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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장 ㅣ 사계절 1318 문고 49
최나미 지음 / 사계절 / 2008년 6월
평점 :
한창 발랄할 중학생, 이 책은 그 중학생 때의 아련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연일 뉴스에서는 중학생 졸업식, 알몸 졸업식이라는 헤드라인이 나온다. 참 정말, 지금의 중학생들은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교과부에서는 알몸 졸업식을 학교폭력으로 치부해 정밀 조사를 벌인다 한다.
하지만 알몸 졸업식이 진정 학교폭력으로 축소해석될 수 있을까? 그들이 찢은 것, 벗은 것은 사복이 아니라 교복이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거 같다. 왜 중학생이, 고등학생도 아닌 중학생이 교복을 찟기고 벗기고,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그런 나쁜 짓들을 벌였던 것일까? 그건 그들만의 놀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사회는 중학생들에게 경쟁과 승자독식만을 가르칠 뿐, 인간에 대한 예의, 아니 살아있는 것, 내 주변에 있는 것들에 대한 예의를 가르치지 못 한다.
나만 아니면 돼, 이 말을 1박 2일에서 부르짓는 것을 본 그 날, 참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가 합창하듯 따라하는 것을 보고, 신자유주의는 마음뿐 아니라 몸도 반응하게 하는 로고스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물론 이 책에서도 왕따, 선후배간의 폭력,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주인공은 이 모든 어려움을 중학생만이 가질 수 있는 순진함으로, 풋풋함으로 이겨낸다. 그래서 읽고 난 후, 내 학창시절을 생각하게 한다. 아주 잠시동안.
나의 학창시절은 없어도 되는, 있으나 없으나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그래서 친구도 없는 그런 나날이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왜 그 때 이성친구를 만들지도 못했을까? 마음을 나눌만한 한 명의 친구도 만들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를 가끔, 하게 만드니 말이다. 나이가 든 지금에서는 설레임을 느끼게 해주는 이성도, 내 모든 고민을 그래, 그래, 또는 야, 그 정도는 괜찮아 라며 지껄여주는 친구도 만들 수가 없음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과거는 늘 그렇듯 핏빛 추억만을 새겨준다. 물론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가게 해줄까? 라는 주문을 받으면 결단코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거지만, 이렇게 앉아, 회상해보면, 그래도 꽤나 낭만적이었을 것만 같은, 그런 일들만이 생각나는 건, 내가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독한 외로움과 따돌림, 매일 밤 땅이 꺼졌으면, 하늘이 무너졌으면 그런 기도를 하고 잠이 든 하루하루가 지금에 와서는 그래, 그때는 참 아름다웠지 그렇게 거짓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재준이를 남자친구로 만들었을까? 진경언니는 절로 들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시험에 합격했나? 주인공 우령이는 열매와 계속 친한 친구로 지낼까? 라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소소한 어려움, 그때는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은 상처도 시간이 흐른 후 되짚어 보면 별 거 아닌 일로, 우령이의 가슴 속에 새겨지기 때문이다. 실은 지금, 여기는 항상 어렵다. 나를 괴롭히는 인간들 때문에,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들 때문에, 나를 붙잡는 가족의 짐스러움 때문에, 현실은 항상 고달프다. 중요한 건, 이런 현실이 곧, 과거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때를 지금, 여기서 다시 생각하면, 그래, 그때가 좋았는데, 그 땐 참 아름다웠는데 하고 추억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거다.
항상 현실은 추악하지만 과거는 아름답다. 그렇지 않고는 이 힘든 삶을 지탱할 수 없을 것이다. 나도, 내가 지금껏 살아있는 것도 그래도 옛날에는, 그래도 그때는 이라는 단서가 있기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