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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죽이기
조란 지브코비치 지음, 유향란 옮김 / 문이당 / 2004년 6월
평점 :
책 죽이기
조란 지브코비치 지음, 유향란 옮김 / 문이당
나의 점수 : ★★★★★
멋진 책에 대한 이야기.언제 시간이 지나는 지 모를 정도.
이런저런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들 중 최고의 수준이라,라이프로그에서 오랫동안 공개의 자리를 지키고 있음.책을 여성에 비유하여,가련하고 비참한 책의 신세를 책 스스로 말하고,중간에 잠시 대리인의 입을 빌리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책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작가,출판사 사장,문예 대행인,인쇄소,서적상,무엇보다 독자 등등에 관한 에피소드들이 시니컬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펼쳐지는데(이런 것들에 대해 알게 되는 기쁨도 꽤나 있었다),상당 부분 현실에 기초한 비꼼이란 데 입맛이 약간 쓰다.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책을 여성에,독자를 남성에 비유한 독설들인데,하나만 따 오자면 '잠자리에서 책을 읽다 졸리면 아무렇게나 두는 행동은 무뚝뚝한 남편이 얼른 제 욕심만 채우고 마누라를 이내 싹 잊어버리는 꼴과 같다'.이 책을 읽으며 나의 독서 버릇에 대해 꽤나 죄책감을 가지게도 되었다.사람들의 이런저런 책에 대한 버릇들에 대한 비판과 불평들을 읽다 보니 뜨끔해져서.
책 속에서,조금 더 따오기.
책 노릇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오래전에도 그랬지만 요즘 들어서는 나날이 더 힘들어지고 있다. 사실상, 책이 멸종 위기 직전에 처해 있는 종이라는 주장은 전적으로 옳다.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실로 엄청난 손실이 될 것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그저 그런 평범한 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대한 진화의 계보에서 아무리 별 볼일 없는 하찮은 것이라 할지라도 어떤 종이 사라진다는 것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하물며 이 세상을 찬란하게 빛내 온, 단 두 종의 지적 생명체 중 하나가 멸종 위기에 직면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화상의 대재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책벌레
클라스 후이징 지음, 박민수 옮김 / 문학동네
나의 점수 : ★★★★
책에 관련된 책들 .
이 책도,책벌레와 작가와,뭐 어쨌든 이런저런 것들에 관한 유쾌하고 정신없는 이야기다.서술자와 작가,그리고 주인공의 직접 서술이 뒤엉켜 있으며(그거 찾아 이해하는 게 또 큰 재미다),편집도 뒤죽박죽.시점은 왔다갔다.<책벌레>는 독서광인 두 주인공이 나오는 두개의 범죄소설과 아홉개의 양탄자로 구성된다.그들은 책에 탐닉하다 파멸한 독서광들이며 그 중간중간에 삽입된 아홉개의 양탄자들은 책, 독자, 저자, 비평가, 나아가 문자문명 자체에 대한 온갖 생각들이다.
이 한 권으로 온갖 책에 대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데,사실 정심없이 빨려들어가 읽는 재미도 있고,책벌레라고도 부를 수 있는 나 자신과 두 주인공들의 연관성,가끔은 감정이입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너무 정신이 없다는 단점이 있긴 하나(가독성이 조금 떨어진다고나 할까.그것이 별점 감소의 원인) 그것이 동시에 이 책의 매력이기도 하다.앤 페디먼의 <서재 결혼시키기>같은 책보다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냥 지나치기는 아깝다.물론 어느 정도 알려진 책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좋지만 역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책을 추천하는 게 나는 훨씬 즐겁다.
그런데,리뷰를 쓰려고 알라딘에서 다시 한번 대충 검색해 봤더니 여기도 책을 여성(특히 창녀)에 비유한 부분이 있었다.(오래 전에 읽어서 이것까진 기억이 안 났었음)두 사람이 같은 생각을 했다 이 말이지.읽다 보니 과연 그런 듯하기도 하다.책은 우리에게 아주 기묘한 ,마법같은 존재니까.
1. 책과 창녀는 둘 다 침대로 데려갈 수 있다.
2. 책과 창녀는 시간을 뒤바꾸어놓는다. 그들은 낮을 밤처럼, 밤을 낮처럼 만든다.
3. 책과 창녀에게는 일분일초가 귀중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과 좀더 가까워질 때에야 그들에게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그들 안에 잠겨드는 동안 그들은 시간을 재고 있다.
4. 책과 창녀는 예전부터 각각 불행한 사랑을 하고 있다.
5. 책과 창녀 그들에게는 빌붙어 살면서 괴롭히는 남자들이 있다. 책에게는 비평가가 있다.
6. 책과 창녀는 공공건물에서 산다 특히 대학생들에게 그렇다.
7. 책과 창녀 그들이 맞이한 종말을 본 사람은 드물다.
8. 책과 창녀는 어떻게 해서 지금처럼 되었는지 얘기하길 좋아하고, 그럴 때면 거짓말도 잘한다. 그들 스스로 그 거짓말을 믿어버릴 때도 적지 않다. 여러 해 동안 '사랑하는 마음에서' 모든 것 남자 에 열중하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비대해진 몸뚱이를 안고 거리로 나선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엇인가를 알아보려고' 그 주변을 돌아보기 위한 것이라는 식이다.
9. 책과 창녀는 손님을 끌 때 등을 내보이길 좋아한다.
10. 책과 창녀는 자식을 많이 낳는다.
11. 책과 창녀 '허구한 날 기도하는 늙은 어멈도 젊었을 땐 창녀'였다. 오늘날 청소년들의 필독서 중에서 한때 평판이 나빴던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12. 책과 창녀는 꼭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드잡고 싸운다.
13. 책과 창녀 책의 각주는 창녀의 양말 속에 감추어진 지폐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