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성을 포기하는 기법과 긍정에 대한 저항을 항복하는 기법을 활용하면, 언젠가는 자신이 얼마나 큰 존재인지를 전체적으로자각한다. 이는 일단 경험하면 절대 잊히지 않는다. 전과 같이 세상에서 위협을 느끼는 일은 없다. 세상 관례를 습관처럼 계속 따르긴 하겠지만, 사로잡히거나 쉽게 상처받고 의심 많던 마음속 성향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겉으로 보이는 행동은 똑같아 보일지라도 마음속 원인은 이제전혀 다르다. 의식적으로 감정을 해결한 결과, 다치지도 흔들리지도 않는 사람이 되었다. 어떤 총알에도 내면은 끄떡없다. 이제 평정과 품위를 잃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 P78

의식의 법칙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자기에게 어떤 부정적 생각이나 믿음이 적용된다고 의식적으로 말하면, 실제로 그 영향 하에 놓인다." 우리에게는 부정적 신념 체계를 믿지 않기로 결정할 자유가있다. - P93

자신이 무의욕 상태라 느껴지면, 스스로 무엇을 증명하려는 것인지를 자문함으로써 숨어 있는 프로그램을 찾아내면 된다. 삶이 끔찍하다는 증명을 하려는 것인가? 사랑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인가? 이 세상이 절망적이라는 것인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인가?
행복은 불가능하다는 것인가? 무엇을 정당화하려는 것일까? "내가옳다."라고 하려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를 셈일까? 이때 생겨나는 감정을 인정하고 놓아 버리면, 해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 P1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사랑은 활동이다. 내가 사랑하고 있다면, 나는 그나 그녀만이아니라 사랑받는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적극적 관심을 갖는 상태에 놓여 있다. 내가 게으르다면, 내가 끊임없는 각성과 주의와 활동의 상태에 있지 않다면, 나는 사랑받는 사람과 능동적으로 관계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잠자는 것만이 비활동에 적합한상태이다. 각성 상태는 게으름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상태이다. - P182

사실상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은 ‘설교‘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인간 존재의 궁극적이고 현실적인 욕구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때문이다. 이러한 욕구가 은폐되었다는 것은 이러한 욕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랑의 본성을 분석하는 것은오늘날 일반적으로 사랑이 결여되었다는 것을 밝혀내고 이러한결여 상태에 책임이 있는 사회적 조건을 비판하는 것이다. 개인의 예외적인 현상일 뿐 아니라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신앙을 갖는 것은 인간의 본성 자체에 대한 통찰을바탕으로 하는 합리적 신앙이다. - P18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어떤 기술을 배우는 조건은 기술 습득에 대한 ‘최고의 관심‘이다. 그 기술이 최고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견습공은 이기술을 배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기껏해야 애호가로 남아 있을 뿐 결코 명장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이러한 조건은어떤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기술에도 필요하다. 그러나 다른 기술의 경우와 달리 사랑의 기술에서는 명장과 애호가의 비중이 애호가 쪽으로 훨씬 기울어지는 것 같다.
기술을 배우는 일반적 조건에 대해서 한 가지를 더 보충해야겠다. 우리는 말하자면 기술을 직접적으로 배우기 시작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배우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기 전에 다른 많은 일들 때로는 일견 관계없는 듯한 일들을 배워야 한다. - P1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모든 실패는 따뜻한 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요. 아픈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아픈 사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건 경험이 없다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라서 그렇죠. 그러므로 여러분이 무언가에 실패했다는 것은 실패한 누군가를 위로할 따스한 단어를 가슴에 품게 되었다는사실을 의미하고, 자꾸만 힘들다는 것은 일이 풀리지 않아 죽음을 생각하는 누군가를 구할 생명의 단어를 가슴에 품었다는 멋진 사실을 의미합니다. 실패해서 실패를 위로할 수 있고, 많이 아파한 덕분에 더 아픈 사람을진실로 가슴에 품을 수 있습니다. 실패하고 또 실패한 여러분은 결코 패배자가 아닙니다.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하는 중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실패는따뜻한 봄입니다. - P106

나는 유혹에 빠지거나 흔들리지 않고
나의 하루를 그저 반복합니다.
내 실력은 모두
그 반복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 P110

자신을 사랑하면
모든 것이 제대로 굴러간다.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다면
진실로 자신을 사랑하라.

루실 볼(Lucille Ball) - P124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실수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몰래 지우는 자입니다.
나는 내 실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바라보겠습니다. - P13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존엄성은 하나가 아니라 많은 것을 의미한다.
이 많은 것들이 한 인간의 삶에서 서로 얽혀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그것을 이해한다고 자부하는 인간이 있다면
그는 자기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인간 존재의
광대한 지도를 그리는 자가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 있는 오만은 불가피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관대히 넘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1901년 리스본
페드루 바스쿠 데 알메이다 프라두
<중요한 것에 대하여> - P5

내가 이 책을 쓴 목적은 독자를 내 생각의흐름 속에 끌어들여, 명료함을 얻고자 하는 치열한 시도에 동참시키고 - P17

자 하는 것이다. 아무쪼록 독자가 사고 자체만이 아니라 이러한 사색의 리듬에 휩쓸려 들어왔으면 좋겠다.
"사실, 아주 새로운 것은 없었어. 이미 알고 있는 내용도 많아. 하지만 누군가가 그것을 말로 정리해주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사고의 주변에 머무를 뿐 명확하고 뚜렷하게 규정지을 수 없는 것들도 실제로는 아주 많다는 것을 저자가 숨기지 않았다는 점도 좋다."
이 책을 읽고 누군가 이렇게 말해준다면, 나는 목표를 이루었다고 안도할 수 있을 것이다. - P18

우리가 하나의 주체로서 갖는 자화상은 현재 우리의 모습에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가 되고 싶은 모습, 그리고 되어야만 하는 모습도 해당된다. 주체가 가진 능력에는 스스로를 평가 대상으로 삼고 행동과 경험이 만족할 만한 것인지, 즉 기꺼이 받아들일 만한 것인지 내쳐야 할 것인지 자문하는 일련의 과정도 포함된다. 현재 존재하는 모습과 되고 싶은 모습 사이의 갈등을 체험하는 것, 되고 싶은 대로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체험하는 것도 주체가 가진 본질이다. 그러므로 주체로서의 인간은 내적 검열을 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자신의 행위와 사고, 희망,
공상을 금지할 수 있는 능력이 그것이다. 이 능력의 원천은 스스로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능력이다. 주체적 인간은 내적 갈등을 안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하며 스스로의 행위와 경험을 존중할 것인지 무시할 것인지 자문할 줄 알아야 한다. - P25

이 중 불의의 사건 사고를 당한 경우는 굴욕이라고 할 수 없다. 지진, 기근, 전염병 등은 우리에게 무력감을 안겨주지만 그렇다고 굴욕을 주지는 않는다. 굴욕이 주는 무력감은 장애물을 극복하거나 과제를 수행하지 못하는 등 자신의 능력이 기대에 미치지 않을 때 느끼는 종류의 것과는 다르다. 굴욕이 주는 무력감은 타인과 관련이 있다. 의미를 잘따져보면 굴욕에는 굴욕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존재한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굴욕을 준다. 주는 자가 받는 자에게 무력감을 안겨줌으로써 굴욕이 생기는 것이다. 이때의 무력감은 우발적으로나 무계획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공황에 빠진 군중들에 의해 밀쳐지거나 질질 끌려간다면 그것은 무력감이지 굴욕은 아니다. 굴욕은 한 사람이 다른사람에게 의도적으로 무력감을 느끼게 할 때 성립된다. - P38

이처럼 존엄성에 대한 서로 각자 상이한 경험이 충돌을 일으키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존엄성의 이유로 내가 확신하는 바를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설령 상대방의 존엄성이 깎인다고 해도 그를 대신해 행동하거나 간섭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또한 반대로, 상대방의 자유의지를 보호함으로써 그의 존엄성을 지켜주려면 나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책임감이나 진실성이라는 차원에서의 나 자신의 존엄성을 위험에 빠뜨릴 수밖에 없을 때도 있다. 이미 서문에서도 언급하긴 했지만 존엄성에 대한 문제를 놓고 이러한 딜레마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은 존엄성과 관련된 경험, 그리고 존엄성이 속하고 그 안에서 표현되는 삶의 형태, 이 두 가지가 서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 P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