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염전

(김경주)

죽은 사람을 물가로 질질 끌고 가듯이

염전의 어둠은 온다.

섬의 그늘들이 바람에 실려 온다

물 안에 스며 있는 물고기들,

흰 눈이 수면에 번지고 있다

폐선의 유리창으로 비치는 물속의 어둠

선실 바닥엔 어린 갈매기들이 웅크렸던 얼룩,

비늘들을 벗고 있는 물의 저녁이 있다

멀리 상갓집 밤불에 구름이 쇄골을 비친다

밀물이 번지는 염전을 보러 오는 눈들은

저녁에 하얗게 증발한다

다친 말에 돌을 놓아

물속에 가라앉히고 온 사람처럼

여기서 화폭이 퍼지고 저 바람이 그려졌으리라

희디흰 물소리, 죽은 자들의 언어 같은,

빛도 닿지 않는 바다 속을 그 소리의 영혼이라 부르면 안되나

노을이 물을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노을 속으로 물이 건너가는 것이다

몇천 년을 물속에서 울렁이던 쓴 빛들을 본다

물의 내장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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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는 먼 집

(허수경)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 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밝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 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그러나 킥킥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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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선물이다. 선물은 거래가 아니다. 되돌려 받고자하는 마음을 품지 않고 행하는 상호작용이다. 선물을주고받는 문화는 지구상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이어져내려왔다. 선물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나로 묶어주는지이해하는 것은 린치핀이 되기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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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제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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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다르면 모든 것이 다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 기업이 어떤마음으로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지 제대로 살펴보려면 화장실에 가보라는 말이 있다. 기업의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이용하는 곳을 어떤방식으로 관리하는지를 보면 기업의 미래가 보이기 때문이다. 선물도 그그러하다. 선물 하나를 주더라도 철학이 분명한 사람과 그것이 없는 사람은 다르다. 가격이나 정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왜 그것을 주는가?", "나는 어떤 가치를 전하고 싶은가?", "그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은가?"라는질문으로 하나의 철학을 세운 사람이 주는 선물은, 받는 사람에게 인생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자기 삶의 철학이 분명한 사람, 그러니까 자신이 걸어가는 혹은 걸어야 할 길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삶의 목적을 알고 있어서다. 이 얼마나 근사한 사실인가. 또한 가족이나 이름, 직업 등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삶의 무게를 완벽하게 감당하며 살아간다. 이런현상을 연암은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네 몸이 무언가에 자꾸만 얽매이고 구속을 받는 이유는 결국 너를구성한 몸이 여럿이기 때문이다. 이름이 여럿이고 욕망이 다양하니, 이처럼 살아가는 것이 무거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 P143

인간의 말에는 위대한 힘이 있다. 한 사람이 오랫동안 내면에 품고 있던 말이 그의 입을 통해 세상에 나올 때, 그 말은 어떤 지적 무기보다 엄청난 힘을 지니게된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절대로 스스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 말은 내뱉은 사람 옆에살면서 죽는 날까지 그의 일생을 가둔다. 누군가를 비난하면 결국 그 사람은 비난이라는 자신의 말 속에 갇혀서 살게 되는 셈이다. 말의 두려움을 아는 사람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두 번 생각하고 말하고, 세 번 생각하고 움직인다. 한 번 내뱉은 말에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 P154

1. 당신이 택한 일을 하라, 그러나 각오도 하라무릎을 굽혀본 적이 오래전이며 요즘 자신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연암의 말은, 누군가의 밑에서 명령을 듣고 살다가 뜻을 품고 자신의 일을하며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나, 당분간 가난한 나날을 견딜 각오는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2.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기쁨은 달콤하다연암은 비록 궁핍한 생활을 하지만, 어떤 좋은 벼슬도 요즘 자신이 누리는 삶보다는 못하다고 말하며 자유로운 삶의 가치를 전한다. 힘들 때는 자신이 누리는 자유의 가치를 떠올리며 그 순간을 견딜 힘을 낼 수있다는 말이다.

3. 다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픔을 줄 수도 있음을 기억하라돈과 명예보다 개인의 자유를 선택하는 행동은 자신에게 자유를 줄수 있어 좋지만,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아픔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연암은 이렇게 부탁한다. "내 급히 자네에게 절할 일이 생겼네. 잘 알겠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네." 혼자의 몸일 때는 견디고 참을 수 있지만, 가족 등 사랑하는 사람이 엮여 있을 때는 그사람들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것까지 분명히 알고 용기를 내야 자유 - P162

를 선택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4. 그 모든 고통을 견뎌내는 사람은 반드시 빛을 본다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또 빈 술병까지 보내니, 가득 담아 보내줄 수있겠는가?" 보통은 여기에서 먹을 것에 술까지 요청하는 연암의 넉살에대해 언급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수 있다. 연암의 의도는 먹을 것에 술까지 요청할 정도로 살기 위해 염치불구해야 비로소 겨우 고통을 견딜 수 있고 원하는 빛을 볼 수 있다는말이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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