 두고 생각해보았다. <춘분 지나고까지>는 <행인>보다 앞서 쓰인 작품이다. <춘분 지나고까지>를 읽고 작가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춘분 지나고까지>는 딱 여기서 끝이 났다. 우린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반면 <행인>은 여기서 좀 더 나아간다.

 

  이치로는 아내 나오와 동생 지로의 관계를 의심하며, 지로에게 나오의 마음을 시험에 봐달라는 말까지 하게 된다.


"아아, 여자는 미치광이로 만들지 않으면 도저히 속내를 알 수 없는 걸까?" -p.119


자신과 가장 가까운 두 존재를 믿을 수 없었던 지로, 그의 의심은 점점 커져 가족 모두를 불신하기에 이른다. 집안의 상막한 분위기를 견디다 못해 지로가 집을 나갔지만, 집은 달라지지않았다. 가족은 이치로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치로 역시 가족들을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집은 더욱더 숨막히는 곳이 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은 다리는 없다."


 가까운 사이였지만 서로를 이해할 수는 없었던 사이,  여기까지가 <춘분 지나고까지>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서로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말이다. 하지만 <행인>은 여기서 좀 더 생각의 범위를 확장한다. <춘분 지나고까지>의 게이타로는 좀 태평스러운데가 있는 사람이라 여기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지만 이치로는 달랐다. 이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파고 들었고, 그 결과 결국 자신만의 답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어떤 사람한테 시집을 가든 여자는 시집을 가면 남자 때문에 부정해지는 거네, 그런 내가 이미 아내를 얼마나 못쓰게 만들었는지 모르네. 내가 못쓰게 만든 아내한테서 행복을 구하는 것은 너무 억지스러운 일 아니겠나? 행복은 시집을 가서 천진함을 잃게 된 여자한테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니네." -p. 411


 이치로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나오를 부정한 존재라고 결론을 내린다. 나오 뿐만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 모두를 부정한 존재, 반면 자신은 천진함을 지닌 순수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그런 부정한 존재들에게 내가 맞출 필요가 없다고 친구 H에게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내가 아닌 그들이 자신에게 맞추어야 하는 거라고.


 이치로는 왠지 나쓰메 소세키의 자아같다. 나쓰메 소세키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춘분 지나고까지>에서 인정했다면, <행인>에서는 사실 내가 이해 못하는 것은 내가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속세에 너무 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같다. 그러니 자신이 아닌 타인이 자신의 경지까지 올라서야 한다고 독자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같다. 정확히는 나쓰메 소세키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일본인들에게 하는 말이겠지만말이다. 서양것에 현혹되고 물질에 복종하는 그들을 비난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에고 3부작'이라고 불리는 <춘분 지나고까지>, <행인>은 이제까지 읽어왔던 나쓰메 소세키의 그 어떤 소설보다도 강렬하고 직접적이다.  이야기는 이어지지않지만, 인물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어지는 듯해 마치 하나의 이야기같이 느껴진다. <행인>까지 읽고 나니 <마음>이 궁금해진다. 소세키는 <행인>에서 보여주었던 생각을 좀 더 확고히 했을까? 아니면 정 반대의 결말을 내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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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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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숨겨진 전쟁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전쟁의 슬픔과 아픔은 꽁꽁 감추어둔채, 승리만을 기억하려한다. 적을 물리치고 평화를 되찾았다며 자신들의 승리를 찬양하며, 승리를 이끈 주역들을 미화하기 바쁘다. 그들이 겪은 아픔은 쏘옥 빼고, 그들이 죽인 적의 수, 그들이 폭파한 도시의 수만을 기록한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전쟁의 다른 모습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통해 이야기한다.

나는 전쟁이 아니라 전쟁터의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전쟁의 역사가 아니라 감정의 역사를 쓴다. -p.25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주인공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저항했던 소비에트 여성들이다. 전쟁에서 벌어진 큰 사건은 이미 많이 다루어졌지만 전쟁 속에서 일어난 사람과 사람의 일, 소소한 사건들, 전쟁을 경험한 사람의 감정에 대해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더군다나 전쟁을 겪은 여자들의 이야기는 더더욱 알지 못한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고 있던 그 때, 7살 딸아이가 물었다. "엄마, 그 책은 무슨 내용이야?", "전쟁에 참여한 여자들의 이야기야.", "엄마, 여자도 전쟁에 나가?", "여자도 전쟁에 나가, 총도 쏘고, 부상자들도 돕고.", "아, 난 전쟁은 남자만 하는 건줄 알았어."  

 이렇듯 우린 어릴적부터 전쟁은 남자만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에 물들어있다. 하지만 실제 전쟁은 남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전쟁 속 여자들은 빨래, 요리는 기본이며 남자의 보호만 받을 것같은 그녀들이 남자를 구해준다. 빗발치는 총알 사이를 뚫고 지나가 부상자를 끌고 오는 간호병들, 남자와 함께 총을 쏘는 저격수들, 아이의 손까지 잡고 적진을 뚷고 정보를 빼내오는 정찰병들 등등.  이렇듯 여자는 남자와 동등하게 전쟁에 참여했다.여자는 왜 전쟁에서 잊혀졌을까?

' 여자'의 전쟁에는 여자만의 색깔과 냄새, 여자만의 해석과 여자만이 느끼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여자만의 언어가 있다. 그곳엔 영웅도, 허무맹랑한 무용담도 없으며, 다만 사람들, 때론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고 때론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만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땅도 새도 나무도 고통을 당한다.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고통스러워한다. 이들은 말도 없이 더 큰 고통을 겪는다. -p. 18


 남자가 기억하는 전쟁과 여자가 기억하는 전쟁은 다르다.  사랑하고 싶은 마음, 아름답고 싶은 마음, 누군가의 슬픔에 공감하는 마음,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남자보다 좀 더 강한 것은 여자의 본능이다. 이러한 본능은 전쟁터에서도 숨길 수가 없다. 그네들은 전쟁터에서도 노래를 불렀고, 머리를 매만졌고,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것들을 기억하길 거부했다. 오직 승리만을 기록했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하찮은 이야기로 치부되었다. 심지어 전쟁에서 돌아온 그녀들을 창녀로 비하하기까지했다. 그녀들은 전쟁아닌 새로운 삶에 적응하기 위해 전쟁터에서의 자신을 숨기며 살아야했다. 

역사는 영광스러운 승리만을 기억하려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이 책을 완성해놓고도 2년간은 출간하지 못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났고 긴 시간이 지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들의 이야기를 외면했던 것이다. 1985년, 이 책이 출간되고도 여러 잡음이 있었다.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면 이런 의문이 든다. 우린 역사를 어디까지 기록하고 있을까? 상처받았던 역사, 부끄러운 역사는 지워버리고 신화처럼 만들어진 영웅이 존재하는 승리의 역사만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역사는 결국 그 역사를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몇몇이 쓴 역사를 하나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닐까?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드러내고 싶지않은 역사를 여자들의 말을 통해 이야기하며, 전쟁의 고통을 그대로 전해준다. 더불어 역사 기록에 대한 문제점도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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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짜고 때로는 쓴 역사 속 소금 이야기 이야기 역사왕 6
설흔 지음, 정승희 그림 / 스콜라(위즈덤하우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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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동화같은 쉽고 재미난 역사 이야기.


<때로 짜고 때때로 쓴 역사 속 소금 이야기>는 스콜라 출판사에서 꾸준히 출간되고 있는 "이야기 역사왕 시리즈" 중 한 권 으로 , 소금과 관련된 4편의 역사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딱딱하지않고 전래동화같이 쓰여져 있어서 아이는 역사 책을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전래동화를 읽는다는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역사에 다가갈 수 있답니다. 이야기도 재미있고 내용도 길지않아 초등 저학년이 읽기에 정말 딱 좋은 책입니다. 어려운 단어들은 본문 내용 밑에 따로 각주를 달아놓아서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어 좋아요.


 이야기 뒤엔 "이야기 속 역사 읽기"라는 코너를 마련해서 이야기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을 조금 더 깊이 설명해 주고요, 책 마지막에는 "역사 퀴즈"와 "아직도 역사 공부가 더 하고 싶다면"이라는 코너를 마련해두어 자연스럽게 독후활동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답니다.

 

 이번 이야기는 그림체도 독특해요. 표지의 그림처럼 안에 일러스트들이 하나같이 그림자처럼 표현되고 있답니다. 시커먼 그림자를 보고있으니 이야기가 왠지 더 비밀스럽게 느껴져서 아이들의 호기심도 절로 불러일으킵니다.


  살짝 아쉬운 부분은 하나의 소재와 연관된 이야기를 찾다보니 살짝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습니다. 두번째 이야기 '소금 때문에 죽은 신라의 장군'은 소금 때문이라기보다 염노라고 욕했기때문에 죽은 것인데, 굳이 소금때문이라고 말하는 건 좀 억지스럽습니다. 아이도 "소금 때문이 아니라, 나쁘게 말해서 죽은 거잖아."라고 말했을 정도니까요. 뭐 그래도 이야기는 재미있으니 웃으며 넘어갑니다.


     딸아이는 "무섭지만 자꾸 듣고 싶은 역사 속 귀신 이야기"로 이 시리즈를 처음 접한 다음 다른 책들도 접하게 되었답니다. 이 시리즈를 한 권 한 권 접하면서 애정이 쌓여가나봅니다. 이 시리즈가 너무 재미있다며 다음 권도 사달라고 늘 재촉합니다. 조만간 3,4권도 구입하게 될 것 같네요. 어릴적부터 이렇게 자연스럽게 역사이야기를 접하다보면 나중에 역사를 좀 더 재미있게 공부 할 수 있을 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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