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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틱 리버 - 상 ㅣ 밀리언셀러 클럽 11
데니스 루헤인 지음, 최필원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실은 요새 링크된 블로그들에 이 책에 대한 리뷰와 감상들이 꽤나 뜨길래
(다빈치 코드와 함께)빗속을 뚫고 간 도서관에서 냉큼 집어들고는 생각했다.
"내가 왜 이 책을 아직 안 봤었지?"
결론은 간단하다."시드니 셀던,혹은 존 그리샴 류인 줄 알았거든."
사실 셀던이나 그리샴은 수많은 작품들 중 몇 권은 재미있기도 하고 흡입력도 어느 정도 있지만,대부분은 아니다.그래서 거의 대부분은 그냥 지나치는데,그 바로 옆칸에 꽃혀 있던 것.섹스와 폭력이 별 의미없이 등장하고,너무 뻔한 전개와 틀에 박힌 캐릭터나 약해빠진 트릭이나,뭐 그런 것들로 가끔은 헐리우드 영화로 만들어지는.
실수였다.대부분의 고전은 고전인 이유가 있고,사람들이 추천하는 것은(특히 그 부분의 애호가들이.보통의 베스트셀러는 잘 안 본다)그만한 매력이 있다.설혹 내 취향에 맞지 않는다 해도,객관적으로 사람들을 끌 매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
확실히 이 이야기는 매력적이다.재미있고 흡인력이 있다.또한 어느 정도의 문학성도 갖추고 있고.예전의 사건들과 현재의 이야기를 섞어내는 구성력도 봐줄 만하고,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일들로 비틀리고 변화해온 사람들(특히 주인공 세 남자...세 남자라면 "보트를 탄 세 남자"부터 생각나니 이거 원.)의 심리도 잘 표현해 내고 있다.이야기 흐름도 긴장감을 잃지 않고 기조를 유지해 간다.인생과 삶에 대한 작가의 시각도 매끄럽게 버무려 내고.
하지만 무엇보다 이 글의 가장 큰 매력이라 생각되는 건,
"섬뜩할 정도의 현실감"이다.이것은 누구에겐가 정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세 남자의 유년과,가족들과 동네 사람들과의 생활,그리고 살인.배경인 동네는 (미국이라면.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그것 정도는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현실적이고 뚜렷한 이미지로서 다가오며,캐릭터들은 입체적이며 모두가 어디선가 볼 수 있는 우리 근처의 사람들이다.(빈민가와 서민층의)
그래서 이 글은 매력적이고 (바로 우리의 이야기니까)그만큼 섬뜩하다.그래서 열심히 빠져들 순 있지만 읽고 나면 갑갑해지는.사건은 해결되지만 문제들은 남아 있다.마치 우리 인생처럼.내가 최근의 추리 소설들(셀던 류 말고.헤닝 만켈이나,알렉산드라 마리니나나,또 누가 있지? 뒤마 클럽 류는 추리보다 모험소설 같고.역사추리들도 현실성은 떨어지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이것이다.현실이니까.
그것이 그만큼 일상과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19세기의 영국이나 미국,늦어도 20세기 초반의 살인 사건들,그리고 명탐정들은 현실이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 존재한다.그저 이야기 속에 빠져들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현실은 그 동안 잊혀진다.현실을 잊기 위해 책을 읽는다면,본격물들은 그 목적을 아주 충실히 이행시켜 준다.그 방면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 나에겐 크리스티다.그녀의 소설들은 빠져들어,아주 술술 빠르게 읽힌다.아무런 생각들도 남겨주지 않고서.(그녀를 비하하려는 건 아니다.그녀는 훌륭한 이야기꾼이고 사람들의 증오,질투 등 미묘한 심리를 약간의 행동-그것이 실마리로 연결되는-과 말들로 섬세하게 표현해 내는 재능이 있다.다만 내게는 잘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다)문학성이 조금 더 있다는 아이리시나 심농,혹은 좀더 현실적인 하드보일드 풍의 작품들은 가끔씩 껄끄러움을 남겨주는 데 비해.
비슷한 느낌의 작품이라면,로스 맥도널드의 <소름>이나 니콜라스 블레이크의 <야수는 죽어야 한다>,콜린 덱스터의 <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 정도? 이 작품만큼은 아니지만,위의 작품들도 "일어날 수 있어서".현실적이라 더욱 섬뜩하고 소름끼치는 작품들이다.비틀린 심리,가족관계,그리고 도시.특히 <소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약간 달리 보자면,추리나 트릭 자체보다는 섬뜩한 현실감으로 먼저 다가오는 작품들이다.스티븐 킹의 작품들이 그런 것처럼.킹의 대부분의 작품들도,일어날 수 있는,평범한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루기 때문에 더욱 섬뜩하고 두렵다.그런 면에서 그는 호러소설의 본질을 아주 잘 표현한다고 하겠다."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만큼이나 위력을 가지는 것이,"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고,그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잘 다룬다.나는 별로 두렵다기보다는 징그럽다고 생각하지만 이토 준지의 만화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누군가는 "무차별적인 공포,공격"이기 때문이라고 했다.그 말대로 준지의 괴물들은 아이 어른,사람을 가리지 않는다.이 무차별성이 두려운 것도 결국은 "그러므로 내게도 일어날 수 있기"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미스틱 리버는 탁월하게 느껴졌다.특히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한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만들어갔는지.사건은 잊혀지지 않았다.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잊어버렸고,눈을 돌리고 있었던 것 뿐이다.하지만 당사자,데이브는 "늑대"를 키우게 되었다.(세상에,그의 어머니와 세상이 한 짓들이란!!)자신의 속에 "몬스터"를 가진 요한처럼.그래서 더 잘 느껴졌는지도 모른다.큰 상처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 속에 다른 존재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자신들이 모를 뿐이지.나 자신도 가끔씩 튀어나오는 끔찍한 감정들에 깜짝깜짝 놀라곤 하니까.이것들을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그런 것들에 대해 스스로 알고 있단 것이 자신을 얼마나 두렵게 하는지.평소엔 잊고 지내지만,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사실 가장 두려운 것은,오ㅡ세상에! 마이클이 셀레스테와 함께 남겨졌고,브렌단 해리스가 에스더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남겨진 아이들이 어떻게 자랄 것인지.가장 두려운 것은 끔찍한 일들이 자주 되풀이된다는 것이다.폭력을 당하며 자란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부모를 무척이나 증오했으면서도,스스로도 폭력을 휘두르게 되는 것이다.부모가 아이를 얼마나 끔찍하게 만들 수 있는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에 대해.사랑이 있건 없건 다르지 않다.아이들은 독립된 인격이다.제발 자신들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짐덩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주길.
덧붙임/번역을 맡은 최필원 씨는 척 팔라닉 시리즈의 번역자였다.어디서 본 듯한데 했더니 역시.개인적으로 매끄럽거나 잘 한다고 생각되진 않고,오히려 서투르다고도 생각되지만 그 서투른 번역이 오히려 분위기를 더 잘 살려내는 듯하다.문체가 이런 스타일의 소설에 잘 맞는다고나 할까.조금 더 노력한다면 더욱 멋질 거라는 마음이다.(오자도 가끔 눈에 띄더라.이건 출판사 문제지만.요새 황금가지 교정이 영 맘에 안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