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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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숨겨진 전쟁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전쟁의 슬픔과 아픔은 꽁꽁 감추어둔채, 승리만을 기억하려한다. 적을 물리치고 평화를 되찾았다며 자신들의 승리를 찬양하며, 승리를 이끈 주역들을 미화하기 바쁘다. 그들이 겪은 아픔은 쏘옥 빼고, 그들이 죽인 적의 수, 그들이 폭파한 도시의 수만을 기록한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전쟁의 다른 모습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통해 이야기한다.

나는 전쟁이 아니라 전쟁터의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전쟁의 역사가 아니라 감정의 역사를 쓴다. -p.25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주인공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저항했던 소비에트 여성들이다. 전쟁에서 벌어진 큰 사건은 이미 많이 다루어졌지만 전쟁 속에서 일어난 사람과 사람의 일, 소소한 사건들, 전쟁을 경험한 사람의 감정에 대해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더군다나 전쟁을 겪은 여자들의 이야기는 더더욱 알지 못한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고 있던 그 때, 7살 딸아이가 물었다. "엄마, 그 책은 무슨 내용이야?", "전쟁에 참여한 여자들의 이야기야.", "엄마, 여자도 전쟁에 나가?", "여자도 전쟁에 나가, 총도 쏘고, 부상자들도 돕고.", "아, 난 전쟁은 남자만 하는 건줄 알았어."  

 이렇듯 우린 어릴적부터 전쟁은 남자만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에 물들어있다. 하지만 실제 전쟁은 남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전쟁 속 여자들은 빨래, 요리는 기본이며 남자의 보호만 받을 것같은 그녀들이 남자를 구해준다. 빗발치는 총알 사이를 뚫고 지나가 부상자를 끌고 오는 간호병들, 남자와 함께 총을 쏘는 저격수들, 아이의 손까지 잡고 적진을 뚷고 정보를 빼내오는 정찰병들 등등.  이렇듯 여자는 남자와 동등하게 전쟁에 참여했다.여자는 왜 전쟁에서 잊혀졌을까?

' 여자'의 전쟁에는 여자만의 색깔과 냄새, 여자만의 해석과 여자만이 느끼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여자만의 언어가 있다. 그곳엔 영웅도, 허무맹랑한 무용담도 없으며, 다만 사람들, 때론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고 때론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만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땅도 새도 나무도 고통을 당한다.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고통스러워한다. 이들은 말도 없이 더 큰 고통을 겪는다. -p. 18


 남자가 기억하는 전쟁과 여자가 기억하는 전쟁은 다르다.  사랑하고 싶은 마음, 아름답고 싶은 마음, 누군가의 슬픔에 공감하는 마음,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남자보다 좀 더 강한 것은 여자의 본능이다. 이러한 본능은 전쟁터에서도 숨길 수가 없다. 그네들은 전쟁터에서도 노래를 불렀고, 머리를 매만졌고,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것들을 기억하길 거부했다. 오직 승리만을 기록했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하찮은 이야기로 치부되었다. 심지어 전쟁에서 돌아온 그녀들을 창녀로 비하하기까지했다. 그녀들은 전쟁아닌 새로운 삶에 적응하기 위해 전쟁터에서의 자신을 숨기며 살아야했다. 

역사는 영광스러운 승리만을 기억하려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이 책을 완성해놓고도 2년간은 출간하지 못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났고 긴 시간이 지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들의 이야기를 외면했던 것이다. 1985년, 이 책이 출간되고도 여러 잡음이 있었다.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면 이런 의문이 든다. 우린 역사를 어디까지 기록하고 있을까? 상처받았던 역사, 부끄러운 역사는 지워버리고 신화처럼 만들어진 영웅이 존재하는 승리의 역사만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역사는 결국 그 역사를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몇몇이 쓴 역사를 하나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닐까?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드러내고 싶지않은 역사를 여자들의 말을 통해 이야기하며, 전쟁의 고통을 그대로 전해준다. 더불어 역사 기록에 대한 문제점도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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